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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3. 5. 15. 선고 2000헌마192 2000헌마508 결정문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결정문]
청구인

【당 사 자】

청 구 인 1. 2000헌마192사건

채○기 외 17인

청구인들 대리인 가.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최병모 외 6인

나. 법무법인 지평

담당변호사 조용환 외 14인

2. 2000헌마508 사건

이○철 외 40인

청구인들 대리인 가.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최병모 외 7인

나. 법무법인 한결

담당변호사 차병직 외 1인

다.변호사 이병기 외 3인

피청구인

대한민국 국회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0헌마192 사건

청구인들은 1949. 12. 24.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동에서 국군에 의하여 학살된 주민들의 유족 또는 생존자들인바, 같은 날 11:00경 석달동에서 국군 제3사단 제25연대 제3대대 제7중대 제2소대 및 제3소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인 7, 80여명이 주민들에게 공비와의 내통혐의를 이유로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주민 86명(남자 41명, 여자 45명, 60세 이상 노인 13명, 15세 미만의 어린이 22명, 5세 미만의 유아 11명)을 살해하고 12명을 부상케 하였으나, 국가는 이 사건(이하 “문경학살사건”이라 한다)에 대한 진상조사나 보상 없이 사건을 은폐하여 왔고 피학살자들의 호적에는 “공비출몰 총살로 인하여 사망”이라고 기재하였으며, 청구인들의 진상조사 및 피해보상 요구에 불응하거나 심지어 이를 탄압하여 왔다고 청구인들은 주장한다.

청구인들은 국가가 문경학살사건의 진상조사, 명예회복,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입법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 알 권리, 배상청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2000. 3. 18.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2) 2000헌마508 사건

청구인들은 1950. 11.부터 1951. 3. 사이에 전남 함평군 월야면, 해보면, 나산면등 3개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제5중대로 추정되는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주민들의 유족 또는 생존 피해자들인바 위 군인들이 1950. 12. 5. 동촌마을 주민 50여명과 장교마을 주민 20여명을 사살하고, 1950. 12. 7. 월야리 다래기마을 주민 200여명을 사살하고, 1950. 12. 9. 월야리 외치리마을 주민 21명을 사살하고, 1950. 12. 31.부터 1951. 1. 14.에 걸쳐 해보면 대창리 성대마을,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과 나산면 우치리 소재마을로부터 피난 가는 주민 각 50여명, 70여명, 50여명을 사살하고, 그밖에 주둔지에서 강간이나 가혹행위를 하였다고 청구인들은 주장한다.

청구인들은 국가가 이 사건(이하 “함평학살사건”이라 한다)의 진상조사, 명예회복,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입법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 알 권리, 배상청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입법부작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2000. 8. 3. 청구하였다.

나. 심판대상

위헌심판대상은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의 진상조사와 피해배상 등을 위한 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이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문경학살사건은 “국군에 의한 학살이며 의심의 여지 없이 가해자들은 기소되어 처형되어야”(증 제3호의3 미극동군 사령부 군무국장 전문 참조)함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고 이들에 대한 조사와 형사처벌도 전혀 없었다. 이 사건은 공비에 의한 학살로 처리된 채 그 발생 자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파묻혀 버렸다.

함평학살사건은 국군이 공비토벌을 이유로 하여 수개월에 걸쳐 여러 마을에서 아무런 조사나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저항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노인, 어린이, 여성들을 포함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파괴한 사건으로 전형적인 국가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대규모 인권유린행위였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이들 조직적인 인권유린행위는 인권의 보호책무를 지고 있는 국가 스스로 또는 국가의 후원을 바탕으로 국가기능의 일부를 수행하는 집단이 저지른다는 점에서 사인의 위법행위 또는 공무원 개인의 일반적인 불법행위와 구별된다. 일반 불법행위의 구제절차에서는 국가가 그 산하기관의 업무를 통하여 피해자에게 일정한 협력과 법적 조력을 제공하게 되지만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행위에 있어서는 그 유린행위의 주체가 국가공권력 자체이며 이를 통하여 체제유지 또는 정권유지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침해가 중대하고 대규모적임에도 불구하고 진상의 공개를 극도로 꺼려하고 오히려 이를 은폐하고저 하며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절차 이용을 저지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반 불법행위의 경우에 인정되는 구제절차에 따라서는 피해자 및 유족으로서의 각종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들의 권리구제를 위해서는 특별한 다른 구제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청구인들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7조 위반행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유엔 인권이사회 결정 No. 107/1981 참조). 유족들의 진실을 알 권리를 비롯한 구제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로서 국제인권법의 원칙상 합의된 의무이므로 국가는 이 보호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헌법 제10조가 규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 내포하는 여러 기본적 인권의 내용 가운데에서도 가장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생명권과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이러한 생명권 및 신체불훼손권을 침해당하였을 경우 침해당한 당사자 또는 그 유족으로서는 그 진상을 밝히고 원한을 풀 권리, 즉 생명권 및 신체불훼손권의 침해로부터 발생하는 신원권이 있다.

이들 사건의 경우 당시의 정부는 이들 사건이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사망자들의 호적에 ‘공비 출몰 총살’이라고 기재하는 등 피해자와 국민들을 기망하면서 고의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 대표를 구금하는 등 이들의 진상규명노력을 직접적으로 방해하고 탄압함으로써 사건 발생 후 50여년 동안이나 피해자 및 유족들의 진실을 알 권리와 구제받을 권리의 행사를 가로막아 왔다.

국가가 직접 사건의 진상을 적극적으로 규명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 한 이들 사건은 그 성질상 진상을 밝혀내기 어려우므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국가가 뒤늦게 진상조사에 나서기

위하여서는 그 근거 법령을 입법하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그에 관한 입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청구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거창과 제주지역의 피해자들을 위하여 이미 특별법이 제정된 것과 비교할 때 국가의 이러한 입법부작위는 위 지역의 피해자들과 동일한 보호를 받아야 할 청구인들에 대하여는 전혀 그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별지 2.와 같다.

다. 국방부장관의 의견:별지 2.와 같다.

3. 판 단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가 적법한지 여부를 본다.

가.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거하여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 있으며, 공권력 중에는 입법권도 당연히 포함되므로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도 허용된다.

입법부작위에는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입법행위의 흠결이 있는 진정입법부작위와 입법자가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ㆍ범위ㆍ절차 등의 당해 사항을 불완전ㆍ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이 있는 부진정입법부작위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인 진정입법부작위는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후자인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는 그 불완전한 법규정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이를 입법부작위라 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헌재 1993. 3. 11. 89헌마79 , 판례집 5-1, 92, 102; 1996. 6. 13. 93헌마276 , 판례집 8-1, 493, 496).

그런데 진정입법부작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려면, (1)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해 법률에 명시적으로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경우 또는 (2) 헌법 해석상 특정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헌재 1989. 3. 17. 88헌마1 , 판례집 1, 9, 17; 1989. 9. 29. 89헌마13 , 판례집 1, 294, 296; 1994. 12. 29. 89헌마2 , 판례집 6-2, 395, 405-406; 1998. 7. 16. 96헌마246 , 판례집 10-2, 283, 299 참조).

나.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이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피해배상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헌법상의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진정입법부작위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1)먼저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헌법상의 명시적인 입법위임이 있는지를 본다.

(가)우선 이러한 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헌법위임으로는 국가배상에 관한 헌법 규정을 거론할 수 있다.

제헌헌법(1948. 7. 17. 헌법 제1호로 제정) 제27조 제3문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자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고, 그

후 조문의 위치와 자구의 변화는 있었으나 이 규정은 지금까지 존속되어 왔는데, 현행 헌법 제29조 제1항 제1문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입법부는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배상을 위해서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여야 할 입법의무를 지속적으로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데, 입법부는 1951. 9. 8. 법률 제231호로 국가배상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률은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그런데 헌법은 위와 같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하는 법률을 제정해야할 입법의무를 규정하였을 뿐,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의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손해배상 등을 위한 특별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할 것을 위임하는 명문규정을 둔 바는 없다.

(2)그렇다면 나아가 헌법해석상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입법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본다.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 이를 최대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며, 만약 국가가 불법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그러한 기본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행위의무를 진다. 또한 이러한 행위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국가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야 할 입법의무가 헌법해석상 발생한다. 그런데 국가는 위와 같은 국가배상법의 제정을 통해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하는 법률을 제정해야할 입법의무를 이미 이행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국방부 소속 군인들로 추정되므로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이 법적 근거가 없는 공권력의 남용행위였던 점이 인정된다면 국가는 그러한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를 하여 진상을 규명하여야 하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15년으로 하고 있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 수사가 곤란하다. 그리고 국가배상법상 시효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인데, 이 사건 청구인들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가 없으며, 현재 시점에서의 손해배상청구도 불가능하다. 6·25전쟁과 뒤이은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구인들이 제 때에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러나, 비록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자의 범위도 넓어 상당한 특수성이 있지만, 이미 수사제도 및 국가배상법제가 마련되어 있는 이상, 그 외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나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한 배상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헌법해석상 새로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으로 인한 피해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또한 피해자들이 적기에 국가에 대하여 가해자의 처벌을 요청하거나 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을 고려할 때, 입법자가 그 입법형성의 재량으로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규명 내지 배상방

법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입법의무를 헌법해석상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3)이상의 이유에서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이나 피해배상을 위해서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하는 헌법상의 명시적인 입법위임은 존재하지 아니하며, 헌법해석상 그러한 입법의무가 새롭게 발생하였다고 할 수도 없다.

다.한편 청구인들은 거창과 제주도 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으나 자신들에 대해서는 특별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아서 평등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에게 헌법적으로 아무런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며, 다만 입법자가 평등원칙에 반하는 일정 내용의 입법을 하게 되면, 이로써 피해를 입게 된 자는 직접 당해 법률조항을 대상으로 하여 평등원칙의 위반여부를 다툴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헌재 1996. 11. 28. 93헌마258 , 판례집 8-2, 636. 644 참조). 따라서 설령 입법자가 청구인들에 대하여 손해배상 등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지 아니함으로써 평등원칙에 위반하였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입법자에게 헌법상의 입법의무가 발생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라.그렇다면 형사소송법상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와 국가배상법상의 청구기간이 너무 짧거나 불완전하여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과 같은 특수한 경우 효과적인 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고, 손해배상청구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없는 것을 이유로 다투는 것, 즉 그 불완전한 법규정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문경학살사건 및 함평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피해배상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아니한 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 청구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부적법하다.

4. 결 론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다음 5.와 같은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이 있는 이외에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5.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나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통상의 법적 구제수단이 타당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하여는 국회의 입법의무를 인정하여야 하고, 그런 점에서 입법부작위에 대한 종전의 헌법재판소 판례는 변경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누차 개진하여 왔거니와(헌재 2003. 1. 30. 2002헌마358 , 공보 77, 101, 104-107; 헌재 2003. 3. 27. 2001헌마116 , 공보 79, 47, 53-56), 이 두 개의 사건은 군인들이 비전투과정에서 교전상대가 아닌 자국의 비무장국민들을 집단적으로 살상한 사건이므로 위 선례들의 사안에 비하여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의회의 입법의무가 더욱 더 강하게 인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밝히는 바이다.

가.전쟁이나 내란 또는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危難)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하여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역

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통상의 법절차가 제공하는 구제절차는 평상시의 일상적 분규에 의하여 야기된 권리침해 등에 대한 구제를 목표로 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위난의 시기에 발생하는 국가조직에 의한 기본권침해와 같은 특수한 문제의 처리에 대하여는 그 규정이 제대로 들어맞지 아니하여 통상의 법절차는 그 적용이 배제되거나 기피되는 것이 십상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본권침해의 사태를 야기한 국가권력이 집권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개인이 적기(適期)에 권리를 행사하거나 통상의 쟁송을 제기하여 구제를 받는 것이 대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 등 위난의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발생한 특수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법부재(法不在)의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의회가 특별한 입법을 하여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고 이렇게 헌법을 해석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권보장 정신에 부합한다.

나.이 사건에서 보면 6·25사변을 전후하여 문경 및 함평 지역에서 국군에 의하여 비무장의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포함된 무고한 많은 국민들이 사살된 사실이 추정되는데,1)이는 이른바 국가조직이 자행한 개인의 기본권침해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에 대한 진상조사나 보상을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사건의 은폐를 시도하여 피해자들은 구제의 책임과 권능을 가진 국가기관 앞에서 그들의 주장을 이야기할 기회마저 두절되었던 정황이 인정된다.

문경학살사건은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았고, 피학살자들의 호적에는 “공비출몰 총살로 인하여 사망”이라고 기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옥석을 제대로 가려주지 않던 당시의 체제하에서 피해자나 그 유족 등은 국가에 대하여 진상조사나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4·19 후 비로소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국회의 일부 진상조사가 있었으나 곧이은 5·16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더 이상의 진전이 봉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3년에 들어서서 소위 문민정부 하에서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다시 요구하였으나 국회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1996. 1. 5.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을, 2000. 1. 12.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각 제정하는 것에 그쳤다.2)

이러한 사정을 보더라도 위난의 시기에 국가에 의하여 또는 국가의 비호나 묵인 하에 자행되는

기본권침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법 등과 같은 통상의 법체계는 적절한 보장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국가가 적극적인 진상규명의 의지를 갖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은폐하려는 상황에서는 국가를 상대로 원상회복이나 배상 또는 보상을 구하는 소송을 피해자들이 적기에 제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무리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특히 이 사건은 국민을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가 오히려 군병력을 통하여 무고한 아녀자와 노인까지 조직적으로 살해하였다고 의심받는 것으로서 만일 그렇다면 이는 집단살해에 유사한 행위(genocide-like act)이므로 집단살해와 같이 취급되거나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취급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상의 공소시효제도나 국가배상법상의 소멸시효 제도와 같은 통상적인 법체계는 적용이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전후한 혼란한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 또는 그 비호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개인의 기본권침해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한 법부재적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헌법 제10조 제2문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근거로 하여 그 구제를 위한 의회의 특별한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고,3)이 사건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헌법재판소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소원은「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 그리고 헌법해석상 특정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인정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왔다(헌재 1994. 12. 29. 89헌마2 , 판례집 6-2, 395, 405 등).

(1)그런데 선례에서 말하는 ‘헌법해석상 특정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의 발생’이라는 것은 특정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그 피해자가 기본권침해의 배제 내지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지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고 이렇게 볼 때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국가의「특별한 보호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집중된다.

이 사건에서는 청구인들이 생명과 자유권을 침해당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성질과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구제의 책임과 권능을 가진 국가기관 앞에서 억울하다고 호소할 권리마저 사실상 봉쇄되고만 형적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는 국가의 추가적인 특별한 입법이 필요, 불가결하고 따라서 헌법해석상 기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특별한 보호의무」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의회의「입법의무」가 새로이 발생하였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선례에서 말하는 ‘의회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라는 것은 비록 불완전하

기는 하지만 문제를 규율하는 기존의 입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는 뜻으로 종래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른다면 이 사건의 경우에는 국가배상법과 같은 기존의 관계법률이 존재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어 입법의무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의회의 보호의무 내지 입법의무에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의무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계법률을 개정할 의무도 포함되어야 한다(헌재 2003. 3. 27. 2001헌마116 , 공보 79, 47, 55 참조). 기존의 관계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는 기본권의 침해를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경우를 의회의 보호의무에서 제외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른다면 여기서 말하는 의회의「입법의무」라고 하는 것은 특별법의 제정의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법률, 예컨대 형사소송법이나 국가배상법 같은 것에 대한 개정의무까지를 함께 가리키는 것이고 따라서 특별법의 제정의무이든 기존의 관계법률의 개정의무이든 이러한 입법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게을리하는 것은 모두 입법부작위에 해당하여 위헌확인의 대상이 된다.

라.광풍노도와 같은 시련의 시기가 모두 지나가면 그 와중에서 불운을 겪은 일부 국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보상하여 주는 것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문명국가의 마땅한 의무이고 이러한 의무는 의회와 정부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시련을 당한 사람들의 피해를 특정인의 개인적 차원의 불행이라고 치부하여 버리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의 법이 아니다. 전쟁으로 위축되었던 헌정질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의회가, 처참한 불운과 불행을 겪은 국민들을 구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통합하고 국가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의회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적인 의무라고 할 것이다(피청구인도 답변서에서 그러한 의무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미 50여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아무런 특별입법이나 개정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은 헌법이 요청하는 입법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건발생 후 50여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서 조차 계속 입법을 지연하여 우리 국민의 일부인 이들 피해자나 그 유족들의 고통과 좌절을 방치한다면, 이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Justice Denied)과 동일한 ‘정의의 지연(Justice Delayed)’으로 평가될 것이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주심)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

〔별지 1〕 청구인 명단:생략

〔별지 2〕관계기관의 의견

나. 피청구인의 답변

(1)6·25를 전후하여 국군·경찰에 의해 희생된 소위 양민학살사건 관련 법률로는 거창사건

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1996. 1. 5. 법률 제5148호)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2000. 1. 12. 법률 제6117호)을 들 수 있다.

후자는 제주4·3사건에만 적용되지만, 전자는 그 적용범위를 특별히 공간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아 동법은 거창사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경학살사건을 포함한 모든 유사 사건에 적용된다. 따라서 문경양민학살사건에 대한 명예회복 등 국가의 의무이행을 위한 입법부작위를 전제로 한 이 사건 청구는 잘못된 것이며, 거창특별조치법을 상대로 청구하였어야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청구는 부적법하다.

(2)입법부작위가 위헌임을 헌법재판소가 확인한다는 것은 곧 헌법재판기관이 입법부에 대하여 입법의무를 지우는 결정이 되므로, 입법부작위헌법소원심판은 국회의 입법형성의 자유 및 권력분립의 원칙과 관련하여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 신체를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 평등권과 헌법의 원리인 국가의 기본권 확인 및 보장의무와 국제법 존중주의 등에 비추어 볼 때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하므로 일응 국회의 입법의무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 이상이 경과되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대단히 곤란할 뿐만 아니라 6·25를 전후하여 경남 산청·함양, 고양금정굴, 전남 함평, 제주4·3사건, 거제, 동래, 울산, 충무, 구포, 마산, 대구, 전북순창 등 전국에 걸쳐 유사한 사건이 다수 발생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사건의 입법부작위가 국회의 입법의무 위반이라고는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한 모든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회는 사실관계의 확인 정도에 따라 대상사건에 대한 입법여부, 시기, 내용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입법형성의 자유 또는 입법 재량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국회의 입법대상 선택에 의해 평등권의 침해가 문제될 수도 있으나, 입법자가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평등원칙에 위반하였음을 인정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입법자에게 헌법상의 입법의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판례의 입장이다.

다. 국방부장관의 의견

이 사안은 입법기관이 국가작용의 어떤 영역에서 단순히 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 단순 입법부작위의 경우로서 입법을 할 것인지 여부와 어떤 사항을 법규로 규율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이다.

청구인들 주장과 같이 생명권 및 신체의 불훼손권이 침해당하였다면 국가배상법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배상신청이 가능하며 진상조사는 일반 검찰 및 군검찰권의 행사로도 가능한 것이므로 별도의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할 수는 없다.

거창사건등관련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에는 명예회복 등 배상의 대상 범위를 거창사건에

만 한정하지 않고 공비토벌과 관련한 피해에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해당 위원회에 그 적용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국회가 청구인들 주장과 같은 입법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청구인들의 평등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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