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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부산고등법원 2016. 9. 8. 선고 2016재노15 판결
[계엄법위반][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재심청구인 겸 항소인

피고인

검사

윤중기(공판)

변 호 인

법무법인 지향 담당변호사 이상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사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의 경과

기록에 의하면 다음의 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피고인은 ‘1979. 10. 18. 00:00을 기하여 부산지역에 선포된 비상계엄에 기하여 공포된 포고령을 위반하여 1979. 10. 20. 12:30경 부산 (지명 생략) 소재 공소외 2의원 내 2층방에서 ○○○○○연합회의 간사로 부산지역 소요사태의 진상을 파악한다는 구실로 서울에서 내려온 공소외 3, △△△△사 부산지사 영업부장 공소외 4 등에게 “데모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함으로써 계엄사령관의 조치에 배반하는 언론을 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

나. 제2관사 계엄보통군법회의는 1979. 11. 28. 피고인에 대한 계엄법위반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였고( 제2관사 계엄보통군법회의 79보군형7호 ), 위 선고형은 1979. 12. 5. 관할관의 확인조치에 의하여 징역 2년으로 감형되었다.

다. 위 판결에 불복한 피고인이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는 1980. 3. 6.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80고군형항8호 ).

라. 위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피고인이 상고한 결과, 대법원은 1980. 7. 8. 다음과 같은 이유 즉, 항소심판결이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 외에 공소가 제기되지 아니한 범죄사실도 추가로 인정 심판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항소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로 환송하였으며( 대법원 80도1021호 ), 그에 따라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는 1980. 9. 27. 위와 같은 사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검찰관이 기소한 공소사실만을 유죄의 범죄사실로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80고군형항91호 , 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마. 이에 불복한 피고인이 다시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이 1981. 2. 10. 상고를 기각함으로써(대법원 80도3102호) , 재심대상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바. 피고인은 2016. 5. 19. 위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고, 이 법원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부마항쟁보상법’이라 한다) 제11조 제1항 에서 정한 특별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2016. 7. 7. 재심개시결정을 하였으며, 위 결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2.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가. 1979. 10. 18. 00:00을 기하여 부산지역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구 계엄법(1981. 4. 17. 법률 제344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계엄법’이라 한다) 제4조 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무효이므로, 그에 기하여 발동된 계엄사령관의 계엄포고령 역시 무효이다.

나. 위 비상계엄이 구 계엄법 제4조 소정의 요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 계엄포고령 제1조 제4항(유언비어날조, 유포와 국론분열 언동은 엄금한다)은 그 개념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므로 무효이다.

다. 위 계엄포고령이 유효하더라도, 피고인이 ○○○○○회협의회 간사였던 공소외 3에게 이야기한 내용은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학생 수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소리는 신빙성이 없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공갈탄 소리일 것이다.“이고, 이는 유언비어 자체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위 유언비어가 신빙성이 없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피고인의 의견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유언비어 유포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그런데도, 검찰관은 위와 같은 피고인의 이야기 내용 중 일부(”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학생 수 명이 죽었다.“ 및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만 발췌하여 피고인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기소하였고, 원심도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라. 따라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판단

가. 피고인의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피건대,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유언비어날조유포 및 국론분열언동을 엄금한다는 위 부산지구 계엄사령관 육군중장 공소외 1(대판: 공소외인)의 포고가 있었음을 알고도 “데모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함으로써 위 계엄사령관의 조치에 배반하는 언론을 한 것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 공소사실 외에 ’국론분열언동을 하였다‘는 사실도 유죄로 인정하였는바, 결국 원심판결에는 공소제기되지 아니한 범죄사실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 이를 유죄로 인정한 잘못이 있으므로, 이 부분 원심판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원심은 위와 같이 공소제기되지 아니한 범죄사실을 나머지 범죄사실과 일죄로 보아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원심판결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다만, 위와 같은 직권파기사유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은 여전히 이 법원의 심판대상이 되므로,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1) 관련 규정

- 제52조 제1항 : 대통령은 전시 ·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 제52조 제3항 :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 제13조 : 비상계엄지역 내에서는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한 때에는 체포, 구금,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단, 계엄사령관은 조치내용을 미리 공고하여야 한다.

- 제15조 : 제12조 , 제13조 또는 전조 제1항 , 제2항 의 규정에 의하여 취한 계엄사령관의 조치에 응하지 아니하거나 이에 배반하는 언론 또는 행동을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계엄사령관이 1979. 10. 18. 공포한 포고령 제1호

- 제4항 : 유언비어 날조, 유포와 국론분열 언동은 엄금한다.

2) 포고령 위반 여부

가) 원심은 피고인의 원심법정에서의 진술,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 사무취급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압수된 메모지를 토대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나)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학교 학생들은 1979. 10. 15. □□□학교 구내에서 이른바 유신철폐를 주장하는 내용의 민주선언문을 선포하였고, 그 다음날인 10:00경 □□□학교 도서관 앞에 모여 유신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서 시내 중심가로 진출하여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대치하였다. □□□학교에 이어 ◇◇◇학교 학생들 및 시민들도 시위에 가세하였고, 그 시위는 마산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곳곳에서 시위대에 의한 투석, 방화 및 기물파손 등의 시위와 이에 대한 군과 경찰의 진압이 같은 달 18일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1979. 10. 18. 00:00을 기하여 부산광역시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특전사 2개 여단 약 2,600여 명이 계엄령 선포지역의 시위진압에 동원되었다.

(2) 한편, 마산지역에서는, ☆☆☆학교 학생들이 1979. 10. 18. 학교 측의 무기한 휴교 결정 등에 대한 반발로 시위가 시작되었고, 학생 1,000여 명이 14:30경 유신철폐, 언론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학교 정문 쪽으로 진출하여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다가 3·15탑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분산하였다. 그 후 학생들과 시민들은 17:30경부터 3·15탑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벌였고, 저녁에는 일부 파출소를 습격하였으며 여러 파출소 주변과 공화당사 주변 등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대는 전날에 이어 1979. 10. 19. 저녁 시민극장, ▽▽백화점 및 북마산파출소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군부대 및 경찰의 진압으로 그 다음날 00:10경 시위가 종료되었다. 정부는 1979. 10. 20. 12:00를 기하여 마산시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였다.

(3) 피고인이 제출한 ‘검찰관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사본’(원심이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에 의하면, ◎◎◎◎ 부산경남지부 간사로 활동하던 피고인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추궁하는 검찰관의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 즉, 피고인이 1979. 10. 20. 부산 (지명 생략) 소재 공소외 2의원 내 2층방에서, 시위진압과정에서의 인권침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내려온 ○○○○○연합회 간사 공소외 3과 △△△△사 부산지사 영업부장 공소외 4를 만나, 위 공소외 3 등에게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학생 수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소리는 신빙성이 없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공갈탄 소리일 것이다.“라고 답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① 피고인이 공소외 3 등에게 이야기한 내용은 “데모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라는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학생 수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소리는 신빙성이 없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공갈탄 소리일 것이다.“라는 것이고, 이는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유언비어 자체를 그대로 전달하여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음을 알리면서 그와 같은 유언비어는 신빙성이 없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피고인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에 불과한 점, ② 피고인이 다수의 사람에게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이 아니라, 인권단체 간사로서 진상조사를 나온 시민단체 간부에게 그 조사에 응하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유언비어가 신빙성이 없거나 사실과 달라 허위일 것이라는 의견을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라) 그렇다면, 피고인이 공소외 3 등에게 위 다)의 ①항 기재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한 것은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 소정의 ‘유언비어의 날조, 유포‘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에게 자신의 언동이 유언비어의 유포에 해당한다는 점에 관한 인식도 결여되었다고 볼 여지가 크며, 달리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설령,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가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 소정의 ‘유언비어의 날조, 유포‘행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은 구 계엄법 제13조 가 계엄사령관은 비상계엄지역 내에서 군사상 필요한 때에는 체포, 구금,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에 있어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서 ‘군사상 필요’라 함은 계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 또는 그에 준하는 세력이 상대방이 상당한 무력을 갖추고 현실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군사력의 동원이 필요한 경우 등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위 포고령 제1호가 발령될 당시 국내 정치상황 및 사회상황이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의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금지’라는 조치를 취하여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해야 할 정도로 군사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은 구 계엄법 제13조 가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포된 것이어서 위법·무효라 할 것이다.

아울러,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은 구 계엄법 제15조 와 결합하여 형벌규정이 되므로 형법의 일반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적용되어야 하는데, 위 규정은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한다”라고만 정하고 있어 범죄의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국민이 무엇이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는 행위인지를 예견하기 어려워,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 것에 해당하여 위헌·무효라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을 구 계엄법 제15조 및 위 포고령 제1호 제4항 위반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위와 같은 직권파기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항소가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 ,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가. 공소사실

피고인은 1979. 10. 18. 00:00을 기하여 부산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하는 부산지구 계엄사령관 육군중장 공소외 1의 포고가 있었음을 알고서도 1979. 10. 20. 12:30경 부산 (지명 생략) 소재 공소외 2의원 내 2층방에서 ○○○○○연합회의 간사로 부산지역 소요사태의 진상을 파악한다는 구실로 서울에서 내려온 공소외 3, △△△△사 부산지사 영업부장 공소외 4 등에게 “데모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함으로써 계엄사령관의 조치에 배반하는 언론을 한 것이다.

나. 판단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같은 법 제440조 에 의하여 이 사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판사 김주호(재판장) 이혁 권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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