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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다202166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의 산정에 관하여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

[2]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갑 등이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가 위 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 등으로부터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았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에 대한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2,000만 원으로 정한 원심판결에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겸 상고인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동화 법무법인 외 4인)

피고, 상고인 겸 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김현영)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원심은 원고들이 모두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로서, 피고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한 국립소록도병원, 대구 애락원, 김천 삼애원, 국립익산병원(소생원) 등(이하 ‘국립소록도병원 등’이라고 한다)에 입원해 있다가, 1959년경부터 1974년경까지 그 소속 의사나 간호사 등으로부터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피고의 한센인에 대한 산아제한정책과 낙태수술은 법률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단의 적합성과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형성도 없어 한센인의 인격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헌법에 위반되고, 설령 한센인이 낙태수술을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한센인의 진정한 동의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와 같은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심리미진 등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잘못이 없다.

나.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는 2007. 10. 17. 법률 제8644호로 제정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한센인피해사건법’이라고 한다)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라고 한다)를 구성한 후 피해자의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2013. 3. 28.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진 사실, 피고는 스스로 한센인피해사건법을 통하여 한센인피해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인권신장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고, 진상규명위원회는 2013년경 발행한 보고서에서 한센인피해사건법이 취한 조치가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이 아닌 의료지원, 생활지원 등에 그치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법 개정 등을 통한 실질적인 보상을 촉구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원심은 위 사실을 기초로 하여, 채무자인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인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에게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원고들로서는 피해자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이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따라 그 피해보상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특수한 사정이 있으므로, 피해자 결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소멸시효 완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원고들의 위자료 액수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위자료 액수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제반 사정을 판결 이유 중에 빠짐없이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것이 위자료 액수를 법관이 마음대로 산정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자료 액수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액수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8다3527 판결 참조).

나. 원심은, 원고들에게 행하여진 낙태수술의 위법성과 그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피고가 한센병의 치료 체계를 확립하고 한센병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계몽정책을 실시하였고, 한센병 환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하고 그들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으며, 한센인피해사건법을 제정하여 위로지원금, 의료지원금, 정착촌 개선 등 현재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점 등을 위자료 산정 사유로 참작한 후,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는 피고의 위법한 산아제한정책과 낙태수술로 인한 것이어서 그 발생 원인이 같다는 사정 등을 들어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2,000만 원으로 정하였다.

다.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심이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인 원고들에게 시행한 낙태수술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고, 피고는 원고들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였으며, 한센인의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원고들이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였다.

2) 위와 같은 피고의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야 하나, 이 사건 낙태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

3) 설령 원고들이 위와 같은 수술에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동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원고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가 있어야 할 것인데,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을 비롯한 한센인의 형식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4) 더군다나 임신한 여성에게 행하여진 낙태수술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성과 침습의 정도가 중하고, 형성 중인 생명인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그 비난가능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경험칙상 강제로 모성을 상실당한 여성의 정신적 고통은 일반적으로 다른 유형의 불법행위로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보다 더 심각하다.

5) 또한 한센인피해사건법에 의한 피해자 결정을 거친 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부터 약 30년 내지 60여 년의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고, 한센인피해사건법도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고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등 특수한 사정이 있으므로, 그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에는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판결 에서 피고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한센인피해사건의 위자료를 원심이 정한 금액보다 상당히 높은 금액으로 정한 판결이 확정되었는바, 이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를 위 사건과 달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라. 이러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비록 위자료 액수가 사실심법원의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확정할 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은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 마땅히 참작하여야 할 제반 사정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음으로써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반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원심판결에는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원고들의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고들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신(재판장) 김용덕 김소영 이기택(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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