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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법 1993. 4. 8. 선고 92드66545 제3부판결 : 확정
[이혼][하집1993(1),652]
AI 판결요지
원고가 결혼 당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학내문제로 구속되어 실직하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워져 부채를 많이 지며 생활하였는데, 1964경에 이르러서는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취직하는 한편 1968경경 원·피고의 살림집에 피고의 명의로 독일어 대학교재의 출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상호 생략)라는 출판사를 개업한 이래 원고는 원고작성, 교본편집 등의 일을 맡고 피고는 판매, 배달, 수금 등의 일을 맡아 돈을 벌기 시작하여 자식들을 키우면서 저축을 하여 왔는데 1984경부터는 위 출판사 등에서 나오는 수입금 등을 원·피고의 명의로 대한투자신탁 등에 예금하여 피고가 그 통장을 보관하여 왔고 현재 그 예금액이 280,000,000원 정도에 이르렀는데, 원·피고는 4명의 자식들을 전부 출가시킨 후 단둘이서 살았는데 1988경부터 사소한 시비로 다투는 등 불화가 누적되어 오다가 1990.10.경 원고가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종용하면서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종용하고, 1991.3경에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종용하면서 구타하였으며, 같은 해 7.경에도 피고에게 집을 가지든지 예금통장을 가지든지 택일하라고 하면서 계속 이혼을 강요하는 등 폭행과 폭언을 하여 왔고, 원고는 1991.8.18.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하는 등 하면서 다투고 있을 때 마침 원·피고의 집에와 있던 큰아들이 이를 말리고 피고를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후 소외 1이 피고에게 예금통장을 원고에게 주라고 하면서 이를 거절하는 피고에게 화를 내므로 피고는 같은 해 9.1경 큰딸의 집에 가서 있다가 이내 이내 둘째 아들인 소외 4의 집에 와서 현재까지 머무르고 있고, 그 후에 원고는 자식들에게 피고를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등 폭언을 계속하기도 하고, 같은 해 12.22.에는 소외 4의 집으로 와서 피고를 구타하기까지 하는 등 하여 피고는 원고가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실 등을 각 인정할 수 있고, 피고가 원고를 버리고 원고를 버리고 1991.8.18. 이래 자식들의 집을 전전하게 된 내면적인 원인은 원·피고 사이의 잦은 불화로 인하여 원고가 자주 피고에 대하여 폭언과 폭행을 하는 등 구박을 한 것에 연유한 것이고, 40여 년 이상 피고와 살면서 4명의 자녀를 낳아 장성시키고 손자들까지 본 원고로서는 좀더 피고를 이해하고 설득하여 원만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함에도 자식들의 집으로 전전하는 피고에 대하여 그를 만날 때 폭행을 하거나 심지어 피고를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등의 폭언을 함으로써 피고가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것은 원고가 남편으로서의 처로서 원고가 남편임을 알지 못한다.
판시사항

남편이 처에 대하여 자주 폭행과 폭언을 하였기 때문에 처가 가출하여 자식들의 집을 전전한 사실만으로는 처가 남편을 악의로 유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원고

원고

피고

피고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원고와 피고는 이흔한다라는 판결.

이유

갑 제1호증의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와 피고는 1945.10.3. 결혼식을 올리고 같은 해 11.3.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의 부부로서, 그 자녀로서 1949.경에 소외 1을, 1952.경에 소외 2를, 1955.경에 소외 3을, 1957.경에 소외 4을 각 출산하고 생활하여 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원고는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서, 피고가 1991.8.18. 금 280,000,000원 정도가 예금되어 있는 저금통장과 도장을 소지한 채 원고의 동의도 없이 가출한 이래 현재까지 귀가하지 아니함으로써 동거의무를 위반하고 악의로 원고를 유기하였으므로 이혼을 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갑 제2호증의 1,2, 갑 제3호증, 갑 제4호증, 갑 제5증의 1,2, 을 제1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 및 증인 소외 1, 4의 각 증언(다만 증인 소외 1의 증언 중 일부 뒤에서 믿지 않는 부분 제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결혼 당시 경기중학교의 교사였다가 1961.경에는 성균관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학내문제로 구속되어 실직하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워져 부채를 많이 지며 생활하였는데, 1964.경에 이르러서는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취직하는 한편 1968.경 성북구 정릉등에 있는 원·피고의 살림집에 피고의 명의로 독일어 대학교재의 출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상호 생략)라는 출판사를 개업한 이래 원고는 원고작성, 교본편집 등의 일을 맡고 피고는 판매, 배달, 수금 등의 일을 맡아 돈을 벌기 시작하여 자식들을 키우면서 저축을 하여 왔는데 1984.경부터는 위 출판사 등에서 나오는 수입금 등을 원·피고의 명의로 대한투자신탁 등에 예금하여 피고가 그 통장을 보관하여 왔고 현재 그 예금액이 280,000,000원 정도에 이른 사실, 원·피고는 4명의 자식들을 전부 출가시킨 후 단둘이서 살았는데 1988.경부터 사소한 시비로 다투는 등 불화가 누적되어 오다가 1990.10.경 원고가 피고에게 보관하고 있는 예금통장을 전부 내놓으라고 하였는데도 피고 이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피고를 구타하면서 집을 나가라고 종용하였고, 1991.3.경에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종용하면서 구타하였으며, 같은 해 7.경에도 피고에게 집을 가지든지 예금통장을 가지든지 택일하라고 하면서 계속 이혼을 강요하는 등 폭행과 폭언을 하여 온 사실, 원고는 1991.8.18. 피고에게 이혼하자고 하는 등 하면서 다투고 있을 때 마침 원·피고의 집에와 있던 큰아들인 소외 1이 이를 말리고 피고를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후 소외 1이 피고에게 예금통장을 원고에게 주라고 하면서 이를 거절하는 피고에게 화를 내므로 피고는 같은 해 9.1.경 큰딸인 소외 2의 집에 가서 있다가 이내 둘째 아들인 소외 4의 집에 와서 현재까지 머무르고 있는 사실, 그 후에 원고는 심지어 자식들에게 피고를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등 폭언을 계속하기도 하고, 같은 해 12.22.에는 소외 4의 집으로 와서 피고를 구타하기까지 하는 등 하여 피고는 원고가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실 등을 각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에 반하는 듯한 증인 소외 1의 일부증언은 이를 믿지 아니하고 달리 반증이 없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를 버리고 1991.8.18. 이래 자식들의 집을 전전하게 된 내면적인 원인은 원·피고 사이의 잦은 불화로 인하여 원고가 자주 피고에 대하여 폭언과 폭행을 하는 등 구박을 한 것에 연유한 것이고, 40여 년 이상 피고와 살면서 4명의 자녀를 낳아 훌륭히 장성시키고 손자들까지 본 원고로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피고를 이해하고 설득하여 원만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함에도 자식들의 집으로 전전하는 피고에 대하여 그를 만날 때 폭행을 하거나 심지어 자식들을 통하여 피고를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함으로써 피고가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원고가 남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처사라 할 것이어서 위와 같이 피고가 원고의 곁을 떠나 자식들의 집을 전전하는 것만으로는 피고가 원고를 악의로 유기하였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의 혼인생활의 경위 및 피고가 가출한 이후의 사정 등 제반 사정을 살펴볼 때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피고 사이의 혼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이혼청구는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할 것이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윤여헌(재판장) 김용찬 여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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