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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8984 판결
[손해배상등][미간행]
판시사항

[1]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복제권이나 2차적저작물 작성권 침해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의거관계’가 인정되는지 판단하는 방법

[2] 갑이, 을 방송사가 기획하고 병 등이 극본을 작성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갑이 뮤지컬 제작을 위한 대본으로 창작한 “The Rose of Sharon, 무궁화의 여왕 선덕”에 의거하여 제작·방송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을 방송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을 방송사의 위 대본에 대한 접근가능성이나 위 드라마와 대본 사이의 현저한 유사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두 저작물 사이에 의거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강용현 외 3인)

피고, 상고인

주식회사 문화방송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종 외 5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들의 기재는 상고이유서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의거관계에 관한 법리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복제권이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침해가 성립되기 위하여는 대비대상이 되는 저작물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의거관계는 기존의 저작물에 대한 접근가능성, 대상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이 인정되면 추정할 수 있고, 특히 대상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이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현저한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만으로도 의거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저작물 사이에 의거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와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 여부는 서로 별개의 판단으로서, 전자의 판단에는 후자의 판단과 달리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표현뿐만 아니라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표현 등이 유사한지 여부도 함께 참작될 수 있다 (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2다55068 판결 등 참조).

2.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의거관계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살펴본다.

가. 원심은, 원고가 2005년경 뮤지컬 제작을 위한 대본으로 창작한 ‘The Rose of Sharon, 무궁화의 여왕 선덕’(이하 ‘이 사건 대본’이라고 한다)에 대한 피고들의 접근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고, 피고 주식회사 문화방송(이하 ‘피고 문화방송’이라고 한다)이 2007. 3.경부터 기획하여 피고 3, 4로 하여금 그 극본을 작성하게 한 다음 2009. 5. 25.부터 같은 해 12. 22.까지 주 2회씩 총 62회를 방송한 ‘선덕여왕’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이하 ‘이 사건 드라마’라고 한다)와 이 사건 대본은 모두 역사적 사실로부터는 유추하기 매우 어려운 원고의 독창적인 창작의 산물인 ‘덕만공주(선덕여왕의 이름을 이 사건 대본에서는 ‘만’으로, 이 사건 드라마에서는 ‘덕만’으로 부르고 있으나, 편의상 ‘덕만’으로 통일하여 표기한다)의 서역 사막에서의 고난, 금관의 꽃 또는 동로마 등 서역의 문화와 사상의 습득, 덕만공주와 미실의 정치적 대립구도, 덕만공주와 김유신의 애정관계, 미실 세력으로 인한 진평왕의 무력함’과 같은 역사적 오류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 등에서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바, 이는 우연의 일치나 공통의 소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고 오직 이 사건 드라마가 이 사건 대본에 의거한 것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의 유사성이라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대본에 의거하여 이를 이용하여 제작·방송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나.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1) 먼저 접근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본다.

(가)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① 원고는 2005년경 이 사건 대본을 창작하였는데, 그 완성 전인 2003. 9.경 세계 지식 포럼, 2003. 12.경 신라 호텔 크리스마스 선덕여왕 갈라 디너쇼, 2004. 12.경 워커힐 W 호텔 GE코리아 임직원 대상 갈라쇼 등에서 일부 내용을 공연하였고, 이러한 공연은 언론에 보도된 사실, ② 또한 원고는 이 사건 대본으로 뮤지컬을 공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기 위하여 2005. 6.경 IMM INVESTMENT와 투자교섭을 하고, 2005. 11.경 주식회사 아이에이치큐와 뮤지컬 공연에 관한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투자유치에 필요한 심사를 받기 위해 이 사건 대본을 이들 회사 측에 제공한 사실, ③ 나아가 원고는 2007. 12. 말경 피고 문화방송의 사극 담당자 소외 1을 만나 뮤지컬 등 선덕여왕과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2007. 12. 5. 출판한 책으로서 선덕여왕의 리더십에 관한 자신의 연구내용 등이 담겨있는 ‘크레이추얼파워’를 교부한 사실, ④ 한편 피고 문화방송의 자회사인 피고 주식회사 엠비씨씨앤아이(이하 ‘피고 엠비씨씨앤아이’라고 한다) 소속(출판팀) 직원 소외 2는 2008. 10. 7.경 원고에게 ‘선덕여왕이 왕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통해 오늘날 여성들의 처세, 리더십, 철학에 관한 소개를 다루는 책을 함께 발간하자’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한 사실, ⑤ 이 외에 피고 3은 2009. 12. 16.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라사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정답이 없다. 가급적 역사적 근거에 충실하면서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물론 덕만과 천명은 쌍둥이가 아니다. 비담 또한 미실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 보다 어느 면이 더 리얼한가, 정치적 상황으로서 리얼리티가 있는가를 우선시했다. 정적을 악마로 묘사해서 역사를 지나치게 판타지로 풀어가는 게 더 문제이고, 역사의식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 사실, ⑥ 피고 문화방송이 2007. 6.경 이 사건 드라마 기획 초기에 예정하였던 드라마의 주제는 천명, 덕만, 선화 등 세 자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이후 피고 3, 4가 2008. 3.경 작성한 시놉시스(synopsis, 개요)는 미실과 선덕여왕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변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나)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사실만으로는 이 사건 대본에 대한 피고들의 접근가능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① 먼저 이 사건 대본은 출판되지 아니하였고 저작권등록도 되지 아니하였으며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 주로 갈라쇼 형식으로 일부 내용이 공연되었을 뿐 그 전체 내용이 공연된 바는 없고, 위 공연과 관련된 언론보도 사실의 증명을 위한 증거들 어느 것으로부터도 당시 이 사건 대본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공연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기 어려운 이상, 이 사건 드라마 극본 완성 전에 피고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 대본을 입수하거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② 또한 투자심사를 위해 원고로부터 이 사건 대본을 제공받은 IMM INVESTMENT나 주식회사 아이에이치큐의 투자심사에 피고들이 관여하였거나 이들 회사로부터 이 사건 대본이 피고들에게 유출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기록상 찾아볼 수 없다.

③ 그리고 원고가 소외 1에게 교부한 ‘크레이추얼파워’ 책에는 이 사건 대본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기록상 원고가 소외 1에게 이 사건 대본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두로 설명하였음을 인정할 신빙성 있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④ 한편 소외 2가 원고에게 보낸 이메일은 이 사건 드라마를 기초로 한 부가 사업을 담당하는 피고 엠비씨씨앤아이에서 선덕여왕 관련 저술의 출판을 타진해 보는 내용에 불과하여, 이러한 이메일 발송 사실은 이 사건 드라마 극본 완성 전에 피고들이 이 사건 대본에 접근하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

⑤ 이 외에 피고 3의 위 2009. 12. 16.자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 사건 대본이 대중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도 아니한 상태에서 이 사건 대본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이고, 그 전체적인 답변 내용상 ‘판타지’는 ‘리얼리티’에 대응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보일 뿐 이 사건 대본을 언급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이 역시 이 사건 드라마 극본 완성 전에 피고들이 이 사건 대본에 접근하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

⑥ 끝으로 이 사건 드라마 기획 초기 예정된 주제는 이 사건 드라마의 작가인 피고 3, 4와 무관하게 설정되었으므로 이후 위 작가들의 창작과정을 거쳐 작성된 시놉시스가 당초 기획안과 다른 내용으로 작성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덕만공주와 미실의 정치적 대립구도가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위와 같이 시놉시스가 당초 기획안과 다르게 변경된 것 또한 이 사건 드라마 극본 완성 전에 피고들이 이 사건 대본에 접근하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

(2) 다음 현저한 유사성에 대하여 살펴본다.

(가) 덕만공주의 서역 사막에서의 고난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는 모두 덕만공주가 신라를 떠나 서역의 사막에서 고난을 겪는 내용이 나오는데, 신라의 왕자나 공주가 신라 밖의 다른 나라, 특히 서역의 사막을 다녀온 후 왕위에 오른 적이 있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 이전부터 이미 사막은 극적 저작물에서 주인공의 고난을 상징하는 배경으로 사용되어 왔으므로, 주인공인 덕만공주가 사막에서 고난을 겪는 장면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 사건 대본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대본에서 덕만공주는 왕궁에서 공주로 자랐고, 어릴 때부터 여왕이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우던 인물이었으며, 여왕이 되기 위해 미실과 제사 대결을 벌이다 마계(마계)의 방해로 실패하여 서역의 사막으로 쫓겨 가게 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반면에, 이 사건 드라마에서는 천명공주와 함께 덕만공주가 쌍둥이로 태어나자 ‘왕후가 쌍둥이를 출산하면 성골의 씨가 마른다’는 예언으로 인해 왕후가 폐비를 당할까 우려한 진평왕이 시녀 소화에게 덕만공주를 데리고 도망가도록 하였고, 이 때문에 덕만공주는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도 모른 채 소화를 어머니로 알고 서역의 사막에서 자란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서 덕만공주의 서역 사막에서의 고난이 나타나는 원인과 구체적인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 금관의 꽃 또는 동로마 등 서역의 문화와 사상의 습득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대본에는 덕만공주가 서역의 사막으로 가기 전 신라 왕궁에서 아라비아 상인으로부터 서역의 책을 구해 읽는 장면과 후에 서역의 사막에서 신라의 전설로 내려오는 금관의 꽃을 얻어 신라로 돌아와 금관의 꽃의 신령한 힘으로 마계를 이기고 신라의 왕이 되는 내용이 나오고, 한편 이 사건 드라마에는 덕만공주가 서역의 사막에서 자랄 때 동로마어를 배운 일, 위나라의 달력인 정광력을 얻은 일이 있었고 후에 동로마어 구사능력과 정광력을 이용하여 당시 미실이 독점하고 있었던 ‘달력을 통해 천문의 변화와 그 시기를 예측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힘’을 미실로부터 빼앗고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다음 첨성대를 건축하여 위와 같이 독점되었던 권력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두 작품의 내용 가운데 첨성대 건축을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적 기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대본에서 금관의 꽃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이자 힘을 상징하는 어떤 것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어서 그 자체가 서역의 문화와 사상을 상징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 사건 대본에는 이 사건 드라마에서 그리고 있는 위와 같은 첨성대 건축의 경위와 의미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서역의 문화와 사상에 관한 부분에서 서로 유사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 덕만공주와 미실의 정치적 대립구도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는 모두 덕만공주와 미실이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서로 제사 또는 천문으로 대결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미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인물이고, 덕만공주와 미실이 정치적으로 대립하였음을 보여주거나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드라마의 미실은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거하여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덕만공주의 대적자로 재설정된 현실 정치가로 보일 뿐, 마계에 사로잡혀 인간계를 짓밟는 이 사건 대본의 미실과는 그 성격이 다른 캐릭터라 할 것이어서, 덕만공주와 미실의 정치적 대립구도가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비록 진위 여부에 논란은 있으나, 미실은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이야기가 1대 풍월주부터 32대 풍월주까지 연대기 순으로 기술되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에 이르는 삼대의 왕에게 색공(색공)하며 수십 년 동안 신라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특히 진지왕이 자신을 왕후로 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사도태후와 함께 낭도를 일으켜 진지왕을 폐위하고 진평왕을 즉위시킨 바 있으며, 필사본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풍월주들 가운데 5대 풍월주 사다함과는 결혼 전 연인관계, 6대 풍월주 세종과는 정식 부부관계, 7대 풍월주 설원과는 내연관계, 10대 풍월주 미생과는 남매관계(미생이 미실의 남동생), 11대 풍월주 하종 및 16대 풍월주 보종과는 각 모자관계(하종은 미실과 세종 사이의 아들, 보종은 미실과 설원 사이의 아들)에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미실의 지위와 풍월주들과의 인적 관계는 이 사건 드라마에도 재연되어 있고, 또 필사본 화랑세기의 5대부터 18대까지 풍월주들 중 대부분이 이 사건 드라마에서 주요 등장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이 사건 대본에서 미실은 단순히 마계에 사로잡혀 인간계의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나올 뿐 정치 감각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국사를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정치가의 모습으로는 그려지고 있지 아니하고, 마계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덕만공주가 사막에서 고난을 이기고 금관의 꽃을 얻어 신라로 돌아와 마계의 지배를 끊음으로써 미실 자신의 영혼을 구제해 주기를 바라는 인물로 나온다. 반면에, 이 사건 드라마의 미실은 진흥왕 치하에서 색공뿐만 아니라 군사적 공로를 통해 권력을 얻고 뛰어난 정치 감각 및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함으로써 진흥왕 사후 왕을 능가할 정도의 최고 권력자가 된 인물로 나오고, 합리적이고 이성에 입각하여 통치하며 대의를 중시하는 정치가로서, 덕만공주가 역량을 키우고 성장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면도 많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나아가 이 사건 대본에서 미실이 자신이 독을 발라둔 금관을 일부러 쓰고 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금관을 가로채 쓰려다 죽음에 이르는 것인지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는 아니한데, 다만 이 사건 대본에서 미실이 자살한 것으로 보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미실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마계에 사로잡혀 악행을 일삼으며 스스로가 괴물이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덕만공주가 대신 타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근거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 사건 드라마에서 미실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의 내전 확대로 자신과 전우들이 피 흘리며 이룩한 신라의 영토가 타국에 침탈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대의와 함께, 덕만공주와 끝까지 대립하여 내전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이 완전히 붕괴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자신의 사람들이 덕만공주의 치세에서도 숙청되지 않고 세력을 유지하다가 미실의 아들인 비담을 왕으로 만들도록 하려는 의도에서이다.

(라) 덕만공주와 김유신의 애정관계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서 모두 김유신이 덕만공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나 신라의 왕으로서 길을 가고자 하는 덕만공주의 태도에 사랑의 감정을 절제하며 군신관계에서 충절의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덕만공주와 김유신 사이에 애정관계가 있었음을 보여주거나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없음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역사적으로 애정관계가 있었다고 유추하기 어려운 인물이더라도 그들이 극 중 주요한 남성과 여성으로 나오는 이상 이들 사이에 애정관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는 극적 저작물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의 창작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사건 대본에는 덕만공주가 김유신을 사랑하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나타나지 아니하고 다만 김유신이 덕만공주를 사모하였다가 스스로의 감정을 숨긴 채 충성심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이 사건 드라마에서 덕만공주는 자신의 신분을 모른 상태로 남자 행세를 하면서 김유신의 낭도가 되어 김유신과 고난을 함께 겪다가 나중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나, 언니인 천명공주의 죽음을 계기로 개인적 행복을 버리고 여왕이 되고자 결심함으로써 김유신과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한 김유신은 가문조차 버리고 덕만공주와의 사랑의 도피를 선택하려 하였고 이러한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덕만공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였으나, 덕만공주의 여왕이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두 감정을 공존시킬 수 없는 김유신 자신의 성품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서 덕만공주와 김유신의 애정관계의 양상 및 전개과정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마) 미실 세력으로 인한 진평왕의 무력함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대본에서 진평왕은 미실과 비담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고 덕만공주를 후대 왕으로 지정한 후 마야부인과 함께 덕만공주의 앞날을 걱정하다 살해되는 등 무력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고, 이 사건 드라마에서 진평왕은 미실에 의해 왕위에 오르고 이후 인사권과 병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채 미실에게 휘둘리는 무력한 왕으로 묘사되는데, 역사학계에서 다수의 사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진평왕이 즉위 직후 군사권과 인사권을 장악하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체제 정비를 통하여 장기간 재위하며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하고 덕만공주가 왕이 되는 데 장애가 되는 세력을 모두 제거하는 등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였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극적 저작물에서 선왕이 강력한 왕권에 의하여 선덕여왕을 보위에 올렸다고 묘사하는 것보다는 선왕의 미약한 왕권과 강력한 귀족세력의 반대라는 어려움을 선덕여왕 스스로가 극복하고 여왕의 자리를 쟁취하였다는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선덕여왕의 선왕인 진평왕을 강력한 귀족세력으로 인해 무력한 군주로 묘사하는 것 자체는 극적 저작물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의 창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진평왕이 미실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는 사건은 이미 필사본 화랑세기에 나타나 있는 것인 이상, 이를 받아들여 극적 저작물을 작성할 경우 진평왕 즉위 후 미실 세력에 의해 왕권을 제약받는 것으로 묘사하는 정도는 다른 저작물에 의거하지 아니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의 창작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사건 대본에서는 미실이 마계에 사로잡혀 마계의 힘으로 인간계에 해악을 끼치는 결과 인간계의 진평왕이 무력하게 묘사되고 있는 반면에, 이 사건 드라마에서는 진평왕이 애초에 미실 세력의 힘에 의하여 즉위하였고 이후에도 조정이 미실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진평왕은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어,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에서 미실 세력이 진평왕을 무력하게 만드는 원천 자체가 다르다.

(바)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에 대하여

덕만공주의 서역 사막에서의 고난, 금관의 꽃 또는 동로마 등 서역의 문화와 사상의 습득, 덕만공주와 미실의 정치적 대립구도, 덕만공주와 김유신의 애정관계, 미실 세력으로 인한 진평왕의 무력함은 모두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의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개별 요소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러한 개별 요소들이 이 사건 대본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거나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가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저히 유사한 부분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상,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의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 역시 양 작품 사이의 현저한 유사성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3) 그렇다면 피고들의 이 사건 대본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드라마와 이 사건 대본이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현저한 유사성이 인정되지도 아니하므로, 두 저작물 사이에 의거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 드라마의 극본이 이 사건 대본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판단을 전제로 하여, 이 사건 드라마가 이 사건 대본에 관한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거나, 피고들의 이 사건 드라마 극본 작성, 드라마 제작, 방송 및 판매, 이 사건 드라마의 DVD 제품과 관련 소설의 제작 및 판매와 같은 행위가 이 사건 대본에 관한 원고의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원심판결에는 저작권 침해 요건으로서의 의거관계 및 민법상 불법행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민일영(재판장) 이인복 박보영(주심)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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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고등법원 2012.12.20.선고 2012나1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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