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항소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김형지(소송구조))
피고, 피항소인
법무부장관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박지용)
변론종결
2013. 5. 8.
주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2010. 6. 10. 원고에게 한 난민인정불허처분을 취소한다.
3.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원고는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 이하 ‘방글라데시’라 한다) 국적의 외국인으로서 2007. 9. 7.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2007. 11. 27. 피고에게 난민인정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2010. 6. 10. “원고의 난민인정 신청 사유가 난민의지위에관한협약(이하 ‘난민협약’이라 한다) 제1조, 난민의지위에관한의정서(이하 ‘난민의정서’라 한다) 제1조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난민인정불허통지(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를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음, 갑 제1호증, 을 제2호증(가지번호 있는 서증의 경우 그 가지번호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 주장
방글라데시 정부는 오래전부터 줌마인(Jumma)을 탄압했다. 줌마인인 원고의 아버지가 이에 저항하다가 방글라데시 정부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원고는 줌마인의 완전자치를 위한 활동을 하던 중, 줌마인 학살 사건인 마이스차리 사건의 현장으로 인권운동가 등을 인솔한 것 등을 계기로 방글라데시 정부에 의한 수배령이 내려졌고, 이를 피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에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줌마인에 대한 인권정책 등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고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인종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다. 따라서 이와 전제를 달리하는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나. 난민인정의 기준과 그 증명의 정도
출입국관리법(2010. 5. 14. 법률 제1028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2의2호 , 제76조의2 제1항 , 난민협약 제1조, 난민의정서 제1조의 규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 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 국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그 신청이 있는 경우에 난민협약이 정하는 난민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때 그 외국인이 받을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같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인정의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하나, 난민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그 외국인에게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주장사실 전체를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그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입국 경로, 입국 후 난민 신청까지의 기간, 난민 신청 경위, 국적 국의 상황,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정도, 신청인이 거주하던 지역의 정치·사회·문화적 환경, 그 지역의 통상인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등에 비추어 전체적인 진술의 신빙성에 의하여 그 주장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그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7두3930 판결 등 참조).
다. 인정 사실
1) 방글라데시와 줌마인에 관한 기본 정보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역(Chittagong Hill Tracts, 이하 ‘치타공 지역’이라 한다)은 방글라데시의 동남쪽 모서리에 있어 미얀마와 인도 동북부의 미조람주와 드리퓨라주를 접하는 산악지역이다. 치타공 지역의 토착민은 ‘줌마인’이라 불리는데, 차크마, 마르마(Marma), 트리퓨라(Tripura) 등 13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가 약 65만 명이다. 줌마인은 주된 종교가 불교, 힌두교, 카톨릭 등이고, 방글라데시의 다수 인종인 무슬림 벵갈인과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구별된다.
줌마인은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된 후 벵갈인을 치타공 지역에 이주시키면서 탄압받기 시작하였고, 1957년경부터 1962년경까지 수력발전소 건설 때문에 경작지의 약 40%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10만여 명이 인도로 피신하였다.
줌마인은 정치적으로 인정받고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해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에 협력하였는데, 그러한 자치 요구가 방글라데시 정부에 의해 수용되지 않자, 1972년경 치타공 민족연합당(Parbattya Chattogram Jana Samhati Samiti, 이하 ‘JSS’라 한다)을 결성하고 1973년 1월경부터 무장투쟁조직인 Shanti Bahini를 만들어 1976년경부터 방글라데시 정부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에 방글라데시 정부는 1979년경부터 1984년경까지 치타공 지역에 벵갈인 약 40만 명을 이주시키고 게릴라 폭동 진압의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 때문에 치타공 지역에서는 2,500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8,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만 명의 줌마인이 고향을 떠났으며, 1980년 이후 벵갈인 정착민과 군대에 의한 줌마인 대량 학살이 10여 회 일어나 65,000여 명의 난민이 인도로 탈출하였다.
JSS는 1997년 12월경 방글라데시 정부와 군대 철수, 벵갈인 이주민이 차지한 토지의 반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평화협정에 불만을 품은 줌마인은 완전한 자치를 요구하며 1998. 12. 26. 연합민중민주전선(United People's Democratic Front, 이하 ‘UPDF’라 한다)을 결성하여 대정부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이후 JSS와 UPDF 사이의 줌마인 내분이 계속될 뿐 아니라, 벵갈인의 줌마인에 대한 약탈, 방화 등도 지속되고 있다.
2) 원고의 반정부 활동
원고는 1978. 12. 4. 치타공 지역에 있는 랑가마티 지역에서 차크마 족의 줌마인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가간 소외 1은 JSS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1982년경 방글라데시 정부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사망하였다. 원고는 1999년에 학업을 마치고 1999. 9. 11.경 UPDF에 가입하여 소외 2를 알게 되고 시위 홍보·조직, 물자조달, 연락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런데 2006. 4. 3.경 카그라차리(Kagrachari) 지구 마이스차리 구역 조이슨파라 지역에서 줌마인과 벵갈인이 무력 충돌하여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하 ‘마이스차리 사건’이라 한다)이 있었다. 원고는 2006. 4. 5.경 UPDF 지시에 따라 인권운동가, 기자 등을 마이스차리 사건 현장으로 인솔하였다. 그 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원고를 마이스차리 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으로 보고 원고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원고는 경찰 수배를 피하여 도피생활을 하다가 UPDF 지도부와 친형의 충고를 받아 여권을 구하여 2007. 8. 30.경 소외 2와 함께 방글라데시를 탈출하여 태국, 대만을 거쳐 2007. 9. 7.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3) 원고의 대한민국 입국 후 반정부 활동 등
원고는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인 2008. 2. 17.경 UPDF의 대한민국 지부에 해당하는 재한줌마인연대(Jumma People's Network - Korea, 이하 ‘JPNK’라 한다)에 가입하여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의 줌마인에 대한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등 JPNK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그 내역은 2009. 6. 12. Kalpana Abduction 관련 시위, 2010. 2. 24. 및 2011. 2. 27. Baghaichari 관련 시위, 2010. 5. 16. 방글라데시 수상 방한 관련 시위, 2011. 4. 26. Ramgarh Attack 관련 시위 등이다. 이 중 방글라데시 수상 방한 관련 시위는 방글라데시 수상이 대한민국을 방문하던 2010. 5. 16.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장충체육관 앞에서 JPNK가 주최한 시위에 소외 2, 원고 등이 참가하여 ‘치타공 산악지대 주민에 대한 탄압과 인권침해의 중단, 치타공 지역에서 정부군의 완전 철수, 불법적인 토지 착취의 중단, 줌마인의 완전 자치’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줌마인에 대한 인권탄압 중지를 촉구하였는데,소외 2, 원고 등의 시위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방글라데시 일부 신문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원고는 2010. 11. 21. 카그라차리 법원에서 마이스차리 사건에 관하여 “징역 10년의 구금형과 5,000다카의 벌금형, 도망간 소외 2, 원고의 징역형은 체포되는 날이나 자수하는 날부터 계산한다”는 (궐석)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른 한편, 소외 2는 피고에게 난민인정 신청을 하였다가 2010. 6. 10. 난민인정불허가 처분을 받자 피고를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서울행정법원(2011구합6721)에서 2011. 12. 8. 승소판결 을 받았고, 이에 대한 피고의 항소는 서울고등법원(2012누1145) 에서 2012. 6. 29. 기각되었으며, 이 판결은 피고의 상고가 없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인정 근거] 갑 제3, 5, 6, 7, 9, 12, 13, 14, 18부터 21, 27, 28, 32, 33, 36, 39, 41, 42부터 50, 52, 53호증, 을 제2부터 6호증의 기재 또는 영상, 제1심의 원고 본인신문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라. 판단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줌마인으로서 방글라데시 내에서 반정부 단체인 UPDF에 소속하여 활동하다가 방글라데시 정부의 수배를 피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고 대한민국에서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줌마인에 대한 인권탄압 등을 비판하는 JPNK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때문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경우 위와 같은 인종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방글라데시 정부의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방글라데시아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이와 전제를 달리하는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정당하지 아니하므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있어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