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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1993. 7. 29. 선고 89헌마31 판례집 [공권력 행사로 인한 재산권침해 에 관한 헌법소원]
[판례집5권 2집 87~125]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가. 헌법재판소법(憲法裁判所法) 제68조 제1항에 의한 위헌소원(違憲訴願)의 적법요건(適法要件)인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의 의미

나. 공권력(公權力)의 행사과정(行使過程)에서 청구인(請求人) 개인(個人)에 대해 행사(行使)한 바는 없으나 청구인(請求人)의 개인재산권(個人財産權)을 직접(直接) 대상(對象)으로 하여 행사(行使)하였다 하여 헌법소원(憲法訴願)의 자기관련성(自己關聯性), 직접성(直接性)을 인정한 사례

다. 헌법소원(憲法訴願)의 적법요건(適法要件)인 보충성(補充性)의 원칙(原則)의 의미와 그 예외

라. 헌법소원심판청구권(憲法訴願審判請求權) 행사(行使)의 기산점(起算點)인 “사유(事由)가 있음을 안 날”의 의미와 제소기간(提訴期間)을 도과한 헌법소원심판청구(憲法訴願審判請求)를 허용(許容)할 수 있는 예외적(例外的) 사유(事由)로서의 “정당(正當)한 사유(事由)”의 의미

마. 이 사건(事件)은 이미 종료(終了)한 기본권(基本權) 침해행위(侵害行爲)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憲法訴願審判請求)이기는 하나 그 기본권(基本權) 침해행위(侵害行爲)가 위헌(違憲)임을 선언적(宣言的) 의미(意味)에서 확인(確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바. 재무부장관(財務部長官)이 대통령(大統領)의 지시(指示)를 받아 재벌기업인 국제그룹을 해체(解體)키로 기본방침(基本方針)을 정하고 그 후속조치(後續措置)로서 한 일련의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가 위헌(違憲)이라고 판단한 사례

결정요지

가. 재무부장관이 제일은행장에 대하여 한 국제그룹의 해체준비착수지시(解體準備着手指示)와 언론발표(言論發表) 지시(指示)는 상급관청의 하급관청에 대한 지시가 아님은 물론 동 은행에 대한 임의적(任意的) 협력(協力)을 기대하여 행하는 비권력적(非權力的) 권고(勸告)·조언(助言) 등의 단순한 행정지도(行政指導)로서의 한계(限界)를 넘어선 것이고, 이와 같은 공권력(公權力)의 개입(介入)은 주거래 은행으로 하여금 공권력(公權力)에 순응(順應)하여 제3자 인

수식(引受式)의 국제그룹 해체라는 결과를 사실상(事實上) 실현시키는 행위(行爲)라고 할 것으로, 이와 같은 유형의 행위는 형식적으로는 사법인(私法人)인 주거래 은행의 행위였다는 점에서 행정행위(行政行爲)는 될 수 없더라도 그 실질이 공권력(公權力)의 힘으로 재벌기업(財閥企業)의 해체(解體)라는 사태변동을 일으키는 경우인 점에서 일종의 권력적(權力的) 사실행위(事實行爲)로서 헌법소원(憲法訴願)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에 해당한다.

나. 이 사건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가 청구인(請求人) 주도(主導)의 계열기업(系列企業) 전면해체(全面解體)와 그 경영권(經營權)의 제3자 인수(引受)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상 청구인(請求人) 자신의 기본권(基本權)과 무관(無關)한 것이었다 할 수 없으며, 이 사건 공권력(公權力)의 행사과정(行使過程)에서 청구인(請求人) 개인을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대인적(對人的)으로 행사(行使)한 바는 없으나 청구인(請求人)의 개인주식 등 재산권(財産權)과 기업경영권(企業經營權)을 직접 대상(對象)으로 하여 대물적(對物的)으로 행사(行使)하였는 바, 이러한 사실관계(事實關係)하에서는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 자체에 의하여 청구인(請求人)의 기본권(基本權)이 직접(直接) 침해(侵害)당한 경우라고 볼 것이다.

다. 헌법재판소법(憲法裁判所法) 제68조 제1항에서 말하는 “다른 법률(法律)에 의한 구제절차(救濟節次)”는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 또는 불행사(不行使)를 직접 대상(對象)으로 하여 그 잘못 자체를 다투는 권리구제절차(權利救濟節次)를 의미하는 것이고,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불행사(不行使)의 결과 생긴 효과를 원상회복(原狀回復)시키거나 손해배상(損害賠償)을 위한 사후적(事後的)·보충적(補充的) 구제수단(救濟手段)은 포함되지 않는 것인 바, 이 사건 국제그룹 해체와 그 정리조치가 형식상으로는 사법인(私法人)인 제일은행이 행한 행위이므로 당시 시행되던 구(舊) 행정소송법상(行政訴訟法上)의 행정소송(行政訴訟)의 대상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당사자에게 그에 의한 권리구제절차(權利救濟節次)를 밟을 것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므로 이와 같은 범주의 권력적(權力的) 사실행위(事實行爲)의 경우에는 보충성(補充性)의 원칙(原則)의 예외(例外)로서 소원(訴願)의 제기(提起)가 가능하다.

라. 헌법소원(憲法訴願)의 제기기간(提起期間)으로서 “사유(事由)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0일”이라 함에 있어 “사유(事由)가 있음을 안 날”이라고 함은 적어도 공권력행사(公權力行使)에 의한 기본권침해(基本權侵害)의 사실관계(事實關係)를 특정(特定)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인식하여 심판청구(審判請求)가 가능해진 경우를 뜻하나, 헌법재판소법(憲法裁判所法) 제40조 제1항에 의하여 행정소송법(行政訴訟法) 제20조 제2항 단서(但書)가 헌법소원심판(憲法訴願審判)에 준용(準用)됨에 따라 정당(正當)한 사유(事由)가 있는 경우에는 제소기간(提訴期間)의 도과(徒過)에도 불구하고

헌법소원심판청구(憲法訴願審判請求)는 적법(適法)하다고 할 것인바, 여기의 정당(正當)한 사유(事由)라 함은 청구기간(請求期間) 도과(徒過)의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지연(遲延)된 심판청구(審判請求)를 허용(許容)하는 것이 사회통념상(社會通念上)으로 보아 상당(相當)한 경우를 뜻한다.

마. 당해사건에 대한 헌법재판(憲法裁判)이 헌법질서(憲法秩序)의 수호(守護)·유지(維持)를 위하여 긴요한 사항이어서 헌법적(憲法的)으로 그 해명(解明)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이미 종료된 기본권(基本權) 침해행위(侵害行爲)가 위헌(違憲)이었음을 선언적(宣言的) 의미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바, 이 사건에서도 권력적(權力的) 사실행위(事實行爲)가 이미 종료되어 나름대로 새 질서(秩序)가 형성(形成)되었지만, 이 사건은 재산권보장(財産權保障)과 사영기업(私營企業)의 자유(自由)를 골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질서하(市場經濟秩序下)에서 제반 기업활동에 대한 공권력(公權力) 개입(介入)의 헌법적(憲法的) 한계가 판시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안이고, 여기에서 아직 미결인 헌법상(憲法上) 중요한 문제가 해명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심판(審判)의 필요성(必要性) 충분하다.

바. 피청구인(被請求人)이 대통령(大統領)에게 건의 보고하여 그 지시를 받아 청구인(請求人) 경영의 국제그룹을 해체(解體)키로 하고 그 인수업체를 정한 후 이의 실행을 위하여 제일은행장 등에게 지시하여 국제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 관리에 착수하게 하는 한편 동 은행으로 하여금 계열사의 처분권(處分權)을 위임(委任)받는 등 해체준비를 하도록 하고 피청구인(被請求人)이 만든 보도자료에 의거 제일은행의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하도록 하는 등의 일련의 국제그룹 해체를 위한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는 헌법상 법치국가(法治國家)의 원리(原理), 헌법(憲法) 제119조 제1항의 시장경제(市場經濟)의 원리(原理), 헌법(憲法) 제126조의 경영권(經營權) 불간섭(不干涉)의 원칙(原則), 헌법(憲法) 제11조의 평등권(平等權)의 각 규정을 직접적(直接的)으로 침해(侵害)한 것으로서 헌법(憲法)에 위반된다.

재판관 최광률의 반대의견(反對意見)

라. 피청구인(被請求人)이 이 사건 공권력행사(公權力行使)를 극비리에 진행하면서 그 고지절차(告知節次)를 생략하고 마치 주거래 은행의 자율조치인 양 위장·은폐함으로써 청구인(請求人)의 재판권(裁判權) 행사(行使)를 방해하였다는 사유는 청구인(請求人)이

공권력행사(公權力行使)를 알았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사정이지 정당(正當)한 사유(事由)를 인정하는 근거(根據)가 될 수 있는 사정은 아니고, 또한 공권력(公權力)의 주체(主體)가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스스로 공권력(公權力)의 행사(行使)를 자인(自認)할 때까지 기다린다든지 관련되는 공권력행사(公權力行使)의 주체(主體)를 형사고소(刑事告訴)하고 그 수사결과(搜査結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정도 위 정당(正當)한 사유(事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소원제도(憲法訴願制度)의 생소함이나 이 사건 공권력행사(公權力行使)의 특이성 때문에 헌법소원(憲法訴願) 대상적격(對象適格)의 유무가 불투명하였다는 사유는 결국 청구인(請求人)이 법(法)을 잘 알지 못하여 청구기간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데 불과한데, 법(法)의 무지(無知)가 곧 청구기간(請求期間)의 태만을 합리화(合理化)할 수 있는 정당(正當)한 사유(事由)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유들을 청구인(請求人)이 헌법소원심판청구기간(憲法訴願審判請求期間)을 도과(徒過)한 데 대한 정당(正當)한 사유(事由)로 삼고 있는 다수의견(多數意見)은 부당(不當)하다.

청 구 인 양 ○ 모

대리인 변호사 윤 종 현 외 7인

피청구인 재무부장관

대리인 변호사 이 영 수

복대리인 변호사 박 상 기

헌법재판소법(憲法裁判所法) 제40조 (준용규정(準用規定)) ①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의 심판절차(審判節次)에 관하여는 이 법(法)에 특별한 규정(規定)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소송(民事訴訟)에 관한 법령(法令)의 규정(規定)을 준용(準用)한다. 이 경우 탄핵심판(彈劾審判)의 경우에는 형사소송(刑事訴訟)에 관한 법령(法令)을, 권한쟁의심판(權限爭議審判) 및 헌법소원심판(憲法訴願審判)의 경우에는 행정소송법(行政訴訟法)을 함께 준용(準用)한다.

② 생략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청구기간(請求期間))① 제68조 제1항의 규정(規定)에 의한 헌법

원(憲法訴願)의 심판(審判)은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청구(請求)하여야 한다. 다만, 다른 법률(法律)에 의한 구제절차(救濟節次)를 거친 헌법소원(憲法訴願)의 심판(審判)은 그 최종결정(最終決定)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청구(請求)하여야 한다.

② 생략

행정소송법(行政訴訟法) 제20조 (제소기간(提訴期間)) ① 생략

② 행정심판(行政審判)을 제기하지 아니하거나 그 재결(裁決)을 거치지 아니하는 사건(事件)에 대한 소(訴)는 처분(處分)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180일, 처분(處分)이 있은 날로부터 1년을 경과하면 이를 제기하지 못한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생략

참조판례

다. 1989.4.17. 선고, 88헌마3 결정

1989.9.4. 선고, 88헌마22 결정

1992.7.23. 선고, 91헌마209 결정

마. 1992.1.28. 선고, 91헌마111 결정

1993.3.11. 선고, 92헌마98 결정

주문

피청구인이 대통령에 보고하여 그 지시를 받아 1985.2.7. 청구인 경영의 국제그룹을 해체키로 기본방침을 정하고 같은 달 11. 그 인수업체를 정하는 한편, 이의 실행을 위하여 제일은행장 등에 지시하여 같은 달 13.부터 국제그룹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관리에 착수하게 하고 청구인으로부터 처분위임장 등으로 계열사의 처분권을 위임받게 하며 피청구인이 만든 보도자료에 의거하여 같은 달 21. 제일은행의 이름으로 해체를 언론에 발표하게 하는 등 국제그룹해체를 위하여 한 일련의 공권력의 행사는 청구인의 기업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임을 확인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1) 청구인은 주식회사 국제상사를 주력기업으로 하여 20여개 회사를 계열기업으로 한 세칭 국제그룹의 청업자로서 별지목록 기재(청구인 주장)와 같이 국제그룹계열사들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985.2.21.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주식회사 제일은행(이하 제일은행이라 한다)의 국제그룹해체방침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로 그 무렵부터 위 주식을 모두 제3자에게 매도하게 되었다.

(2) 청구인은 국제그룹해체가 공권력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고 그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1989.2.27. 그 공권력의 행사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당사자들의 주장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

가. 청구인의 주장

(1) 국제그룹은 1984년경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자금사정이 어려웠으나 재무구조의 개선과 자금조달을 위하여 일부 계열사 및 그룹 소유의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을 처분하는 등 자구노력(自救勞力)을 하면 일시적인 자금경색을 극복하고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건전기업이었다.

한편 정부는 1984.11월경 재무당국의 1984년초 대기업 은행여신 대폭억제 및 제2금융권여신 권장정책에 의거 시중의 자금수급여건에 따라 생성된 완매채제도금융을 전면금지하기로 방침을 세웠는데 당시 재무부장관 김만제(이하 재무부장관이라 한다)는 1984.12.5.

경 국제그룹에 대하여 1984.10월 말 기준 완매채여신 잔액 865억원을 전액 은행여신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1984.12.20.경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및 한국은행과 협의를 거쳐 협조융자형식의 은행지원방침을 확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국민경제를 정치권력의 도구로 타락시키고 경제계에 대하여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전단하여 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대통령이라 한다)은, 첫째 국제그룹총수였던 청구인이 이른바 로비활동을 등한히 하고 각종 명목의 준조세의 납부에 소극적 또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보복과 징벌의 필요성, 둘째 국제그룹을 해체시켜 각 계열사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인수업체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특혜에 따른 반대급부 등 이권에 개입하려는 의도, 셋째 국내 10대재벌 중의 하나인 국제그룹에 대하여 공중분해의 극형마저도 불사하는 실증을 보여줌으로써 재계 전체에 대하여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 등의 정치적인 동기에서 국제그룹을 전면해체시키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하여 재무부장관에게 관련금융기관에게 위 865억원의 은행여신지원방침을 전면 취소하되 이를 국제그룹에 대하여 알려주지 말도록 지시하여 국제그룹의 자금조달계획에 차질을 주고, 다시 주식회사 국제상사의 어음거래계좌 개설은행인 제일은행 광화문지점으로 하여금 1984.12.27. 교환회부되어 온 국제상사 발행의 어음 78매 총 432억원을 은행감독원 제정의 부도처리사전협의제운용지침과 당시 관행에 어긋나게 당일 17:30경 부도처리케 한 다음 어음들을 각 어음지급은행에 반송하게 하여 국제그룹에게 회복할 수 없는 신용상의 타격을 입게 하였다.

한편 대통령의 위와 같은 의도를 모르던 제일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과 은행감독원은 국제그룹을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건전기업으로 판단하고서는 위 부도처리로 발생한 국제그룹의 자금사정 악화를 덜어주기 위하여 1984.12.28.부터 1985.1.12.까지 국제그룹에 대하여 총 1,383억원의 1차 금융지원을 해 준 다음, 1985.2.5. 당시 유효하였던 은행법 제30조의2를 비롯한 관계법률, 그 위임에 따른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제정의 금융기관여신운용규정, 그 재위임에 따른 은행감독원 제정의 계열기업군에대한여신관리시행세칙, 은행감독원이 시중은행에 대한 일반적 규제권한에 의거 제정한 금융기관불건전채권정리업무취급지침, 부도처리사전협의제운용지침 등 이른바 계열기업군여신관리법제에 의거하여 1차 금융지원시 제출받은 국제그룹의 자구계획을 확대보강시키고 총 1,459억원의 2차금융지원을 추가 기업정상화금융으로 공식지원하여 국제그룹을 정상화시킨다는 기업정상화금융지원계획과 이에 상응한 국제그룹의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확정하였다.

마침내 대통령과 재무부장관은 위와 같이 확정된 기업정상화금융지원계획과 이에 상응한 국제그룹의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무시한 채, 국제그룹을 전면해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4단계의 공권력을 행사하였다.

(가) 1985.2.7. 대통령은 재무부장관에게, 국제그룹을 전면해체하여 그룹계열 20여개 회사를 제3자에게 인수시키고 청구인이 국제그룹계열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 및 일체의 잔여 개인 재산을 전면 박탈하라는 취지의 국제그룹해체 관련 기본지시를 비밀리에 하였다.

(나) 1985.2.8.부터 같은 해 2.11.까지 사이에 대통령은 재무부장관에게, 주식회사 국제상사의 건설부문과 동서증권주식회사는 극동건설주식회사에게, 연합철강공업주식회사와 국제종합기계주식회사는 동국제강주식회사에게, 주식회사 국제상사의 신발·무역부문은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에게 각각 분리 인수시키된, 나머지 국제그룹계열사들 또는 위 극동건설주식회사, 동국제강주식회사의 인수대상 국제그룹계열사들 명의의 부동산 중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가 추가로 인수를 희망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들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가 재량인수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국제그룹계열사의 인수사 선정에 관한 지시를 비밀리에 하였다.

(다) 위 대통령의 지시에 기하여 1985.2.12. 재무부장관은 당시 국제그룹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장 이필선(이하 제일은행장이라 한다)과 은행감독원장 송병순(이하 은행감독원장이라 한다)에게, 다음날인 같은 해 2.13.부터 즉각 국제그룹계열사들에 대한 은행자금관리에 착수하고 또한 당일로 청구인으로부터 주거래은행 앞으로 전재산 처분위임장을 징구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계열기업군여신관리법제상의 절차를 위계에 의해 침탈, 공권력을 불법부당하게 행사하였다.

(라) 1985.2.20. 재무부장관은 제일은행장을 불러 위 (가), (나)항과 같은 비밀지시가 대통령으로부터 있었던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주면서, 당시 제일은행이 국제그룹에 대하여 적법하게 확정해 놓은 기업정상화금융지원계획 및 이에 상응한 국제그룹의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무단히 파기하고, 재무부가 작성 하달하는 이른바 “국제그룹정상화대책”표제의 보도자료에 의거 다음날인 같은 해 2.21.

국제그룹을 전면해체하여 위 (나)항 기재 인수업체들에게 이른바 선인수시키고 정산절차는 후에 밟기로 하였음을 언론에 발표하여 국제그룹 전면해체를 기정사실화하되 그 결정이 주거래은행 기타 금융기관의 자율적 판단과 권한행사에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하라, 청구인이 국제그룹계열사들에 대하여 가진 모든 권리 및 일체의 잔여 개인재산을 박탈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식서류를 청구인으로부터 강제징구하고 이른바 선인수에 따른 후정산절차는 청구인측을 배제하고 관련 채권은행들과 위 선인수업체들간에 협의하여 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위와 같은 일련의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에 따라 제일은행장은 1985.2.21. 국제그룹의 전면해체방침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게 되었고, 그 후 청구인의 주식을 박탈하기 위한 요식절차인 주식 및 경영권 양도 가계약과 주식매매계약서에 청구인의 서명날인을 강제로 받아가 국제그룹은 전면해체되기에 이르렀다.

(2) 청구인은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인 청구인이 1985.2.21. 현재 보유하고 있던 별지목록 기재 각 주식에 대한 소유권과 은행법 제30조의2 기타 관련법률의 규정과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결 및 은행감독원 규정에 의거 1985.2.21. 당시 유효하였던 계열기업군여신관리법제를 운용함에 있어 헌법상 청구인에게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당하였다.

(3) 1985.2월 당시 유효하였던 계열기업군 여신관리법제의 정상적 운용의 결과 당시의 국제그룹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과 은행감독원이 1985.2.5. 국제그룹에 대하여 적법하게 확정해 놓은 기업정상화금융지원계획과 이에 상응한 국제그룹의 자구노력 이행계획

을 공권력이 월권적으로 개입하여 무단 파기한 뒤 계열기업군여신관리법제상 여신관리대상기업 정리시의 소정의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국제그룹의 계열회사들을 권력의 자의(恣意)로 몇몇 재벌들에게 나누어 준데서 비롯된 청구인의 법 앞의 평등과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에 대하여 헌법상의 구제를 구하기 위하여, 청구인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4)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고, 주식 및 경영권 양도 가계약 내지 주식매매계약은 단순한 요식절차에 불과하고 청구인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것이며, 민사소송은 헌법소원심판과는 그 청구의 내용과 법적 성격 및 당사자를 달리하므로 다른 법률에 정한 구제절차가 될 수 없고,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은 헌법재판소법 소정의 청구기간 내에 청구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주장 및 법무부장관의 의견

(1)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는 행정청 내부간 또는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지시, 통첩 내지 행정지도의 성질을 가져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는 직접적으로 국민에 대한 것으로서 그로 인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야 하는 것 즉 자기성, 직접성이 있어야 하는바, 가사 청구인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는 대통령이 재무부장관에게, 재무부장관이 제일은행장 및 은행감독원장에게 한 업무처리에 관한 지시여서 청구인에게 직접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청구인이 주식소유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제일은행이 담보권을 취

득하고 있던 청구인 소유의 주식을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방법으로 처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이를 청구인에게 통지하여 청구인이 인수업체들과 사이에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에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청구인이 직접적으로 기본권침해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

(3)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앞서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모두 거쳐야 하는바,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청구인의 재산권(주식)을 침해받았다면 그 재산권의 회복은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실제로 청구인은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방법원 88가합13941호로 주식인도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현재 그 소송이 계속중에 있으므로, 이러한 권리구제절차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구된 이 사건 헌법소원은 부적법 각하되어야 한다.

(4)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하는바, 이 사건 헌법소원은 그 사유가 발생한 1985.2.월경부터 180일이 훨씬 경과된 후에 청구된 것이고, 가사 기본권침해사유가 헌법재판소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경우 180일의 청구기간은 헌법재판소법 시행일인 1988.9.1.부터 기산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소원의 특수성에 비추어 1988.9.1.은 180일의 기간계산에 산입하여야 하므로 1989.2.28.에 청구된 이 사건 헌법소원은 180일의 청구기간이 경과된 후에 제기되었음이 분명하다.

(5)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하는바, 청구인은 1988.4.2.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

가 있었음을 주장하면서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앞서 본 주식인도청구의 소를 제기한 바 있고, 같은 해 10월경부터 시행된 세칭 국회5공비리청문회에서 청구인과 국제그룹의 전 간부들인 유기형, 김상준은 이 사건 헌법소원사유와 동일한 내용으로 증언하였고, 청구인은 같은 해 12.21. 이 사건 헌법소원사유가 그대로 기재된 “국제그룹해체의 진상”이라는 자료를 만들어 같은 해 12.28. 국회청문회에 제출하였으며, 특히 같은 해 12.28. 위 김상준은 위 국회청문회에서 증거까지 다 수집하였다고 증언하였고, 청구인이 헌법재판소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1988.11.11자 작성의 “5공부실기업정리 어떻게 볼 것인가”에도 이 사건 헌법소원사유와 동일한 기재가 있는바, 그 어느 때를 기산점으로 삼아도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청구인이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0일이 경과된 것이다.

(6) 재무부장관은 부실기업의 정리라는 정부정책적인 차원에서,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정부의 금융혜택을 받았음에도 1조 6천억원의 부채와 1984.9월경부터 시작된 급격한 자금사정의 악화로 인해 수개월 사이에 은행에 1회 8억원 규모에서 390억원이 넘는 일시대(一時貸) 지원을 받아 1984.12월 현재 그 누계액이 2,246억원에 이르는 등 극도의 재정상태의 악화로 재생불능이 된 국제그룹의 해체를 결정하여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후 관계은행과 협의하여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이를 적극 수용하여 시행한 것이고, 국제그룹해체는 그 입안에서부터 실해에 이르기까지 재무부장관에게 부여된 권한범위 내에서 국가의 금융지원을 받는 대기업의 도산이 몰고올 국가경제 및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불가피한 선택으로 행한 것이므로 이를 불법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7) 금융기관불건전채권정리업무취급지침에 의하면 주거래은행이 자율적으로 부실기업의 처분 또는 정상화계획을 세워 추진하게 되어 있지만, 특히 처분계획의 경우에는 정부가 부실기업정리시의 국가전체의 경제, 사회적인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정부차원에서 정책결정을 한 후 그 의견을 주거래 은행에 개진하여 주거래은행이 이를 참고 수용하여 부실기업정상화방안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국제그룹의 경우에도 이러한 절차를 밟은 것이며, 청구인이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1985.2.5.자 기업정상화 금융지원계획과 이에 상응한 국제그룹의 자구노력 이행계획은 주거래은행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의 임시변통책에 불과한 것이다.

(8)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국가경제 및 사회적 영향과 은행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여 경매 등의 방법이 아닌 최선의 방책으로 판단되는 기업의 제3자인수라는 방법으로 담보권을 실행함에 의하여 국제그룹을 해체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이미 담보조로 주식의 처분위임장을 제출한 청구인도 제3자인수방식에 의한 담보권실행에 동의하여 인수업체들과 사이에 적법하게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청구인은 하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 아니다.

3. 심판의 대상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재무부장관이 대통령에 보고하여 그 지시를 받아 행한 국제그룹해체 및 인수업체의 선정 결정, 제일은행장 등에 대하여 국제그룹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관리에 착수하게 하고 계열사의 처분권을 위임받게 하는 등 해체준비지시,

제일은행장에 대한 국제그룹해체에 관한 언론발표지시 등 국제그룹해체를 위한 일련의 공권력행사에 관한 심판청구의 적법성과 그것이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의 여부이다.

4. 판단

가. 사실관계

이 사건 일건기록과 이 사건에 현출된 증거자료 및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간추려 보면,

이 사건 문제의 국제계열은 1984년 말 현재 계열주 청구인, 종업원수 38,800명, 연간 매출액 1조 7,913억원, 연간 수출액 934백만불, 주력기업인 주식회사 국제상사를 비롯한 20여개 회사를 계열기업으로 거느리고 있는 그룹형성의 기업(이른바 국제그룹)으로서 제일은행이 이른바 주거래은행으로 되어 있었는데, 같은 해 11월 말 현재 주거래대상 업체의 차입금만도 1조 1,652억원, 계열전체로는 차입금 1조 3,785억원에 달하는 형편으로 이와 같은 자금사정의 악화는 국제상사의 주업무인 신발업의 과다경쟁으로 인한 채산성의 악화, 해외건설업의 위축, 신사옥신축에 따른 자금압박, 연합철강 분쟁, 가족중심의 경영체제상의 문제점, 그밖에 실질지배의 2개 단자회사(동해, 신한)로부터의 차입과다 등이 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특히 당국의 완매채규제방침에 따라 계열사가 커다란 자금난에 봉착하고 있었는바, 이와 같은 경영부실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이의 정상화를 위하여 자금지원을 하며 자구계획 이행각서를 받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던 중,

(1) 재무부장관은 1985.2.7.에 이르러 대통령에게 당시 청와대에서도 관심사가 되었던 국제그룹에 대한 방안강구를 위하여 “국제계

열 현황과 대책”이라는 표제로 국제그룹의 주력기업인 주식회사 국제상사 자체는 존속시키되 이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를 점차적으로 처분정리하여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는 제1안과 국제그룹을 전면해체하여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제2한을 담은 보고문안을 극비리에 작성하여 건의 상신하였던바, 재무부의 주의견은 제1안이었는데 대통령은 사주인 청구인의 반발 등 우려는 있지만 대기업이라도 경영부실의 경우에 해체할 수 있다는 실증을 통하여 업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방안이기도 한 제2안을 채택함으로써 국제그룹의 전면해체와 더불어 그룹계열회사를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기본방침이 정해진 사실.

(2) 이와 같이 국제그룹해체의 기본방침이 선 뒤에 재무부장관은 경영권을 먼저 인수시켜 놓고 정산절차는 나중에 하는 이른바 선인수 후정산(先引受 後精算)을 전제로 경영권(주주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수자의 선정작업에 들어가 국제상사의 무역·신발부문은 한일합섬을, 국제상사의 건설부문은 극동건설을, 연합철강(국제종합기계 포함)은 일순위로 권철현을 일응 비공개로 선정하여 이를 복안으로 같은 해 2.11.에 대통령의 결재를 받으로 갔던바, 대통령의 결재과정에서 연합철강 등의 인수자는 동국제강으로 정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확정되었는데, 다만 같은 해 2.7.부터 2.19.까지 사이에 벌어진 교섭과정을 보면 재무부장관은 보안을 유지하며 주거래은행측과 제대로의 사전협의 없이(그러나 한일합섬의 인수문제에 대해서는 관련은행인 한일은행장 이석주에게 부탁한 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 교섭에 나섰던 것으로 한일합섬의 김중원, 극동건설의 김용산을 상대로 하여서는 조속히 각 인수조건 등을 교섭한 끝에 수

락을 받아 인수자로 정하였고, 연합철강 등에 대하여는 사후에 동국제강의 장상태를 만나 인수자 선정을 알리고 그 수락을 받은 사실.

(3) 다른 한편 전면해체의 기본방침이 정해진 뒤 곧 재무부장관은 직·간접적으로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과 은행감독원측에게 국제그룹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관리의 착수와 주거래은행 앞으로 처분위임장 등으로 계열사의 처분권을 위임받는 조치 등 해체준비작업을 지시하였으며 이에 의하여 같은 해 2.13.부터 국제그룹에 대한 자금관리에 들어갔고, 다만 당시 제일은행장을 통하여 위 조치가 취하여지는 과정에서 동 행장은 보안상 국제그룹 전면해체의 전제작업이라는 취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아니하여, 제일은행측 담당직원들은 이를 단순히 국제그룹 정상화를 위한 지시정도로 오해하였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앞으로 국제그룹이 제일은행에 제출한 자구계획을 조기이행하면 금융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하여 청구인·그 특수관계인 및 계열사 소유의 주식을 보관시키는 외에 주식과 함께 부동산·동산 기타 계열기업체의 임의처분권도 제일은행에 위임한다는 취지의 각서 및 처분승락서를 같은 달 13.자로 청구인으로부터 받은 사실.

(4) 일련의 과정이 극비리에 진행됨으로써 같은 해 2.20.에 재무부측은 제일은행장에게 연락하여 국제그룹 전면해체의 방침에 따라 교섭확정한 인수업체를 알려주는 일방, 제일은행장으로 하여금 그 다음날인 2.21.에 재무부가 직접 작성 하달한 이른바 “국제그룹 정상화대책”이란 표제의 보도자료에 의거하여 주거래은행은 국제그룹을 전면해체하여 재무구조가 건실하다 할 위 3개 인수업체들에

게 인수시키기로 하며 그대로 두면 은행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불가피하다는 취지가 주내용인 것을 제일은행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하여 국제그룹 해체와 제3자인수를 기정사실화 시킨 사실, 제일은행 관련부서의 사람도 언론발표 후 비로소 처음 해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됨에 당시 제일은행이 같은 해 2.5.에 자율적으로 수립하여 은행감독원장에게 보고, 조정이 된 전면해체 아닌 자구노력 지원방식의 그룹정상화 금융지원계획(계열기업 중 6개만 존속시키고 나머지는 처분정리하여 재무구조개선을 골격으로 하는 내용)은 결국 백지화되게 되었으며, 대언론발표 이후에도 재무부 소속의 국·과장들이 인수작업 등에 관여하였던 것으로 주거래은행은 재무부의 해체결정에 따른 실무집행을 행한 사실,

(5)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국제그룹 해체를 위한 입안에서 실행에 옮겨지기까지의 공권력 주도의 일련의 조치가 극비리에 2주간이라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면서 처음부터 사건내용이 감추어졌고, 전면해체에 관하여는 같은 해 2.19.까지는 주거래은행 내부에서의 사전계획·검토, 관련은행 상호간의 회의, 은행감독원과의 협의 등은 없었던 일로서, 특히 인수업체의 선정은 극비리에 이루어졌으며 제일은행측은 사후 통보받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이러한 재무부장관 주도의 해체와 인수업체 선정의 조치에 그저 순응하였을 뿐인데도, 공권력측이나 관계자들은 제일은행 자신의 자율적인 결정 내지 단순한 공권력측과의 협의결정인 것처럼 내세우려 하였으며, 청구인은 전격적으로 비밀리에 이루워진 일련의 과정에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음을 짐작하고 자체적으로 공권력의 개입을 주장 입증하려고 노력하여 왔고(따라서 청구인이 공권력 개입에 사전 동의해 주었다고 볼

자료 없다), 마침내 정권교체 후인 1988년 말 국회의 이른바 5공비리청문회를 거쳐 1989.1.31. 대검찰청의 이른바 5공비리수사 발표에서 비로소 정식으로 공권력의 개입이 밝혀진 사실이 인정된다.

이제 위 인정사실관계를 기초로 일건기록과 대조하여 가면서 피청구인측의 본안전항변과 이 사건 본안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나.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1) 먼저 피청구인의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소정의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에 관하여 본다.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 중 위 (1)(2)항에서 밝힌 대통령의 재무부장관에 대한 국제그룹전면해체와 제3자인수의 결재지시는 대외적 효력이 없는 상급관청의 하급관청에 대한 내부지시임이 분명하며 행정청 상호간이 행위라 볼진대 독자적인 헌법소원의 대상적격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고 이 점에 있어서는 재무부장관의 은행감독원장에 대한 지시부분 역시 그 궤를 같이한다 할 것으로, 다만 이들에 관해서는 1985.2.7.과 2.11.에 있었던 재무부장관 주도의 국제그룹해체와 인수업체 결정이라는 일련는 공권력 행사과정의 일부인 것으로 보고 여기에 흡수시켜 판단한다. 다음 재무부장관이 제일은행장에 대하여 한 해체준비착수지시와 언론발표지시를 보면 이는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대하여 한 지시가 아님은 물론 위 인정사실에 의할 때 제일은행측의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여 행하는 비권력적인 권고·조언 따위의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도 이미 넘어선 것이라 할 것이고, 오히려 위와 같은 공권력의 개입은 주거래은행으로 하여금 공권력의 뜻대로 순응케 하여

그 이름으로 제3자인수식의 국제그룹 해체라는 결과를 사실상 실현 시키는 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이와 같은 유형의 행위는 형식적으로는 사법인인 주거래은행의 행위였던 점에서 행정행위는 될 수 없더라도 그 실질이 공권력의 힘으로 재벌기업의 해체라는 사태변동을 일으키는 경우인 점에서 일종의 권력적 사실행위로 볼 것이며,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소정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할 것이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위 항변은 이유 없어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2) 다음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소원은 자기성, 직접성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주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가 청구인 주도의 계열기업 전면해체와 그 경영권의 제3자인수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상 청구인 자신의 기본권과 무관한 것이었다 할 수 없으며,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과정에서 청구인 개인을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대인적으로 행사한 바는 없으나 주거래은행을 부실기업정리에 관한 정책결정에서 소외시킨 채 청구인의 개인주식 등 재산권과 기업경영권을 직접 대상으로 하여 대물적으로 행사하였고, 특히 청구인의 기업활동의 자유 침해의 결정적 요인은 공권력이 그 임면(任免)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는 제일은행장으로 하여금 공권력 자신이 작성한 보도자료에 의하여 전면해체의 대언론 발표를 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인바, 이러한 사실관계에서는 피청구인의 공권력의 행사 자체에 의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당한 경우라고 볼 것이다.

(3) 청구인에게는 민사소송 등 다른 구제절차가 있다 할 것이고, 그 절차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기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보

충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말하는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를 직접 대상으로 하여 그 잘못 자체를 다투는 권리구제절차를 의미하는 것이고, 공권력의 행사·불행사의 결과 생긴 효과를 원상회복시키거나 손해배상을 위한 사후적·보충적 구제수단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재판소의 판례이다(당재판소 1989.4.17. 선고, 88헌마3 결정;1989.9.4. 선고, 88헌마22 결정;1992.7.23. 선고, 91헌마209 결정 등 참조).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피청구인 주장의 민사소송은 청구인측과 이 사건 인수업체와의 사이에 체결된 주식매매계약의 부존재·무효·취소 등을 전제로 하여 인수업체에 넘어간 주식의 인도청구권 존부의 확정을 위한 구제절차이며, 이 사건 공권력행사의 잘못 자체에 대하여 기판력 있는 재판을 받기 위한 권리구제절차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아가 살피건대 이 사건 국제그룹해체와 그 정리조치가 형식상으로는 사법인인 제일은행이 행한 행위이므로 이 사건 당시 시행되던 구 행정소송법상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당사자에게 그에 의한 권리구제절차를 밟을 것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할 것이며, 당재판소가 이와 같은 범주의 권력적 사실행위의 경우에는 보충성의 원칙의 예외임을 이미 판시한 바 있다(당재판소 1992.1.28. 선고, 91헌마111 결정 참조). 결국 피청구인의 이 부분 항변도 그 이유 없다.

(4)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 180일 또는 60일을 도과한 청구로서 부적법하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에 관하여 본다.

당재판소가 발족하기 전에 있었던 공권력의 행사에 기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의 청구기간은 당재판소의 재판관이 임명되

어 실제로 재판부를 구성하여 재판을 개시할 수 있었던 날인 1988.9.19.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는 것이 당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므로(당재판소 1990.10.8. 선고, 89헌마89 결정;1991.9.16. 선고, 89헌마151 결정;1992.10.1. 선고, 90헌마5 결정;1992.12.24. 선고, 90헌마174 결정 등 참조), 1989.2.27.에 청구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180일의 청구기간 내의 청구라고 할 것이다. 다음 60일의 청구기간에 관하여 보면, 통상의 공권력의 행사는 그 상대방 국민에게 그 처분서의 송달통지를 하므로 그 통지된 날을 안 날로 추정하여 그 때부터 60일의 청구기간이 기산되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이 사건 공권력행사의 경우는 대통령이 재무부장관에게, 재무부장관이 제일은행장등에게만 지시하면서 극비리에 붙인 것이고 오히려 공권력측과 제일은행장 등은 이 사건 공권력의 개입 자체를 부인 내지 은폐하며 어디까지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자율적 조치 내지 행정지도에 의한 것으로 표방하여 왔던 것이며, 이 사건에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은 대검찰청의 5공비리수사 발표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졌음은 위에서 인정한 바이다. 그러므로 심판청구권 행사의 기산점인 “안 날”을 주도적 개입을 공식시인한 대검찰청의 이른바 5공비리수사결과의 발표날인 1989.1.31.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의 날로 볼 것인가의 문제만이 남는다고 할 것인데 , 여기의 “안 날”은 청구인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법률상태의 안정만을 고려하여 정한 “있은 날로부터 180일”의 기간과는 달리 청구인에게 심판청구권 행사에 무리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면 그로부터 일정기간 내에는 청구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정해진 주관적 청구기간이라 할 것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공권력측이 그 행사를 부인하는 경우라면 아직 증거수집도 전혀 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막연한 추측이나 수소문으로 공권력의 개입을 다소 알게 된 때에는 헌법소원권 남용의 방지를 위하여도 여기의 안 날로 볼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기본권침해의 사실관계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인식하여 심판청구가 가능해진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함이 상당할 것이다. 특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권력적 사실행위의 경우에 심판청구의 기산점인 안 날은 사실관계를 완전하게 안 때로 보는 것이 외국의 판례이며, 또 그와 같이 당사자측에 후하게 해석하는 것이 기본권의 하나인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의 존중도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이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 안 날이 어느 때인가를 검토하여 보면, 우선 공권력의 일방적 개입에 대해 청구인측의 자구적 활동에 의하여 알게 된 날로서 1988.4.2. 청구인이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상대로 주식회사 국제상사의 주식인도청구소송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때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인바, 기록상 민사소장에는 공권력 개입이 기재되었으나 다소 막연한 면을 보이고 있고, 이 사건 공권력의 개입관계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의 기재는 찾아볼 수 없으며 앞으로 공권력의 개입경위가 소송의 진행과정에서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는 것이 청구인의 주장이며, 한편 이 사건 조치 당시의 제일은행장이 공권력과는 무관한 조치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었던 당시(기록에 편철된 1988.4.17.자 주간조선 참조)의 사정에 비추어 청구인에게 소원심판청구가 가능할 정도로 현실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고, 다음 1988.10.24. 이후의 국회5공비리청문회의 개최 초기의 상황에 관하여 기록에 의하여 살펴

보면 여기에 나타난 관계자들의 증언들도 그 전체취지로 보아 공권력의 개입의 정면인정을 꺼리면서 국제그룹의 해체에 관하여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당시에 정부와 협의하였다는 취지의 증언이었지 공권력의 일방적 조치였다는 것은 아니어서(당시 제일은행장 이필선은 관치금융이라 했던 말을 속기록에서 삭제하도록 요청하였다) 그 정도의 인식만으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직접적인 기본권의 침해를 이유로하여 헌법소원을 하기에 적합할 만큼 밝혀졌다고 보기 어렵고, 청구인측이 1988.11.11.자에 작성한 “5공부실기업정리 어떻게 볼 것인가”(참고자료)에 의하면 국제그룹의 해체는 대통령과 정부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고 하였지만 심판청구를 함에 사실관계를 특정할 수 있을 만큼 공권력행사의 과정이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며, 다만 청구인측이 1988.12.21.에 작성한 “국제그룹해체의 진상”(을 제6호증)에 의하면 국제그룹의 해체결정과 인수업체 선정은 청와대에서 결정하고, 재무부장관이 국제그룹의 은행자금관리 착수를 지시하였을 뿐 아니라 청구인의 주식 등 처분승락서의 징구에 관련되어 있고 제일은행장에게 국제그룹해체를 지시하였다고 기재되었으며 이 과정을 도표로까지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기재하였는바, 비록 여기에 이 사건 공권력행사의 날짜 등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밝혀져 있지 아니하나, 이 시점에서는 청구인이 적어도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를 특정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실관계가 밝혀졌고 단지 수소문의 결과를 적은 것이 아니라 공권력측의 적극적 개입을 입증할 어느 정도의 증거가 확보된 상태로 보여지므로(당시 국회의 청문회도 상당히 진척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적어도 이 때는 공권력측의 그 행사부인에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

정의 청구기간의 기산점인 “안 날”로 봄이 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1989.2.27.에 청구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안 날이라 할 1988.12.21.부터 60일의 청구기간이 도과된 청구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에 의하면 행정소송법이 헌법소원심판에 준용되는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제소기간을 도과한 행정소송을 허용하는 행정소송법 제20조 제2항 단서가 헌법소원심판에도 준용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청구기간의 도과에도 불구하고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적법하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정당한 사유라함은 청구기간도과의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지연된 심판청구를 허용하는 것이 사회통념상으로 보아 상당한 경우를 뜻한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에 있어서 첫째로 공권력이 대통령-재무부장관-제일은행장의 순으로 극비리에 행사되면서 그 통지의 상대방이 제일은행장만이 되고, 청구인은 공식적 통지를 받지 않은 제3자가 됨으로써 공정한 고지절차(fair notice)가 생략되는 등 적법절차가 무시되고, 오히려 위에 본 바와 같이 주거래은행이 자율적으로 또는 재무부측과 협의하여 정한 조치인 것이라 하며 해체과정에 있어서의 일방적인 공권력 개입을 부인함으로써 청구인으로 하여금 공권력 상대의 직접적인 재판권의 행사가 사실상 방해되었던 사정이 엿보이는바, 이와 같은 상태의 기록에 의하면 안 날인 1988.12.21. 이후에도 재무부가 이 사건 해체 당시 제일은행장과 항시 연락하며 은행을 조력한 것이라 하면서 사실관계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등으로 큰 변화 없이 지속되어 왔던 사실, 둘째로, 비록

청구인 자신의 자구적인 조사활동과 국회청문회를 통하여 1988.12.21.경에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를 알았다 하여도 공권력 자체가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적극적 개입을 자인한 상태가 아니고, 한편 대검찰청이 이미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미구에 그 수사의 전모발표를 통하여 일방적 개입여부가 공식적으로 확인될 상황이어서 일응 청구인으로서는 그 때까지 심판청구를 미루어 놓을 사정이 있었던 점, 셋째로 원래 헌법소원제도는 우리 나라 사법사상 유례가 없었던 것으로 헌법재판이 거의 부재하다 싶은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출범과 더불어 외국에서 새로 도입하여 생긴 극히 생소한 제도로서 제도 시행이 아직 180일도 안 된 당시 사정으로는 이론적으로나 판례상으로도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관할사항인 헌법소원대상이 거의 밝혀지지 아니한 처지였고, 특히 이 사건 공권력행사의 특이성 때문에 헌법소원의 대상적격 여부에 대하여 법률전문가조차 혼선이 생길 수 있었던 점 등 심판청구권 행사의 제반 장애사정을 종합고려할 때, 비록 이 사건 청구인이 안 날이라고 할 1988.12.21.부터 60일의 청구기간을 8일 도과하여 1989.2.27.에 제기하였다 하여도 제소를 허용함이 사회통념상 상당할 것이다. 생각건대 심판청구의 지연이 기존의 법제도의 부지·혼선으로 인한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생소한 새 제도의 내용불명 때문에 생긴 경우라면 정당한 사유의 존부는 원칙으로 돌아가 사회통념에 의거하여 사안을 보아가며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문제라고 할 것이며, 이는 민사소송법 제160조 소정의 불귀책사유보다도 더 넓게 보아야 할 정당한 사유에 관한 해석상 당연한 것이라 하겠고, 더구나 행정소송에 비해 청구기간이 단기간이어서 입법론상 문제가 있는 헌법소원에 있어

서 국민의 권리구제의 길을 넓히기 위하여 특히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180일, 60일의 청구기간을 모두 도과하였다는 이 부분 본안정항변 역시 결국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제3자인수식 그룹해체가 주거래은행의 이름으로 나간 조치임에도 실은 비밀리에 행한 공권력의 주도적 개입에 의한 것이었던 점은 1989.1.31.에 대검찰청수사결과의 공식발표에 의하여 정식으로 밝혀졌다. 공권력의 의견을 참작하였을 뿐인 주거래은행의 조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권력이 주도한 조치였음을 청구인측이 1988.12.21.에 알게 된 것은 그 자발적인 조사노력에 기인한 것이며,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아니하였으면 결국 1989.1.31.에 이를 정식으로 완전하게 알았다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 때부터 청구기간이 기산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만일 이 사건에 있어서 청구기간을 1989.1.31.부터 기산하지 않고 1988.12.21.부터 기산한다면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한 자가 그와 같은 노력을 하지 않은 자에 비하여 오히려 기간계산에 있어서 더 불이익을 입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기므로, 형평상 청구기간의 기산점인 안 날을 차라리 공식발표일인 1989.1.31.로 간주할 여지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에 의거할 필요 없이 청구기간이 준수된 사안이라고 할 측면이 있음을 부기한다.

(5) 나아가 살피건대 위에서 본바 제3자인수식의 국제그룹해체의 권력적 사실행위가 이제 이미 종료되어 나름대로 새 질서가 형성되었지만, 이 사건은 원칙으로 재산권의 보장과 사영기업의 자유를 골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질서하에서 사영기업의 생성·발전·소

멸·정리청산 등 기업의 활동에 대한 공권력 개입의 헌법적 한계가 판시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안이고, 여기에서 아직 미결인 헌법상 중요한 문제가 해명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심판의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당재판소는 이미 당해 사건에 대한 재판이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하여 긴요한 사항이어서 헌법적으로 그 해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이미 종료된 기본권침해 행위가 위헌이었음을 선언적 의미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여 왔던 바이다(당재판소 1992.1.28. 선고, 91헌마111 결정;1993.3.11. 선고, 92헌마98 결정 등 참조).

다. 본안에 관한 판단

이에 나아가 이 사건 공권력 주도하에서 행한 국제그룹해체에 의한 기업정리의 헌법적합성을 살펴본다.

(1) 이 사건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금융업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영리법인인 주식회사이다(기록에 의하면 당시 국가가 직접 출자한 주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사법인인 은행과 금융거래하는 기업이 그 은행부채가 누적되어 통상의 방법으로는 회수가 어려운 이른바 부실기업이 된 경우에 채권자인 은행의 부채회수의 방법에는, 파산절차를 제외하고도 기업재건을 위하여 은행과 대상기업간의 계약에 의한 임의관리·직원상주 파견관리의 방법과 화의법·회사정리법 등 종래부터 있어 왔던 도산방지법 절차에 의하는 방안이 하나, 다른 하나가 부실기업에 대하여 부도처리 후 담보된 주식 등에 담보권의 실행으로 공개경매에 붙여 채무를 회수하는 방안,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은행관계규정 등에 의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경영권의 제3자인수 내지 기업통폐합 등의 방안과 경영주 등

으로 하여금 개인주식·부동산 등 전재산을 직접 매각하게 하거나 매각을 주거래은행에 위임하게하여 재무구조의 개선과 기업자금을 조달케 하는 이른바 자구노력 등에 의한 정상화방안이 있다(이 가운데 채무자에게 부도처리방법이 형사상 불리하고, 파산절차와 제3자인수식이 재산상 불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느 방법에 의하든 사기업인 은행의 채권채무의 회수인 만큼 부실기업이 처한 실정에 맞추어 주거래은행이 법에 따라 그 책임과 권한하에 자율적으로 선택·처리하여야 할 사적자치의 영역이 될 것이다(이 사건에서 주거래은행이 자구노력식의 정상화방안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였던 것은 이미 본 바이다). 은행감독원 제정의 금융기관불건전채권정리업무취급지침 제12조의 규정만 보아도 주거래은행은 부실기업의 선정 및 정리기준을 각 은행의 실정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부실기업을 선정하여 정리계획을 수립하되 부실기업을 처분대상과 정상화대상으로 구분한다고 되어 있으며, 동 지침 제16조 제1항에서는 주거래은행은 처분계획이나 정상화계획을 은행감독원장에게 보고하면 되도록 되어 있어 부실기업의 선정과 정리가 어디까지나 은행의 권한과 책임하에 처리되어야 할 고유영역이고 공권력의 타율사항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1항(제5공화국 헌법 제120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하여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한 경제체제임을 천명하였는바, 이는 기업의 생성·발전·소멸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는 기업자유의 표현이며 국가의 공권력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대한 불개입을 원칙으로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헌법 제126조(제5공화국 헌법 제127조)

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공권력이 부실기업의 처분정리를 위하여 그 경영권에 개입코자 한다면 적어도 긴절한 필요 때문에 정한 법률상의 규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다만 근거법률은 없지만 부실기업의 정리에 개입하는 예외적인 길은 부실기업 때문에 국가가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경우 공공의 안녕질서의 유지상 부득이하다하여 요건에 맞추어 긴급명령(제5공화국 헌법하에서는 비상조치)을 발하여 이를 근거로 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합헌적인 조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활동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법치국가적 절차에 따라야 할 이치이므로, 만일 공권력이 나서지 않으면 은행마저 부실화를 초래하고 대기업이 부도가 나고 완전도산이 몰고 올 수많은 종업원의 실직위기나 국가경제상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게 되어도 법률의 규정이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 발하는 긴급명령이나 비상조치에 근거하여야 할 것이지,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아 불가피하였다는 사유만으로 공권력 자신이 법적 근거 없이 직접 부실기업의 처분정리방침을 세워, 그것도 평가에 관행상 인수자와 은행만이 관여하여 상황전개가 그리 투명하다 할 수도 없는 선인수 후정산(실사)식의 정리방침을 세워 그 힘으로 밀고 나가도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채권액이 큰 액수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채권자 내지 담보권자인 은행과 채무자인 사영기업간의 채권채무관계이므로 당사자들이 그 책임과 권한하에 알아

서 자율적으로 처리할 일이며, 은행의 자율적 처리과정에서 공권력의 의견제시는 별론, 그렇지 않고 법치국가적 절차에 따르지 않는 공권력의 발동개입은 그것이 위정자의 정치적·정책적 결단이나 국가의 금융정책과 관련된다는 이유로 합헌적인 조치가 될 수 없으며, 이 경우는 이른바 관치경제이고 관치금융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관(官)의 이상비대화 내지 정경유착의 고리형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대저 사기업인 은행의 자율에 맡기지 않고 공권력이 가부장적·적극적으로 개입함은 기업 스스로의 문제해결능력 즉 자생력만 마비시키는 것이며, 시장경제원리에의 적응력을 위축시킬 뿐인 것이므로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헌법 제119조 제1항의 규정과는 합치될 수 없는 것이다.

(2) 위에서 공권력 개입의 헌법적 한계를 보았거니와 이 사건에 있어서 해체의 기본방침결정, 인수업체결정, 자금관리착수조치 등 해체준비지시, 그리고 제일은행 명의의 언론발표지시 등 2주간의 단기간에 이루어진 국제그룹해체를 위한 일련의 공권력행사의 과정에서 제일은행은 단지 공권력이 이미 한 정책결정에 결과적으로 순응하였을 뿐임은 앞서 본 바이다. 이러한 일련의 공권력의 행사는 제일은행장의 주도적·자율적인 부실기업의 처분정리에 재무부장관이 권고나 바라는 방향의 의견을 제시할 뿐인 행정지도와는 그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대통령에 보고하여 그 지시를 받아 행하는 재무부장관 주도의 그룹해체조치에 당시 관치금융하에 구조적으로 그 자율성이 형해화된 제일은행이 그 통고를 받아 순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처

지에서는 바꾸기 어려운 공권력 주도의 해체지침에 사후순응했다고 볼 것으로, 해체에 이르는 과정에서 위에서 본바 기본방침의 확정, 인수업체의 내정과 그 확정교섭, 대언론발표문의 작성 등 주요의사결정 과정에서 주거래은행이 소외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주거래은행측이 공권력과 대석적(對席的)인 협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자신의 채권회수 때문에 법에 따라 자율적으로 나서서 처리해야 하고 또 스스로 처리하고 있었던 주거래은행의 자치영역에서, 오히려 재무부장관이 주역으로 나서서그 뜻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은행에 지시하여 가면서 회사법의 규율도 받게 되어 있는 사영기업에 대하여 그 해체를 위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공권력 자신이 청구인 기업에 대하여 사적 담보권자도 아니면서도 이에 이르렀는바, 여기에 뒷받침할 만한 합헌적인 법률은 찾을 길이 없다(마치 대통령의 긴급명령 내지 비상조치의 경우처럼 비공개리에 단기간에 성안준비되어 전격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게 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이룬 공권력의 행사이기도 한데, 이 또한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법률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공권력 자신에 의한 사영기업의 해체정리이면서도 이름은 주거래은행으로 언론에 발표하게 하는 편법을 쓰고 사건내막은 계속적으로 대외비로 하였는지 모른다. 공권력이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일은 예측가능한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할 것이고, 이것은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고 제한할 때에도 마찬가지임은 이미 보았거니와, 이 점에서 법률상 근거 없는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는 법치국가적 절차를 어긴 것이며, 또 법률상 무권한의 자의적인 공권력의 행사였다는 점에서 헌법 제11조 소정의 평등의

원칙의 파생인 자의금지의 원칙도 위반한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전격적인 전면해체 조치로 인하여 위에서 본바 주거래은행이 바로 전에 자율적으로 세워놓은 자구노력식 지원계획은 제대로 시행해 볼 겨를없이 백지화되게 됨으로써 은행측의 경제의 자율성이 저해되게 된 것은 차치하고, 법률적 근거 없이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여 그 힘으로 이를 제3자에게 이전시키기 위한 공권력의 행사였다는 점에서 헌법 제119조 제1항·제126조 소정의 개인기업의 자유와 경영권 불간섭의 원칙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에 청구인으로서는 법률상 무권한의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인 평등권 그리고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당하게 된 것이다.

생각건대 부실기업을 그대로 방치할 때에 국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도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칙의 준수이며, 만일 법이 없으면 공권력 개입의 객관적 기준을 세운 법안을 발안한 다음 새 입법을 기다려 그에 의거하여야 할 것이지, 그와 같은 절차가 번거롭다하여 이를 생략한 채 목적이 좋다는 것만 내세워 초법적 수단에 의거하여 마치 국·공영기업의 경영자를 발령하여 바꾸듯이 사영기업의 사실상의 지배주주를 갈고 경영권자를 바꾸는 식의 공권력의 행사는 시장경제적 법치질서를 파탄시키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인간의 정치적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수단 내지 절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적법절차가 무시되는 조치라면 추구하는 목적과 관계없이 공권력의 남용이요, 자의밖에 될 수 없으며 합헌화될 수 없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

재무부장관 기타 어떠한 공권력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받는 사회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국제그룹의 전면해체과정에 있어서 대통령결단의 구체적 경위와 배경, 인수과정에 있어서의 문제점, 그리고 당시 국제그룹이 처한 정확한 재정상태 등의 쟁점에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 사건 피청구인의 공권력의 행사가 위헌임을 선언하는 소이(所以)는 관치금융이 아닌 법치금융, 나아가 경제적 법치주의 등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수호되어야 할 헌법적 가치질서를 보다 뚜렷이 밝히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5.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피청구인이 대통령에 건의 보고하여 그 지시를 받아 1985.2.7. 청구인 경영의 국제그룹을 해체키로 기본방침을 결정하고 같은 달 11. 그 인수업체를 정한 후, 이의 실행을 위하여 제일은행장 등에 지시하여 같은 달 13.부터 국제그룹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관리에 착수하게 하고 제일은행 앞으로 처분위임장 등으로 계열사의 처분권을 위임받게 하는 등 해체준비를 하도록 하고, 피청구인이 만든 “국제그룹정상화대책” 표제의 보도자료에 의거하여 같은 달 21. 제일은행의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하도록 하는 등 국제그룹해체를 위하여 한 일련의 공권력의 행사는 헌법상 법치국가의 원리, 헌법 제119조 제1항·제126조·제11조의 규정을 어겨 청구인의 기업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 것임을 확인하며, 이에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관여 재판관 중 재판관 최광률의 아래 6항에 적시한 바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의 의견일치를 보았다.

6. 재판관 최광률의 반대의견

가. 다수의견은 헌법소원의 대상적격, 자기성·직접성, 구제절차, 청구기간 등에 관한 피청구인의 본안전 항변을 모두 배척하여 이 사건 심판청구의 적법성을 긍인한 다음, 본안에 관한 판단으로서 청구인이 소유·경영하던 사기업체의 해체와 관련된 피청구인의 일련의 공권력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기업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임을 확인한다고 판시하여 청구인의 청구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몇가지 점에서 심판청구의 적법성을 긍인하기는 어려운 사건인 바, 그 중에서도 다수의견이 정당한 사유의 존재를 인정하여 청구기간이 준수된 것으로 판단한 것에 대하여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으므로,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제시한다.

나. 이 부분에 관한 다수의견의 판단 요지는 이러하다. 즉 청구인은 이른바 “국제그룹의 해체진상”이라는 서면을 작성한 날인 1988.12.21.에는 적어도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 소정의 “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1989.2.27.에 청구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른바 주관적 청구기간인 60일을 도과한뒤에 제기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청구인이 60일의 청구기간을 도과하게 된 것은 피청구인의 공권력행사 은폐, 검찰의 수사진행, 헌법소원제도의 신규도입 등 정당한 사유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청구기간 도과 후 불과 8일만에 청구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한 청구기간 내에 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 먼저 다수의견이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의 규정을 근거로 헌법소원심판절차에 행정소송법 제20조 제2항 단서를 준용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9조에 정한 청구기간을 도과한 경우에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 예외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옳다고 본다. 또한 다수의견이 “정당한 사유”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정당한 사유라 함은 청구기간 도과의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지연된 심판청구를 허용하는 것이 사회통념상으로 보아 상당한 경우”라고 볼 수 있는 사유를 뜻한다고 판시한 것도 맞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구체적 사실 3가지가 과연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사례인지는 의문이다. 결국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도저히 정당한 사유라고 볼 수 없는 청구인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주관적인 사정을 수용하여, 청구기간 해태의 불이익을 구제하려는 무리한 이론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논거를 차례로 반박하고자 한다.

라.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첫째 사유는 피청구인이 이 사건 공권력행사를 극비리에 진행하면서 그 고지절차를 생략하고, 그것이 마치 주거래은행의 자율조치인 양 위장하여 은폐시킴으로써 청구인의 재판권행사를 방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는 청구인이 공권력행사를 알았느냐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사정이지, 정당한 사유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정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다수의견은 정당한 사유의 존부에 관한 판단설시에 앞서 공권력행사의 지실 여부에 관한 판단설시를 하면서, 피청구인이 그 공권력행사를 계속 부인·은폐하여 왔기 때문에 청구인이 이를 모르고

있다가, 1988.12.21.을 제6호증을 작성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 사건 공권력의 행사를 특정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실관계가 밝혀졌고, 공권력측의 적극적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증거가 확보된 상태로 보여지므로, 적어도 이때에는 피청구인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이 이 사건 심판청구의 청구사유가 있음을 알았고, 그 때부터, 60일의 청구기간은 기산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부인·은폐행위를 다시 거론하여 정당한 사유의 인정근거로 삼는 것은 개념혼동이거나 이유모순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다.

마. 또한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둘째 사유는 청구인이 1988.12.21. 이 사건 공권력행사를 알았지만, 그 때까지도 그 공권력의 주체가 공식적으로 공권력의 적극적 행사를 자인하지 아니하고 있었고, 그에 관한 검찰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청구인으로서는 그 때까지 심판청구를 미루어 놓을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권력의 주체가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스스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를 자인 할 때까지 기다린다든지, 관련되는 공권력행사의 주체를 형사고소하고 그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정이, 곧 청구기간의 도과를 구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나라 행정소송법 제20조 제2항 단서의 해석과 관련하여 종래의 학설과 판례가 일치하여 지지하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행정소송법 제20조 제2항 단서의 규정을 준용함에 있어서, 헌법재판소가 굳이 이와 상반되는 입장을 채택하여 새로운 판례를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바. 끝으로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셋째 사유는 그 당시 헌법소원제도가 우리나라에 새로 도입되어 얼마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고, 이 사건 공권력행사의 특이성 때문에 헌법소원 대상적격의 유무가 불투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유는 결국 청구인이 법률을 잘 알지 못하여 청구기간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에 불과한데, 법의 무지(無知)가 곧 청구기간의 태만을 합리화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음은 이론상 너무나 명백하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나라 행정소송법 제20조 제2항 단서와 비슷한 법제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판례에서도 확립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수의견은 위 법률조항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의 해석에 관하여 필요 없는 혼란만을 초래하는 부당한 해석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다.

사. 이상과 같은 이유로 나는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이 사건은 결국 본안전에서 청구기간의 도과를 이유로 심판청구를 각하함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재판관

재판장 재판관 조규광

재판관 변정수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한병채

재판관 이시윤

재판관 최광률

재판관 김양균

재판관 황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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