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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09. 11. 13. 선고 2009나50751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원고, 피항소인 겸 항소인

원고 1 외 6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방두원 외 1인)

피고, 항소인 겸 피항소인

대한민국

변론종결

2009. 9. 25.

주문

1. 원고들과 피고의 항소를 각 기각한다.

2. 원고들의 당심에서의 청구취지 확장에 따라, 피고는 원고 1에게 2,640만 원에 대한, 원고 2에게 1억 원에 대한, 원고 3, 4, 5, 6, 7에게 각 2,000만 원에 대한, 각 1975. 4. 1.부터 2008. 4. 30.까지 연 5%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3. 원고들의 나머지 확장청구를 각 기각한다.

4. 항소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에게 8억 원, 원고 2에게 1억 5,000만 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5,00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1975. 4.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원고들은 당심에서 지연손해금 청구를 확장하였다).

2. 항소취지

가. 원고들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1에게 6억 7,360만 원, 원고 2에게 5,000만 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3,00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나. 피고

제1심 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각 기각한다.

이유

1. 인정사실

다음 각 사실은 갑 1 내지 6(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가. 소외 1의 간첩활동

(1) 중앙정보부는 1974. 3. 15. 울릉도에 거점을 두고 북한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하고 지하망을 구축한 30명과 전북에 거점을 두고 일본에 유학하면서 북한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하고 지하망을 구축한 17명을 검거하였다는 내용의 이른바 울릉도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2) 전북 고창군 새마을지도자였던 소외 1은 위 울릉도간첩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받았는데 “1965. 10.경부터 농업기술 연수명목으로 일본에 건너가 북한을 왕래하거나 재일 북한 공작지도원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정계, 경제계, 학계, 농어촌 지도층 등에 각각 침투하여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농지개량구락부 등을 조직하여 동조자 규합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등의 간첩활동을 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유죄가 인정되어 1975. 4. 8.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었다.

나. 원고 1에 대한 간첩활동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1) 원고 1은 1955. 3. 13.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 4. 1.부터 1967. 10. 30.까지 고등공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그 이후 미곡상을 운영하였던 자로서, 고교동창인 위 소외 1이 울릉도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1974. 7.경 이종매형 소외 2에게 “ 소외 1이 이전에 북한에 다녀왔다고 말했던 것 같다”고 말하였고, 소외 2가 위 사실을 정읍경찰서에 신고하여 원고 1은 정읍경찰서에 불려가 소외 1과의 관계를 추궁받았는데 별다른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귀가하였다.

(2) 정읍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은 이후에도 원고 1에 대해 간첩혐의를 두고 있다가 7개월 여 이후인 1975. 2. 13. 원고 1의 집에 찾아와 원고 1을 정읍경찰서 대공과 조사실로 강제 연행한 후, 법원으로부터 적법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아니한 채 원고 1을 정읍경찰서 대공과 조사실과 전북경찰국 대공분실에 구금하고 있으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하였고, 원고 1에 대한 구속영장은 1975. 3. 13.에야 발부·집행되었다.

(3) 원고 1은 정읍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과 전북경찰국 대공분실 수사관들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 1은 혐의사실을 자백하였다.

(4) 정읍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과 전북경찰국 대공분실 수사관들은 원고 1을 연행한 직후에 원고 1의 이웃인 소외 3, 4, 5(이하 소외 3 등이라 한다)를 각각 강제 연행한 후, 법원으로부터 적법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아니한 채 소외 3 등을 정읍경찰서 대공과 조사실과 전북경찰국 대공분실에서 10일 내지 20일 정도 구금하면서 조사하였다.

다. 위 사건의 검찰송치 이후의 경과

(1) 정읍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은 위와 같이 원고 1 및 소외 3 등을 수사한 후 1975. 4. 1. 사건을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에 송치하였다.

(2) 위 사건을 송치받은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 검사는 송치 당일 원고 1에 대한 피의자신문을 하였는데, 원고 1이 위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간첩방조 및 북한을 찬양고무하였음에 대하여 자백을 하자 그러한 취지가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고, 1975. 4. 5.에 같은 내용의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3) 위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 검사는 1975. 4. 19. 원고 1이 북한의 간첩인 소외 1로부터 지령을 받아 숙식·편의를 제공하여 간첩활동을 돕고 북한을 찬양고무하며 포섭대상자를 소개하여 형법 98조 제1항 (간첩방조), 구 국가보안법 제2조 (군사목적수행), 구 반공법 제4조 제1항 (찬양고무), 제7조 (편의제공)를 위반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4) 원고 1이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원고 1과 함께 반공법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소외 3 등은 재판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였는바,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은 1975. 6. 20. 원고 1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원고 1에 대하여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하였고( 위 지원 75고합16 판결 , 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하고, 위 사건을 재심대상사건이라 한다), 원고 1은 항소심( 광주고등법원 75노282 )에서는 그 동안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임을 주장하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였으나 1975. 11. 12. 항소가 기각되었으며, 원고 1이 상고를 포기하여 재심대상판결이 확정되었다. 한편, 위 1심 재판에서 소외 3 등에게 선고유예 판결이 선고되었다.

라. 원고 1의 복역과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및 재심판결

(1) 원고 1은 확정된 재심대상판결에 따른 징역형의 집행을 마치고 1983. 3. 22. 만기 출소하였고, 1991. 3. 21. 자격정지형의 집행을 마쳤다.

(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행정청으로, 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원고 1의 재심대상사건에 대한 2006. 3. 10.자 진실규명 신청에 대하여 2년 여에 걸쳐 관계인에 대한 조사를 거친 후 2008. 3. 11. “재심대상사건에서 원고 1에 대하여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가 이루어진 개연성이 인정되므로 피고는 원고 1의 피해와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렸다.

(3) 원고 1은 2008. 9. 22. 위와 같은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을 근거로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에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 2008재고합2호 )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2009. 1. 21. 원고 1에 대한 검찰피의자신문조서는 원고 1이 경찰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가 지속된 상태에서 작성되었다고 보여 그 진술의 임의성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고 참고인들의 진술을 비롯한 다른 증거들도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 1에 대한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고, 위 판결은 2009. 1. 29. 확정되었다(이하 재심판결이라 한다).

마. 가족 관계

원고 2는 원고 1의 처이고, 원고 3, 4, 5, 6, 7은 원고 1의 자녀들이다.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수사관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정읍경찰서 대공과 및 전북경찰국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들은 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적법한 인신구속이나 수사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원고 1을 강제 연행한 후 1975. 2. 13.부터 1975. 3. 12.까지 구속영장 없이 원고 1을 불법구금하고 원고 1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함으로써 원고 1의 자백을 강요하였으며, 위와 같이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에 의한 임의성 없는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여 검사의 피의자신문 시에도 원고 1이 같은 내용의 자백을 하도록 하였고, 그 이후 원고 1이 1심 재판에서까지 공소사실을 자백하였는바, 위와 같은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 일련의 행위는 공무원들인 수사관들의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일 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가 간첩혐의자에 대한 수사라는 직무집행의 외관을 갖추어 일어난 것이므로, 피고는 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1980. 1. 4. 법률 제323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에 따라 위 일련의 불법행위들로 인하여 원고 1과 그 가족들인 나머지 원고들이 입게 된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나. 검사 및 법관의 불법행위 성부

원고들은, ① 재심대상사건을 수사·기소한 검사와 공판관여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재판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② 재판을 담당한 법관들도 증거가 임의성을 갖추었는지에 관한 증거판단을 그르쳐 결과적으로 원고 1에게 징역 8년의 유죄판결을 선고한 잘못이 있으므로, 피고는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살피건대, 수사기관인 검사가 특정의 범죄사실에 관하여 피의자에게 범죄혐의가 있고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소정의 절차에 의하여 피의자의 구속을 품신하거나 구속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보아 검사가 당해 피의자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를 가지게 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후일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범죄사실의 존재를 증명함에 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에 관하여 무죄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수사기관의 판단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귀책사유가 있고( 대법원 1993. 8. 13. 선고 93다20924 판결 등 참조), 법관이 행하는 재판사무의 특수성과 그 재판과정의 잘못에 대하여는 따로 불복절차에 의하여 시정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 바로 그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 되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그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16114 판결 등 참조).

비록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기는 하나, 원고 1이 검찰에서 자신의 혐의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1심 법원에서도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갑 1-1, 갑 3-6,7,14,21,25,31,38,42,47,55,59,60,62,67, 갑 5-1~5의 각 기재만으로는 당시 재심대상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한 검사와 공소가 제기된 후 공판에 관여한 검사가 원고 1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나 재판을 담당한 법관들이 제출된 증거들에 비추어 원고 1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선고하게 된 것이 부당하거나 위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소멸시효와 관련된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

피고는,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모두 시효소멸하였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민법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하지 아니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고( 민법 제766조 ), 국가에 대한 청구권의 경우 5년(2006. 10. 4. 폐지되기 전의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 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구 예산회계법 제71조 )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하는 것인데,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은 피고 소속 수사관들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가, 수사관들의 최종 불법행위일로 볼 수 있는 원고 1의 검찰송치일인 1975. 4. 1.이나 수사관들의 불법행위 이후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고 원고 1에 대한 징역형과 자격정지형의 각각 집행을 종료한 때로부터도 10년이 경과한 2008. 4. 23.에서야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일응 이 사건 소 제기 이전에 그 소멸시효 기간이 모두 도과하였다.

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위반되는지에 관한 판단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위반되어 허용할 수 없는지를 직권으로 판단한다.

(1)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①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②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③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④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고(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참조).

그러므로 아래에서는 원고들에게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는지 여부 및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는지 여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① 원고 1은 위 불법구금 당시 정읍경찰서 대공과 조사실과 전북경찰국 대공분실에 적법한 체포·구금절차 없이 연행되어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자백하게 된 점, ② 원고 1은 위와 같은 임의성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어 검찰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하였고 1심 재판에서도 공소사실을 자백하였으나, 1심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이 선고되자 항소심에서부터는 자신이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하게 되었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하였으며, 이미 제출된 증거에 의하여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항소가 기각되자 상고를 포기한 점, ③ 원고 1에 대하여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사 당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였다는 원고 1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간첩을 방조하고 북한을 찬양고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통상 일반인의 관점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렵고, 원고들 또한 재심을 거치더라도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하여 상당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점, ④ 원고 1은 이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진 후에야 비로소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가 어느 정도 밝혀졌기 때문에 법원에 의하여 재심이 받아들여져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기에 이른 점, ⑤ 수사관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는 국가시설 안에서 그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집행의 외관을 가지고 이루어졌고, 이후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결국 간첩방조죄 등에 관한 유죄의 확정판결이 선고되어 8년의 징역형을 복역하게 된 원고 1 및 그 가족들인 나머지 원고들의 입장에서는, 재심을 통하여 위와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져 과거의 유죄판결이 억울한 누명에 불과하다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을 받기 전까지는, 과거의 유죄확정판결이 고문과 증거 조작에 의하여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국가를 상대로 그와 같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등의 사정을 모두 종합해 보면, 피고가 원고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을 전제로 소멸시효완성 주장을 통하여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결국 아무리 빨라도 원고 1에 대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진 2008. 3. 18.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

또한, 위 인정사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① 수사관들의 원고 1에 대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는 국가기관의 업무수행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잘못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그 불법의 정도가 중한 점, ② 원고 1은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간첩방조 등의 혐의로 징역 8년형의 확정판결을 선고받는 등 억울한 누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등 그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점, ③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을 통하여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에 시효소멸을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하는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에서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피고의 그에 대한 채무이행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

(4)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서는 원고들이 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었거나 소멸시효를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가 그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므로 허용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인정사실

다음 각 사실은 앞서 채택한 증거 및 갑 7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1) 원고 1

(가) 원고 1은 수사관들에 의하여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여 혐의를 자백하게 되었고, 그 이후 검찰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거치면서 8년 1개월 동안 구금되어 있으면서 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형의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1991. 10.경까지 9년간 보안관찰을 받았다.

(나) 원고 1은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확정된 후에 위 불법구금 개시일인 1975. 2. 13.부터 위 징역형의 집행을 종료한 1983. 3. 22.까지 2,960일 동안 구금당하였음을 이유로 4억 7,360만 원의 형사보상금 지급결정(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09코1 )을 받아 피고로부터 이를 지급받은 외에는 별다른 보상을 받은 바 없다.

(2) 원고 2

원고 2는 원고 1이 갑작스럽게 불법 연행된 직후 행적을 알 수 없는 데다가 면회도 할 수 없었고, 이후 원고 1의 재판진행을 도와주는 등 힘든 과정을 겪었고, 나아가 원고 1이 징역형의 집행을 마치는 8년 동안 원고 1의 옥중 뒷바라지를 하면서 혼자서 자신과 자녀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달픈 생활을 계속하여야 했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간첩의 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자녀들이 간첩의 자식이라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식들이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을 늘 염려하는 삶을 계속해 왔으며, 원고 1이 석방된 후 현재까지도 원고 1이 정신적·신체적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돌보아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3) 원고 3, 4, 5, 6, 7

원고 3, 4, 5, 6, 7(최초 연행 당시 각 17세, 15세, 13세, 11세, 7세)은 한참 신체와 지성이 성장할 무렵에 아버지인 원고 1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아버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원고 1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간첩의 누명을 써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 심한 괴로움과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며, 가장인 원고 1의 장기간 구금으로 인한 생활고로 인하여 야간학교로 옮기거나 학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성장과정에서 간첩의 자녀들이라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따돌림을 감내하여야 하였으며, 이후 취업과정이나 사회생활 및 결혼 과정에서도 간첩의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 위자료 인정금액

위 인정사실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이 사건 불법행위의 내용 및 정도, 위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때와 현재의 시간적 간격, 원고들의 나이 및 관계, 재산상태, 원고 1에 대한 형사보상액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에 대하여 위자료로서 원고 1에 대하여 5억 원, 원고 2에 대하여 1억 원, 원고 3, 4, 5, 6, 7에 대하여 각 2,000만 원을 인정함이 상당하다.

다. 피고의 공제 항변

피고는, 피고가 원고 1에게 형사보상금으로 지급한 4억 7,360만 원을 원고 1에 대한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하여야 한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피고가 원고 1에게 형사보상금으로 지급한 4억 7,360만 원은 형사보상법 제5조 제3항 에 따라 원고 1에 대한 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되어야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항변은 이유 있다.

라.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1에게 2,640만 원(위자료 5억 원 - 형사보상금 4억 7,360만 원), 원고 2에게 1억 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2,00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최종 불법행위일로 볼 수 있는 위 검찰송치일인 1975. 4. 1.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제1심 판결 선고일인 2009. 4. 22.까지는 민법 소정의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소정의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들과 피고의 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하고, 원고의 당심에서의 청구취지 확장에 따라, 위 각 인정금원에 대하여 1975. 4.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인 2008. 4. 30.까지 연 5%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피고에게 명하며, 원고들의 나머지 확장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허만(재판장) 이재석 김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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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4.22.선고 2008가합37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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