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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3도3797 판결
[업무상과실치사][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 있어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및 간접증거의 증명력

[2] 수중시체에 대하여 의사가 부검을 거치지 않고 작성한 사체검안서의 증명력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변호사 최기만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서울 광진구 자양3동 482의 5 소재 머릿돌 교회 신축공사현장을 총괄하는 책임자인 피고인이 2000. 6. 10. 07:00경 위 공사현장 1층 주차장 정화조 맨홀(직경 60cm, 깊이 530cm) 입구를 높이는 공사를 작업 인부인 공소외 1에게 지시하여 공소외 1이 위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사고의 예방을 위하여 맨홀 주위에 펜스를 설치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쇠 뚜껑 등으로 맨홀 구멍을 견고하게 덮어 놓아야 함에도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얇은 합판만을 덮어놓았으나, 이를 확인·점검하여 시정을 지시하지 아니하는 등 공사감독자로서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위 합판을 밟은 피해자 박도현(5세)으로 하여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내린 합판의 틈새를 통하여 정화조 속으로 추락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2. 이에 대하여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내세워 피고인의 유죄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가. 정화조맨홀공사를 직접 실시한 원심 증인 공소외 1은 피고인의 지시를 받아 정화조의 맨홀에 두께 5mm의 원형 합판을 덮었고, 그 위에 한 변의 길이가 90cm이고 두께가 12mm의 정사각형 합판을 덮었으며, 그 위에 다시 각목 4개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눌러 놓는 등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당시 위 머릿돌 교회의 관리집사로 있던 원심 증인 신현오 역시 자신이 피해자가 실종될 당일인 2000. 6. 10. 22:00경 퇴근하면서 그러한 안전조치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는바, 위 공소외 1과 신현오 모두 위 머릿돌 교회에 관계된 자들이어서 그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119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여 피해자를 정화조에서 건져내는 현장에서 정화조 맨홀 구멍 바로 옆에 반장 정도 되는 합판을 보았다는 원심 증인 주병철의 진술이나, 4각형의 얇은 합판이 정화조 구멍 안쪽으로 V자 형태로 박혀있던 것을 보았다는 취지의 원심 증인 박기종의 진술을 위 각 증인들의 증언과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지시를 받고 정화조맨홀공사를 시공한 공소외 1이 원심판시 기재의 둥근 합판 외에도 최소한 사각형의 합판을 한 장 더 덮는 안전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나. 피해자가 2000. 6. 10. 17:40경 성불상 준영이라는 아이와 함께 준영이의 집 쪽으로 가는 것이 목격된 이후로는 피해자를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평소 밖에 나가서 놀다가도 19:00경 이후에 귀가한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어서, 일응 같은 날 저녁 무렵에 피해자가 실종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나, 실종 당일인 2000. 6. 10. 16:30경 정화조 맨홀공사를 담당한 공소외 1이 공사를 완료하고 정화조 구멍을 합판 등으로 막은 이후에도 위 정화조 부근에서 20:00경을 조금 넘어서까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피해자가 실종될 무렵에 정화조 부근에서 놀고 있었다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들이 그러한 피해자를 발견하였어야 할 것이다.

다. 거기에 피해자의 아버지 박기종 등 친척들이 실종 당일인 2000. 6. 10. 21:00경 정화조 부근을 찾아보았음에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하루 가까이 경과한 같은 달 11일 저녁 무렵에야 정화조의 상태에 의심을 갖게 되어 정화조를 수색하기에 이른 경위까지 더하여 보면, 피해자가 실종 당일 21:00 이후에 정화조에 추락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나, 피해자의 나이와 귀가습성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21:00 이후에 정화조에 추락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라. 또 피해자의 사인(사인)에 관하여 살펴보아도, 경찰 작성의 검시조서 및 의사 문상원 작성의 2000. 6. 13.자 사체검안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해자의 신체에 특이한 외상 흔적이 없어 피해자의 사망이 정화조에 실족하여 그 내부에 차 있던 물에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인데, 위 사체검안서를 작성한 의사 문상원이 피해자가 정화조에서 건져 올려진 직후에 작성한 2000. 6. 11.자 사체검안서에 그 사망원인이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정화조 내에서 발견된 점을 근거로 피해자가 정화조 내에 고인 물에 익사한 것이라고 추정한 것일 뿐 외관상으로는 의사조차도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 그 외에 피해자의 실종에서 그가 사체로 발견되기까지 약 하루 정도의 간격이 있는 점이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의 실종 경위에 석연치 아니한 점들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실제로 익사하였을 가능성 외의 다른 원인에 의하여 사망한 후 정화조 내에 유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3. 그러나 이러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다음에서 보는 바에 비추어 수긍하기 어렵다.

가. 형사재판에 있어서도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 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이어야 하나 합리성이 없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 의심하여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아니하고, 또한 범죄사실의 증명은 반드시 직접증거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되는 한 간접증거로도 할 수 있으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대법원 1998. 11. 13. 선고 96도1783 판결 참조).

나. 우선 안전조치의 이행 여부에 관한 원심 판단의 당부를 살펴보면, 원심 증인 공소외 1, 신현오의 진술은 원심 스스로 설시한 바와 같은 이유로 그대로 믿기 어렵고, 원심 증인 주병철은 시체 발견 당시 현장에서 정화조 맨홀 구멍 바로 옆에 반 장 정도 되는 합판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나, 원심 증인 공소외 1의 진술과는 달리 쉽게 들 수 있는 정도의 무게로 보였고 맨홀 뚜껑 근처에 각목이 없었던 것은 틀림없으며 맨홀 구멍 안쪽으로 박혀 있던 합판은 매우 얇은 것이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원심 증인 박기종 역시 4각형의 얇은 합판이 정화조 구멍 안쪽으로 V자 형태로 박혀있던 것을 보았으나 그 합판 모양이 원형이 아니었고 정화조 주위에서 그와 별도로 두꺼운 합판이나 각목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위에서 든 원심 증인 4인의 진술을 종합하여 보아도 원심의 사실 인정처럼 피고인의 주장과 같은 3중의 안전조치(5mm 두께의 둥근 합판-12mm 두께의 정방형 합판-우물 정자 모양으로 배치된 반 토막짜리 각목 4개)가 실제로 취하여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공소외 1이 맨홀 입구를 돋우기 위한 콘크리트 타설을 한 후 그것이 굳지 아니한 상태에서 맨홀 뚜껑 대신 얇은 합판 한 장만을 덮어 놓았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보인다(더구나 인근 주민인 이봉학, 박종례의 경찰 진술에 의하면 위 공사현장에 인근에 거주하는 아이들의 접근을 통제할 만한 울타리 등 별다른 차단시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이행하였다고 주장하는 안전조치가 실제로 이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척할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그릇된 사실관계에 기초한 것으로 합리적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해자의 사망이 익사 이외의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나, 이 또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1) 원심은 실종 당일인 위 정화조 부근에서 20:00를 조금 넘어서까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전제하에 작업 종료시까지는 피해자가 위 맨홀을 통하여 정화조에 추락하지 아니한 것으로 단정하고 있으나, 사고 당일 20:00 이후까지 측구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였음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로는 작업일지(수사기록 제122쪽) 뿐인데, 위 작업일지의 1 내지 6행의 행간 간격과 비교하여 볼 때 측구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투입된 인원수를 나타내는 "도로 5"는 그 직전·직후의 행들과 부자연스럽게 좁은 간격을 두고 기재되어 있는 점, 마지막 행의 당일 총 투입 인원수 "28"의 "8"자는 같은 페이지에 있는 다른 "8"자와 필체가 다르고 "3"자에 가필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 측구 공사에 투입하였다는 인원수 5를 뺀 나머지 인원수의 합계가 23인 점, 공소외 1은 측구 공사에 관하여는 경찰 이래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은 18:00면 일을 마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인근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공사현장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 피고인도 2000. 6. 16. 경찰에서 세 번째로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 비로소 사고 당일 20:15경까지 측구 공사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그 직후 위 작업일지사본을 경찰에 제출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측구 콘크리트 타설 공사와 관련된 작업일지의 기재는 사후에 추가기입된 것으로 보이므로(공사내역 부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에도 "정화조 맨홀 높이 수정 청소 20:15까지 현장 작업"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사고 직후 공소외 1이 경찰에서 맨홀 입구를 돋우는 공사가 사고 당일 14:00경에 이미 완료되었다고 진술한 점, 제출된 작업일지를 통틀어 보아도 작업종료시간을 적은 경우를 발견할 수 없는 점 등으로 볼 때 20:15까지 현장 작업을 하였다는 위 기재 역시 사후에 가필된 것으로 보인다), 위 작업일지의 해당 부분 기재는 믿을 수 없고, 달리 사고 당일 평소보다 늦은 20:15까지 측구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이어졌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2) 원심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실종 당일인 2000. 6. 10. 21:00경 이 사건 정화조 부근을 찾아보았음에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결국 피해자가 자기 발로 이 사건 정화조에 추락하였다면 그 시각은 실종 당일 21:00 이후로 보아야 하나 만 4세를 갓 넘긴 피해자의 나이나 평소 나가 놀다가도 19:00까지는 귀가하였다는 그의 귀가 습성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21:00 이후에 제 발로 돌아다니다가 정화조에 추락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하였으나, 사고 당일 심야에 정화조의 상태를 확인하였다는 원심 증인 신현오의 증언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믿기 어렵고, 피해자의 아버지 박기종은 사고 당일 21:00경 정화조 근처의 모랫더미 근방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당시에는 그 곳에 정화조가 있는 줄도 몰랐고, 부근에 불이 없어 어두웠으므로, 정화조를 조사해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더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20:15까지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계속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원심이 들고 있는 위 사정들만으로 피해자가 정화조에 추락한 시점이 사고 당일 21:00 이후라고 추정한다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보인다.

(3) 수중시체가 익사한 것인지 사후투수된 것인지를 확실히 판별하려면 부검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나, 특히 타살되거나 다른 원인으로 사고사한 것으로 의심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외부소견에 의하여 이를 익사로 추정하였다 하여 의사가 작성한 사체검안서의 증명력을 배척할 이유가 없다 할 것인바, 피해자의 몸에는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여 유기된 흔적, 즉, 유괴에 의한 살인이거나 교통사고 등 사고사의 경우 당연히 있어야 할 외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고, 또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의 실종 시각이나 경위에 관한 원심의 의심에 합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사인의 점에 관한 의사 문상원 작성의 2000. 6. 13.자 사체검안서의 증명력을 배척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그 외에 원심이 거론한 사정들, 즉, 같은 의사가 작성한 2000. 6. 11.자 사체검안서에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다거나(어차피 사인의 추정은 정확한 사인을 단정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실종과 사체로 발견되기까지 약 하루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였다는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위 2000. 6. 13.자 사체검안서의 증명력을 탄핵하기에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라.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사체를 검안한 의사가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익사로 판단한 경위, 사고 당일의 실제 작업종료시각, 시체 발견 당시의 상황(주병철의 경찰 진술에 의하면 시체 인양 당시의 상황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통용되는 건축용 합판의 규격과 강도 등을 좀더 심리하고 그 결과를 기존에 제출된 증거나 드러난 사실관계와 종합하여 피고인의 유죄 여부에 관한 제반 증거들의 종합적 증명력을 따져보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의 유죄에 관한 여러 증거들의 개별적인 증거가치와 예외적인 현상만으로 그 증명력을 모두 배척한 끝에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의 조치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증거판단을 하여 채증법칙을 위반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아니할 수 없고,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용우(재판장) 조무제 이규홍 박재윤(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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