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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방법원 2019.11.28. 선고 2018고합344 판결
준강간
사건

2018고합344 준강간

피고인

A

검사

김석순(기소), 이준희, 정현승, 김재환(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청린

담당변호사 정원일

판결선고

2019. 11. 28.

주문

피고인을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피고인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한다.

이유

범죄사실

피고인은 2017. 10. 21. 09:00경부터 10:39경까지 사이에 서울 용산구 B빌라 4층에 있는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술에 취하여 잠을 자고 있는 피해자 C(여, 26세)에게 다가가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들어 있는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해자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어 입을 맞추고, 가슴과 성기를 만지고,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여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증거의 요지

1. 피고인의 일부 법정진술

1. 증인 C, D의 각 법정진술

1. 증인 E의 일부 법정진술

1. C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1. C, D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1. C 작성의 고소장

1. 수사보고(피의자 주거지 내부 및 주변 CCTV), CCTV CD 1부

1. 수사보고(피해자 음주량 보정 관련)

1. 감정의뢰(증거목록 순번 5번), 감정의뢰회보(법화학감정서), 감정의뢰회보(유전자감정서, 증거목록 순번 7번)

1. 감정의뢰(증거목록 순번 10번), 구강세포체취 동의서, 감정의뢰회보(유전자감정서, 증거목록 순번 12번)

1. 피해자 작성 약도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1. 작량감경

형법 제53조, 제55조 제1항 제3호(아래 양형의 이유 중 유리한 정상 참작)

1. 이수명령

유죄 판단

1.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요지

가.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오인하고 성관계를 하였다.

나. 피해자는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고,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려는 고의도 없었다.

다. 피해자 진술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

2. 관련 법리

가.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9, 9. 9. 선고 2019도2562 판결 등 참조).

나. 형법 제299조에서의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제297조, 제298조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 등 참조).

다.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의 방법이 아닌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행위를 강간죄에 준하여 처벌하고 있으므로,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3. 판단

가. 2017. 10. 21. 오전 전후의 사실관계1)

1) 피고인은 2017년경부터 '서울 용산구 B빌라 4층'에서 거주하여 왔다(피고인 녹취서 2쪽).

2) 피고인은 서울 용산구 F 소재 'G이라는 상호의 식당(이하 '식당'이라고만 한다)에서 매장관리인으로 근무하였다(피고인 녹취서 2쪽).

3) E은 대학 교수이고, 피고인과 E은 친구이다(E 녹취서 2쪽).

4) 피해자는 E의 과거 강사 시절 수강생이었다(피해자 녹취서 2쪽, 피고인 녹취서 3쪽).

5) 피해자와 D은 친구이고, 피해자는 D을 'H'이라고 호칭하기도 하였다(D 녹취서 2쪽).

6) 피고인과 피해자는 2015년경 E의 생일축하 모임에서 서로 처음 알게 되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E의 수강생들과 함께 이 사건 이전까지 수차례 만난 적이 있고, 상호간에 생일축하, 안부 묻기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메시지를 송수신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을 'I' 등으로 호칭하기도 하였다(증거기록 1권 98쪽 이하, 피고인 녹취서 3, 4쪽).

7) 피해자는 2017. 10. 20.(금) 19:30경 내지 20:00경 친구 3명과 함께 식당을 방문하였다. E은 피고인의 집에 자신의 자동차를 주차한 다음 22:00경 식당에 도착하였다(증거기록 2권 10쪽, 피고인 녹취서 5쪽, E 녹취서 15쪽).

8) 친구 3명은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가야한다는 등의 사유로 23:00경 식당에서 나갔다(증거기록 2권 10쪽).

9) 피고인, E, 피해자는 2017. 10. 21.(토) 05:00경부터 식당을 정리하고 식당에서 나왔다(피고인 녹취서 7쪽).

10) 피고인, E이 피해자를 귀가시키려 하자 피해자는 '그냥 집으로 보낼 거야?'라고 말하면서 피고인의 집으로 같이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피고인 녹취서 7쪽, E 녹취서 2쪽).

11) 피고인은 05:40경2) 피고인의 집으로 들어갔고 이로부터 약 30초 뒤에 피해자가 E과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으면서 피고인의 집으로 들어갔다(CCTV CD).

12) 피고인과 피해자는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E은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어 잠을 청하기 위하여 거실 소파에 누웠다가 침대방으로 갔다(증거기록 2권 11쪽, 피고인 녹취서 7쪽, E 녹취서 4쪽).

13) 피고인은 07:25경 피해자에게 "J"이라는 메시지를 전송하였다(증거기록 1권 143쪽).

14) E은 09:48경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여 피해자의 집에서 나왔다(CCTV 영상).

15) 피고인과 피해자는 10:17경 피고인의 집에서 나왔다. 피해자는 말없이 피고인과 거리를 두며 도로 한편으로 걸어가다가 피고인의 약 3보 뒤에서 걸어갔다(CCTV 영상).

16) 피해자는 피고인을 피하여 다른 길로 이동하였고, 피고인은 10:25경 피해자에게 "어디로갔어?"라는 메시지를 전송하였다(증거기록 1권 143쪽).

17) 피해자는 10:30경 전화로 D에게 'H, 나 원치 않는 관계를 한 것 같아'라고 울면서 말하였다. D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피해자가 있는 B으로 이동하였다. D은 이동하면서 K센터에 관한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증거기록 2권 13쪽, D 녹취서 2, 3쪽).

18) 피해자를 만난 D은 K센터에 연락하여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피해자는 상담사와 통화 후 K센터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피해자와 D은 근처 지구대를 찾아갔다(D 녹취서 4쪽).

19) 피해자와 D은 여성경찰관의 안내를 받아 순찰차를 타고 K센터로 이동하였다(D녹취서 4쪽).

20) 2017. 10. 21. 13:30경 채취한 피해자의 혈액에 대한 감정결과 혈중알콜올농도는 0.057%로 나타났고, 같은 날 09:00경 혈중알코올농도를 위드마크공식을 적용하여 역산하면 약 0.093%로 추산되었다(증거기록 2권 38, 146쪽).

21) 피고인과 E은 2017. 10. 22.부터 2017. 11.경까지 여러 차례 전화를 주고받았다(증거기록 2권 142쪽 이하).

22) 경찰은 2018. 1. 15. 서울용산경찰서에 출석한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압수하였는데,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사용한 휴대전화를 분실하였다며 이 사건 이후에 마련한 새로운 휴대전화를 제출하였다(증거기록 2권 156쪽 이하, 피고인 녹취서 22쪽).

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판단

피고인과 피해자 단 둘이 있었던 피고인의 집에서 2017. 10. 21. 오전 E이 떠난 이후 발생하였다는 준강간의 공소사실 중 주요 사실관계에 관하여 피고인 진술과 피해자 진술이 대립한다. 피해자 진술 중에는 일부 사실관계에 대한 묵비, 실제보다 다소간 축소된 언급이나 과장된 표현 등이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피해자 진술(C 작성의 고소장, C에 대한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증인 C의 법정진술)은 진실성과 정확성에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이 인정되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신빙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피해자 진술은 주요 부분에서 이치에 맞고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이 인정되며 개개의 진술이 불일치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나)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기억하는 피해사실에 관한 진술을 계속 유지하였다. 특히 수사, 공소, 공판에 이르는 형사사법절차의 과정 속에서, D에 대한 최초 피해사실의 공개, 고소장 제출, 경찰 및 검찰에 의한 조사, 피고인의 범행 부인, 반대신문을 포함한 이 법정에서의 증인신문과 같이 진술의 배경이 된 상황의 변화와 피고인 측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진술의 주요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 일관성이 있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다) 핵심적인 피해사실 외에 다른 사실관계에 관한 피해자 진술 역시 일관성이 있고, D 진술이나 다른 객관적인 증거자료와도 부합한다. 피해자는 범행 전후 및 범행 과정에서 나타난 E 및 피고인의 모습과 언행 등에 관하여도 비교적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이러한 피해자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렵다. 특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저항할 수는 없었지만, 피고인이 차가운 손으로 가슴과 성기를 만졌다. 성기를 삽입하였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와 같이 당시 피해자가 느꼈던 촉감, 불쾌감, 거부감 등과 함께 표현된 피해자 진술은 피해자가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라)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이 법정 모두에서, 2017. 10. 20. 피고인을 식당에서 만나고 다음 날 피고인에 대한 형사고소에 이르게 된 일련의 사실관계에 대하여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보고하려고 노력하였다. 피해자는 당시 주취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명확히 인지∙기억하지 못하여 진술하지 못하는 사항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이 법정 모두에서 기억의 부족과 한계를 인정하였고, 기억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혔다. 만약 허위 진술을 하려고 하였다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진술하였을 것이지만, 피해자는 신문의 과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답변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자신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진술하였고, 핵심적인 피해사실 외에는 피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나 비난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 피해자는 피고인의 집에서 나온 즉시 D에게 전화하여 피해사실을 공개하였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K센터로 이동하고 고소장도 제출하였다. 피해자가 최초로 피해사실을 외부로 공개하고 이 사건에 관한 형사사법절차의 진행을 결정하게 된 경위가 비정상적이거나 의심스럽다고 볼 수도 없다.

바) 피해자는 상당한 주취상태로 한정된 범위와 한정된 내용일 수밖에 없지만, 피해사실 자체는 물론 피고인의 언행에 대하여 당시 느꼈던 고민, 심경 등을 함께 진술하였다. 피해자 진술 곳곳에서 당시 피고인의 행동으로 인하여 가지게 된 충격, 두려움, 수치심이 묻어 나오고 있다. 법관의 면전에서 선서한 후 이 법정에서 진술에 임하고 있는 피해자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와 같이 조서 등에 기록하기는 어려우나 피해자를 직접 관찰함으로써 얻게 된 사항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보강하고 있다. 2차적 피해 대한 우려, 수치심,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도 수사기관과 법정에 모두 출석하여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상술한 피해자 진술의 진정성은 충분히 담보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허위 진술로써 피고인을 모함하여 해악을 가하거나 피고인 측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는 유인도 찾아볼 수 없다.

다. 피해자의 항거불능의 상태 및 피고인의 범의에 관한 판단

1) 피고인 및 변호인은 2017. 10. 21. 오전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간음 외 준강간죄의 나머지 구성요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다소간 의심스러운 사정이 엿보이기는 한다.

가) 피해자는 식당에서 술자리를 마치고 바로 귀가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피고인의 집으로 이동하였다. 피해자는 피고인이나 E의 도움 없이 피고인의 집으로 스스로 이동하였고 E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웃기도 하였다(CCTV CD).

나) E은 침대방에서 자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이 깼는데, 피고인과 피해자로부터 '쩝쩝'과 같이 키스 등의 '애정행위'를 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E 녹취서 4쪽).

다) E은 침대방으로 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누웠는데,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같이 자자', '뭐 어때, 들어가자'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피해자가 침대방에 누워 거실에 있는 피고인에게 'A, 들어와'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E 녹취서 6, 7쪽).

라)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07:25경 메시지로 전송한 숫자는 피고인의 집 비밀번호였다(피고인 녹취서 8쪽).

2) 그러나 피해자가 간음 당시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피고인의 집에서 피해자와 단 둘이 있었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피해자의 평소 주량은 소주 1병이다(증거기록 2권 14, 109쪽, 1권 242쪽). 그런데 피해자는 주량을 초과하여 식당에서 이미 과일 맥주(350ml) 1병과 거의 와인 1병 가까이를 마셨다, 그리고 피고인의 집에서도 와인을 조금 더 마셨다(증거기록 2권 10, 11, 15쪽, 1권 240쪽), 식당에서 피고인의 집으로 이동하는 05:00경 내지 05:40경 사이에는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주취상태가 더욱 고조되면서 정상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외부의 침해행위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점차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피고인의 집에서 발생했던 사실관계에 관한 피해자 진술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주취상태가 차츰 심화되고 있음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반말을 하고 '들어와'라는 등의 말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가 스승의 친구의 집에 스승이 같이 있다는 사실마저 염두에 두지 못한 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나) 신빙성 있는 피해자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몸에 아무런 힘이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피고인에 의한 일련의 성적 행위에 어떠한 항거도 하지 못하였다. 즉 피해자는 피고인의 집에서 와인을 더 마셨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고 눈을 떠보니 알몸인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 위에 있었고 이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세 번째로 눈을 떴을 때 피고인이 피해자가 누워 있는 벽쪽으로 들어와 피해자를 만지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눈을 떴을 때 겉옷과 속옷이 보여 입었고, 당시 피고인은 침대방 밖에 있었다(증거기록 2권 11, 12, 15, 109쪽, 1권 238, 239쪽), 이러한 피해자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면, 피해자는 수면에 상당한 주취가 더하여진 상태에 있었고 위해로부터의 방어능력이 사실상 상실되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

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정상적인 신체 활동과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이에 따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 피고인과의 간음을 동의하거나 양해하였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도 어렵다.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두 사람은 이 사건 이전에 키스, 스킨십, 애정표현을 하거나 서로 호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피고인 녹취서 17쪽),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스승의 친구인 피고인과 스킨십을 하거나 이를 훨씬 뛰어넘어 간음까지 한다는 것은 상정하기 매우 어렵다.

라)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간음까지 동의하거나 양해하였을 것으로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친소관계, 최초 만남 이후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까지의 경과, 피고인과 피해자의 성인식, 도의 관념, 사회·문화적 배경, 이 사건이 발생한 시간적·공간적 상황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간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성질과 수준의 것이 아니다. 키스나 피해자의 신체 외부를 만지는 성적 행위와 피해자의 성기에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는 간음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도 존재한다. 피해자의 동의를 기대하기란 더더욱 어렵고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피고인의 연령, 성행, 사회적 지위 등에 비추어 피고인 역시 이러한 측면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신체 외부에 대한 접촉에서부터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무시하였고 곧이어 간음에 돌입하였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상호 호감을 가진 두 남녀의 합의된 성적 행위나 선행하는 성적 행위를 기초로 자연스럽게 고조·발전되는 성적 행위의 진행 과정은 찾아볼 수 없다.

마)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고인 외에 피해자를 처음으로 대면한 사람은 D이다. 피해자는 울면서 D에게 피해사실을 곧바로 공개하였고, D은 피해자가 '술 냄새도 많이 나고 경황이 너무 없어 보였다. 말도 좀 왔다 갔다 했다'라고 진술하였다(D 녹취서 3쪽). 또한 피해자는 곧바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범행시점을 한정하지 못한 채 '06:00경 ~ 10:00경 사이'라고 포괄적으로 기재하였는데(증거기록 2권 3쪽), 앞서 본 피해자 진술과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체류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지 파악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 피고인은 간음 당시의 상황에 관하여 '피해자가 성관계를 하다가 갑자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관계를 멈추고 옆에 누우려고 하자 피해자가 피고인을 갑자기 밀어냈다'라고 진술하였다(피고인 녹취서 12, 17쪽), 피해자가 정상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결과로서 간음에 동의하였음에도 갑자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피고인을 밀어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 소결

따라서 피해자 진술에는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피해자 진술과 더불어 앞서 설시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2017. 10. 21. 오전 피고인의 집에서 피해자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고, 이에 관한 피고인의 범의 역시 인정된다.

4. 결론

그러므로 피고인에 대하여는 공소사실과 같은 준강간죄가 성립한다.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형의 이유

1.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 : 징역 1년 6월 ~ 15년

2.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

[유형의 결정] 성범죄 > 01. 일반적 기준 > 가. 강간죄(13세 이상 대상) > [제1유형]일반강간

[특별양형인자] 없음

[권고영역 및 권고형의 범위] 기본영역, 징역 2년 6월 ~ 5년

3. 선고형의 결정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취상태로 잠이 든 것을 기화로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피해자가 늦은 시간 주취상태임에도 안심하고 피고인의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피고인과 스승인 친구를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고인은 친구가 자신의 집을 떠나자 친구의 제자인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감행하였다. 이 사건의 범행대상, 범행장소, 범행경위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피해자는 인지능력마저 상실된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였고, 피고인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커다란 심리적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었고, 심리적 불안정과 생활적응 곤란을 겪고 있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하였고,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다만, 피고인은 범죄의 성립 여부를 다투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감행하지는 않았고, 다소간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정이 엿보인다.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다. 피고인에게 교화하기 어려운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성인식까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피고인은 이 사건을 계기로 향후 매사 조심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피고인의 지인 등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공판에 나타난 여러 양형의 조건을 참작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신상정보 등록

등록대상 성범죄인 판시 범죄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의하여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에 해당하게 되므로, 같은 법 제43조에 따라 관할기관에 신상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공개명령, 고지명령 및 취업제한명령의 면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고, 성폭력범죄의 습벽이 있거나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범행이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는 아니고, 피고인에 대한 이수명령 및 신상정보 등록으로 성폭력범죄의 재범 방지 효과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인정된다. 공개명령, 고지명령 및 취업제한명령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및 예상되는 부작용과 비교하여 그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성폭력범죄의 예방 효과 및 성폭력범죄로부터의 피해자 보호 효과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와 아울러 피고인의 연령, 직업, 가정환경, 사회적 유대관계와 범행의 종류, 동기, 범행과정, 결과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신상정보를 공개 및 고지하여서는 아니 되고 취업을 제한하여서는 아니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아래 각 법률 조항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공개명령, 고지명령 및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하지 않는다.

판사

재판장 판사 이정민

판사 신지은

판사 장태영

주석

1) 증인 OOO, 피해자, 피고인의 법정진술은 'OOO ∙ 피해자 ∙ 피고인 녹취서 □□쪽'과 같이 특정한다.

2) CCTV CD(증거기록 2권 80쪽)에는 '메인(52분 빠름)' 및 '보조(22분 빠름)' 폴더가 들어 있다. 수사보고에 의하면(증거기록 2권 77쪽), 폴더명(名)과 달리 '메인'의 영상시점이 '22분 빠름'에 해당하고, '보조'의 영상 시점이 '52분 빠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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