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7고합506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피고인
A
검사
임채원(기소), 추혜윤(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한가람
담당변호사 구관희, 박하현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담당변호사 류두현, 모형관
판결선고
2018. 1. 25.
주문
피고인은 무죄.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연극, 영화, 뮤지컬 제작 사업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주식회사 B(이하 'B'라고 한다)의 대표이사이다.
피고인은 2016. 9. 5.경 '서울 강남구 C건물, 9층'에 있는 피해자 주식회사 D(이하 ' D'이라고 한다)과 피해자 주식회사 E(이하 'E'라고 하고, 위 각 회사를 통칭하여 '피해자 회사들'이라고 한다)의 사무실에서 D의 상무이사인 F에게, "뮤지컬 G 한국어 공연(이하 'G 공연'이라고 한다)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니 20억 원을 대출해주면, ① G 공연을 위한 용도로만 그 돈을 사용하고, 연 20%의 이자와 함께 원금을 6개월 뒤에 변제하겠다. ② 담보로 G 공연 티켓 판매대금을 그 판매대행사인 주식회사 H(이하 'H'라고 한다) 등으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그 대행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티켓 판매대금 지급청구권을 양도하겠다. ③ 피해자 회사들과 '사전 서면동의' 없이는 G 공연과 관련된 각종 계약을 해제하거나 중요내용을 변경하지 않겠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즉석에서 그 취지가 기재된 대출약정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은, ① 당시 피고인이나 B는 별 다른 재산이 없었고, B는 2014년도 매출이 156억 원이었으나 2015년도에는 공연계의 불황 및 메르스 사태로 인한 '공연'의 실패로 매출이 94억 원으로 급감하여 당기순이익이 6,700만 원 상당이었으며, 2016. 9. 30. 기준 매출 55억 원에 당기순이익 2억 7,600만 원 상당에 불과하였으나, 매월 대출금 이자나 회사 운영비로 1억 원 상당이 필요하여 자금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금융채무 약 30억 원, 공연관련 미지급 대금채무 약 30억 원 합계 60억 원 상당의 채무가 있었던 점, ② G 공연을 하려면 공연장을 임대해 준 J에 이전 공연작인 'K'의 미지급 대관료 4억 6,452만 원과 G 공연 대관료 6억 940만 원 합계 10억 7,392만 원을 선지급해야 하지만 그 돈이 없었던 점, 그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20억 원을 차용한 이후인 2016. 11. 17.경 B의 주식 55%를 주식회사 L(이하 'L'라고 한다)에 50억 원에 매각하여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였으나 본 계약 체결이 무산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돈을 차용하더라도 이를 6개월 후에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20억 원을 대출받기 전에 이미 주식회사 M(이하 'M'라고 한다)와 "E 또는 주식회사 N은행으로부터 G 투자금조로 돈을 수령하는 즉시 M에 5억 원을 변제한다"는 취지의 금전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등 G 공연 이전의 공연작인 'O', 'K'의 제작과 관련하여 발생한 공연관련 채무 11억 원 상당을 변제하는데 사용할 생각이었을 뿐 20억 원을 대출을 받더라도 이를 G 공연의 용도로만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로써 피고인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F을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2016. 9. 5. B 명의의 N은행 계좌로 각각 10억 원 합계 20억 원을 송금받았다. 2.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 요지
가. 변제 의사와 능력 관련 주장의 요지
1) 투자전문 회사인 피해자 회사들은 2016. 9. 5. B와 대출약정(이하 '이 사건 대출약정'이라고 한다)을 체결할 당시 사전에 F을 통해 B의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자 회사들은 B의 뮤지컬 제작 능력, 공연 매출 실적 등을 검토한 후, G 공연의 티켓 판매대금 채권을 양도받으면 충분한 담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B에 20억 원의 대출(이하 '이 사건 대출'이라고 하고, 위 20억 원을 '이 사건 대출금'이라고 한다)을 실행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 대출금은 G 공연의 티켓 판매율이 30% 이상이 되면 그 판매대금으로 충분히 상환이 가능하였고, 과거 다른 공연들의 매출 실적에 비추어 보면 티켓 판매율 30%는 충분히 달성이 가능한 수치였다.
2) 피고인은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B의 대출원리금 상환채무 이행을 연대보증하였는데, 당시 피고인은 자신 명의로 B의 주식 40%를, 차명으로 나머지 60%를 각 보유하고 있었고, 피고인 명의로 보유한 B 주식만으로도 이 사건 대출금을 현저히 초과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피고인 개인적으로도 이 사건 대출금을 변제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3) G 공연이 취소된 이유는 J에 대관료를 지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극심한 티켓 판매 부진 때문이었다. 즉, 피고인이 이 사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치 못한 티켓 판매 부진으로 인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피고인은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변제 의사와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나. 용도 사기 관련 주장의 요지
1) F은 이 사건 대출 당시 B의 뮤지컬 제작 능력과 티켓 판매대금 채권을 양도받아 담보를 확보하는 것에만 주목하였을 뿐, 대출금의 사용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계약 체결 당시에 계약서의 해당 조항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즉, 이 사건 대출약정서에 기재된 용도 제한 규정은 형식적인 것이고, F 또한 일부 대출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이 사건 대출약정을 체결한 것이므로 피고인은 F을 기망한 사실이 없다.
2) 뮤지컬 공연 사업은 여러 공연을 연달아 진행하면서 중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특정 공연 제작을 전제로 대출금 또는 투자금을 지급받더라도 그 중 일부가 다른 공연의 제작비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였고,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뮤지컬 업계의 관행이었다. 피고인은 이러한 뮤지컬 업계의 관행에 따라 이 사건 대출 금 중 일부를 다른 뮤지컬의 제작비용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피고인에게는 사기의 고의도 인정될 수 없다.
다. 공연 취소 관련 주장의 요지
피고인은 G 공연을 취소할 당시 F을 만나 공연 취소 여부를 상의하였고, F의 동의를 받아 최종적으로 공연 취소를 결정하였다. 이처럼 F의 동의를 얻어 공연을 취소한 이상 피해자 회사들의 서면 동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연 취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3. 판단
가. 피고인의 변제 의사와 능력에 대한 판단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대출 실행 당시 B의 재정 상황이나 G 공연을 통한 대출금의 상환가능성 등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 회사들을 속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피고인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변제 자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G 공연을 통해 이 사건 대출금을 변제할 의사를 가지고 G 공연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회사들 또한 B의 재정 상황 등을 충분히 파악한 후 G 공연의 티켓 판매대금으로 대출원리금 회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이 사건 대출을 실행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B의 일반적인 자력이나 재정 상황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F 혹은 피해자 회사들을 속여 이 사건 대출금을 지급받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
1) 피고인은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이전에 이 사건 대출을 중개한 P를 통해 F에게 B의 재정 상황과 뮤지컬 제작 능력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전달하였고, F은 이를 통해 B의 재정 상황 등에 대하여는 충분히 파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F은 이 법정에서 "대출심사를 진행하면서 B의 재무제표 등을 검토하여 B에 부채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지만, 과거 공연들의 객석 점유율(티켓 판매율) 등을 볼 때, 객석이 30~40%만 차도 이 사건 대출금을 회수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대출을 실행하였다. 이 사건 대출 실행 당시 B의 일반적인 재정상황이나 신용도 등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F에게 B의 재정 상황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F이나 피해자 회사들은 G 공연의 성공가능성 및 G 공연의 티켓 판매대금 채권 양수를 통한 대출금 회수가능성에 주안점을 두었을 뿐, B의 일반적인 자력이나 재정 상황 등에 대하여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인이 B의 열악한 재정 상황과 관련하여 F 혹은 피해자 회사들을 속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2) B는 이 사건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피해자 회사들에 G 공연 티켓 판매대금 채권을 양도하였는데, G 공연 티켓 판매율이 30~40% 정도가 되면 그 티켓 판매대금으로 피해자 회사들이 대출원리금을 모두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B가 과거에 진행하였던 공연들의 티켓 판매율에 비추어 볼 때, 30~40%의 티켓 판매율은 충분히 달성이 가능한 수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B는 이 사건 대출계약 체결 이전에 G 공연을 위하여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유명 배우들과 캐스팅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으며, 그 이후로도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꾸준히 G 공연을 준비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G 공연의 티켓 판매대금으로 이 사건 대출금의 상환이 가능하다고 볼 합리적인 근거가 충분히 존재하였고, 피고인이 실제로 G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여 왔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피고인에게 이 사건 대출금을 변제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3) 한편, B는 2015. 12. 8. Q 주식회사(이하 'Q'이라고 한다)와, B가 2016. 3. 22.부터 2017. 1. 16.까지 Q이 운영하는 J에서 'O', 'K', 'R' 등 총 3개의 뮤지컬 작품을 공연하기로 하는 대관계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3번째 공연작인 'R'가 최종적으로 'G'로 변경되었다. 위 대관계약에서는 총 대관료를 1,921,700,000원(부가세 포함)로 정하면서 B가 2015, 12. 23.부터 2016. 10. 19.까지 총 7회에 걸쳐 대관료를 순차로 납부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B는 위 대관계약에서 정한 대관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여 Q에 지속적으로 납부시기 연장을 요청하였고, 그 과정에서 2차례에 걸쳐 대관료 납부시기 등을 연장하는 변경계약이 체결되었다. B는 2016. 9. 5.경을 기준으로 Q에 대관료 약 3억 8,000만 원을 지급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이후로 2016. 10. 19.경까지 6억 원 이상의 대관료를 지급해야 했으나, 2016. 9. 23.에 미납 대관료 중 1억 원을 지급하는 데 그쳤고, 이에 Q은 2016. 10. 14. B에 대관계약 해지를 통보하였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B는 자금난으로 G 공연을 위한 장소 마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① B는 과거부터 J에서 많은 뮤지컬 작품을 공연하면서 Q과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아 왔고, 이에 따라 Q은 B의 사정을 고려하여 대관료 납부일정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줄 의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 B는 2016. 10. 14.자 계약해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Q과 J의 대관 문제에 대하여 계속 협의를 하였고, 2016. 10. 21.경 Q에 채권 금액 5억 원의 L 제10회 무기명식 무보증신주인수권부사채를 담보로 제공하고, B가 H에 대하여 가지는 G 공연 티켓 판매대금 채권 중 16.5%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대관계약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후 2016. 10. 24. J에서 G 공연 준비를 재개하였던 점, ③ G 공연이 취소된 것은 티켓 판매율 저조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
였던 것으로 보일 뿐, J의 대관 문제와는 별 다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④ Q은 위 대관계약에 따른 미납 대관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B와 재차 2017년도 뮤지컬 공연을 위한 대관 협의를 진행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J 대관 문제는 G 공연을 진행하는 데에 본질적인 장애가 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그러한 사정을 근거로 피고인이 변제 의사와 능력 없이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이 사건 대출금을 지급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4) 피고인은 B의 주식 42,000주 중 40%를 피고인 명의로, 나머지 60%를 제3자의 명의로 각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B의 100% 주주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피고인이 B주식 42,000주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무렵 피고인에게 재산이 없었다는 부분은 위와 같은 객관적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주식회사 S은 2016. 4.경부터 L를 인수한 후 L를 통해 다시 B를 인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L는 2016. 6.경 T회계법인에 B 주식 42,000주의 가치를 평가하는 업무를 의뢰하였는데, T회계법인은 현금흐름할인법을 적용할 때 B 주식42,000주의 가치가 8,380,000,000원에서 11,673,000,000원으로 산정된다는 검토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후 주식회사 S의 L 인수는 무산되었지만 이와 별도로 L는 2016. 9. 말경까지 신규사업 물색의 일환으로 B의 인수를 계속 검토하였고, 2016. 11. 17. B 발행주식의 55%인 23,100주를 50억 원에 양수하기로 하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보유한 B의 주식은 충분한 자산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무렵에는 그 자산 가치를 현금화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피해자 회사들에 대한 B의 대출원리금 상환채무 이행을 연대보증하였던 피고인이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던 이상 피고인에게 이 사건 대출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는 더더욱 보기 어렵다.
나. 용도 사기 여부에 대한 판단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 회사들과 F은 피고인이 이 사건 대출금을 G 공연 이외의 용도에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이를 어느 정도 양해한 상태에서 이 사건 대출을 실행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한 뮤지컬 업계의 관행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에게 사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와 관련하여 피해자 회사들이나 F을 속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
1) 이 사건 대출약정 제2조에서는 "차주는 이 약정에 따라 대주로부터 차입한 대출금을 본건 뮤지컬 공연을 위한 제작비, 공연비, 금융비용 등의 용도로만 사용하기로 하며, 차주가 위 목적 외의 용도에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는 차주가 전적으로 일체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위 조항에 따르면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가 G 공연에 한정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① 위 조항의 표제가 '차입목적'으로 되어 있고, 이 사건 대출약정의 서두에 위치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 규정은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 보다는 '이 사건 대출이 실행된 목적'에 주안점을 두고 마련된 조항으로 보이는 점, ② 위 조항에서는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를 'G 공연을 위한 제작비, 공연비, 금융비용 등으로 규정하여, 이 사건 대출금이 G 공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비용에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포괄적으로 정하고 있을 뿐, 이 사건 대출금이 사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항목이나 범위에 관하여는 달리 정하고 있지 않은 점, ③ 위 조항 후단에서는 '차주가 위 목적 외의 용도에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는 차주가 전적으로 일체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B의 책임 하에 이 사건 대출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위 조항은 이 사건 대출이 G 공연을 위하여 실행되는 것이고, 이 사건 대출금은 원칙적으로 G 공연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사항을 정한 규정으로 보일 뿐, 이 사건 대출금의 세부적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는 취지의 규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 대주가 특정 사업을 위하여 대출을 실행하면서 별도의 조치 없이 대출금을 차주의 계좌로 지급하는 경우, 그 대출금이 차주의 다른 자금과 뒤섞이면서 대출 목적과는 다른 용도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투자 전문가들인 피해자 회사들이나 F은 더더욱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출금의 용도를 제한하고자 하는 대주는 별도의 공동계좌를 개설하거나 프로젝트 지출통장을 지정하여 대출금의 인출 등을 관리·감독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문화예술사업과 관련하여서는 특수목적법인인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설립하여 대출금 또는 투자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피해자 회사들이나 F은 이 사건 대출을 실행하면서 이 사건 대출금을 모두 B의 일반 계좌로 지급하였고, 이 사건 대출금의 사용처 등을 관리할 수 있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① F은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 제한에 관하여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 피해자 회사들이나 F은 G 공연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G 공연의 티켓 판매대금으로 이 사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이 사건 대출금의 세부적 용처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앞에서 본 것처럼 이 사건 대출약정 제2조는 이 사건 대출금의 세부적인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는 취지의 규정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피해자 회사들이나 F은 이 사건 대출금이 일부 다른 용도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이 사건 대출금이 적절히 사용되어 G 공연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만 하면 그 세부 용처는 문제삼지 않겠다는 묵시적인 양해 하에 이 사건 대출을 실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애초부터 이 사건 대출금 중 일부를 G 공연이 아닌 다른 공연과 관련하여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이러한 의도를 피해자 회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G 공연이 불가능해지거나 공연 진행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는 등의 사정이 없다면,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 회사들이 묵시적으로 양해한 범위 내의 것이어서 피해자 회사들을 속이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B는 다소 자금난을 겪고 있기는 하였지만 G 공연의 진행은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기록상 피고인이 이 사건 대출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함에 따라 G 공연의 진행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였다고 볼 증거를 찾을 수 없다.
3) 뮤지컬 공연 사업은 여러 공연을 연달아 진행하면서 중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구조이고, 이에 따라 뮤지컬 제작 업체가 특정 공연을 위하여 투자를 받더라도 그 투자금을 당시 준비 진행 중인 다른 공연에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였으며, 이와 같은 투자금 집행이 바람직한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투자금 전용은 뮤지컬 업계의 관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 측에서도 그러한 공연 업계의 사정이나 관행을 인지하고 양해 용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사건 대출은 P의 주선으로 실행된 것이고, 이 사건 건 대출약정 체결 무렵 B와 피해자 회사들 사이의 의사소통과 의견조율 등은 대부분 P를 통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B는 이 사건 대출 이전인 2016. 8. 31. P의 주선으로 주식회사 M로부터 무이자로 5억 원을 차용하면서 이 사건 대출이 실행되면 그 대출금으로 위 5억 원을 변제하기로 이미 약정한 상태였고, 피고인은 이처럼 이 사건 대출금 중 일부가 기존 채무의 변제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라는 사정이 당연히 P를 통해 피해자 회사들에게도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관계와 사정이 이러하다면,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들이 이 사건 대출금을 G 공연이 아닌 다른 용도에 사용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이를 허용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이 사건 대출금을 G 공연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에게 사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 기타 기망행위에 대한 판단
1) 티켓 판매대금 채권 양도 부분에 대한 판단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 당시 F에게 "이 사건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G 공연 티켓 판매대금을 그 판매대행사인 H 등으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그 대행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티켓 판매대금 지급청구권을 양도하겠다"고 거짓말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 사건 대출약정 체결과 동시에 피해자 회사들에게 B가 H에 대하여 가지는 G 공연 티켓 판매대금 채권을 22억 원의 한도 내에서 양도하기로 하는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하였고, 기록상 위 채권양도계약의 효력이나 진정성 등을 의심할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티켓 판매대금 채권 양도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피고인이 F이나 피해자 회사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
2) 사전 서면동의 부분에 대한 판단
이 사건 대출약정 제10조 제1항 제3호에서는 "차주는 대주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는 본건 뮤지컬 공연과 관련하여 체결되거나 체결할 각종 계약을 해제(지)하거나 그 중요. 내용을 변경하거나 차주의 권리를 포기, 양도, 이전 기타 처분하거나 상대방의 양도, 이전 기타 처분을 허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사전 서면동의 부분에 관하여 F에게 거짓말을 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피고인이 G 공연 취소 당시 피해자 회사들의 사전 서면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피고인은 G 공연을 취소할 당시 F과 충분히 협의를 하고 F의 동의를 얻어 G 공연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여, 당시 G 공연 개시가 임박하여 급하게 공연 취소 여부를 결정해야 했던 점, F은 당시 서면으로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설령 피고인이 사전에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서면으로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 조항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기록상 이 사건 대출 당시 피고인이 향후 공연이 취소되는 등의 경우에 피해자 회사들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을 생각이 없음에도 이러한 사정을 숨긴 채 이 사건 대출약정을 체결하여 피해자 회사들을 속였다고 볼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바, 피고인이 사전 서면동의 없이 G 공연을 취소하였다고 하여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들을 속였다고 볼 수는 없다.
라. 소결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F, P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및 F의 법정 진술은 객관적인 증거와 부합하지 않고 신빙성이 떨어져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이 사건 대출금을 지급받을 당시 이 사건 대출금의 용도나 변제 의사 및 능력 등에 관하여 피해자 회사들을 기망하였다거나 기망할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따라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한다.
판사
재판장판사김태업
판사김건우
판사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