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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등)·사기·살인·살인교사·사체은닉·절도·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공2000.10.1.(115),1964]
판시사항

평소 주벽과 의처증이 심한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이혼소송을 준비하던 아내가 남편의 운전기사를 시켜 남편을 살해하였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항소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평소 주벽과 의처증이 심한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이혼소송을 준비하던 아내가 남편의 운전기사를 시켜 남편을 살해하였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항소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1외 1인

상고인

피고인들

변호인

법무법인 광장 담당변호사 박우동 외 3인

원심판결

부산고법 2000. 3. 30. 선고 99노 1146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인 2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인 1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보충상고이유서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안에서)를 본다.

1. 피고인 1에 대하여

원심판결과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이 채용한 증거들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이 공소외 1과 합동하여 피해자 1을 윤간하였다는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점을 다투는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양형부당의 점

피고인 1이 범한 이 사건 각 범행을 보면, 그 중 살인의 점은 운전기사로서 자신의 고용주인 피해자 2를 쇠파이프로 때려 무자비하게 죽이고, 그 사체를 절단 손괴하여 은닉하는 등 그 범행 수법과 결과가 극히 중한 데다가, 뒤에서 보는 것처럼 이와 같이 피해자 2를 살해하고도 그 사실을 숨긴 채 그 처인 피고인 2로부터 피해자의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고 피해자 2명의의 예금통장까지 넘겨 받아 거액의 예금을 편취하였으며, 나아가 특수강간의 성폭력범죄를 범하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각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의 수단과 결과, 그 밖에 피고인 1의 연령, 전력, 성행 등 기록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살펴보면, 피고인 1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원심의 양형이 결코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2. 피고인 2에 대하여

가. 살인교사의 점

(1)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점에 대한 공소사실은, 피고인 2는 1994년 10월경 남편인 피해자 2가 주벽이 심하여 술을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고 의처증이 심하여 당시 진행중인 목욕탕 건물 신축공사장의 포크레인 운전기사와의 불륜관계를 의심하는 등으로 가정불화가 심화되자, 피해자 2와 이혼을 결심하고 1994년 12월경 이혼소송을 준비하던 중 그 무렵 피고인 1이 피해자 2의 운전기사로 채용되자, 피해자 2를 수행하여 다니는 피고인 1에게 피해자 2의 방문장소, 만나는 여자 등 제반 상황에 대하여 수시로 상세히 알려 달라고 부탁하여, 피고인 1로부터 '사장님이 사모님 및 처가 식구를 살해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수차 전해 듣고 피해자 2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중 피해자 2가 1995년 1월 초순 일자 불상경 피고인 2 및 자식들과의 불화를 비관하여 피고인 1 운전의 승용차로 수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여 피고인 1이 피해자 2를 승용차에 태워 울산 방면으로 가던 중 그 날 14:00경 부산 금정구 구서 1동 소재 여관에 투숙한 후 1박을 한 다음날 20:00경 위 여관에서 피고인 1이 피고인 2와 통화 중 울면서 피해자 2 부부의 불화문제로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여 더 이상 기사일을 못하겠다는 말을 내비치자, 피고인 2는 피고인 1에게 '뭐 그렇게 중간에서 고심하냐, 그 새끼 죽여버리면 되지, 그 새끼를 죽여버리면 내가 생활비도 줄께.'라고 말하고, 그 다음날 오후 다시 통화를 하면서 피고인 1로부터 '사장님이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린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 피해자 2에 대한 증오심이 북받쳐 올라 피고인 1에게 부탁하여 피해자 2를 살해하겠다고 결의한 후 피고인 1에게 '그 인간 네가 죽여버리면 내가 한달에 생활비 500 내지 600만 원씩 주겠다.'고 하자, 피고인 1은 그 동안 피해자 2 부부의 불화과정에서 수차에 걸쳐 피해자 2를 죽여버리라는 피고인 2의 말이 단순히 일상적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머지 피해자 2를 살해하겠다고 마음먹음으로써 피고인 1로 하여금 피해자 2를 살해하도록 결의하게 한 후, 같은 날 초저녁 위 여관에서 피고인 1이 여관 주차장 옆에 있던 쇠파이프를 몰래 가지고 와 술에 취하여 자고 있는 피해자 2의 머리 부분 등을 수회 강타하여 좌측두개골 복잡함몰골절 등의 상해를 입히고, 이로 인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여 피해자 2를 살해하게 함으로써 살인을 교사하였다는 것이다.

(2) 제1심판결에 의하면, 제1심은 공동 피고인 1의 제1심 법정에서의 진술 등 그 채용증거를 들어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점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 1이 단독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고, 피고인 2는 살해를 교사한 바 없음에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은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는 피고인 2의 항소이유에 대하여, 피고인 2는 피고인 1에 대하여 남편을 살해하라고 교사한 적이 없다고 하고, 피고인 1은 수사 초기 범행을 부인하다가, 금융계좌 추적 결과 피해자 2 명의의 예금통장에서 인출된 돈이 자신에 의하여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자, 1999. 6. 8. 처음으로 범행을 자백한 이래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고인 2로부터 살해를 교사받아 실행하였다고 진술하므로, 결국 피고인 2의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은 피고인 1의 이러한 진술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과 대조하여 모순이 없는지, 나아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다음, 피고인 1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사실로 (가) 피해자 2와 피고인 2의 불화, (나) 피해자 2가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피고인 2가 해지한 점, (다) 피해자 2의 주민등록증이 피고인 2와 피고인 1 사이에 오고간 점, (라) 피해자 2가 지불정지하여 둔 1억 8천여 만 원이 예금된 엘지종합금융 통장 및 거래도장을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교부한 점, (마) 피해자 2가 타고 나간 그랜저 승용차의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건네어 피고인 1이 이를 매도한 점, (바) 피고인 2가 조흥은행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송금한 점을 차례로 인정하고, 이러한 점들과 피고인 1이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될 수 없는 항소심에 이르러서도 진술을 번복하지 않은 점을 종합하면, 피해자 2가 피고인 1을 안 지 한 달도 지나지 아니하여 살인을 교사한 점, 피고인 1이 피해자 2의 운전기사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피고인 2가 전혀 관여한 바 없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 2와 피고인 1의 상반된 진술 중 피고인 1의 진술이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신빙성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하여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점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이 법원의 판단

(가) 기록을 살펴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1이 피해자 2의 머리 부분을 쇠파이프로 때리는 등의 방법으로 그를 살해한 사실은 명백하다. 반면 피고인 2는 경찰 이래 피고인 1에게 살해를 교사한 사실이 없고, 피고인 1이 피해자 2를 살해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다고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원심이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점에 관한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의 증거의 요지 중 판시 제1 내지 4의 각 사실에 대한 부분에서 들고 있는 ① 피고인 1과 제1심 공동피고인 1, 2의 각 진술, ② 제1심 증인 공소외 1, 공소외 7, 공소외 8, 공소외 9의 각 진술, ③ 검사의 피고인 1, 제1심 공동피고인 1, 2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술기재, ④ 검사의 공소외 7, 공소외 10, 공소외 11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⑤ 사법경찰리 작성의 공소외 8, 공소외 9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⑥ 사법경찰리 작성의 각 검증조서의 기재 등인바, 그 중 피고인 1의 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은 살인교사의 점과 관계 없거나 직접적인 증거로서 가치가 미약한 것들 뿐이다.

따라서 원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살인교사의 점을 부인하고 있는 피고인 2의 진술과, 매월 생활비로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주겠으니 피해자 2를 죽여 달라는 피고인의 말을 듣고 피해자 2를 살해하였다는 피고인 1의 진술 가운데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피해자 2를 살해하라는 피고인 2의 교사에 의하여 살해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피고인 1의 진술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공소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 점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우선 기록에 의하여 피고인 2와 피해자 2 및 피고인 1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면, 피고인 2는 여고를 졸업하고 1971년 피해자 2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공소외 2, 3) 1녀( 공소외 4)를 두고 있는 가정주부이고, 남편과 공동으로 주택과 상가를 소유하는 등 도합 45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피고인 1은 1994년 12월 초경 그의 전처인 공소외 5의 부탁을 받은 공소외 12이 피해자 2에게 소개하여 그의 운전기사로 채용됨으로써 그 무렵 비로소 피해자 2와 피고인 2를 알게 된 사이이다.

(다) 피고인 1이 공소사실과 같은 내용으로 자백하기까지의 경위를 보면, 피고인 1은 앞서 본 특수강간의 범죄사실로 1999. 2. 24. 19:00경 긴급체포되어 구속되어 있던 중 1999. 4. 19. 피해자 2의 아들인 공소외 3이 피해자 2가 집을 나간지 몇 년이 지나도록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집을 나갈 때 데리고 간 운전기사 피고인 1을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서(수사기록 26쪽, 아래에서는 '수 몇 쪽'으로 표시한다)를 부산지방경찰청에 제출하여 그 조사과정에서 피고인 1이 부산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나 1999. 5. 17.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는바, 처음에는 피해자 2를 살해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피해자 2를 모시고 집을 나갔으나 1996년 1월경 헤어졌다고 하다가(1999. 5. 17.자 진술조서, 수 47쪽 이하), 1996년 10월경까지 피해자 2와 같이 있다가 헤어졌다거나, 필리핀을 거쳐 태국에서 만나 헤어진 뒤로 만난 적이 없다는 등으로 변소하였으나(1999. 5. 20.자 진술조서, 수 66쪽 이하), 출입국관리소에 대한 문의 결과 피해자 2는 피고인 1과 달리 그 사이 해외로 출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지고, 한편 피해자 2 명의로 개설한 엘지종합금융 통장에서 1억 8천만 원 이상의 거액이 인출되고 피고인 1이 114일 동안이나 해외여행을 하였으며, 전처에게 전세자금을 대어 주는 등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여 온 사실과 피해자 2 명의로 개설된 조흥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면서 작성한 출금청구서의 필적이 피고인 1의 필적임이 드러나자(수 270쪽), 마침내 1999. 6. 8. 피해자 2를 죽였다고 자백하면서 살해 일시는 설날 직후인 1995. 2. 1. 18:00경, 장소는 부산 범어사 입구 좌측 여관 2층이라고 하고(1999. 6. 8.자 진술조서, 수 449쪽), 살해 동기에 관하여는 피고인 2가 생활비를 줄 터이니 피해자 2를 죽여 달라고 하여 죽이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1999. 6. 8.자 진술서, 수 444쪽 이하), 이 자백진술을 근거로 1999. 6. 10. 12:50경 피고인 2는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체포되었으나, 최초 경찰조사단계에서부터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부인하고 있다.

(라) 그런데 살인교사의 경위와 내용에 관한 피고인 1의 진술을 요약하면, 피해자 2를 모시고 집을 나가 여관에 있는 동안 전화로 피고인 2에게 울면서 피고인 2 부부 사이의 불화로 입장이 난처하여 운전기사를 더 못하겠다고 하자, 피고인 2가 '중간에서 고심하지 말고 죽여버리면 생활비를 준다.'고 하여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다시 전화로 '피해자가 가족들을 모두 죽인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자, 피고인 2가 ' 피해자 2를 죽여 주면 생활비로 매월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준다.'고 하여 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피고인 1의 진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렵거나, 진술이 일관되지 아니하고, 기록상 드러나는 객관적 사실과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쉽사리 믿기 어렵다.

① 살인교사의 동기가 부족하다.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평소 알콜중독 증세에 의처증까지 있는 피해자 2가 피고인 2를 때리거나 총으로 죽인다고 위협하여 피고인 2와 자녀들이 피신하기까지 하고, 피해자 2가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는 등 피고인 2와 피해자 2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였던 사실은 기록상 인정되고, 피고인 2가 1994년 12월 초경 남편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집을 나와 친지의 집에 머물면서 이혼소송까지 제기한 점을 보면, 피고인 2가 남편에 대하여 증오와 보복 등의 악감정을 가졌음도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나 이혼을 결심하고 변호사를 통하여 이혼소송을 제기한 상태(수 231쪽 이하, 992쪽 이하, 1244쪽 이하, 피고인 2는 서울에 있는 올케로부터 500만 원을 빌려 1994. 12. 17. 변호사에게 위임하여 1995. 1. 4.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소송은 공시송달로 진행되어 1995. 10. 18. 이혼과 위자료 지급 및 재산분할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 확정되고 1996. 1. 15. 이혼신고까지 마쳤다.)에서 당장 남편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급박한 사정이나 그로 인해 얻게 될 재산상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보험금을 노리는 등의 흔적은 전혀 없고, 이혼소송을 제기한 처지에서 상속재산을 노렸다고 볼 수도 없다).

원심은,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피해자 2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호적에서 신분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불과한 이혼소송은 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나, 피해자 2로부터 직접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도 아니고, 피해자 2가 집을 나가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 2를 죽인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화로 전해 들은 것에 불과한 데, 당시 집을 나가 이혼소송을 준비하다가 아버지가 집을 나갔으니 들어오라는 딸 공소외 4의 권유에 따라 귀가한 처지( 피고인 2는 이와 같이 1995년 1월 초 귀가한 이래 이혼소송 및 이혼신고를 거친 후에도 계속하여 시어머니, 자녀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에서 아예 남편을 죽여버리기로 결의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아니한다.

② 남편을 죽이라고 교사하는 범행이 전화통화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아내가 하수인을 시켜 남편을 살해하고자 한다면, 그 하수인에 대한 교사나 모의는 사전에 서로 만나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과정에서 범행 비용을 미리 준다거나 범행의 대가에 대한 논의가 있고, 나아가 살해의 방법이나 사후 처리문제 등도 거론됨이 통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 하수인이라는 피고인 1은 피해자 2가 집을 나가기 한달 전쯤 새로 채용한 운전기사로서 피고인 2와는 거의 면식이 없는 처지이다.

피고인 2와 피고인 1이 처음 대면한 일시와 장소 등에 대한 두 사람의 주장을 보면, 피고인은 남편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 피고인 1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이에 반하여 피고인 1은 경찰 및 검찰에서는 1994년 12월 초순경 취업 다음날 피고인 2의 집 거실에서 처음 대면하여 스스로 새로 일하게 된 운전기사라고 인사하였더니 피고인 2가 피해자 2의 동태를 살펴 빠짐없이 알려 달라고 하였고(1999. 6. 21.자 피의자신문조서, 수 934쪽 이하, 1994년 12월에 피고인 2를 자주 보았다고도 한다.), 원심 법정에서는 1994년 12월 초순과 중순 사이 피해자 2의 운전기사로 취업하였는데, 취업한 지 2, 3일 정도 되었을 때 피고인 2의 집 거실에서 할머니도 있는 자리에서 처음 대면하였으며, 그 때 피고인 2가 피해자 2의 사소한 행적까지 모두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원심 제2회 공판조서, 공판기록 848쪽 이하, 아래에서는 '공 몇 쪽'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2는 피고인 1이 채용되기 전인 1994년 12월 초경 피해자 2로부터 구타를 당한 끝에 집을 나가 있다가 피해자 2가 1995. 1. 1.경 집을 나간 뒤 딸 공소외 4의 권유에 따라 1995년 1월 초 집에 돌아왔다고 진술하고, 공소외 4의 증언도 이에 부합하는바(1999. 10. 4. 증인신문조서, 공 504쪽), 피고인 1의 진술은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또 피고인 1은 피고인 2가 거처를 옮길 때마다 자신에게 그 연락처를 알려 주고 자신은 전화로 피해자 2의 동태를 보고하는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주장하지만, 한편 피고인 1 스스로 취업 직후 피해자 2의 지시를 받고 피고인의 친정집 앞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 피고인 2의 동태를 감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바(원심 제2회 공판조서, 공 848쪽), 그런 처지에서 피고인 1이 피고인 2와 첫 대면시 부탁받았다 하여 자신을 고용한 피해자 2를 속이고 피고인 2 편에 서서 피해자 2의 행적을 빠짐없이 보고하였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피고인 1의 주장대로 피해자 2와 집을 나가기 전 피고인 2와 한번 대면하고 그 뒤 피해자 2의 행적을 보고하는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2가 직접 만나서 부탁하거나 지시한 것도 아니고 서너 차례 전화통화만으로 남편을 죽이라고 지시하였다는 것도 쉽게 믿기 어렵다. 오히려 피고인 1이 피해자 2에게 피고인 2가 생활비를 준다고 죽여달라더라고 고자질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피고인 2와 피고인 1 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신뢰관계가 전제되지 않는 한, 홧김에 지나가는 말이라면 몰라도, 진정으로 남편을 죽이라고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임에 비추어, 몇 차례의 전화통화 끝에 남편을 죽여달라는 피고인 2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피고인 1의 진술은 납득하기 어렵다.

③ 범행의 대가로 매월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생활비로 받기로 하였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피고인 1은 범행 이전에 피고인 2로부터 범행 비용이나 대가 명목의 돈을 받은 바 없고, 범행에 성공하면 매월 생활비로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준다고 하여 돈 욕심에 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므로, 피고인 1로서는 범행 대가의 액수와 그 확보책이 가장 큰 관심사일 터인데, 단순히 죽여 주면 매월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준다는 것뿐 언제까지 주겠다는 것인지, 주겠다는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에 대하여 언급이 없고, 피고인 1은 원심 법정에서도 언제까지 얼마를 주겠다는 말이 없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원심 제2회 공판조서, 공 853쪽).

그러나 이 점은 피고인 2가 피해자 2 명의로 개설된 예금통장 계좌로 매달 돈을 보낸 것이 수사결과 드러나자, 이에 짜맞추어 진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④ 범행의 대가인 생활비를 주기 위하여 피해자 2 명의의 통장을 새로 개설하였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피고인 1의 진술대로, 피고인이 살해를 교사하면서 매달 생활비를 주기로 하였다면, 그 때마다 서로 만나 돈을 주고 받는 것보다 통장을 개설하게 하여 매달 송금하는 방식을 택할 법도 하고, 피고인 1은, 피고인 2가 피고인 1 자기 이름으로 하면 의심받게 되니 죽은 남편 명의로 개설하라고 지시하였다고 변소하나, 피고인 2의 입장에서 그 통장 명의를 남편으로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조흥은행 통장개설을 위한 은행거래신청서(수 666쪽)를 보면, 피고인 1이 피해자 2를 대리하여 1995. 1. 12. 조흥은행 영주동지점에서 거래신청을 하면서 대리인으로서 본인 확인을 거치고, 피고인 2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피고인 1 자신의 운전면허증 사본을 첨부하였으며(수 667쪽), 신청서에 기재된 피해자 2와 피고인 1의 인적사항이나 휴대폰 전화번호( 피고인 2 명의로 가입)는 모두 사실대로임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인 2와 피고인 1이 피해자 2를 살해한 대가를 송금하기 위하여 예금통장을 개설하면서 그 명의를 그들이 살해한 피해자 2로 하고, 또 그 과정에서 피고인 1 자신의 인적사항을 그대로 밝히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피고인 1의 최초 경찰진술처럼 범행일자가 설날 뒤인 1995년 2월 초순이라고 볼 경우 통장개설일인 1995. 1. 12.에는 아직 피해자 2가 살해되기 전이고, 피해자 2가 집을 나오면서 딸인 공소외 4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라고 하였다는 상황( 피고인 2의 진술과 특히 공소외 4의 제1심 증언)과 잘 부합된다.

⑤ 통장의 입금내역도 범행의 대가로 보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피고인 2가 위와 같이 개설한 피해자 2 명의의 조흥은행 통장으로 송금한 내역(수 272쪽 이하)을 보면, 피고인 2의 주거지에 있는 장림동지점에서 1995년 1월부터 8월까지는 적게는 250만 원, 많게는 600만 원이 매월 입금되다가 1995년 9월은 거르고 1995년 10월과 12월에는 300만 원씩, 1996년 1월에는 350만 원이 입금되었고, 그 뒤 입금이 되지 않다가 1996년 5월에 100만 원, 1996년 12월에 150만 원이 입금되었으며, 인출은 주로 통장개설지점인 영주동지점에서 카드로 몇 10만 원씩 나누어 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입출금 상황을 범행의 대가로 매달 500 내지 600만 원씩을 생활비로 받기로 하였다는 피고인 1의 진술과 비교하여 보면, 처음 8개월은 매달 돈이 정기적으로 입금되었으나, 그것도 처음 3개월만 약속한 액수이고, 그 후로는 금액이 줄었으며, 8개월이 지나서는 정기적으로 입금하지 않거나 금액도 아주 줄어버려 살인의 대가로 보기에 어설픈 데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 피고인 1은, 돈이 입금되지 않은 달이 있어 전화로 피고인 2에게 따졌더니, 아들이 미국 유학을 가고, 딸이 중국 유학을 갔는데 그 경비가 많이 들어 조금씩 보낸다고 하였다고 진술하고(1999. 7. 1.자 피의자신문조서, 수 1084쪽), 피고인 2는, 피해자 2가 죽은 줄 모르고 생활비로 보낸 것으로서 형편에 따라 보내다 보니 금액이 일정하지 아니한 것이고, 살해의 대가였다면 피고인 1가 그대로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하는바, 피고인 2의 변소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좌개설 다음날인 1995. 1. 13. 13:28경 최초로 입금된 93만 원은 조흥은행 당리동지점에서 총포사를 경영하는 공소외 13이 입금한 것으로, 1994년 12월 말경 공기총을 구입하려던 피해자 2로부터 미리 받았던 돈을 반환한 것임이 기록상 분명하다. 공소외 13은 그날 11:00경 피고인 2가 총포사로 찾아와 계좌번호를 불러주어 동생 공소외 9을 시켜 송금한 것이라고 진술하는바(수 761쪽), 그 통장계좌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어 통장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남편이 이미 죽었다면 총포사에서 돈을 보내더라도 피고인 1이 인출하여 사용할 것이 뻔한 터에 그 계좌로 송금하게 한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편 피고인 1은, 통장개설 다음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총포사에서 피해자 2의 핸드폰으로 피해자 2를 찾는 전화가 와서 없다고 하자, 통장계좌번호를 불러 달라고 하여 자신이 알려 준 것이라고 진술하나(원심 제2회 공판조서, 공 856쪽), 이는 공소외 13과 그 아내 공소외 8의 각 진술과도 어긋날 뿐더러, 자신이 통장계좌번호를 알려 주었다는 피고인 1의 진술을 수용하더라도, 그 통장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 되어 석연치 아니하다.

오히려 이 점도 살해 일시가 설날 이후라는 피고인 1의 최초 경찰진술과 부합되는 대목이다.

⑥ 범행 경위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 중 특히 살해의 일시와 장소에 대한 진술이 전후 어긋나는 바, 이 점도 피고인 2의 살인교사에 관한 피고인 1의 진술을 의심스럽게 한다.

살해 일시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경찰에서 살해 범행을 처음으로 자백하면서 작성한 진술서(1999. 6. 8.자, 수 444쪽)에서 1995년 2월 말 또는 3월 초라고 하였다가, 같은 날 작성된 진술조서에서는 1995. 2. 1. 18:00경으로 살해 일시를 특정하면서 그 해 설날(1995. 1. 30.) 뒤에 죽인 것이어서 분명하다고 하였는바(수 451쪽 이하), 이는 같은 날 작성한 또 다른 진술서(수 446쪽)에서 신정때 피해자 2와 함께 집을 나왔다고 하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설날 이후라는 진술 부분이 착오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피고인 1을 도와 피해자 2의 사체가 든 가방을 옮겨 준 제1심 공동피고인 1도 1999. 6. 10.자 경찰 피의자신문에서 도와준 날이 1995년 2월 초순경이라고 진술하고(수 508쪽), 또한 피고인 1의 형으로 사체를 피고인 1의 고향인 경북 영덕읍 야산에 파묻는 것을 도와준 제1심 공동피고인 2도, 자신이 도와준 일시가 1995년 2월 중순(1999. 6. 10.자 진술서, 수 534쪽)이고, 설을 지난 며칠 후(같은 날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수 538쪽)라고 하여 제1심 공동피고인 1의 진술과 일치하고, 이를 근거로 이들에 대한 긴급체포조서상의 범죄일시가 1995. 2. 3.로 특정된 것으로 보인다(수 555, 557쪽, 물론 제1심 공동피고인 1과 2가 살해 일시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에 맞추어 그와 같이 진술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피고인 1은 1999. 6. 11.자 경찰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살해 일시를 1995년 1월 초순 18:00경(수 565쪽) 또는 1995. 1. 4. 18:00경으로 특정하여(수 570쪽) 전날의 진술을 바꾸었다.

이는 피고인 2가 남편 살해의 대가로 매달 생활비로 5-600만 원씩을 보내준다면서 피해자 2 명의의 조흥은행 예금계좌를 개설하라고 하였다는 피고인 1의 진술 부분(수 565쪽)이, 피고인 1이 조흥은행 영주동지점에 피해자 2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일자가 1995. 1. 12.로 밝혀진 수사결과(수 269쪽 이하 및 666쪽)와 어긋나게 되어, 통장개설 이전에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궁에 따라 당초 진술한 살해 일자(설날 후)를 1월 초로 앞당긴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 뒤 검찰 수사과정에서 1995. 1. 4. 15:44경 피고인 2의 집 부근인 장림동 숯불불고기집 앞에서 당시 피해자 2가 타고 나갔다는 그랜저 승용차가 주차위반으로 적발된 사실(수 228쪽, 이는 1995. 1. 4.과 같은 해 1월 25일의 2회 주차위반에 대한 과태료독촉장인데, 그 기재만으로는 1995. 1. 4.자 주차위반의 장소를 알 수 없으나, 검사는 2회의 주차위반 모두 피고인 2의 집 앞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수 1188쪽 이하)을 추궁당한 끝에 피고인 1은 살해 일시를 1995. 1. 4.부터 같은 달 12일 사이로서 1995년 1월 초순이라고 다시 진술을 바꾸었다(수 1187쪽 이하).

결국 이 진술을 토대로 공소장의 범행일자는 1995년 1월 초 일자 불상 초저녁이 되고, 제1심 및 원심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살해 일시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은 종잡을 수 없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고, 피고인 1의 진술대로 피해자 2의 살해 일시가 1995년 초(1월 또는 2월)라면, 최초로 범행을 자백한 1999. 6. 8.까지 이미 4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긴 하였지만, 그렇더라도 사람을 죽인다는 일의 중대성에 비추어 그 일시를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피고인 1의 입장에서 혐의를 받은 지 20여 일 만에 피해자 2의 살해 사실을 자백하는 마당에 굳이 그 일시를 숨기거나 사실과 달리 진술할 이유가 없을 것임에 비추어 보면, 신정때 함께 집을 나와 설날 이후에 죽였다는 최초의 진술이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살해 일시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 번복은 피고인의 살인교사에 관한 피고인 1 진술의 신빙성과도 관련된다.

왜냐하면, 살해 일시를 통장개설일자가 밝혀진 뒤 피고인 1이 특정한 1995. 1. 4. 18:00경이라고 본다면(최종적으로 확정된 1995년 1월 초순 일자 불상경이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2가 피고인 1과 집을 나온 시점이 1995. 1. 1. 무렵임은 기록상 분명하므로[ 피고인 1은 당초 신정때 집을 나왔다고 하였으나, 그 뒤 검찰 제4회 진술에서 출발일자가 1월 4일인지 1월 5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수 1188쪽), 제1심 법정에서 1995. 1. 4. 주차위반에 대한 추궁을 받고는 그 날 집을 나왔고, 나오기 전 옷가지를 실으려고 차를 집 앞에 주차하여 두었다가 적발되었다고 변소한다(공 265, 266쪽).], 집을 나온 지 3일 사이에 피고인 2와 서너 차례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2의 지시를 받아 피해자 2를 살해한 셈이 되는데, 과연 그 동안에 채용된 지 한달 남짓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남편이 독자적으로 채용한 운전기사에게 남편을 죽이라고 시키고, 그 운전기사는 피고인 2의 지시에 따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살해 장소에 대한 진술도 엇갈린다.

원심은 살해 장소가 부산 금정구 구서동 소재 여관이라고 한 공소사실을 수용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피고인 1은 최초 1999. 6. 8.자 진술서와 같은 날짜 경찰 진술조서에서는 범어사 근처 여관(수 444쪽), 범어사 올라가기 전 좌측 여관 2층(수 449쪽)이라고 하면서 범어사 입구에 위치한 여관약도까지 그려 제출하였다가(수 472쪽), 암매장 장소에 대한 1999. 6. 11.자 현장검증(수 586쪽 이하, 592쪽, 615쪽 사진 참조)에서 위 여관이라고 찍힌 수건이 발견되고부터 여관이라고 살해 장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었으나, 위 여관은 전철 두실역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범어사와는 상당한 거리인데도 약도상에 두실역이 표시되지 아니하였고, 집을 나온지 3-4일 만에 죽였다면 그 사이 옮겨 다닌 여관도 많지 않을 것이고, 사람을 죽이고 다음날 그 사체를 절단하기도 한 장소를 최초 진술시 제대로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피해자 2를 살해하였다는 점을 제외한 그 나머지 범행경위와 동기 등에 대한 자백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게 한다.

⑦ 범행 후의 행적 중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피고인 1의 진술도 의심스럽다.

㉮ 피고인 2에게 범행을 곧바로 알리지 않은 점

피고인 1은 경찰에서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2를 죽인 후 1-2주일 또는 1주일 정도 지난 뒤에 전화로 살해한 사실을 피고인 2에게 알렸다고 진술하고, 그처럼 늦게 알린 이유에 대하여는, 살인을 하고 나서 제정신이 아니어서 쉽게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이고, 매월 생활비를 주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당장 받을 돈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1주일 정도 뒤에 전화를 하여 알린 것이라거나(검찰에서의 진술), 살해 후 두렵고 하여 술로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에 전화를 한 것이라고 하고(제1심에서의 진술), 원심 법정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공 854쪽).

그러나 돈이 탐나 피해자 2를 살해하였다는 피고인 1의 입장에서 곧바로 보고하지 않고 1-2주일 후에 알렸다는 것은 위와 같은 변소에도 불구하고 쉽게 납득할 수 없다.

㉯ 살해 방법에 관한 보고와 그에 대한 피고인 2의 반응에 관한 진술

피고인 1은 범행을 처음으로 자백하면서, 살해 후 2주일 정도 지나 피고인 2에게 낚시하다가 바다에 밀어버렸다고 전화하니, 피고인 2가 알았다 하면서 다른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진술하고(수 464쪽), 그 뒤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살해 후 1-2주일 후 바닷가에서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전화로 알리자 피고인 2는 알았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하고, 시신을 어떻게 하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진술한다(공 855쪽).

그러나 살해 대가의 지급방법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교사에 의하여 남편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데에도 그 사실의 진실 여부와 사체 처리문제, 나아가 범행 이후 피고인 1이나 피고인 2 자신이 취할 태도 등에 관하여 아무런 관심 표시나 논의 없이 그냥 알았다고만 할 뿐, 그 뒤에도 이를 물어보거나 하지 않고, 피고인 1도 알려 준 바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⑧ 피고인 2를 교사범으로 끌어들일 경우 얻을 수 있는 피고인 1의 이익

피고인 1의 입장에서 볼 때, 단독범행이 아니라 피고인 2의 교사로 피해자 2를 죽인 것으로 인정되는 쪽이 중형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부인이 남편을 죽여 달라 부탁한다고 하여 살해하게 된 것이라 하여 용납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시적으로 돈에 눈이 어두워 그 하수인이 된 경우와 독자적으로 피해자 2를 살해한 다음 이를 숨기고 유족들로부터 돈을 받아 내거나, 피해자 2의 통장에서 예금을 빼낸 경우를 비교한다면, 피고인 1이 일부러 피고인 2를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외면할 수 없다.

피고인 2와 아들 공소외 3이 피해자 2를 찾아 달라는 진정서를 1999. 4. 19. 경찰서에 제출함으로써 시작된 수사과정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은 특수강간의 범행으로 구속되어 있던 중 같은 해 5월 17일부터 피해자 2의 행방에 대하여 추궁받게 되었는데, 피고인 1은 처음에는 1996년 1월경 피해자 2와 헤어져 자신도 그 후의 행방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진술하다가, 피해자 2와 함께 필리핀, 태국에 갔었다는 진술이 거짓임이 드러나고, 새로 개설된 통장으로 돈이 입금된 흔적과 1억 8천여 만 원의 예금이 인출된 뒤 피고인 1이 전처에게 전세금을 주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등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여 온 사실이 드러나자, 1999. 6. 8.에 이르러 피해자 2를 살해하였음을 자백하면서 그 동기를 피고인 2의 교사로 변소하였는바, 수사관들이 부산구치소로 찾아와 피해자 2의 행방을 추궁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범행을 자백하기까지 20여 일 동안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에 비추어, 피고인 1이 실제와 달리 피고인 2가 교사하여 살해한 것으로 꾸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⑨ 그 밖에도 피고인 1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정들이 있다.

㉮ 비록 살해 범행을 부인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와 집을 나가 헤어지기까지의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내용이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는 점은 자백진술의 신빙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1999. 5. 17.자 및 1999. 5. 20.자 각 진술조서).

㉯ 피고인 1은 1995년 11월경 신축한 목욕탕의 개업식에 앞서 피고인 2가 다른 사람이 의심할지 모르니 피해자 2가 살아 있는 것처럼 축하 화환을 보내라고 하여 전처 공소외 5를 시켜 화환을 보냈다고 진술하나(공 858쪽), 목욕탕의 주인인 피해자 2가 개업식에 자신의 축하 화환을 보낸다는 것은 오히려 어색하게 보인다.

㉰ 피고인 1의 진술대로라면, 살해 후 1년 남짓 동안 통장을 통하여 받은 5,000여 만 원, 엘지종합금융 통장에서 인출한 1억 8천여 만 원, 자동차 매매대금 1,200만 원, 피해자 2가 차고 있던 로렉스시계 매매대금 600만 원 등을 합하여 2억 4천여 만 원 정도를 피해자 2의 살해와 관련하여 취득한 셈이고, 이 돈은 1997년 말 이전에 해외여행, 전처의 가게전세금 및 유흥비 등으로 모두 탕진하여 그 뒤 경제적으로 다시 어려워졌다는 사정이 기록상 드러나는바, 피해자 2와 함께 45억 원이 넘는 재산(수 479쪽)을 가진 피고인 2에게 더 이상의 대가를 요구한 바 없다는 점, 피고인 2의 입장에서도 친지들로부터 남편의 행적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피고인 1이 1억 8천여 만 원이 든 통장을 가져가 최종적으로 돈을 인출한 시점으로부터 2년이 넘도록 피고인 1과 연락을 한 흔적이 없고, 피고인 1도 이를 인정하는바, 이 점도 의문을 남긴다.

㉱ 피고인 2가 아들 공소외 3을 진정인으로 하여 피해자 2의 생사가 의심스러우니 찾아 달라면서 1999. 4. 19. 경찰서에 제출한 진정서(수 26쪽)에서 피진정인으로 피고인 1을 내세우고 그의 소재를 파악하면 피해자 2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진정서에 피해자 2에게 생활비로 보냈다는 무통장입금증들을 첨부하고 있는바, 이 점도 피고인 2가 그 살해를 교사하였다는 것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마) 한편 이와 같이 피고인 1의 진술을 그 신빙성을 부정하여 배척할 경우, 반대로 ① 피고인 1이 독자적으로 피해자 2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는지, ② 피고인 2가 4년이 넘도록 피해자 2를 찾기 위한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대하여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피고인 1이 수사 초기에 피고인 2의 교사에 의하여 피해자 2를 살해한 것이라고 진술하게 됨에 따라 단독범행의 가능성이 배제되어 단독범행을 가정한 살해의 동기에 대하여는 전혀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록상 그 동기를 추단할 만한 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피해자 2의 사망이라는 결과로 피고인 2는 어떤 재산상 이익을 본 바가 없고, 오히려 남편이 신축 중이던 목욕탕 건물의 공사비를 마련하느라 고생한 흔적이 있는 데 반하여, 피고인 1은 자신의 진술만으로도, 피해자 2가 소지하고 있던 금품(로렉스시계와 현금 300만 원)은 물론 그 뒤 매달 조흥은행 예금계좌로 송금된 돈, 엘지종합금융 통장에 들어 있던 거액(1억 8천여 만 원)을 모두 차지한 셈이 되므로, 이를 노렸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고, 피해자 2는 평소 성격이 괴팍한 데다 주벽도 심하다는 것이므로, 피해자 2와 피고인 1이 어떤 마찰로 우발적으로 살해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피고인 2의 변호인도 이 점을 지적한다), 이는 개연성에 기초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넘기 어렵다.

그러나 단독범행의 동기가 불분명하다고 하여 곧바로 피고인 2가 살해를 교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은 자명한바, 피고인 2에 대한 살해교사의 점을 유죄로 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증거인 피고인 1의 진술이 앞서 본 바와 같이 여러 모로 믿기 어려운 의문점을 드러내고 있고, 그 점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는 한, 피고인 1의 진술만으로써 피고인 2를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피고인 2는 남편이 집을 나간 1995. 1. 1.경부터 1999. 4. 19. 아들 공소외 3의 이름으로 진정서를 제출할 때까지 4년이 넘도록 남편과는 직접 전화통화조차 한 바 없었음에도 남편을 찾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뒤늦게 진정서를 제출한 것도 시어머니가 1999년 2월 중순 설날 무렵 사망하였는데도 남편이 귀가하지 않은 데 대한 주위 친지들의 걱정과 의문 제기에 마지못해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하여, 피고인 2는, 같이 나간 피고인 1이 낚시도 하고 울릉도와 제주도를 다니면서 잘 지낸다고 하여 그리 알고 있었다거나(수 481쪽), 남편이 자신과는 통화를 하지 않지만 시어머니와는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도 연락이 없어 수사기관에 진정하게 되었다고 변소하는바(수 482쪽), 이러한 피고인 2의 변명이 다소 미흡해 보이기도 하지만, 피고인 2가 그 사이 피고인 1의 고향집을 찾아가는 등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한 흔적(공소외 14, 공소외 15, 공소외 3의 각 증언 등 참조) 등에 비추어, 4년이 지나서야 진정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의심할 것만은 아니다.

(바)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 2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 2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1996. 3. 8. 선고 95도3081 판결, 1994. 11. 25. 선고 93도2404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 2와 피고인 사이의 불화, 피해자 2가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피고인이 해지한 점, 피해자 2의 주민등록증이 피고인 2와 피고인 1 사이에 오고간 점, 피해자 2가 지불정지하여 둔 1억 8천여 만 원의 예금통장과 거래도장을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건네준 점, 피해자 2가 타고 나간 그랜저 승용차의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건네주어 피고인 1이 매도한 점,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상당한 액수를 송금한 점 등 피고인 2가 피고인 1을 교사하여 피해자 2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피고인 1의 진술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자체로 의심스러워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기록상 보이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인 1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살인교사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결국 증거의 가치판단을 그르친 나머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서,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이유 있다.

나. 나머지 각 범죄에 대하여

피고인 2에 대한 살인교사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 공소사실, 즉 (1) 1995. 2. 10.자 피해자 2 명의의 엘지종합금융 통장에서 이자 380여 만 원을 인출하여 편취한 점(사기), (2) 1998. 5. 8. 대출서류에 관련된 서류를 만들어 피해자 2와 피고인 2 공유인 대지와 건물등기부에 근저당권설정변경등기를 경료하게 하고, 이를 비치하게 하여 행사한 점(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및 그 행사), (3) 1995. 5. 23. 장림새마을금고에서 (2)항 기재 부동산을 담보로 1억 원을 대출받아 편취한 점(사기), (4) 피고인 1, 공소외 6과 순차 공모하여 1995. 12. 30. 피해자 2 명의의 엘지종합금융 통장에서 8,200여 만 원을 인출하여 편취한 점(사기)은 모두 피해자 2가 피고인 1에게 살해되었음을 피고인 2가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범행에 이른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 2는 (1), (2), (3)항에 대하여는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4)항에 대하여는 피해자 2에게 전달하여 예금을 찾아 주라면서 통장과 도장을 피고인 1에게 맡겼을 뿐 공모사실을 부인하고, 모두 피고인 1이 피해자 2를 살해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피해자 2가 집을 나가기 전부터 신축 중이던 목욕탕 건물의 건축비 등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원심은 이들 범죄에 대하여도 살인교사의 점과 함께 피고인 1의 진술이 신빙성 있음을 전제로 모두 유죄로 인정하였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이상,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이자 또는 예금을 인출하거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하고 대출을 받았다 하더라도, 피고인 1을 시켜 피해자 2를 살해한 뒤 이를 숨기고 그와 같은 범행을 한 것이라는 전제가 무너진 이상, 피고인 2의 그러한 행위가 피해자 2의 아내로서 그 권한 범위 안의 행위 또는 남편의 묵시적인 승낙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아니하므로, 결국 이 부분에 대한 원심의 판단 또한 증거의 가치판단을 그르친 나머지 채증법칙을 위반하고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역시 이유 있다.

3. 결 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 2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여 이 부분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고, 피고인 1의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송진훈(주심) 윤재식 손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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