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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열, "대통령 신임투표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행위 위헌확인 등", 결정해설집 2집, 헌법재판소, 2003, p.733
[결정해설 (결정해설집2집)]
본문

대통령 신임투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행위 위헌확인 등

(헌재 2003. 11. 27. 2003헌마694 등, 판례집 15-2하, 350)

김 하 열*1)

【판시사항】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정책과 결부하지 않고 단순히 대통령의 신임 여부만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자 한다고 밝힌 것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는지 여부

【사건의 개요】

1. 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피청구인 대통령은 2003. 10. 13. 제243회 국회 본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03. 12. 15. 경 실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청구인들은 중요정책과 결부되지 않은 단순 신임 목적의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행복추구권, 양심의 자유, 국민표결권, 재산권 등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며, 2003. 10. 15.( 2003헌마694 ), 같은 달 17.( 2003헌마700 ), 같은 달 28.( 2003헌마742 ) 피청구인의 위 행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각 청구하였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헌법 제72조에 의하면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을 뿐이지 정책이 아닌 대통령의 정치적 신임 여부는 국민투표에 붙일 수 없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에 위반하여 정책과 결부되지 않은 단순한 신임투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 국민표결권, 선거권, 양심의 자유, 근로의 자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침해된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1) 대통령은 단지 자신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묻겠으며, 그 방안으로는 국민투표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에 불과하고, 재신임투표와 관련하여 투표일 공고 등 투표실시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한바 없어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장차 그와 같은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에 불과하므로 공권력의 행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2)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는 그 실시 여부가 확정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장래 실시 여부 또한 불확실한 상태여서 현재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3) 국민이 대통령을 신임하는가의 문제는 헌법 제72조의 국가안위에 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므로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이라 할 수 없다.

【결정요지】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려면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에 해당하여야 하는바, 피청구인인 대통령의 발언내용 및 이를 전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 피청구인의 발언의 본의는 재신임의 방법

과 시기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힌 것에 불과하며, 정치권에서 어떤 합의된 방법을 제시하여 주면 그에 따라 절차를 밟아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어서 이는 법적인 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사전 준비행위 또는 정치적 계획의 표명일 뿐이다.

나. 국민투표라는 것은 대통령이 그 대상이 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여 국민투표안을 공고함으로써 비로소 법적인 절차가 개시되므로, 공고와 같이 국민투표에 관한 절차의 법적 개시로 볼 수 있는 행위가 있을 때에 비로소 법적인 효력을 지닌 공권력의 행사가 있게 되고, 그러한 법적 행위 이전에 국민투표의 실시에 관한 정치적 제안을 하거나 내부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검토하는 등의 조치는 일종의 준비행위에 불과하여 언제든지 변경·폐기될 수 있다.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이 된 피청구인의 발언만으로는 국민투표의 실시에 관하여 법적인 구속력 있는 결정이나 조치가 취해진 것이라 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하여 국민들의 법적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다. 그렇다면 비록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 국회 본회의의 시정연설에서 자신에 대한 신임국민투표를 실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고와 같이 법적인 효력이 있는 행위가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 제안의 피력에 불과하다고 인정되는 이상 이를 두고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에 대한 취소 또는 위헌확인을 구하는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

재판관 김영일, 재판관 권성, 재판관 김경일, 재판관 송인준의 반대의견

1. 피청구인의 행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

가. 국민투표의 실시를 결정하는 것은 피청구인의 독자적 권한인바, 피청구인이 국회에서의 시정연설을 통하여 국민 앞에 공표한 것은 국민투표에 관한 단순한 준비행위나 의견표명 내지 정치적 제안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고,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등과 같은 완곡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의 발언의 전체적 맥락은, 헌법 제72조에 규정된 국민투표의 요건

을 폭넓게 해석하면 신임국민투표도 가능하므로 이를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피청구인의 결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공표행위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명백한 의사결정을 대외적으로 표시한 것에 해당한다.

나. 피청구인의 공표행위는 전체로서 일련의 포괄적 절차를 이루고 있는 국민투표 실시라는 커다란 절차의 도입부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그 진지성이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 국민투표안의 공고가 아직 없다고 하더라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2. 피청구인이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임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행위는 위헌이며, 이로 인하여 국민들의 참정권 등의 기본권이 침해된다.

가. 헌법은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제를 원칙으로 하면서, 헌법 제72조제130조 제2항에서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과 ‘헌법개정안’에 관하여 국민투표의 가능성을 규정함으로써 예외적으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나.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여 피청구인에게 국민투표부의권을 부여하면서, 국민투표의 대상을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으로 한정하고 있는바, 여기서의 ‘중요정책’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정책’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 대통령의 임기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헌법 제70조나 궐위사유를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헌법 제68조 제2항헌법규범에 비추어볼 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임여부는 헌법 제72조의 ‘중요정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라. 역사적으로 볼 때 다수의 국가에서 집권자가 국민투표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물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 사례가 허다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헌법제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정책’에 한정하고 이로써 국민투표가 역사상 민주주의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 신임투표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마. 그렇다면, 피청구인이 이미 지난 선거를 통하여 획득한 자신에 대한 신임을 국민투표의 형식으로 재차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제를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위헌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하여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국가권력의 행사과정에 정당하게 참여하는 것이 침해되고, 이로써 국민의 한 사람들인 청구인들의 참정권 내지 국민투표권과 정치적 의사표명을 강요받지 아니할 자유가 침해된다.

【해설】

1. 쟁점의 정리

이 사건에서는 먼저 청구인들의 심판청구가 헌법소원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인지가 문제되었는바, 재판관의 다수의견은 피청구인인 대통령의 행위는 국민투표안을 공고한다든지 하는 법적 효력 있는 행위가 아니라, 법적인 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사전 준비행위 내지 정치적 제안의 피력에 불과할 뿐이어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아 심판청구를 각하하였다. 이에 대하여 재판관 4인의 반대의견은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한 다음 본안판단에까지 나아가 그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같이 이 사건에서는 대통령 신임국민투표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본격적 판단이 행해지지 않았고, 다만 소수의견만이 심판청구가 적법함을 전제로 신임국민투표는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혔으므로, 먼저 이 심판청구가 헌법소원의 요건을 구비한 것인지 살펴 본 다음, 신임국민투표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는 일반적 논의를 설명함에 그친다.

2.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가. 공권력 행사성의 판단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라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만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바, 이 사건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성’을 갖춘 것인지 문제된다.

(1) 헌법재판소의 판례

(가) “공권력의 행사”라 함은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행하는 모든 국가기관·공공단체 등의 고권적 작용을 말한다(헌재 2001. 3. 21. 99헌마139 등, 판례집 13-1, 676, 692).

입법작용으로는 법률, 조약, 입법부작위, 행정작용으로는 행정입법, 행정입법부작위, 조례, 공고, 권력적 사실행위, 행정청의 부작위 및 거부행위, 검사의 불기소처분, 사법작용으로는 사법입법 등이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

공법상의 사단, 재단 등의 공법인, 국립대학교와 같은 영조물 등의 작용도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헌재 1998. 8. 27. 97헌마372 등, 판례집 10-2, 461, 470-471).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행해지는 국가작용, 즉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심판대상이 된다(헌재 1996. 2. 29. 93헌마186 , 판례집 8-1, 111, 116).

(나) 국가기관·공공단체의 행위 중 어떠한 속성이 “공권력성”의 징표인지 일률적으로 밝히긴 어려우나, 판례를 종합하면 대체로 대외적 구속력이 있어서 국민의 법적 지위에 변화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따라 판가름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이러한 속성을 결한 것으로 즉 공권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들을 유형화한 것이다.

① 국가기관 내부의 행위, 내부의 사무처리지침

진정(내사)사건의 종결처분(헌재 1990. 12. 26. 89헌마277 , 판례집 2, 474, 480)

경제기획원 장관이 정부투자기관에 통보한 예산편성지침(헌재 1993. 11. 25. 92헌마293 , 판례집 5-2, 510, 516)

정부의 법률안 제출(헌재 1994. 8. 31. 92헌마174 , 판례집 6-2, 249, 265)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을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는 행위(헌재 1999. 6. 24. 98헌마472 등, 판례집 11-1, 854, 859)

공직선거에관한사무처리예규(헌재 2000. 6. 29. 2000헌마325 )

② 준비행위, 계획

교육부장관이 발표한 ‘1996학년도 대학입시기본계획’ 중의 “전국의 대학에 대하여 대학별고사에서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 실시에 신중을 기하여 줄 것을 권고하고, 그 세부사항으로 계열별·학과별 특성에 따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보완하는 선에서 교과목을 최소화하도록 권고”하는 내용(헌재 1997. 7. 16. 97헌마70 , 판례집 9-2, 131,141)

기존의 대학입학전형기본계획과 동일한 내용의 예술고 학생에 대한 학생부 성적반영 지침(헌재 1997. 12. 19. 97헌마317 , 판례집 9-2, 751, 760)

건설교통부장관이 개발제한구역의 해제 내지 조정을 위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개발제한구역제도개선방안’(헌재 2000. 6. 1. 99헌마538 등, 판례집 12-1, 665, 680)

다만, 서울대학교의 ‘1994학년도 대학입학고사 주요요강’은 사실상의 준비행위나 사전안내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이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향후 법령의 뒷받침에 의하여 그대로 실시될 것이 틀림없이 예상된다고 하면서 공권력의 행사성을 인정하였다(헌재 1992. 10. 1. 92헌마68 등, 판례집 4, 659, 668).

또한 교육부장관의 ‘1995학년도 대학입시기본계획의 일부 보완사항 통보’는 교육법 제111조의2교육법시행령 제71조의2에서 정하고 있는 고등학교 내신성적에 관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충하는 것으로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또 1995, 1996학년도 대학입시에 이미 적용되었던 이 사건 보완통보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997학년도 대학입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임은 이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하여 심판청구의 적법성을 인정하였다(헌재 1996.04.25. 94헌마119 , 판례집 433, 442).

③ 단순한 사실상의 고지

법원행정처장의 민원인에 대한 법령질의회신(헌재 1992. 6. 26. 89헌마132 , 판례집 4, 387, 402).

한국방송공사가 보낸 단순한 해명내용이 기재된 ‘회신문’ 제목의 통지(헌재 1993. 12. 23. 89헌마281 , 판례집 5-2, 658, 667)

공보처장관이 지역신문 발행인의 질의에 따라 보낸 통보(헌재 1997. 10.

30. 95헌마124 , 공보 23, 729)

행정자치부장관이 사법시험 1차시험의 불합격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면서 추가합격된 자에게 2차시험의 응시자격 범위를 통보하여 준 것(헌재 1999. 11. 30. 99헌마625 , 공보 40, 940, 941)

④ 공고

공고에 대하여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개별 공고의 내용과 관련 법령의 규정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헌재 2000. 1. 27. 99헌마123 , 판례집 12-1, 75, 83-84).

(2)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관련 판례

서독이 동서독간의 형사공조법에 근거하여 살인혐의자인 청구인(동독인)을 동독으로 인도하려는 제반 조치와 관련, 청구인이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하자 서독연방정부에서 인도조치가 합헌적이라는 견해를 공식으로 동 위원회에 표명하였던바, 청구인은 연방정부의 그러한 견해표명, 그리고 베를린 구(區)법원이 연방정부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사법청구를 각하한 점에 비추어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정부의 그러한 견해표명(Stellungnahme)은 법적 상황에 관한 하나의 의견표명(Meinungsaußerung)에 불과하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인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라고 하였다{BVerfGE 37, 57(61)}. 유사한 판례로는 서면에 의한 비구속적 의견표명이어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고 본 BVerfGE 2, 237(244)을 비롯하여 BVerfGE 3, 162(172); 29, 304(309)가 있다.

(3) 이 사건의 경우

피청구인이 대통령이고 사사(私事)에 관한 행위가 아니라 국정 내지 국가작용에 관한 행위이므로 공적 성격은 쉽게 인정된다. 문제는 그것이 권력적 작용인가 하는 점인데, 피청구인의 행위에 대외적 효력 내지 법적·사실적 규제작용이 있는지 또는 그 가능성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진지한지가 핵심이라 할 것이다.

(가) 통상적인 국민투표 절차와 공권력 행사의 시점(始點)

심판대상 행위에 공권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통상적인 국민투표의 실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 경우 어느 단계에서 공권력의 행사가 있다고 볼 것인지를 알아본다.

현행 국민투표법헌법 제72조헌법 제130조에 의한 국민투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으로서, 대통령의 투표안 공고(투표일전 18일까지. 제49조)-공고된 투표안의 게시(제22조)-국민투표에 관한 운동(공고일로부터 투표일 전일까지. 제26조)-투표인명부의 작성(공고일로부터 5일이내. 제14조 제1항)-투표-개표-집계-중앙선관위의 결과 공표 및 대통령·국회의장에 대한 통보(제89조)-대통령의 공포(제91조)의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국민투표 절차는 대통령의 공고행위로부터 비로소 법적인 절차가 개시된다. 따라서 국민투표 실시에 관한 최초의 공권력 행사는 공고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국민투표안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나(헌법 제89조 제3호), 국무회의는 심의기관으로서 대통령을 기속하지 않으므로2)대통령은 심의를 거치고서도 국민투표안을 공고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아직은 국민투표 실시와 법적인 거리가 있다 할 것이다.

(나) 심판대상 행위의 분석

1) 피청구인은 2003. 10. 10. 재신임 국민투표 선언을 하였다가 정치계·학계의 위헌 논의를 비롯하여 정치적·사회적인 파장이 계속 일자, 2003. 10. 13.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의 기회에 재신임 국민투표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좀 더 구체화시켜 밝힌 것이 이 사건 심판대상 행위이다.

2) 피청구인 발언의 정확한 취지와 내용을 살펴본다.

피청구인의 국회 연설의 내용을 보면, “재신임 방법과 시기에 관해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책과 결부하지 않고 재신임 여부를 그냥 묻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는 발언이 나오는바, 그렇다면 피청구인 발언의 진정한 취지는 “① 신임투표를 실시하고 싶은데, ② (찬반에 관하여 논란이 많으니) 정치권에서 합의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취지는 적어도 정치권에서 현행 국민투

표법에 의하든, 국민투표법을 개정하는 쪽이든 합의된 방법을 제시하면 그에 따라 절차를 밟아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므로, 피청구인의 행위는 아직은 ‘법적인 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한 정치적 사전 준비행위’에 불과하다 할 것이고, 합의된 방법에 따라 공고를 한 때에야 비로소 공권력 행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은 대통령의 독자적 권한이다. 국무회의의 심의라는 절차를 거치는 이상 더 이상 국회나 행정부 등 다른 국가기관의 협의나 동의절차 없이 독자적 결단으로 국민투표안을 공고함으로써 국민투표 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에 관한 최종적·유권적 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국회, 대통령, 법원 등의 국가기관은 입법 내지 법집행을 위하여 1차적·잠정적인 헌법해석을 할 수 밖에 없고, 이 경우 각 기관의 헌법해석이 상충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신임투표의 헌법적 허용성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신임투표가 합헌이라는 대통령의 견해와 위헌이라는 국회의 견해가 상충한다고 할 때, 대통령은 ① 국회와의 정치적 타결을 통해 국회의 동의를 얻은 후, 현행 국민투표법이나 개정된 국민투표법에 근거하여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 ② 국회의 견해를 무시하고 현행 국민투표법에 근거하든(신임투표도 헌법 제72조에 해당한다고 보아), 또는 현행 국민투표법에 근거하지 않고 국민투표의 절차조차도 사실상 형성해가면서(신임투표는 헌법 제72조와는 별개의 합헌적 조치라고 보아)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 ③ 국민투표를 포기하는 방안의 3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 중 ②의 경우라면 공고 이전에 대통령의 사실상의 의지표명 행위에 공권력성을 인정할 소지도 있을 것이다. 이 때의 국민투표 실시라는 것은 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행위로서의 성격보다, 대통령의 사실상의 힘의 발현으로서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띠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공고행위는 시간과 순서에 따라 실현될 일개 절차에 불과하게 되므로, 대통령의 의지표명 자체에 권력적·사실적 작용의 시원성(始原性이) 있게 되고, 여기에 이미 국민투표 실시라는 사실적 작용과의 의지적 접근성을 인정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권력적 힘이 사실상 표출된 때에 일종의 권력적 사실로서의 공권력 행사성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피청구인의 행위는 ②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①에 해당한다. 아직은 정치권의 합의를 호소, 촉구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앞으로 정치권의 합의 여부라는 변수가 남아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위에서 본바와 같이 준비행위 단계에 있는 행위가 공권력의 행사가 되려면 ‘법령의 뒷받침 등에 의하여 그대로 실시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주요한 판단지표로 삼고 있는데, 피청구인의 발언만으로 신임투표의 실시가 틀림없을 것으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행위는 그 자체로 결정적인 법적·사실적 형성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피청구인의 발언 이후 결정 선고 당시까지도 신임투표의 찬반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피청구인이 신임투표 실시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2003. 10. 27.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의견을 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에까지 이른 것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피청구인의 호소대로 합의가 있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 절차의 개시(국민투표법에 의한 공고가 될 것이다)가 있을 때에 비로소 국민투표 실시라는 법적 규율작용이 현실적으로 발동된다.

나. 소 결

피청구인의 행위는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므로, 가사 신임투표가 실시될 경우에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개연성이 인정될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이에 대하여는 위 결정요지에서 본바와 같이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본 소수의견이 있었다.

3. 신임국민투표의 위헌 여부

가. 국민투표 일반론

(1) 국민주권의 원리와 대의제·반(半)대의제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국민주권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국민주권의 원리는 소극적으로는 어떤 형태의 군주국도 인정되

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통치권력의 행사를 최후로 국민의 의사에 귀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국민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함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국민주권의 행사방법으로는 간접민주제와 직접민주제가 있는데, 국민은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간접민주제(대의제)가 국민주권의 원칙적 행사방법이다.

대의제의 원리는 통치자와 피치자를 구별하고, 통치구조에 있어서 정책결정권과 기관구성권을 분리하며, 대표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전체국민을 대표하며, 경험적 의사에 대한 추정적 의사의 우선, 부분이익에 대한 전체이익(일반이익)의 우선, 명령적 위임의 배제 등을 기본내용과 개념으로 하고 있다.3)

직접민주제는 국민이 직접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직접민주제는 국민의 투표에 의한 표결의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직접민주제의 방법으로는 국민표결(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거부가 있다.

국민주권과 통치원리에 관하여 이러한 결론으로 정착되기까지에는 역사적으로 대립되어 온 주권이론이 있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정립·발전되어 온 국민(Nation)주권권과 인민(Peuple)주권론은 오늘날 대의제-반(半)대의제-직접민주제의 논의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국민주권론은 몽테스큐의 ‘법의 정신’에서 제시하고 있는 순수대표제에서 그 이론적 기초를 찾을 수 있는데, Nation주권에 있어 Nation이란 개념은 ‘전체로서의 국민’을 의미한다. 이는 이념적 통일체로서 존재하는 추상적 존재이다. 따라서 Nation의 주권은 원천적으로 직접 행사될 수 없고, 대표자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 대표자는 그를 선출해 준 Nation으로부터 아무런 명령이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그 자신이 자유롭게 행동한다.

이에 반해 루소(Rousseau)로부터 시작되는 Peuple주권론에 있어서 Peuple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살아서 직접 자신의 의사를결정하고 표시하며 행동하는 주체이다. 이는 현실적인 개인들의 총체이며, 의사무능력자를 제외시킨 개념이므로 peuple는 항상 주권을 스스로 행사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주권은 유권자의 총체에게 있고 개개의 유권자는 1/유권자수 만큼의 주권의 지분을 가지고 행사한다. 불가피하게 주권을 타인으로 하여금 행사시킬 때에는 그 대리인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주권이론을 통치원리(대의제 또는 직접민주제)에 곧바로 대입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논란이 있지만, 국민주권론에서는 대의제원리가, 인민주권론에서는 직접민주제가 보다 이상적인 제도로 여겨질 수 있다. 오늘날 대의제의 정착은 국민주권론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보통선거의 일반화, 직접민주제원리의 헌법상 제도화는 이제 두 주권이론이 융합되고 통합된 타협적 헌법체제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4)프랑스 헌법 제3조 제1항상의 “국민주권은 인민에 속하며, 인민은 대표자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를 행사한다”라는 규정은 이를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의제와 직접민주제가 융합된 통치원리를 프랑스에서는 半대표제라 부르고 있다.

오늘날의 현대국가에서 대의제가 기본원리로 정착하였지만, 대의제 또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국민주권의 원리가 의회주권의 원리로 변질되고, 일반국민은 명목상의 주권자에 불과하게 되었다. 또한 국민의 대표자여야 할 국회의원은 정당지도부의 지시와 통제에 얽매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대표자와 국민과의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좁히고 국민주권을 보다 실질화하려는 시도로서 국민의 직접적인 개입을 인정하는 직접민주제적 요소가 속속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스위스, 프랑스, 미국의 州들(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을 필두로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등의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민투표제를 도입하였다(헌법개정국민투표와 입법에 관한 국민투표가 주류를 이루지만, 국민투표의 대상, 발의주체 및 절차, 효력은 각국에 따라 다기하다)5). 따라서 대의제도의 현대적 유형은 경직된 순수한 대의제가 아니라 ‘직접통치적 요소의 공존과 상용(相容)’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대의제6)또는 半대표제(半직접

민주제)7)라 부를 수 있다. 완전하고 순수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는 이상향이라 할지라도 대표자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구속적 형태인 半직접민주주의는 대표제를 한층 더 의미깊게 하는 제도로서 대의제의 발전된 형태라 할 것이다.8)

프랑스에 있어 대의제와 반직접민주제가 양립 가능하냐의 논의가 있었는데, 프랑스에 있어 직접민주제에 대한 전통적인 적의(敵意)는 체험적인 적의이고, 통설에 의하면 대의제의 본질은 의회의사와 국민의사의 합일을 추정하는 것인데, 이 합일을 보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절차(즉, 국민투표)는 합헌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9)

이에 반해, 독일기본법은 바이마르공화국과 Hitler의 역사적 체험에 대한 반성으로 연방영토 또는 州의 재편성(독일기본법 제29조, 제118조, 제118조a)의 경우 외에는 국민투표의 도입을 극력 저지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독일의 거의 모든 州에서 국민발의제와 국민표결제를 광범위하게 도입하였다.10)

(2) 국민투표의 개념과 종류 - referendum과 plebiscite의 구별

직접민주제적 제도들인 국민소환(recall), 국민발안(initiative), 국민표결(referendum), 신임투표(plebiscite), 국민거부(Veto)11)를 실현하는 수단은 “국민의 투표”이다. 이에 따라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국민투표”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12)그러나 일반적으로 “국민투표”라 하면 국민표결로서의 referendum과 신임투표로서의 plebiscite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13)이러한 “국민투표”는 일응 헌법개정국민투표와

법률국민투표14), 정책국민투표, 그리고 신임투표로 나누어진다.

plebiscite는 어원상으로는 로마 평민(plebs)과 의결(scitum)의 합성어로서 인민이 투표로써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오늘날에는 주로 집권자에 대한 국민의 신임 여하를 묻는 식으로 국민투표가 행해질 경우 plebiscite라 부르는 관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15)사실 referendum과 plebiscite를 어떻게 구분하며, 그 성격과 기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고, 각 나라의 법제도와 실정법의 내용, 헌법전통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으며, 반드시 논리적·이론적 분석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한 귀납적 방법에 다분히 의존하는 바 있어 더욱 체계적이고 일관성있는 이해가 어렵다.16)

따라서 여기서는 국민투표에 관한 헌법역사적, 이론적 논의와 경험이 가장 풍부한 프랑스의 논의 중 Duguit의 견해를 보건대, 그에 의하면 referendum은 ‘직접적 정부에의 하나의 부분’인 반면, plebiscite는 어느 한 사람에게 주권을 위임하거나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을 제정케 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그에 의한 구별의 두 가지 징표는 ① referendum은 직접민주제에의 하나의 수단을 의미하지만, plebiscite는 한 사람에게 주권을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대의제에의 경향을 의미하고, ② referendum은 법률 등의 제도에 대한 국민투표를 의미하는데 대하여, plebiscite는 한 사람에 대한 주권위임의 국민투표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Malvardi는 인민이 입법적 사항에 관여하는 경우는 referendum, 인민이 선거적 사항에 관여하는 경우는 plebiscite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선거적 사항이란 정치인의 선출과 해임의 경우를 말한다.17)

이와 같이 제도에 대한 것이냐, 한 사람의 정치인이나 개인적 정책에 대

한 것이냐에 따라 구별할 수 있으나, 사람과 제도는 역시 서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 구분은 불충분한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고, 법적으로는 plebiscite는 referendum과 동일한 대상, 즉 헌법, 법률 등을 대상으로 하므로 양자의 구별은 정치적 구별에 불과하지, 법적 구별이 아니라고까지 이해되고 있다.18)

나. 국민투표에 관한 외국의 이론과 사례

(1) 미국

(가) 헌법상 대의제의 명시와 해석

1) 미국의 경우 연방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다. 이것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의도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며 미국 헌법 제4조 제4절에 명시되어 있다. 미국이 공화제를 헌법상에 명시해 놓은 이유는 헌법 제정 당시 교통, 통신 수단 등의 부족에서 오는 시간적, 물리적 어려움의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미국 헌법 작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James Madison이 주장했던 것처럼 대의제의 제도적 우월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Madison은 시민의 대표자에 의한 법률 제정이 대중이 가지는 순간적, 감정적 판단의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며, 선출된 사람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19)

2) 미국 헌법 초안자들의 대의 민주주의 선호는 연방 헌법상 공화제 정부를 명시한 반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헌법에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잘나타나는데, 헌법 제4조 제4절은 “합중국은 이 연방내의 모든 주에 공화정 체제를 보장하며”(The United States shall guarantee to every state in this Union a Republican Form of Government)라고 시작한다. 연방정부 차원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은 여러 차례 시도되긴 했지만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였다. 가장 최근의 시도는 1977년 헌법 수정안을 통한 연방 정부 차원의 국민투표제 도입 시도가 있긴 했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3) 비록 연방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도입되진 못했지만 주차원에서 이것은 활발히 도입되었다. 20세기 초부터 전개된 주헌법 개정을 통한 국민투표의 도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현재 과반수이상의 주에서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이러한 주차원의 직접 민주주의적 제도의 도입은 헌법 제4조 제4절이 보장한 대의제를 위반하여 위헌이며 무효라는 문제 제기가 있기도 했으나, 이것은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난 정치적 문제라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이러한 제도 자체에 대한 도전은 사라졌다.

4) 1912년 미국연방대법원은 Pacific States Telephone v. Oregon, 223 U.S. 118 (1912)사건에서 Oregon주가 헌법 수정안을 통해 도입한 국민투표제도에 대하여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국민발의(initiative)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에 의해 세금을 납부하게 된 Pacific States Telephone이라는 회사는 이 법률이 대의제를 통한 법률 제정을 명시한 헌법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Oregon주의 수정헌법이 연방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였다. 미연방대법원은 White 대법원장이 집필한 법정의견에서 본안 판단 없이 사건을 각하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의 성질상 이 문제는 사법적 판단이 적절치 않은 정치적 문제이며, 의회가 이 문제를 다루기에 더 적당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주차원의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의 도입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았으나, 이 제도들 각각의 시행 방법 및 내용에 대해선 사법부의 판단이 계속되어 왔다.

(나) 주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경우의 국민투표

일반적으로 주헌법이나 법률로 국민투표나 국민발의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는 허용된다. 다만 그 내용이나 방법이 연방헌법이나 연방법률, 주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주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적인 규정이 없이 단지 여론을 참고하기 위한 권고적 성격의 국민투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의 주법원의 판례 동향은 다음과 같다.

1) 주헌법이나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의견을 수렴하는 권

고적 성격의 국민투표는 일반적으로 무효한 것으로 법원에 의해 선거의 집행이 중지(injunction)될 수 있다.20)

명시적인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권고적 성격의 국민투표가 금지되는 이유는, (1) 의견 수렴을 위한 권고적 국민투표가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허용되지 않은 경우, 그것은 의회에 의해 금지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21)(2) 단순히 권고적 의견의 국민투표를 인정할 경우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국민투표를 매번 실시해야 하는 위험이 존재하며22), (3) 명시적인 위임이 없음에도 구속력이 없는 결정을 위하여 국민투표를 하는 것은 공공자금의 낭비에 해당하고,23)(4) 정치적 수단으로 국민이 기망될 수 있다24)는 점 등을 들고 있다.

2) 그러므로, 여론 수렴을 위한 권고적 성격의 국민투표의 경우 주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을 때에는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나 경우에 따라 예외가 존재한다. Markku Suksi에 따르면 주헌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권고적 성격의 국민투표가 때때로 실시되어 왔다고 한다.25)

Trexler 사건에서 문제가 된 국민투표는 그 지역에 건설 예정인 댐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로서 법률적으로 그 결과가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의견 수렴용이었으며 법률에 의한 시행 근거도 없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예외적으로 그 국민투표가 유효함을 선언하였는데 그 근거는, (1) 연방법(the Federal Flood Control Act of 1962)에 의해 추진중인 댐 공사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2) 주민들이 이 계획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었다(연방 project로 오직 이 주를 대표하는 두 명의 상원의원과 이 지역을 대표하는 한 명의 하원의원만이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그들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방법이 미미한 경우 예외적으로 권고적 성격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2) 독일

(가) 독일의 국민투표제

1)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마르 헌법은 영토의 재편성에 대한 국민투표 외에도, 법률제정과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제국대통령의 발안에 의한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 제국의회의 발안에 의한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 예산 등에 관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 등 다양한 직접민주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26)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단지 8개의 국민발안이 시도되었고, 그 중 2가지 경우에만 국민투표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또한 가결되기 위한 특표율을 얻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제국대통령은 한 번도 국민투표를 제안한 적이 없었다.

2) 독일 기본법

독일의 기본법은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과 비교할 때 국가의사형성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역할을 현저하게 축소하였다. 독일 기본법 제20조 제2항은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권력은 선거와 국민투표의 형태로써 국민에 의하여 그리고 입법, 행정, 사법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행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은 국가권력의 행사방법에 관한 규정으로서, 국민에 의해서는 직접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그 외에는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국가기관에 의하여 국가권력이 행사된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은 제29조27)와 제118조(바덴과 뷰어템베르크 주의 재편성),

제118조a(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의 재편성)에서 독일 영토의 재편성과 관련해서만 국민투표의 가능성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민주적 요소도 독일 국민 전체가 아니라 영토변경으로 인한 당사자 주민에 국한되기 때문에, 연방 차원에서는 사실상 국민투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3) 독일의 州 헌법

독일의 함부르크를 비롯한 4개 주에서만 주헌법에 직접민주적 제도를 두고 있지 않을 뿐, 나머지 주에서는 허용하는 정도는 상이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직접민주적 요소를 두고 있다.28)독일 주의 국민투표제도를 개괄적으로 살펴본다면, 대부분의 주에서 공통적으로 주법 및 주헌법의 제정, 개정, 폐지, 의회해산을 그 대상으로 하는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를 두고 있다. 법률안에 대한 국민발안의 경우, 정족수에 이른 국민발안에 의하여 곧 바로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입법권과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범에 부합하기 위하여 반드시 의회를 경유하도록 하고 있다. 즉, 국민이 제출한 법률안에 대하여 국회가 헌법상의 입법절차에 따라 의결을 하고, 국회에 의하여 채택되는 경우에는 법률로써 확정이 되지만, 국회에서 거부되는 경우에는 국민투표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하는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부 주에서는 헌법개정안에 대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친 후 국민이 국민투표의 형태로 동의를 해야만 헌법개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주에서 국민투표는 거의 실시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4) 헌법사적으로 볼 때, 1948년의 헌법제정회의에서 여러 차례 국민투표의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소위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특히 히틀러의 나치정권에 의한 국민투표제도의 악용이란 부정적 경험과 국민의 정치적 성숙성에 대한 회의 등을 이유로 거부되었다. 50년이 지나 독일 통일 후 헌법개정시 다시금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도입이 거론되었으나, 직접민주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얻는 것보다는 대의제가 이로 인하여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또한 거부되었다.

(나) 국민투표에 관한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

연방헌법재판소는 현재까지 ‘핵무장에 대한 국민질의’와 ‘프랑크푸르트 공항 확장에 대한 국민발안’의 두 결정에서 모두 주 차원에서의 국민투표와 관련하여 결정하였는데, 위 결정 중 후자는 공항 활주로 확장에 대한 지역주민의 국민발안신청을 주정부가 거부한 것이 문제된 사건(권한쟁의 및 헌법소원)으로서 각하 및 기각되었는데, 국민투표에 대한 아무런 실체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하여 ‘핵무장에 대한 국민질의’ 결정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국민질의의 법적 성격과 국민투표를 행하는 국민의 성격에 관한 판시를 하였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58년의 핵무장에 대한 國民質疑法에 관한 결정(BVerfGE 8, 104, 115ff.)

1958년 독일 연방정부가 핵무장을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는 함부르크와 브레멘 주는 ‘핵무장에 대한 국민질의에 관한 주법률’을 제정하여 주 차원에서 국민질의를 시행함으로써 연방정부에 압력을 가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연방정부는 위 두 주법률에 대하여 ‘위 법률들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추상적 규범통제를 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우선 ‘국민질의’의 법적 성격을 규명하였다. ‘국민질의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물론, 국민질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국민질의는 여론조사와 유사하지만,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주체가 개인이나 단체 등인 반면, 국민질의는 국가에 의하여 실시되며 선거나 국민투표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이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예컨대 비밀투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여론조사에 응하는 국민은 표현의 자유란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국민질의에 응하여 투표를 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나 청원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국민질의의 경우, 국민은 개인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 국가의사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고, 이 경우 국민이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기관으로서의 국민의 속성’을 문제삼는 요소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헌법기관은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때뿐만 아니라 구속력이 발생하지 않는 권한 행사의 경우(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는 행위)에도 국가기관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이유로 ‘국민질의에 관한 위 주법률들은 주민에게

국가의사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국민질의에 응하는 국민의 행위는 국가권력의 행사에 해당된다’고 확인하였다. 이어서 헌법재판소는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의 활동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와 어떠한 효력을 가지고 이루어지든, 헌법상의 권한규범에 의하여 제한된다’고 전제하고, ‘국민질의의 경우, 연방과 주의 권한배분을 준수해야 하는데, 국방정책에 관한 결정은 연방의 독점적 권한에 속하므로 주에서 입법을 통하여 이에 관하여 국민질의를 실시하는 것은 연방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주의 핵무장에 대한 국민질의는 연방의 독점적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적인 규정으로 무효’라고 결정하였다.

(다) 국민투표에 관한 독일 학계의 논의29)

1) 독일 학계의 절대적 다수가 ‘헌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국민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지배적 견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법상의 명문규정 없이는 국민투표는 허용될 수 없다. 기본법 제20조 제2항 제2문은 단지 국가권력의 행사방법만을 규정한 것일 뿐 권한규범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 국민이 선거나 국민투표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연방의회의 선거에 관한 규정(제38조) 및 독일 연방영토의 재편성에 대한 국민투표조항(제29조, 118조)과 같은 구체적인 헌법규범으로부터 나온다. 예컨대 국민의 선거권도 위 기본법조항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수권규범을 필요로 하고, 기본법 제38조가 연방의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투표의 도입은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컨대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경우, 이러한 국민투표는 헌법에 확정적으로 규율된 법률제정절차와 충돌한다. 따라서 누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지는 직접 헌법에 규정되어야 한다. 국민투표가 헌법기관(의회, 정부 등)의 권한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투표는 그 대상, 요건,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규정을 필요로 하며, 국민투표에 관해서는 그 의미의 중대성에 비추어 헌법 스스로 규

율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행 헌법상 국민투표는 허용되지 않으며, 국민투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국민투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발안이나 국민질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질의는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없으나 정치적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그 효과에 있어서는 국민투표와 유사하다.”

2) 이에 대하여 몇 사람에 불과하지만 반대의견도 있다. 소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30)

“헌법은 원칙적으로 대의제를 채택하였으나, 헌법의 이러한 결정은 직접민주적 요소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직접 행사한다고 하여(기본법 제20조 제2항 제2문) ‘국민투표’를 주권행사의 방법의 하나로서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투표의 가능성이 주 차원의 국민투표에 불과하여 사실상 연방 차원에서의 국민투표의 가능성이 없다면, ‘국민투표’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위 기본권조항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기본법 제20조 제2항 제2문의 ‘국민투표’는 단순히 주권행사의 방법이 아니라 입법자로 하여금 입법의 형태로써 헌법을 구체화할 것을 위임하는 수권규범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개정 없이도 입법자는 입법을 통하여 직접민주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다.”

3) ‘헌법상 국민투표가 허용되는가’의 문제와 전혀 별개의 문제는 ‘헌법에 국민투표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헌법정책적 문제이다. 학계의 지배적 견해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직접민주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대의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3) 프랑스

(가) 제도의 연혁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는 국민투표가 신임투표(plébiscite)로부터 시작되었다. 1793년 헌법에서 인민에 의한 법률의 승인 조항이 있었지만 실제 활

용되지 않다가 1799년 헌법은 국민투표를 도입하였으나 나폴레옹의 개인 권력을 정당화하고 황제등극을 위한 도구로 전화되었다. 또한 1852년에는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다. 프랑스에서 국민투표는 루소의 주창에 따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특별한 제도로 출발하였으나 보나파르트왕가 등 권력자들에 의하여 신임투표로 전화되어 민주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6년 헌법 이후 국민투표(référendum)와 신임투표(plébiscite)는 명확히 구분되었다. 신임투표는 개인의 정치적 정당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행하는 남용된 국민투표의 형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 개념의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투표의 대상인 정책이나 입법에 대한 찬반을 통하여 지도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가 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구체적 경우에 투표대상의 배합방법 또 지도자가 국민을 앞에 두고 위협을 하는 정도에 달린 미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58년의 현행 헌법도 신임투표의 용어를 배제하고 국민투표만을 헌법상 규정하였으나, 프랑스 제5공화국의 경험은 이러한 헌법의 의도대로 되지 못하였다.31)

(나) 현행 헌법상 국민투표의 세 유형

헌법 제3조는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인민은 그 대표자에 의하거나 국민투표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3가지 형태의 국민투표를 헌법상 제도화하고 있는데 ① 헌법 제11조에서 규정한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référendum législatif)32), ② 헌법 제53조 제3항에서 규정한 주민자치를 위한 국민투표(référendum d'autodétermination)33)및 ③ 헌법

제89조에서 규정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référendum constituant)34)가 그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국민투표는 영토의 변경이나 헌법개정의 일부 절차로서만 기능하는 것일 뿐이므로 신임투표로 전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므로 이하에서는 가장 문제가 많은 위 첫 번째의 국민투표에 관하여 주로 살핀다.

(다) 헌법 제11조에 의한 국민투표의 제도적 의의와 운용 현황

1) 헌법 제11조에 의하면, 대통령이 정부(즉 국무총리)의 제안 혹은 양원의 공동제안을 받아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바, 투표회부의 대상은 공권력의 조직,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 혹은 관련된 공적 역무에 관한 개혁에 관한 법률안 등이다. 대통령은 그 실시를 위하여 총리나 양원의 제안을 받아야 하나35)일단 제안을 받으면 그 실시 여부는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임의로 결정한다. 일단 국민투표에서 찬성되어 통과된 법률안에 대하여는 일체의 사법심사가 배제되며36), 회부대상이 개념상 모호하게 되어 있어 광범위한 활용이 가능한 관계로 대통령이 가장 빈번히 실행한 국민투표 유형으로서 프랑스 정치제도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현행 헌법헌법 제11조에 의한 국민투표는 7회 실행되었다. 먼저 처음의 4회는 드골장군37)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그 중 먼저 2회는 알제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1961. 1. 8.과 1962. 4. 8. 국민투표), 다음 2회는 헌법개정을 위한 것이었다.(1962. 10. 28.의 국민투표는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으로서 찬성을 얻었고, 1969. 4. 27.의 국민투표는 지방자치단체 창설과 상원의 개혁 관련 헌법개정이었으나 부결되었다.)

드골이 시행한 위 모든 경우의 국민투표들은 신임투표의 성격이 명백하였으며, 특히 1962년의 헌법개정 국민투표는 프랑스 대통령중심제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로 인하여 내각불신임과 의회해산이 실행되었는바, 국민은 헌법개정 국민투표와 의회선거 모두에서 드골 장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 아니면 혼란(moi ou le chaos)’이라는 나폴레옹식 구호가 재현되었다. 드골은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위헌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단단히 중심을 잡고 인민에 대하여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직접 물었으며 부결될 경우 사임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하여 위협하였으나, 결국 인민은 1969년의 국민투표에서는 다수가 부결하여 그를 말 그대로 사임시키고 말았다.

3) 드골 이후 3회의 시행이 더 있었는바, 1972. 4. 23. 유럽공동체의 확장을 위한 조약의 승인에 관한 것(퐁피두대통령), 1988. 11. 6. 뉴칼레도니아의 지위에 관한 것과 1992. 9. 20.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승인에 관한 것(미테랑대통령)이 그것인데 이들의 경우 이를 실행한 대통령들은 그 가부에 신임을 걸지 아니하였으며 정책 관련 국민투표(référendum)의 순수성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 국민투표의 합헌성에 대한 사법심사 개요

국민투표는 다수의 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절차이며 각 단계별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바 이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할 필요가 있다.

1)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결정에 대한 헌법심사

프랑스의 행정판례이론은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결정은 '國事行爲(act of State)'로서 사법심사에서 배제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헌법 제89조 대신에 제11조의 국민투표를 활용하여 헌법개정을 하려한다든지, 제11조에서 국민투표의 대상으로 열거된 것이 아닌 주제에 대한 투표를 한다든지, 제11조에서 요구하는 바와 같이 총리나 의회의 제청을 받지 아니한 채 투표에 회부한다든지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하여는 국사원(Conseil

d'Etet)등 행정법원은 국사행위로 판단할 것이다.38)

한편 헌법평의회는 이에 대하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조항을 엄격히 해석하여 스스로에게 관할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2) 국민투표의 조직과 절차에 대한 헌법심사

헌법평의회는 그 권한에 관한 헌법규정들에 근거하여 ‘투표 후 투표절차에 관하여 제기된 소원’에 대하여서만 법적 판단권을 가지며, 따라서 국민투표가 실시된 사후에 투표의 절차상 흠결이 투표결과를 무효화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여부만을 판단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국사원은 국민투표의 조직에 관한 조치에 대하여 관할권을 가진다. 결국 헌법평의회는 국민투표의 절차적 합헌성 여부에 대한 사전적 심사권이 없으며 이는 헌법상 동 기관에 이러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아니한 것으로 관련 헌법규정을 매우 엄격히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 국민투표에 의하여 통과된 입법에 대한 헌법심사

국민투표에 의하여 통과된 입법은 헌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통과된 입법으로서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적 의사표명’이므로 그 대표자인 의회에 의하여 통과된 입법과는 이 점에서 차별화되는 것이다. 의회 통과입법은 헌법평의회의 사전적 헌법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헌법평의회의 입장은 마스트리히트조약의 국민투표사건에서 다시 확인된 확고한 것이다.39)그러나 국민투표에 의한 법률도 그 발효 이후에는 의회통과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도 있고 효력상 차이가 없으므로 이러한 구분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잘못된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 소 결

이상에서 살핀 바를 종합하면, ① 프랑스에서는 신임투표가 남용된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신임투표와 레퍼렌덤을 개념상 엄밀히 구분하고, 헌법상으로는 레퍼렌덤만을 제도화하고 있으나, ② 사법권에 의한 합헌성 통제가 불충분하여 실제로 신임투표가 시행될 경우 이를 저지하거나 무효

화할 수 있는 기관이 없으며, ③ 형식적으로는 제도화되어있는 레퍼렌덤을 시행하면서 신임투표의 성격을 사실상 가미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였으나(드골의 국민투표) 이를 헌법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전혀 없었으며, 결국 신임투표의 합헌성 통제에 대한 제도적 흠결을 가지고 운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 우리나라 헌법과 국민투표

(1) 우리 헌법상 허용되는 국민투표의 범위

우리 헌법은 대의제를 통치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국민에 의해 국회, 대통령을 선출하고, 이들 대의기관으로 하여금 입법권과 집행권을 행사토록 하고 있다(헌법 제40조, 제66조). 한편 우리 헌법은 정책국민투표, 헌법개정국민투표를 명문화하여 직접민주제적 요소도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위에서 본바와 같이 ‘대의제와 직접민주제의 조화’, ‘직접민주제에 의해 보완된 대의제’, 또는 半대표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책국민투표와 헌법개정국민투표 외의 다른 직접민주제적 요소에 대해 우리 헌법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볼 것인지에 있다.

① 법률국민투표

먼저, 헌법 제72조의 “중요정책”에 법률을 포함시켜 허용된다는 견해가 있다.40)법치국가에서 중요정책은 곧 법률로 구체화되므로 법률을 굳이 제외시킬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제외시킨다 하더라도 법률의 핵심적 내용을 중요정책으로 제시하여 국민투표에서 통과된다면 그 입법추진에 대하여 국회에서 반대하기 어렵고,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이 병존하는 현행 헌법하에서 여소야대 등 분리된 정부 내지 동거정부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며, 이 때 국민투표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형식적 의미의 법률제정권을 국회에 전속시키고 있는 우리 헌법하에서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부결시키거나,

정부에서 마련한 법률안을 국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국민투표에 붙여 법률로 확정하는 것은 국회입법권을 잠탈하는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41)

② 국민소환국민투표

선거 또는 임명행위에 의해 임기가 보장되거나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국민의 제안과 투표로써 해직시키는 제도는 임기에 관한 헌법규정(제42조, 제70조, 제105조, 제106조, 제112조 등)에 위반되므로 공직해임에 관한 직접민주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상의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③ 국민발안국민투표

입법권을 국회에 귀속시키고(헌법 제40조), 정부와 국회의 협력과 견제를 통한 입법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상, 헌법상의 근거가 없이는 국민의 발안과 투표로 법률안을 확정시키는 제도는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④ 신임투표

이는 이 사건의 본안이므로 아래에서 항목을 바꿔 살펴본다.

(2) 정책국민투표에 관한 헌법 제72조의 해석 -일반론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 연혁

1) 사사오입개헌(제2차 개정; 1954. 11. 29.)

第7條의2 大韓民國의 主權의 制約 또는 領土의 變更을 가져올 國家安危에 관한 重大事項은 國會의 可決을 거친 後에 國民投票에 付하여 民議院議員 選擧權者3分之2 以上의 投票와 有效投票 3分之2 以上의 贊成을 얻어야 한다.

前項의 國民投票의 發議는 國會의 可決이 있은 後 1個月 以內에 民議院 議員選擧權者 50萬人 以上의 贊成으로써 한다.

國民投票에서 贊成을 얻지 못할 때에는 第1項의 國會의 可決事項은 遡

及하여 效力을 喪失한다.

國民投票의 節次에 關한 事項은 法律로써 定한다.

2) 유신헌법(제7차 개정(전문); 1972. 12. 27.)

第49條 大統領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國家의 중요한 政策을 國民投票에 붙일 수 있다.

3) 1980년 헌법(제8차 개정(전문); 1980. 10. 27.)

第47條 大統領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外交·國防·統一 기타 國家 安危에 관한 重要政策을 國民投票에 붙일 수 있다.

(나) 정책국민투표의 대상과 성격

헌법규정상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 대상인바, 이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견해가 나뉜다.

① “국가안위”는 다만 “중요정책”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형용사를 의미하는 데에 불과하고, “중요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이 국민투표는 부의자인 대통령의 신임문제가 결부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까닭에 referendum- plebiscite를 의미한다는 견해42)

② 정책국민투표는 전형적인 plebiscite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며, 어떠한 사항이 “중요정책”에 속하느냐의 판단은 대통령의 재량에 속하며, “중요정책”에는 법률이나 조약이 포함되고, 국회해산에 관한 국민투표도 대상이 된다는 견해43)

③ 대통령은 비교적 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국민투표부의권을 갖기 때문에 스스로 국가안위에 관계된다고 판단하는 정책은 그 사안의 제한을 받지 않고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으며, 대통령이 특정 정책과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켜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견해44)

④ 법률도 “중요정책”에 포함되며, “중요정책”이라고 못박고 있으므로 단순히 대통령에 대한 추상적 신임만을 묻는 plebiscite는 곤란하나, 중요정책과 신임 여부를 결부시켜 referendum에 plebiscite의 요소를 결부시키는 방법은 가능하다는 견해45)

⑤ “기타”란 외교·국방·통일 분야 외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 비중이 그에 버금가는 것이어야 하고, “국가안위”란 국가비상사태에 국한할 수는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국가적 위기가 이미 발생하였거나 최소한 객관적으로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를 말하며, 대통령은 부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하여 임의로 판단할 수 없고, 부의의 여부 및 시기에 관한 재량권이 있을 뿐이라고 하여 매우 엄격하게 보는 견해46)

이 견해는, 헌법 제72조는 특정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 부의권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방향에 대한 국민의 불승인이 바로 자신에 대한 불신임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적 문제라기보다 대통령의 정치적 사고와 정세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하면서, 정책국민투표 실시에 있어서 대통령이 신임 여부를 반드시 결부시켜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연히 신임 여부가 물어지는 것도 아니며, 혹 부결되더라도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 정부형태 하의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한 뒤, 신임연계라든지 사임 여부는 정치문화적 전통이라든가 실제의 헌정상황(민주적이냐 독재적이냐)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고 하고 있다.47)

(다) 정책국민투표의 정족수

헌법개정국민투표의 경우(헌법 제130조)와는 달리 정책국민투표의 정족수에 관하여는 헌법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마찬가지라고 보아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되는 것으로 본다.48)

(라) 정책국민투표의 효력

일단 정책국민투표에 붙인 사안에 대해서는 다수결로 나타나는 국민의 의사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기 때문에 국민의사와 배치되는 정책결정은 할 수 없다는 견해49)가 있고, 이에 반해 정책국민투표는 자문적 국민투표의 성격을 갖는데 불과하므로 법적 의미의 구속력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투표결과에 반하는 내용의 법률도 제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만

사실적·정치적인 기속력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갖는 효과가 크다는 견해가 있다.50)한편, 법률국민투표가 허용됨을 전제로 하여 국민투표에 의한 법률은 국회에 의하여 개폐될 수 없다고 하는 견해51)도 있다.

(3) 우리헌법상 신임투표가 허용되는지 여부

다수의견은 이에 관하여 의견을 밝히지 아니하였고, 소수의견은 위 결정의 요지에서 본바와 같은 위헌의견을 개진하였다.

4. 결정의 의의

이 결정은 신임국민투표의 위헌 여부라는 본안문제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았고, 심판청구의 적법 여부라는 요건 판단을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임국민투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유권적 결정은 이 결정으로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04. 5. 14.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2004헌나1 )에 대한 결정에서, 이 사건에서 문제되었던 대통령의 행위가 단지 신임국민투표를 제안만 하였을 뿐 강행하지는 않은 것이었으나,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신임국민투표를 국민들에게 제안한 것은 그 자체로 헌법 제72조에 반하는 것으로서 헌법을 수호하여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이 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제36조 제3항에 따라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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