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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2. 10. 31. 선고 99헌바40 2002헌바50 판례집 [형법 제304조 위헌소원]
[판례집14권 2집 390~409]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1.혼인빙자간음죄의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

2.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가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유래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인지(소극)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성적자기결정권은 각인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비록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 상대 남성이 설혹 결혼을 약속하면서 성행위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혼전 성관계를 가질 것인지 아닌지는 여성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간의 성문제는 기본적으로 개인간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범죄적인 측면보다는 도덕·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城)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그 평가는 전혀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야 한다. 성의 순결성을 믿고있는 여성에게도 상대방을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엄숙한 혼인의 다짐 앞에서는 쉽사리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혼인을 빙자하는 이와 같은 교활한 무기에 의한 여성의 성에 대한 공략은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마땅히 형법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조심스럽기는 하나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혼인이 상징

하는 의미에 비추어 “평생을 일심동체로 함께 하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앞세우고 이러한 전제 아래 위장된 호의와 달콤한 유혹으로 파상적 공세를 취하여 올 때, 미혼의 여성이 자신의 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교활하게도 엄숙한 결혼의 서약을 강력히 앞세워 여성을 유혹하고 언필칭 상호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름으로 순결한 성을 짓밟고 유린하는 행위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자유의사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는 동일한 시각에서 입장을 바꾸어 보면, 청구인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나, 혼인을 빙자한 부녀자 간음행위는 그 또한 피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기본권행사의 내재적 한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서,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그 제한이 불가피하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들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으로서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것도 아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간의 성에 대한 신체적 차이, 성행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현행 형법에서 성범죄의 피해자 및 범죄의 구성요건을 구분하여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법률조항을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남성을 자의적으로 차별하여 처벌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며, 차별의 기준이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실질적인 관계가 있고, 차별의 정도도 적정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것도 아니다.

다만 입법자로서는 첫째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남녀간의 내밀한 성적 문제에 법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둘째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행위를 처벌하는 입법례가 드물며, 셋째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협박을 하거나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고, 넷째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기능이 많이 약화되었으며, 다섯째 형사정책적으로도 형벌의 억지효과가 거의 없고, 여섯째 여성 보호의 실효성도 의문이라는 점 등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하여 혼인빙자간음죄를 앞으로도 계속 존치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재판관 권성의 반대의견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혼인빙자행위를 다른 위계행위와 형법적으로 동일하게 평가하여 이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함으로써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자존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른 점에 대하여 더 판단할 것도 없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 중 ‘혼인을 빙자하거나’라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자존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함을 이유로, 위헌을 선고하여야 할 것이다.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

불순한 동기에 의한 성행위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이러한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해야 할 아무런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부인함으로써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여 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형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없음에도 개인의 성행위를 형벌로써 규율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심판대상조문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되고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304조(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참조판례

1. 헌재 1990. 9. 10. 89헌마82 , 판례집 2, 306

헌재 1997. 7. 16. 95헌가6 등, 판례집 9-2, 1

헌재 2001. 10. 25. 2000헌바60 , 판례집 13-2, 480 등 참조

2. 헌재 1992. 4. 28. 90헌마24 , 판례집 4, 225

헌재 1995. 10. 26. 92헌바45 , 판례집 7-2, 397

헌재 1999. 5. 27. 98헌바26 , 판례집 11-1, 622 등 참조

당사자

청 구 인 1. 이○주(99헌바40)

대리인 변호사 김기석

2. 김○우( 2002헌바50 )

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이돈명 외 4인

당해사건 1.서울지방법원 98고단5004 혼인빙자간음등

2.서울지방법원 2002노1667 혼인빙자간음

주문

형법 제304조(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되고,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99헌바40

청구인 이○주는 1998. 5. 29. 서울지방법원에 혼인빙자간음죄 등으로 불구속기소(98고단5004)되어 공판계속 중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98초5618)을 하였으나, 위 법원은 1999. 5. 1. 위 제청신

청을 기각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같은 달 4. 위 기각결정을 송달받고, 같은 달 17.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청구인 김○우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 혼인빙자간음죄로 구속기소(2001고단4428)되어 2002. 1. 24.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 24. 서울지방법원(2002노1667)에서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고, 상고하여 현재 대법원(2002도2994)에 공판계속 중인바, 청구인은 같은 해 5. 21. 서울지방법원에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2002초792)을 하였으나, 위 법원은 같은 달 24. 위 제청신청을 기각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같은 달 31.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형법 제304조(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되고,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의 위헌 여부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04조(혼인빙자간음)혼인을 빙자해서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청구인들에 대하여 적용된 공소사실은 ‘혼인빙자에 의한 간음행위’에 국한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 중 ‘기타 위계로써’ 부분은 이 사건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청구인 이○주의 주장(99헌바40)

(가)형법에 의한 성적 자유의 보호는 의사의 자유를 제압하거나 자유가 없는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혼인빙자의 경우에는 그 의사를 제압하였다고 할 수 없고, 진실을 전제로 한 혼전성교의 강제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형법이 개인간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하여서는 안된다. 따라서 남녀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적 행위를 제재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7조)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행위 주체를 남성으로, 그 보호대상을 부녀로 각각 한정하여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평등의 원칙(헌법 제11조 제1항)에도 위반된다.

(나)인간의 성은 문화현상의 하나로서 성적 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 결정권은 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임에도, 국가권력이 이 사건 법률조

항을 통하여 남녀간의 성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간섭·규제함으로써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여 과잉금지의 원칙(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

(다)수사실무상 행위자의 범의를 입증하기 쉽지 아니하고, 고소인들에 의하여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아니하며, 현재 우리 사회의 성도덕·윤리 및 여성의 지위가 형법 제정 당시의 시대상황과는 달리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성인 남녀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입법례가 없고, 학계의 다수도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실제로 1992년의 형법 개정법률안 성안과정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을 폐지하기로 논의된 사실도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법률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

(2) 청구인 김○우의 주장( 2002헌바50 )

위 (1)의 (가)항 기재와 대체로 같다.

나. 법원의 위헌제청신청 기각이유

(1) 서울지방법원의 기각이유(99헌바40)

(가)혼인빙자간음죄의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자기결정의 자유이고,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형법 제32장(강간과 추행의 죄)에 규정되어 있는 점을 종합하면, 혼인빙자간음죄는 개인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 즉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다. 기망의 방법으로 타인의 재물을 편취하는 행위의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처럼 기망의 방법으로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육체적인 쾌락을 편취하는 행위도 그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나)혼인빙자간음죄는 남녀간의 자유로운 혼전 성행위를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망에 의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이 규정하는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보호규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범죄행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다)혼인빙자간음행위의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을 고려하면 남자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점에서는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자만을 혼인빙자간음죄의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점에서의 불평등은 아니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2) 서울지방법원의 기각이유( 2002헌바50 )

별다른 기각이유 기재가 없다.

다. 관계기관의 의견

(1)법무부장관 및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의견(99헌바40, 2002헌바50 )

(가)이 사건 법률조항은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그 입법목적이 있다. 어떠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는 원칙적으로 국가의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 적합성의 문제가 아니다.

(나)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점에서 기본권 행사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것이고, 이에 대한 처벌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라는 입법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으로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다)혼인빙자간음죄의 행위주체를 남성으로,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각각 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라)실무상 입증의 어려움이나 남고소 등에 의한 악용가능성은 모든 범죄수사에서 동일한 것으로서 특별히 혼인빙자간음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사유가 위헌의 근거로 될 수 없다. 나아가 입법론이나 학계에 폐지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할 수도 없다.

(2)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장의 의견( 2002헌바50 )

위 (1)항의 기재와 대체로 같다.

3. 판 단

가. 혼인빙자간음죄에 관한 입법례

(1)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일본은 현행 형법이나 구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고, 다만 구 형법의 개정시안이었던 형법 가안에 그 처벌규정이 있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일부 주에서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나 거의 기소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은 구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있었으나 개정 형법에서 폐지되었고, 프랑스는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기타 터키, 쿠바 및 루마니아 형법 등에서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2)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형법 제정 이전의 의용 형법에는 혼인빙자간

음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었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일본 형법 가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의 형법 개정법률안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을 폐지하기로 논의된 바 있으나 1995년의 형법개정에는 반영되지 아니하였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

우리 형법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1995년 형법 개정 전에는 ‘정조에 관한 죄’로 표시되어 있었다)’의 장에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의 하나로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 등과 함께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하여 개인의 성적 의사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 그 중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로서 특히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

(1)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가) 성적자기결정권의 의미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나 자기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내용 중에 성적자기결정권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헌재 1990. 9. 10. 89헌마82 , 판례집 2, 306, 310; 헌재 1997. 7. 16. 95헌가6 등, 판례집 9-2, 1, 16-17; 헌재 2001. 10. 25. 2000헌바60 , 판례집 13-2, 480, 485 등 참조).

성적자기결정권은 각인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 혼인빙자간음죄의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

1)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 상대 남성이 설혹 결혼을 약속하면서 성행위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혼전 성관계를 가질 것인지 아닌지는 여성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간의 성문제는 기본적으로 개인간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범죄적인 측면보다는 도덕·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2)그러나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城)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그

평가는 전혀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야 한다. 성의 순결성을 믿고있는 여성에게도 상대방을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엄숙한 혼인의 다짐 앞에서는 쉽사리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혼인을 빙자하는 이와 같은 교활한 무기에 의한 여성의 성에 대한 공략은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마땅히 형법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조심스럽기는 하나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되짚어보면 우리 사회에서 혼인이 상징하는 의미에 비추어 “평생을 일심동체로 함께 하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앞세우고 이러한 전제 아래 위장된 호의와 달콤한 유혹으로 파상적 공세를 취하여 올 때, 미혼의 여성이 자신의 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교활하게도 엄숙한 결혼의 서약을 강력히 앞세워 여성을 유혹하고 언필칭 상호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름으로 순결한 성을 짓밟고 유린하는 행위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자유의사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유부남이 미혼인 것처럼 여성에게 접근하여 결혼을 빙자하고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약혼녀와 이미 성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결혼을 빙자하면서 성관계를 요구하는 행위를 두고 이를 가리켜 사생활 영역의 도덕성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3)여성의 성은 강간이나 강제추행죄의 경우처럼 그 의사를 억압하여 강제적으로 취할 수도 있고, 통상적인 구애 수준을 벗어난 강력한 속임수, 가령 혼인을 빙자하는 위장수단으로 중대한 착오에 빠뜨려 성을 편취함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점에서 그 위법성과 처벌의 필요성이 크게 다를 바 없다. 민법상 이러한 기망행위는 취소하고 그 원상회복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배려를 하고 있고, 형사법 분야에서도 이를 범죄(사기)로 다스려 처벌하고 있다. 성행위를 재산상 거래행위와 같은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없으나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에는 이미 행하여진 성행위를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방법이 없고, 그로 인한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고통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점에서 그 가벌성이 더욱 큰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4)성의 자유화, 개방화 추세에 따라 남녀간의 성문제가 종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고 아직도 여성의 성은 이러한 지위에 종속되어 있다. 성교행위

로 인한 여성의 임신가능성 등 신체구조상의 차이로 보나, 여전히 사회 속에 뿌리깊은 남성본위의 사고방식에 혼전 성관계에 대한 남녀차별적인 인식 등을 고려할 때, 성문제에 있어서 여성은 도저히 남성과 대등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국가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이유는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열등한 존재라거나 그 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파렴치한 남성의 간음행위로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피해를 입은 여성을 보호하자는 데서 찾을 수 있다.

5)따라서 혼인빙자간음죄는 모든 성행위에 국가가 함부로 개입하여 형벌을 가하고 그로 인하여 혼전 성관계를 가진 자로 하여금 불행한 결혼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소 과장된 정도의 구애표현이나 유혹까지 금지하거나, 진정한 혼인의사로 성교를 나눈 뒤 사정변경으로 변심한 경우까지 그 처벌의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결혼의사도 없이 혼인을 빙자하는 기망의 수법을 사용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하여금 혼전 성관계에 이르도록 유인하여 성을 편취하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제재하는 것일 뿐이다.

(다)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

이 사건 법률조항은 동일한 시각에서 입장을 바꾸어 보면, 청구인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혼인을 빙자한 부녀자 간음행위는 그 또한 피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기본권행사의 내재적 한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서,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그 제한이 불가피하다 할 것이다. 나아가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들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으로서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

(2)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간의 성에 대한 신체적 차이, 성행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현행 형법에서 성범죄의 피해자 및 범죄의 구성요건을 구분하여 규정하면서, 강제추행죄는 피해자를 ‘사람’으로 규정하여 남녀 모두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한 반면,

강간죄는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하고, 그 법정형에도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법률조항을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남성을 자의적으로 차별하여 처벌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며, 차별의 기준이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실질적인 관계가 있고, 차별의 정도도 적정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것도 아니다.

(3) 소결론

어떠한 특정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국가가 형벌권으로 이를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도덕률에 맡길 것인지의 문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인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혼인빙자간음행위에 대하여 형사적 제재를 가할 것인지, 어떠한 제재방법을 선택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입법자의 의지 즉 입법정책의 과제로서 입법자의 입법재량의 자유에 속한다(헌재 1992. 4. 28. 90헌바24 , 판례집 4, 225, 229; 헌재 1995. 10. 26. 92헌바45 , 판례집 7-2, 397, 404; 헌재 1999. 5. 27. 98헌바26 ; 판례집 11-1, 622, 629 등 참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제도가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지 아니하는 추세이고, 최근 들어 급속한 성윤리의 개방화로 국민들의 성에 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법감정에 엄청난 변화가 진행 중에 있어 그 규범력과 실효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민·형사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합의 등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 등도 없지 아니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혼인의 순결과 미혼여성의 정절관념은 전통적인 윤리·가치로서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혼인빙자간음죄는 사회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우리의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러한 우리의 법의식을 바탕으로 한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자유영역 내의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입법자로서는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론자들이 그 논거로 제시하는바, 첫째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남녀간의 내밀한 성적 문제에 법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둘째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행위를 처

벌하는 입법례가 드물며, 셋째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협박을 하거나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고, 넷째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기능이 많이 약화되었으며, 다섯째 형사정책적으로도 형벌의 억지효과가 거의 없고, 여섯째 여성 보호의 실효성도 의문이라는 점 등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하여 혼인빙자간음죄를 앞으로도 계속 존치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4. 결 론

따라서 형법 제304조의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권성, 재판관 주선회의 아래 5. 6.과 같은 별개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5. 재판관 권성의 반대의견

가. 위헌의 징표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거니와 인간이 도덕과 관습의 범위 내에서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이성(異性)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의 본질적 내용의 일부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이성간(異性間)의 애정의 자유는 당연히 헌법상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법률로도 이를 제한할 수 없는 것이지만(헌법 제37조 제2항 전단) 이러한 제한을 운운하는 것조차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자유는 법률에 의한 제한과는 원래 친하지 않은 것이다.

이성관계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목표하는 바도 개인적인 애정의 성취에 있음이 그 본질임에 비추어 여기에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척도를 들이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성년 또는 심신미약의 부녀를 상대로 한다거나, 폭행이나 협박 등 폭력으로 맺어진다거나, 매매의 대상 또는 흥정의 미끼가 된다거나, 그 장면이 공중에게 노출된다거나, 또는 그로 인하여 위험한 질병이 공중에게 확산된다거나 하는 등의 부수적 문제가 수반되지 않는 한 이성관계 자체에 대하여 법률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무리한 간섭이 되어 원칙으로 과잉금지위반의 위헌적 요소를 내포한다.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성은 여기에서부터 들어나기 시작한다.

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 여부

다수의견은 혼인의 빙자가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이하에서 여자라고 할 때에는 주로 이 범위의 부녀를 지칭한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애정의 자유는 우선 상대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거니와 이 선택권 행사의 주체에 대하여는 보다 냉정하고 깊은 본태적(本態的) 통찰이 우선 필요하다.

선택의 주체는 일견 남자로 보이지만 심층적 분석에 의하면 실은 여자가 그 주체임을 인류학적 통찰은 암시하고 있다.1)본태적 측면에서 볼 때 남자는 다수 후손의 확보에 때로 더 크게 이끌리는 본성적 경향이 있음에 반하여, 여자는 우수한 후손의 출산에 대한 기대와 그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인하여 생계와 안전을 보장할 상대의 능력도 함께 고려하게 되고 이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힌 뒤 신중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선택하는 본성적 경향을 가진다. 그러므로 혼인의 약속이나 빙자뿐만 아니라 그밖의 모든 정황을 함께 고려하여 여자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2)

둘째로, 애정의 자유는 원래가 상대선택의 자유 이외에 애정표현의 자유와 구애수단의 자유를 포함한다. 구애수단은 본태적 측면에서 보면 상대의 환상을 유발하도록 과대포장되고 극적으로 연출되기 마련이므로 본래가 어느 정도의 기망을 그 요소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자의 구애행위 속에는 천태만상의 다양한 형태로,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혼인에 관한 모종의 약속이 다른 구애수단과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셋째로, 혼인의 약속이나 빙자가 개입되지 아니한 채 이루어지는 이성관계도 있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진정한 혼인의 약속이 있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약속이 불실의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이성관계 성립은 그 배경이 다양하고 그 경위가 내밀하고 그 진행에 변화가 많아서 제3자나 국가기관이 사후에 혼인이 빙자된 여부를 판정하기가 참으로 지난한 경우도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혼인의 빙자가 있었는지 여부, 있었다면 그것이 여자의 최종 결정에 미친 영향의 유무와 정도는 대단히 불명스러운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자는 혼인의 빙자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것을 포함한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남자의 접근을 수용할 여부를 최종적으로 선택한다고 보는 것이 인간의 본태적 본성에 보다 근접한 이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혼인의 빙자가 바로 여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다수의견은 그 근거가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혼인의 약속을 포함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여자가 상대를 선택하는 현상을 부인하는 것은 여자의 이성(理性)과 생래의 판단력을 미오(迷悟), 불신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 비행과 책임 사이의 비례

그러나 이상의 논의만으로 바로 혼인을 빙자한 남자의 전방위적 면책을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혼인빙자는 상대를 기망하는 것이므로 도덕적으로 순수하지 못하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구애수단은 본태적 측면에서 보면 상대의 환상을 유발하도록 과대포장되고 극적으로 연출되기 마련이므로 본래가 어느 정도의 기망을 그 요소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하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연출의 극적 완성도에 따라 때로는 예술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애수단의 다양한 전개를 순수성이라는 척도만을 가지고 단죄하는 것은 인간의 본태적 성향에 비추어 매우 무리한 일이다.

혼인을 빙자하는 것은 물론 순수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쉽게 의지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구애의 수단이므로 혼인을 빙자한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할 때에, “지키지 않을 또는 지키지 못할 혼인의 약속을 내세워 상대를 속이지 말라”는 도덕률의 준수에 대한 기대가능성은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근접관찰을 통한 최종적인 상대 선택권이 여자에게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한다면 그 기대가능성은 더욱 작을 수밖에 없다. 혼인빙자의 자제(自制)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이처럼 작은 것이라면 그 위반에 대한 비난의 가능성도 역시 작을 수밖에 없다.

비난가능성이 작은 잘못에 대하여는 도의적 책임을 묻는 정도로 그치고 비난가능성이 높은 잘못에 대하여만 형사책임을 함께 과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정의와 형평에 부합하고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므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비난가능성이 높을 수 없는 혼인빙자의 잘못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 되어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

라. 형벌의 필요성과 정당성의 유무

인간의 본태적 행동은 원래는 선악을 초월한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 없는 구도(求道)의 자기탁마(自己琢磨)를 통하여 더 높은 곳으로 향상하여 나갈 의무를 스스로 짊어지는 자존(自尊)의 양심적(良心的) 존재이다. 그러므로 양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혼인을 빙자한 행위의 비도덕성을 스스로 회오(悔悟)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양심에 내재한 도덕율에 기초한 자책이므로 본질에 있어 도덕적 책임에 속한다. 이것이 혼인을 빙자한 남자의 제1차적인 책임이다.

그렇다면 1차적 책임인 이 도덕적 책임을 제2차적인 형사법적 책임으로까지 강화하는 것은 어떠한가.

그것은 불가하다고 본다. 모든 비도덕적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없음은 자명한 것이므로 비도덕적 행위 중 사회적 유해성이 있는 중요한 것만을 형사처벌하게 되는데 혼인빙자의 행위는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그 비난가능성이 높지 아니하므로 사회적 유해성이 있는 중요한 비도덕적 행위의 범위에는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위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는 일도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별로 없을 것이다. 만일 이를 형사처벌한다면, 여자측의 고소가 없으면 그 행위가 들어날 수 없는 데다가 국가의 소추권이 모든 혼인빙자를 추급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처벌이 초래되는데 이것은 법의 신뢰를 손상할 뿐이다. 또한 그 동안의 법집행의 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이러한 형사처벌이 혼인빙자의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적 효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입법자는 혼인빙자의 비행에 대한 형벌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이를 형법규범화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3)왜냐하면 의심스러울 때에는 시민의 자유와 형법의 최후수단성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4)더구나 장차 결혼생활이 정상적으로 영위되기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혼인빙자간음죄의 형사처벌이 두려워 혼인을 한다면, 파탄이 예상되는 혼인을 형법이 강요하는 셈이 되어 부당하다.5)또한

피해를 본 여자가 이 규정을 무기로 상대를 공갈, 협박하는 폐단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 결국 혼인빙자의 비행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형사처벌로 까지 강화하는 것은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발견하기 어렵다.6)

마. 결 론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이 혼인빙자행위를 다른 위계행위와 형법적으로 동일하게 평가하여 이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함으로써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자존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른 점에 대하여 더 판단할 것도 없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 중 “혼인을 빙자하거나”라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자존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함을 이유로, 위헌을 선고하여야 할 것이다.

6.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

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혼인을 빙자하는 등으로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혼인의 빙자가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보호법익은 소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고, 이 법률조항에 의하여 침해되는 기본권도 또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상 보호되는 인격권의 한 부분으로서, 인격권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및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그 헌법적 기초를 두고 있다. 인격권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스스로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결정권에 이념적 바탕을 두고, 자유로운 인격발현의 기본조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하여 위협받는 경우에 헌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기본권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자신의 성적 관(觀)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에 따라 성적 영역에서의 생활을 독자적으로 형성할 권리, 무엇보다도 ‘누구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경우에 따라 성행위의 동기에 관한 착오에 기인할 수 있으나, 자유는 곧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을 의미하고 자기책임은 스스로의 위험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성적 자결권은 자기결정에 의하여 자기 책임 하에서 성관

계를 가질 권리이다. 상대방 남성이 결혼을 약속한다 하더라도 혼전 성관계를 맺을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여성 스스로의 판단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도 자주적 인격체로서 여성 스스로 져야 한다.

나.개인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자신의 책임아래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우리 헌법의 인간상이라는 점에 비추어, 이 사건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 자결권’은 그 자체로서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서 보호법익이 될 수 없다.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약속했다고 하여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착오를 국가가 형벌로써 사후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은, ‘여성이란 남성과 달리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기 책임 아래 스스로 행사할 능력이 없는 존재, 즉 자신의 인생과 운명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할 능력이 없는 열등한 존재’라는 것의 규범적 표현이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幼兒視)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형벌규정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가 헌법에 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인격권(헌법 제10조)과 사생활의 자유(헌법 제17조)를 침해하는 규정이다.

다.이 사건 법률조항의 본질적인 문제는 혼인을 빙자한 간음과 같이 ‘성행위의 비도덕적 동기’를 국가가 형벌로써 처벌하는 데 있다.

형벌권은 국가적 제재수단 중 최종적 수단에 해당하므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단지 도덕이나 풍속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아니하고, 일정한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위험성이 존재하여야 한다. 따라서 국가가 일정한 인간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건전한 도덕에 반할 뿐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한다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형벌로써 국민에게 도덕을 강요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덕이란 국가에 의하여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과 경합을 통하여 스스로 형성되는 것이다.

결혼을 약속하였다 하여 혼전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착오가 국가의 형벌권에 의하여 보호될 수 있는 법익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한 번의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는 곧 결혼을 의미하는 성풍속이 존재한다거나 아니면 한 번의 경솔한 혼전 성관계가 여성의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개인주의적·성개방적 사고방식에 따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교를 보호해야 할 법익을 이미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

더욱이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다원적 사회에서, 혼전 성교의 동기 중 어떠한 동기가 특히 비난할 여지가 있는 것인가(예컨대 혼인을 빙자한 간음, 직위를 빙자한 간음, 재산을 빙자한 간음 등)에 관하여도 사회적으로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혼전 성행위 ‘동기의 순수성’과 관련하여 여성을 보호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의 과제가 아니라 할 것이다.

라. 다수의견은 ‘기망의 수단으로 타인의 재물을 편취하는 행위가 사기죄로 처벌되어야 하는 것과 같이, 여성의 성을 기망의 방법으로 취하는 행위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견해는 사기죄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익과 혼인빙자간음죄에 의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광범위한 형성권이 인정되지만, 법률이 직업영역이나 재산권영역을 규율하는 경우와 사생활의 영역을 규율하는 경우에 인정되는 입법자의 형성권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의 내밀영역에 속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국가는 간섭과 규제를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자제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하며,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최후수단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다른 생활영역과는 달리, 사생활 영역에서 형법적 보호의 필요성과 형벌의 필요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헌법재판소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특히 법률이 성생활과 같이 개인의 핵심적 자유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이러한 자유에 대한 보호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므로, 입법자는 입법의 동기가 된 구

체적 위험이나 공익의 존재 및 법률에 의하여 입법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는 구체적 인과관계를 헌법재판소가 납득하게끔 소명·입증해야 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개인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정당화할 수 있는 중대한 법익을 엿볼 수 없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규율되는 생활영역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고 개인의 성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의 문제를 단지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의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마.또한, 다수의견은 ‘부녀를 착오에 빠지게 하여 부녀의 성을 취하는 행위를 처벌할지의 여부는 국민의 법의식에 따라야 할 것이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국민의 법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부분이다’라고 주장하나, 이는 법치국가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입법자의 결정도 헌법의 규범에 의하여 법치국가적으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헌법재판의 기본이념이다. 만일 입법자가 국민의 법의식을 반영하였다고 하여 입법자의 결정이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존중되어야 한다면, 헌법재판은 국민의 여론, 법감정이나 정서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도 그의 존재와 권한행사의 정통성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지만, 이는 헌법재판소가 구체적인 사건의 판단에 있어서 국민여론이나 국민의 법감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국민의 여론과 정서를 고려할 수는 있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은 현행 헌법규범이므로, 국민의 여론이나 법감정은 위헌성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의 여론이나 법의식이 헌법의 인간상 및 기본결정과 배치되는 한,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다수로부터도 헌법을 수호해야 하고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 더욱이 민주국가에서의 법률은 다수의 의사를 대변하는 법적 표현이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는 바로 다수의 결정에 압도당한 소수, 법률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에 대한 보호를 의미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기본권보호는 민주주의의 다수결, 즉 국민다수의 의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사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민의 법의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입법자의 형성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단순히 입법자의 형성권을 주장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을 정당화하려는 견해는 헌법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공허한 주장이다.

바.결론적으로, 불순한 동기에 의한 성행위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이러한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해야 할 아무런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부인함으로써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여 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형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없음에도 개인의 성행위를 형벌로써 규율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재판관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주심) 주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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