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2다79750 판결
[전부금][미간행]
판시사항

[1] 금융기관의 예금채권자에 대한 상계권 행사가 권리남용 또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

[2] 갑 주식회사가 을 은행에 정기예금계좌를 개설하여 병 등에게 질권을 설정하면서 을 은행에 제출한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 “질권설정 승낙일 이전에 질권설정자가 귀행에 부담하고 있는 채무가 있을 경우에는 은행거래약정서 또는 차용금증서 등의 상계예약조항에 따라 귀행이 상계권을 행사하여도 이의가 없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고, 그 후 을 은행이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기업용)에 따라 갑 회사에 대한 대출금채권으로 위 예금채권과 상계처리한 사안에서, 을 은행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비앤에스 담당변호사 시정기)

피고, 상고인

주식회사 국민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율촌 담당변호사 박해성 외 2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원심이 이 사건 각 질권설정승낙의뢰서상의 “다만, 질권설정 승낙일 이전에 질권설정자가 귀행에 부담하고 있는 채무가 있을 경우에는 은행거래약정서 또는 차용금증서 등의 상계예약조항에 따라 귀행이 상계권을 행사하여도 이의가 없겠습니다.”라는 문구(이하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이라 한다)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원심은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의 효력을 인정하되 다만 상계권의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므로,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원심의 판단과 다른 전제에서 원심을 탓하는 것에 불과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금융기관은 예금채권자에 대한 반대채권으로 예금채무와 상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고, 향후 그 권리를 행사하여 채권을 원활하게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합리적인 기대도 할 수 있으므로, 그 상계권 행사를 권리남용 또는 신의칙 위반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에게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상대방 또는 제3자에게 협력하거나 그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반하여 상계권을 행사하였음이 인정되는 등 상계권의 행사에 이른 구체적·개별적 사정에 비추어 그 행사에 법적 보호를 해 줄 가치가 없다고 볼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대법원 2005. 9. 9. 선고 2003다28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주식회사 포휴먼(이하 ‘포휴먼’이라 한다)은 2009. 4. 1. 피고로부터 15억 원(이하 ‘이 사건 대출금’이라 한다)을 변제기 2010. 4. 1.(이후 2011. 4. 1.로 연장되었다)로 정하여 대출받기로 하는 여신거래약정을 체결하였다. 위 여신거래약정에 편입된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기업용)은 청산절차 개시, 결손회사와의 합병, 노사분규에 따른 조업중단, 휴업, 관련 기업의 도산, 회사경영에 영향을 미칠 법적 분쟁 발생 등으로 현저하게 채무자의 신용이 악화되었다고 인정되어 피고의 채권보전에 현저한 위험이 예상될 경우 피고가 서면으로 변제, 압류 등의 해소, 신용의 회복 등을 독촉하고 그 통지 도달일부터 10일 이상으로 피고가 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채무자는 피고에 대한 모든 채무의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여 곧 갚아야 할 의무를 지고(제7조 제4항 제6호), 위 기한 전 채무변제의무 등의 발생 기타의 사유로 피고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경우 피고는 그 채무와 채무자의 제 예치금 기타의 채권을 그 채권의 기한도래 여부에 불구하고 상계할 수 있다(제10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2) 원고들은 2010. 9. 30. 한양증권 주식회사로부터 포휴먼이 2010. 9. 30. 발행한 각 발행가액 10억 원, 만기일 2013. 9. 30.인 신주인수권부사채(이하 ‘이 사건 각 사채’라 한다)를 매수하였다.

(3) 포휴먼은 2010. 10. 4. 피고에 각 3억 원씩 2구좌의 정기예금(이하 ‘이 사건 각 예금’이라 한다)을 하면서, 이 사건 각 사채의 변제를 담보하기 위하여 원고 1에게 3억 원의 예금채권(이하 ‘이 사건 제1 예금채권’이라 한다)에, 원고 주식회사 리캐피탈(이하 ‘원고 리캐피탈’이라 한다)에 3억 원의 예금채권(이하 ‘이 사건 제2 예금채권’이라 한다)에 각 만기일 2013. 9. 30.인 질권을 설정하여 주었다. 이 사건 각 예금계약에 편입된 것으로 보이는 예금거래기본약관은 예금을 양도하거나 질권설정을 하는 경우에 사전에 피고에 통지하여 피고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 질권설정자인 포휴먼과 질권자인 원고들은 같은 날 피고에게 ‘이 사건 각 예금에 관하여 질권자를 위하여 질권을 설정하고 예금증서를 교부하고자 질권자와 연서로써 의뢰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기재된 이 사건 각 질권설정승낙의뢰서를 제출하였고,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의 채무자인 피고는 위 각 질권설정의 의뢰를 승낙하였다. 이 사건 각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는 위 문구의 아래에 앞서 본 바와 같은 내용의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포휴먼과 원고들이 각 기명날인을 하였다.

(5) 2011. 3. 28.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포휴먼에 관한 조회공시요구(풍문 또는 보도), 주권매매거래정지, 상장폐지 사유 발생으로 인한 주권매매거래정지 기간 변경,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사인의 의견거절 등이 공시되었고, 피고는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기업용) 제7조 제4항 제6호에 정한 휴업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 약관 조항에 정한 바에 따라 2011. 3. 29. 포휴먼에게 ‘기한의 이익 상실 통지서’를, 2011. 4. 13. 포휴먼과 원고들에게 ‘상계예정통지서’를 발송한 다음, 2011. 4. 20. 이 사건 대출금채권으로 이 사건 각 예금채권과 상계처리하였다.

(6) 한편 원고 1은 2011. 4. 6. 이 사건 제1 예금채권에 대하여 질권 실행을 위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아 위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이 2011. 4. 11. 피고에게 송달되었고, 원고 리캐피탈은 2011. 4. 20. 이 사건 제2 예금채권에 대하여 질권 실행을 위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아 위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이 2011. 4. 22.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다.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그 판시와 같은 사정, 즉 ① 피고는 질권설정을 승낙할 당시 포휴먼에 대하여 이미 원금 15억 원의 이 사건 대출금채권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이 사건 각 예금계좌는 질권설정의 승낙 이전에는 개설되어 있지 않았고, 나아가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은 원고들의 포휴먼에 대한 이 사건 각 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 10. 4. 이 사건 각 예금계좌를 개설함으로써 비로소 포휴먼이 취득하게 된 것으로 원고들에 대한 질권설정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 점, ② 포휴먼은 이 사건 각 예금계좌를 오로지 원고들의 채권에 대한 담보로 제공할 목적으로 개설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고, 원고들도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이 위 담보의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었던 점, ③ 포휴먼은 이 사건 각 예금계좌를 개설함과 동시에 같은 날 피고에게 질권설정에 대한 승낙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금융기관인 피고로서도 이 사건 각 예금계좌의 개설 목적이나 취지를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 이 사건 대출금은 신용대출에 의한 것인데 이 사건 각 예금계좌 개설 시 포휴먼의 자력에 이렇다 할 변동이 없어 피고가 담보를 새로이 제공받을 만한 특별한 계기도 없었던 점, ⑤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은 이 사건 각 질권설정승낙의뢰서 양식에 인쇄되어 있는 일종의 예문이라 할 수 있는데, 피고는 이 사건 각 예금계좌 개설 시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이 이 사건 대출금과 상계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들도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함으로써 위 예문에 실질적인 의미가 부여된 바도 없었던 점, ⑥ 만일 피고의 포휴먼에 대한 거액의 대출금채권이 이미 발생되어 있어서 피고가 그 대출금채권으로 원고들의 질권에 우선하여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원고들이 알았다면 피고가 아닌 다른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담보로 제공받기를 요구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만한 별다른 사정이 나타나지도 않는 점, ⑦ 이 사건 질권설정 당시 발생되어 있던 포휴먼의 피고에 대한 채무는 15억 원이나 되는 거액으로서 그것이 포휴먼 같은 정도의 기업경영상 수시로 발생되고 변제되는 채무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수동채권인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의 존재가 사실상 자동채권인 이 사건 대출금채권에 대한 담보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의 상계권 관련 기대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피고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라. 앞서 본 법리와 사실에 따라 살펴볼 때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옳지 않다.

(1) 은행 등 금융기관은 통상 대출금 등 채권과 관련하여 채무자의 변제자력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채무자의 그 대출금 등 채권에 관한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도록 함으로써 예금 등 채권에 대한 압류가 있어도 그 대출금 등 채권으로 피압류채권인 예금 등의 채권과 상계를 할 수 있도록 특약을 하고 있고, 이 사건 은행여신거래약관(기업용) 제7조 제4항 제6호, 제10조 제1항이 바로 이러한 특약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러한 기한의 이익 상실 등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특약에 따라 대출금 등 채권과 피압류채권인 예금채권이 곧바로 상계적상에 이르기 때문에 제3채무자인 은행 등은 제한 없이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참조). 한편 지명채권을 목적으로 한 질권의 설정은 설정자가 민법 제450조 의 규정에 의하여 제3채무자에게 질권설정의 사실을 통지하거나 제3채무자가 이를 승낙함이 아니면 이로써 제3채무자 기타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민법 제349조 제1항 ), 제3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아니하고 질권설정을 승낙한 때에는 승낙 당시 질권설정자에 대한 채권이 있었더라도 질권설정자에 대한 상계로써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민법 제349조 제2항 , 제451조 제1항 ).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각 질권설정승낙의뢰서는 기본적으로 대량적·정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피고가 예금채권의 양도 및 입질금지 특약과 관련하여 질권설정자와 질권자의 질권설정 사실 통지에 대하여 그 질권설정에 동의하는 의사표시를 함과 아울러,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 등에서 정한 기한의 이익 상실 등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는 판례와 거래실무에 기초하여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을 통해 질권설정자와 질권자에게 질권설정의 대항요건으로서 위 특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의를 보류하는 승낙을 하는 한편, 그들로 하여금 피고로부터 위와 같은 이의 보류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의미의 기명날인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이 일종의 예문에 불과하거나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2) 포휴먼이 이 사건 각 예금계좌를 오로지 원고들의 채권에 대한 담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개설하였다거나 원고들이 위와 같은 목적으로만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이 사용될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었다는 사정은, 질권설정을 하기 위해 예금을 새로 개설하는 경우에는 그 예금채권이 은행의 상계권 행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로지 질권의 피담보채권에 대한 담보로만 기능한다는 은행거래의 관행이 존재한다고 볼 자료를 기록상 찾아볼 수 없는 이 사건에서 포휴먼과 원고들의 일방적인 내심의 의사에 불과하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위와 같은 신뢰를 줄 만한 행위를 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상계권 유보조항을 통해 이 사건 각 예금채권에 대하여 상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이의를 보류하였다고 할 것이다.

(3) 그리고 피고가 이 사건 각 예금계좌의 개설 목적이나 취지를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거나 담보를 새로이 제공받을 만한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는 사정이 있음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지만,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상계권을 포기하거나 그 행사를 제한하기로 약속하였다거나 원고들의 질권 행사에 협력할 의무가 있어 자신의 상계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야 할 특별한 사정이 생겼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이 사건 각 예금채권이 질권설정 전에는 개설되지 않았고 질권설정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거나 질권설정 당시 이미 이 사건 대출금이 발생되어 있어 상계권이 행사될 수도 있음을 원고들이 알았다면 다른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담보로 요구하였을 것이라는 사정이 있다고 하여도 그러한 사정이 피고에게 질권설정 당시 이 사건 예금채권에 대한 상계권 행사의 기대가 없었음을 보여주거나 피고의 상계권 행사를 부정할 만한 사정이 되지도 못한다.

(4) 그렇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들만으로는 피고의 상계권 행사가 권리남용 또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마.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으니, 거기에는 상계권 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상훈(재판장) 김창석 조희대(주심)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