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9고합305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피고인
A
검사
황수연(기소), 최진혁, 김미혜(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소망, 담당변호사 임계완
판결선고
2020. 2. 11.
주문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이유
범죄사실
1. 살인
피고인은 도서유통판매업체 'B'에서 온라인판매 담당자로 근무하다가, 2018년 8월경부터 위 업체에서 경리를 담당하던 여성 피해자 C(D 출생)와 서로 호감을 품고 교제하다가 2018년 12월 위 업체를 퇴사하고, 'E'라는 상호로 온라인 도서 판매업을 시작하였는데, 위 'B'에서 계속 재직하면서 온라인 접속 등으로 위 'E'의 운영을 도와주던 피해자와 교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피고인이 혼인 관계를 정리하고 정상적인 연인관계로 나아가려 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계속 불만을 표시하자, 피해자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 출판업계에서 피고인의 평판에 흠이 가 사업에 지장이 생기고 가정이 파탄 날 것이 두려워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었다.
피고인은 2019. 11. 16. 18:45경 파주시 F 피해자 주거지 앞에서, 미리 만나기로 연락한 피해자를 피고인이 운전하는 G 코나 승용차 조수석에 태우고 일산 방면으로 이동하던 중 피해자가 위와 같은 불만을 재차 토로하여 말다툼을 하자, 한적한 장소를 찾다가 고양시 일산서구 H빌딩 주차장에 위 차량을 주차하였고, 그곳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가족을 험담하는 등 화를 내다가 위 승용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옷을 잡아끌어 다시 조수석에 앉히고, 피해자가 계속하여 피고인에게 욕설을 하면서 손으로 피고인의 뺨을 때리자 위와 같은 심리적 압박감과 분노로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같은 날 19:20경 위 승용차 안에서, 양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힘껏 눌러 그 자리에서 피해자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하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2. 사체손괴 및 사체은닉
피고인은 위와 같이 피해자를 살해한 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사체를 은닉하기로 마음먹고, 위 승용차 조수석 좌석을 최대한 뒤로 젖혀 피해자의 사체가 밖에서 보이지 아니하게 한 채 이동하여 2019. 11. 16. 22:30경 경기 가평군 I 야산에 도착한 다음,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기 위하여 그 사체의 옷을 전부 벗기고 소지하고 있던 접이식 칼(칼날 길이 5cm)로 사체 손가락 10개의 지문 부분 피부를 다 도려내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사체의 오른 어깨 부위에 절창 2개를 가하여 손괴한 후, 손으로 흙과 나뭇가지를 걷어 내 구덩이를 파 피해자의 사체를 묻고 다시 흙과 나뭇가지를 그 위에 덮어 피해자의 사체를 은닉하였다.
증거의 요지
○ 피고인의 일부 법정 진술
○ J, K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 녹취록
○ 실종아동 등 가출인 상세보기, 차량 하이패스 이용내역, 차량통과 내역(AVNI)
○ 사체검안서, 발굴 및 사체 사진, 각 현장감식결과보고서 및 변사자조사결과보고서
○ 각 압수조서, 각 내사보고, 각 수사보고, 실황조사서
○ 추송서(부검감정서 1부, 법화학감정서 2부)
○ 디지털증거분석결과보고서 추송 및 CD
법령의 적용
○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형법 제250조 제1항(살인의 점, 무기징역형 선택), 각 형법 제161조 제1항(사체손괴 및 사체은닉의 점)
○ 경합범 처벌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1호, 제50조 제2항(형이 가장 무거운 살인죄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택하였으므로 다른 형을 과하지 아니함)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과 판단
1. 주장 요지
피고인은 판시와 같이 피해자의 사체 어깨 부위에 절창을 가한 사실은 없다.
2. 판단
피고인의 진술, 현장감식결과보고서 등 앞서 본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려고 접이식 칼로 손가락 10개의 지문을 다 도려낸 사실, 피해자의 사체는 인적이 드문 야산에서 발견되었는데, 피고인이 은닉한 후로는 외력에 의한 개입 흔적이 전혀 없었던 사실, 판시 절창은 6.5cm × 10.5cm 및 9cm × 4㎝ 상당으로 상당히 광범위하게 관찰되었는데, 예리한 칼날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상처인 사실이 각 인정된다.
위 각 사실관계에다가 피고인의 주장처럼, 판시 절창이 바닥이나 나뭇가지에 쓸려 생긴다거나, 암매장 후 부패 등 자연현상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는 해명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는 것임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피해자를 살해한 다음, 신원을 숨기려고 접이식 칼로 사체에서 지문 10개를 도려낸 것은 물론, 피부도 상당 부분을 벗겨내려고 시도하다가 지나치게 품이 들고 시간도 부족한 등의 이유에서 그만두는 바람에 판시 절창만 남긴 채 사체손괴 범행을 마쳤다고 볼 것이다.
결국,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시 범죄사실은 그 모두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증명된다.
양형의 이유
1.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
무기징역
2.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
[유형의 결정] 살인범죄 > 비난 동기 살인
[특별양형인자]
- 가중요소: 사체손괴
[권고영역 및 권고형의 범위] 가중영역, 징역 18년 ~ 무기 이상
[처단형에 따라 수정된 권고형의 범위] 무기징역
[일반양형인자]
- 가중요소: 사체은닉
3. 선고형의 결정
피고인은 불륜 관계를 유지하던 피해자한테 혼인 관계를 정리해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는 등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범행을 은폐하려고 사체를 심각하게 손괴 및 은닉하였다. 피해자와의 비정상적인 관계, 이기적인 범행의 동기, 잔혹한 범행 내용 및 참혹한 결과 등 여러 면에서 이 사건 범죄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너무 크다. 특히 살인죄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서 그 결과를 되돌릴 길이 없어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죄책은 지극히 무겁다.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한 채로 1년 이상 피해자와의 불륜 관계를 유지하였으면, 피해자의 연인으로서의 투정을 감내하고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살해 및 암매장으로까지 나아간 피고인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또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대부분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공갈,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해에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둥, 피해자와는 정신적인 연인관계에 그쳤다는 둥, 사체의 어깨 부위 자창은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는 둥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또다시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일말의 반성하는 기색조차 전혀 내비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피고인의 태도는 결국,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집착하고 고통을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살인 범행을 저질렀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위 논리는 피고인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피해자의 생명을 박탈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과 같은바, 극도로 이기적인 태도임과 동시에 법익의 균형이 맞지 않아 성립할 수도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가정불화 등으로 곧 이혼하고 자신만 사랑하여줄 것처럼 행동하는 피고인의 언행을 피해자가 순수한 마음에서 믿고,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피고인과 연인관계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심지어는 경쟁업체 직원인데도, 피고인 업체의 이익을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줬으며, 단지 순수한 애정 관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언사를 사용한 바가 있음이 확인될 뿐이다.
피고인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피해자는 30세를 갓 넘긴 한창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을 뿐 아니라, 시신마저 온전하지 못하게 버려져 차디찬 해부대 위에서 갈가리 찢어졌다. 피해자의 유족 또한 피고인에 대한 극형을 간곡히 탄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과연 피고인에게 우리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을 보장해줄 가치가 있는지 심히 의문이 들기도 하나, 판례로 축적하고 있는 사법부의 사형선고에 관한 여러 요건을 고려할 때, 피고인에 대하여는 적어도 피해자가 억울하게 빼앗겨버린 나머지 인생의 무게에 상응하는 정도의 엄중한 처벌은 필요하다.
피고인이 이 사건 전까지는 아무런 범죄를 저지른 바 없는 초범인 점, 이 사건 범행이 애당초부터 계획적인 것이라고까지 평가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한 점은 유리한 정상에 해당한다. 그렇더라도, 앞서 본 불리한 정상사유들을 종합하면, 오직 피고인을 영원히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만이 피고인의 죄책에 합당한 처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점에 재판부 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므로 주문과 같이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전국진
판사 백광균
판사 조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