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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상, "형법 제304조위헌소원", 결정해설집 8집, 헌법재판소, 2009, p.505
[결정해설 (결정해설집8집)]
본문

- 혼인빙자간음죄 사건 -

(헌재 2009. 11. 26. 2008헌바58, 2009헌바191(병합) 판례집 21-2하, 520)

최 기 상*1)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 부분이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적극)

형법 제304조(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되고 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1)된 것) 중 ‘혼인을 빙자해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 부분(이하에서는 위 부분만을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2)의 위헌여부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04조(혼인빙자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청구인은 2006. 2. 14. 같은 음식점 종업원인 이○○(여)와 혼인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게 “우리 부모님께 당신을 소개하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말하겠다.”라고 거짓말하여 이를 믿게 한 다음 음행의 상습없는 이○○와 1회 성교한 것을 비롯하여, 2006. 4. 13.까지 사이에 4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성교함으로써 혼인을 빙자하여 이○○를 간음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혼인빙자간음,3)사기 및 절도로 기소되었다.

청구인은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07고단3067), 2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07노4045)에서 계속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아 상고하였고, 그 소송계속 중에,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등의 이유로 대법원에 위헌제청신청을 하였다.

대법원은 2008. 6. 12. 위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였고, 같은 날 위 2심 판결 중 절도 부분이 컴퓨터등사용사기에 해당하고 사기 부분 중 일부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기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2008. 6. 19.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고, 그후 청구인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08노2023) 상고하였으나 2008. 12. 11.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되어(2008도8937)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청구인은 배우자와 혼인신고하여 그 사이에 2명의 자녀가 있는 자인바, 2005. 12. 30.부터 2008. 2. 1.까지 사이에 76회에 걸쳐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이명○(여)를 각 간음하고, 2007. 5. 27.부터 2008. 2. 3.까지 사이에 58회에 걸쳐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이경○(여)를 각 간음하였다는 이유로 형법 제304조의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되었다.

청구인은 1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08고단3301) 계속 중에 혼인빙자간음죄

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하였는데, 1심 법원은 2009. 7. 16. 위 위헌심판제청신청을 기각함과 동시에 청구인에 대하여 위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월을 선고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2009. 8. 11.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고, 1심 판결에 대하여도 항소하여 항소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09노1104) 재판 중이다.4)

(1) 2008헌바58 사건

형법에 의한 성적 자유의 보호는 의사의 자유를 제압하거나 자유가 없는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혼인빙자의 경우에는 그 의사를 제압하였다고 할 수 없고, 진실을 전제로 한 혼전성교의 강제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형법이 개인간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하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남녀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적 행위를 제재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성적 자기결정권(헌법 제10조)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7조)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행위 주체를 남성으로, 그 보호대상을 부녀로 각각 한정하여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제1항)에도 위배된다.

우리나라의 혼인빙자간음죄와 같이 남녀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입법례가 거의 없고, 학계 다수가 이 사건 법률조항의 폐지에 찬성하고 있으며, 1992. 형법 개정시안에서도 폐지키로 예정한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성도덕이나 성윤리가 형법 제정 당시와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수사실무상으로도 고소인들의 악용사례가 많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위헌선언의 방법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2) 2009헌바191 사건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어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성

교를 보호해야 할 법익이 더 이상 인정될 여지가 없게 되었고, 구애수단은 상대의 환상을 유발하도록 과대포장되고 극적으로 연출되기 마련이어서 어느 정도의 기망을 그 요소로 하므로 “지키지 않을 또는 지키지 못할 혼인의 약속을 내세워 상대를 속이지 말라”는 도덕률 준수에 대한 기대가능성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으며, 이처럼 도덕률 준수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낮은 혼인빙자간음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혼인빙자간음죄는 남성 우월적인 관점에서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만 정조라는 봉건적인 가치를 지키토록 요구하는 여성 비하적인 조항으로 평등원칙에 반한다.

그외 부분은 2008헌바58 사건과 거의 같다.

(1) 대법원(2008헌바58 사건)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형법 제304조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으로서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아니하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위 규정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남성을 자의적으로 차별하여 처벌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며, 차별의 기준이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실질적인 관계가 있고 차별의 정도도 적정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

(2) 서울동부지방법원(2009헌바191 사건)

2008헌바58 사건과 거의 같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만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므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남성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하지만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므로 평등원칙에 반하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피해자가 부녀로 한정되어 남성에 대한 차별 소지가 있고, 여성을 성적 의사결정의 자유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입법목적에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첫째, 남성이 위력이나 폭력 등 해악적 방법을 수반하지 않고서 여성을 애정행위의 상대방으로 선택하는 문제는 그 행위의 성질상 국가의 개입이 자제되어야 할 사적인 내밀한 영역인데다 또 그 속성상 과장이 수반되게 마련이어서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으므로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음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또한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일체를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로 한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ㆍ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된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幼兒視)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 여성의 착오에 의

한 혼전 성관계를 형사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고,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고, 다만 그것이 외부에 표출되어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에만 법률이 이를 규제하면 충분하며, 사생활에 대한 비범죄화 경향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고,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해 가는 추세이며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는 점, 기타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기능의 약화, 형사처벌로 인한 부작용 대두의 점 등을 고려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수단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인 반면, 이로 인하여 추구되는 공익은 오늘날 보호의 실효성이 현격히 저하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들만의 ‘성행위 동기의 착오의 보호’로서 그것이 침해되는 기본권보다 중대하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하였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및 피해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형성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잉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조대현, 재판관 송두환의 합헌의견

이 사건 법률조항이 부녀만 보호대상으로 규정한 이유는 여자가 남자에 대하여 혼인을 빙자하는 경우에는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남녀는 신체구조가 다르고 성관계에 대한 윤리적ㆍ정서적 인식에도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이 남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혼인빙자의 상대가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인 경우에는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의 경우보다 혼인빙자로 인하여 기망에 빠져 정교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므로,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한다고 보기 어렵고, 가부장적 정조

관념이나 부녀의 혼전 순결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간음하는 행위는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인격체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간음한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남성이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서 혼인하겠다고 속이는 행위까지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보호되는 사생활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남자가 혼인빙자행위라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한 이상, 상대방 부녀가 거짓을 알아차리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하여 혼인빙자 간음행위의 가벌성을 부정할 수 없다.

남자의 혼인빙자로 인하여 여자가 속아서 정교에 응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하는 경우에는 사생활의 영역과 기본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사회질서 침해의 문제로 표출된 것이므로, 이러한 단계에서는 사회질서 유지의 필요성이 당사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필요성보다 훨씬 크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이 타인의 법익을 침해할 경우에는 순전한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고 기본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한도에서 헌법 제17조의 보호범위를 벗어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남자가 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간음한 행위를 처벌한다고 하여 법익균형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혼인빙자행위와 정교 동의 및 정교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 가벌성이 뚜렷한 경우만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도 보기 어렵다.

재판관 송두환의 합헌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이 사건 법률조항이 남녀간의 은밀한 사통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이라면 모르되, 피해 부녀가 상대방의 위계, 기망에 의한 피해를 입고 상대방에 대한 조사 및 처벌을 적극적으로 요청(이 사건 죄는 친고죄이다)하는 경우를 남녀간의 내밀한 사사(私事)에 불과하다고 하여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여성들 모두가 더 이상 헌법이나 법률의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볼 수 없고, 아직도 헌법이나 법률의 보호와 배려

를 필요로 하는 소수의 여성들이 존재한다고 보는 이상, 이 사건 법률조항을 지금 시점에서 서둘러 폐기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오직 남성이 여성을 쾌락의 대상으로 여겨 혼인의사도 없이 혼인빙자의 위계로써 기망하여 성관계를 편취하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제재하는 것일 뿐인바,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이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성관계에 관하여 위계, 기망, 편취의 자유를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며, 이것이 부당함은 명백하다.

우리 형법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1995년 형법 개정 전에는 ‘정조에 관한 죄’로 표시되어 있었다)’의 장에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의 하나로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 등과 함께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하여 개인의 성적 의사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 그 중 혼인빙자간음죄는 ‘남성’이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로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그 보호법익으로 하며(헌재 2002. 10. 31. 99헌바40등, 판례집 14-2, 390, 397), 여기서 혼인을 빙자한다는 것은 위계의 한 예시에 불과하고,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란 형법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제305조(13세 미만 부녀에 대한 간음, 추행)와 관련지어 볼 때 ‘정조관념이 약하여 특정인이 아닌 자를 상대로 성생활을 하는 자’ 이외의 자로서 20세 이상인 성년의 부녀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은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혼인빙자간음죄가 성립하기 위하

여는 범인이 부녀와 정교를 할 당시 상대방과 혼인할 의사가 없는데도 정교의 수단으로 혼인을 빙자하였어야 하고, 정교할 당시에는 혼인할 의사가 있었으나 그후 사정의 변화로 변심하여 혼인할 의사가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혼인빙자간음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혼인빙자간음죄의 기망은 그 기망행위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가정할 때 음행의 상습없는 평균적 사리 판단력을 가진 부녀의 수준에서 보아 간음에 응하기로 하는 자기 결정을 할만한 정도여야 한다. 즉 기망의 수단으로 혼인을 빙자하는 위계를 이용했을 때에는 음행의 상습없는 평균적 사리 판단력을 가진 부녀의 수준에서 보아 간음 당시의 제반 정황상 그 행위자가 혼인할 의사를 갖고 있음이 진실이라고 믿게 될 만한 경우라야 기망에 의한 간음이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혼인의 빙자에 의하여 기망되었는지의 여부는 혼인하자는 언사로 핑계댄 일이 한번이라도 있었다고 하여 바로 긍정되는 것이 아니라, 간음에 이르기까지의 언사와 행위 등 관련되는 모든 정황을 종합 대비하여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혼인 풍속에 비추어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혼인풍속으로는 혼인할 남자의 나이와 미혼인지 여부, 다른 부녀와의 혼인을 위한 교제 유무, 건강상태, 종교, 학력, 재력, 직업, 성격, 취미, 부모 등 가족관계, 그들의 그 혼인에의 찬성 여부 등을 알아보고 정혼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할 것이므로, 그러한 사항을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거나 알았었다고 하더라도 그 관련 사항들이 그 부녀의 혼인기준과는 현저히 달라 혼인의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상태에서 혼인을 빙자하는 말이나 글만을 믿고 바로 간음에 응했던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부녀는 그 혼인빙자에 기망되어 간음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2도2994 판결)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일본은 현행 형법이나 구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고, 다만 구 형법의 시안이었던 형법 가안에 그 처벌규정이 있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처벌의 대상이 아니고, 일부 주에서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나 거의 기소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구 형법 제179조의 혼인빙자간음죄는 제1차 형법개정법(1969. 9. 1. 시행)에 의하여 폐지되었고,5)프랑스는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터키, 쿠바 및 루마니아 형법 등에서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형법 제정 이전의 의용형법에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었는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일본 형법 가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의 형법 개정법률안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을 폐지하기로 논의6)된 바 있으나 1995년의 형법 개정에는 반영되지 아니하였다.7)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4조에 대하여 2002. 10. 31. 99헌바40, 2002헌바50(병합)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하였는데, 그 결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다수의견은 혼인을 빙자한 부녀자 간음행위는 피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기본권행사의 내재적 한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서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그 제한이 불가피하므로, 형법 제304조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이고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하고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되었다고도 할 수 없으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 간의 성에 대한 신체적 차이, 성행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므로 형법 제304조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차별의 정도도 적정한 것으로 보여지는 등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입법자의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형법 제304조가 혼인빙자행위를 다른 위계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여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므로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거나’ 부분은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자존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재판관 1인의 반대의견과, 불순한 동기에 의한 성행위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불과할 뿐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이러한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해야 할 아무런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고, 형법 제304조는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부인함으로써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여 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형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없음에도 개인의 성행위를 형벌로 규율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는 재판관 1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 사건 결정의 다수의견에서 취하는 견해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여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개인의 인격권ㆍ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는 것이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性的) 자기결정권8)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임은 틀림없고,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성의 성생활이라는 내밀한 사적 생활영역에서의 행위를 제한하므로 우리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역시 제한하는 것으로 보인다(헌재 2008. 10. 30. 2007헌가17등, 판례집 20-2상, 696, 707헌재 2002. 10. 31. 99헌바40등, 판례집 14-2, 390, 397 참조).

이 사건 결정의 반대의견에서 취하고 있는 견해로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한 남자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즉, 남녀간의 이성교제나 정교관계는 남녀간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로서 보호되고, 따라서 어떠한 사유이든 남녀간의 정교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자기결정권은 인격의 주체가 자기의 인격을 형성하고 발현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 관한 사항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 자율권을 말하는 것이므로, 어느 남자가 어느 여자를 사랑하고 정교관계를 맺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간음하는 행위는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인격체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한 남자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도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기본권은 아니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지만(헌재 1990. 9. 10. 89헌마82, 판례집 2, 306, 310 참조),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 등에 대한 제한이 그 한계를 넘어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아니되므로 동 기본권제한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엄격한 비례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9)

(1) 부정설 : 위헌론10)

인간이 도덕과 관습의 범위 내에서 국가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이성(異性)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의 본질적 내용의 일부를 구성하므로 이성 간의 애정의 자유도 당연히 헌법상의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이같은 자유도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면 법률로써 제한할 수야 있겠지만, 남녀간의 내밀한 성적인 자유는 그 자유의 속성상 법률에 의한 제한과는 친하지 않은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러한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의 위헌성 심사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이상,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남성이 결혼을 약속했다고 하여 성관계를 맺은 여성만의 착오를 국가가 형벌로써 사후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은 ‘여성이란 남성과 달리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기책임 아래 스스로 행사할 능력이 없는 존재, 즉 자신의 인생과 운명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할 능력이 없는 열등한 존재’라는 것의 규범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 제1항-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幼兒視)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보호받는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란 ‘불특정인을 상대로 성생활을 하는 습벽’이 없는 기혼 또는 미혼의 부녀를 의미하므로 이른바 ‘성매매여성’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도 그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의 성행위 결정요소 중에는 돈을 벌기 위함이라든지 자유분방한 성적 취향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될 수 있어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와 비교할 때 그들의 혼인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할 뿐 형법이 이를 구분해 한쪽을 보호대상 자체에서 제외시켜야 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일체를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로 한정함으로써 결국에는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ㆍ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는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의 보호법익이 여성의 주체적 기본권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있다기 보다는 현재 또는 장래의 경건하고 정숙한 혼인생활이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의 고전적인 정조관념에 입각한 것임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형벌규정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가 헌법에 의하여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2) 긍정설 : 합헌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부부가 아닌 남녀의 정교행위 자체를 처벌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녀의 정조나 혼인전 순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혼인빙자의 상대가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인 경우에는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의 경우보다 혼인빙자로 인하여 기망에 빠져 정교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므로, 가부장적 정조관념이나 부녀의 혼전 순결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의식이 부녀의

정조나 혼인전 순결을 중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남자의 혼인빙자가 부녀의 정교동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이 사건 법률조항의 존재이유가 없어졌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이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데 있고 그 보호법익은 보호가치가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

(1) 부정설 : 위헌론

(가) 법률이 특히 사생활의 영역을 규율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한 직업영역, 재산권영역 등을 규율하는 경우와는 달리 인정되는 입법자의 형성권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의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의 내밀영역에 속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그 권리와 자유의 성질상 국가는 간섭과 규제를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자제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하며,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최후수단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다른 생활영역과는 달리 사생활 특히, 성적 사생활 영역에서 형법적 보호의 필요성과 형벌의 필요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나) 국민 일반의 법감정의 변화

특정의 인간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불법이며 범죄라 하여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여 이를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도덕률에 맡길 것인지의 문제는 결국 그 사회의 시대적인 상황ㆍ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헌재 2001. 10. 25. 2000헌바60 참조).

그런데 최근의 우리 사회는 급속한 개인주의적ㆍ성개방적인 사고의 확산에 따라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져 가고 있으며, 전통적 성도덕의 유지라는 사회적 법익 못지 않게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적 법익이 더한층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결혼을 약속하였다고 하여 혼전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착오가 국가의 형

벌권에 의하여 보호될 수 있는 법익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한번의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는 곧 결혼을 의미하는 성풍속이 존재한다거나 아니면 한번의 경솔한 혼전 성관계도 여성에게는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라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형사 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다원적 사회에서, 혼전 성관계의 동기 중 어떠한 동기가 특히 비난할 여지가 있는 것인가(예컨대, 혼인을 빙자한 간음, 직위를 빙자한 간음, 재산을 빙자한 간음 등)에 관하여도 사회적으로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혼전 성행위를 유발하는 빙자의 방법과 관련하여 혼인빙자에 의한 간음으로부터만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의 과제가 아니라 할 것이다.

(다) 형사처벌의 적정성

1) 성생활에 대한 형사처벌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고, 다만 그것이 외부에 표출되어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에만 법률이 이를 규제하면 충분하다.

혼인을 빙자하여 간음한 자는 가정, 사회, 직장 등 여러 방면에서 윤리ㆍ도덕에 의한 사회적 비난과 제재를 받을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개인 간의 사생활에 속하는 이러한 행위까지 일일이 추적하여 형법이 간섭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장차 결혼생활의 불행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혼인빙자간음죄에 의한 처벌이 두려워 혼인한다면, 결국 형법이 파탄이 자명한 혼인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이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이점에서 보아도 부당하다.

그러므로, 성인 부녀자의 성적인 의사결정에 폭행ㆍ협박ㆍ위력의 강압적 요인이 개입하는 등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때에만 가해자를 강간죄 또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등으로 처벌받게 하면 족할 것이고, 그외의 경

우는 여성 자신의 책임에 맡겨야 하고 형법이 개입할 분야가 아니라 할 것이다.

2) 입법의 추세

개개인의 행위가 비록 도덕률에 반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유해성이 없거나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생활에 대한 비범죄화 경향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해 가는 추세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1970년대 이전에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하였다

(라) 형사처벌의 실효성

1)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 기능의 약화

혼인에 대한 약속은 대부분 구두상의 약속이므로 고소인인 여성이 이를 입증하기 어렵고, 혼인을 약속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피고소인인 남성은 간음한 후의 사정변경, 예를 들면 부모의 반대, 성격차이, 심경의 변화 등을 주장하므로 그 범의의 입증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하여 혼인빙자간음행위가 적발되고 또 처벌까지 되는 비율이 매우 낮아져 형벌로서의 처단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11)이렇게 되고 보면 국가는 모든 혼인빙자를 추급해 소추권을 행사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처벌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법의 신뢰를 손상할 뿐이다.

한편 이미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한 여러 나라에서 그 폐지 이전보다 성도덕의 문란과 같은 사회적 병폐가 늘어났다는 아무런 자료나 통계가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서도 이는 근거없는 우려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고, 또한 그 동안의 법집행의 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이러한 형사처벌이 혼인빙자의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적 효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존

재하지 아니한다.

결국 혼인빙자간음죄는 행위규제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어 형사정책상으로도 일반예방 및 특별예방의 효과를 모두 거두기 어렵게 되었다.

2) 여성의 보호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ㆍ경제적 활동이 활발하여짐에 따라 여성의 생활능력과 경제적 능력이 향상됨으로써 여성이 사회적ㆍ경제적 약자라는 전제가 모든 남녀관계에 적용되지는 않게 되었고, 아울러 여성도 혼인과 상관없이 성적 자기결정을 하는 분위기가 널리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굳이 혼인빙자간음죄 규정이 없더라도 여성이 진정으로 결혼을 전제로 하여서만 정교할 생각이라면 여성도 자율적으로 결혼 시점까지 그 정교를 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거니와 확실하게 남성의 신분이나 진의를 확인한 다음에 정교의 시기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국가가 나서서 그 상대방인 남자만을 처벌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직도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아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된다.

(마) 형사처벌로 인한 부작용

혼인빙자간음죄는 친고죄로서 고소취소 여부에 따라 검사의 소추 여부 및 법원의 공소기각 여부가 결정되므로, 결국 혼인빙자간음행위자의 법적 운명은 상대 여성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게 된다. 그 결과, 이 사건 법률조항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목적과는 달리 혼인빙자간음 고소 및 그 취소가 남성을 협박하거나 그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폐해도 종종 발생한다. 자기결정에 의하여 자기책임 하에서 스스로 정조를 포기한 여성이 그 위자료청구의 대안이나 배신한 상대방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국가 형벌권을 이용하고 있다면 이는 국가의 공형벌권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바) 따라서 가사 이 사건 법률조항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혼인을 빙자한 남성을 형사처벌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겠다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수단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다.

(2) 긍정설 : 합헌론

(가) 남자가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에게 혼인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인할 의사가 있다고 속이고 그러한 혼인빙자행위로 인하여 기망에 빠진 부녀의 동의를 얻어 간음하는 행위는, 혼인빙자라는 기망수단을 사용하여 정교에 대한 부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 즉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는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서 혼인하겠다고 속이는 행위12)까지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보호되는 사생활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성윤리가 변화되어 여성의 정조나 혼전 순결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혼인빙자로 인하여 정교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부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이상, 혼인빙자 간음행위의 가벌성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없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은 ① 남자가 부녀에게 혼인을 빙자할 것, ② 그 혼인빙자로 인하여 상대방 부녀가 기망에 빠질 것, ③ 혼인빙자의 상대방이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일 것, ④ 혼인빙자로 인하여 부녀가 기망에 빠져 간음행위에 응하였을 것을 혼인빙자간음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형법 제306조는 ⑤ 피해자가 혼인빙자로 인하여 정교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고소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처벌대상을 남자의 혼인빙자행위로 인하여 부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경우로 한정하여 최소한도로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남녀간의 이성교제와 정교행위는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사항이므로, 피해자가 혼인빙자로 인하여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고소한 경우에만 국가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

럼 혼인빙자간음죄를 친고죄로 규정하여 피해자가 고소한 경우에만 처벌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정교관계의 비밀과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고 그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부부가 아닌 남녀의 정교에 관하여 여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와 남자의 사생활의 비밀ㆍ자유에 대한 보호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13)

(1) 부정설 : 위헌론

이 사건 법률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인 반면, 이로 인하여 추구되는 공익은 오늘날 보호의 실효성이 현격히 저하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들만의 ‘성행위 동기의 착오의 보호’로서 그것이 침해되는 기본권보다 중대하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하였다.

(2) 긍정설 : 합헌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부부 아닌 남녀의 정교행위 자체가 아니라 남자가 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남녀의 교제나 정교관계에 대한 간섭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혼인빙자라는 위계행위와 관련된 한도에서만 남녀의 정교관계에 간섭할 뿐이다.

더구나 남자의 혼인빙자로 인하여 여자가 속아서 정교에 응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하는 경우에는 사생활의 영역과 기본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사회질서 침해의 문제로 표출된 것이므로, 이러한 단계에서는 사회질서 유지의 필요성이 당사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필요성보다 훨씬 크다14)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남자가 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간음한 행위를 처벌한다고 하여 법익균형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위와 같이 재판관 6인의 다수의견은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 부분이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및 피해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형성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종전에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결정과 견해를 달리해 형법 제304조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2002. 10. 31. 99헌바40, 2002헌바50(병합) 결정은 이 사건 결정과 저촉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되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남성만을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제1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취지로 합헌론이 개진되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부녀만 보호대상으로 규정한 이유는, 여성이 약하거나 어리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 대하여 혼인을 빙자하는 경우에는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남녀는 신체구조가 다르고 성관계에 대한 윤리적ㆍ정서적 인식에도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이 남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혼인빙자의 상대가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인 경우에는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의 경우보다 혼인빙자로 인하여 기망에 빠져 정교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므로,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간음한 남자만 처벌하기 때문에 남녀를 차별하고 음행의 상습없는 여자와 음행의 상습 있는 여자를 차별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두 혼인빙자행위와 정교 동의 및 정교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 가벌성이 뚜렷한 경우만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결정에 대하여 여성부는 “국가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의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여성계는 “법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성보수주의 입장이었다. 여성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위헌 판결은 당연하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에 대한 정조 관념을 양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위헌 결정을 환영한다. 이번 결정으로 발생될 수 있는 사기 피해에 대해서는 법의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는 등 이 사건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와 함께 폐지 논란이 일었던 간통죄의 존폐도 다시 관심이 되고 있다. 법무부는 “국민 여론을 살피

고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폐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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