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대구지방법원 2021.9.9. 선고 2020나307441 판결
손해배상(기)
사건

2020나307441 손해배상(기)

원고항소인

1. A

2. B

피고피항소인

대한민국

제1심판결

대구지방법원 2017. 12. 6. 선고 2017가단112864 판결

환송전판결

대구지방법원 2018. 10. 10. 선고 2017나317820 판결

변론종결

2021. 7. 1.

판결선고

2021. 9. 9.

주문

1. 제1심판결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피고는 원고 A에게 4,000만 원, 원고 B에게 4,800만 원과 각 이에 대한 2021. 6. 10.부터 2021. 9. 9.까지는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소송 총비용 중 1/2은 원고들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한다.

3. 제1항 중 금전지급 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및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A에게 4,000만 원, 원고 B에게 8,80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이 사건 2021. 6. 2.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원고 A은 당심에서 청구취지를 감축하고, 원고 B은 청구취지를 확장하였다).

이유

1. 인정사실

가.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경위 및 성격

1)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정부가 좌익관련자들을 전향시키고 전향자들을 관리․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직이었는데, 대외적으로는 전향자들로 구성된 좌익전향자 단체임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국민보도연맹의 총재는 내무부장관이, 고문은 법무부 장관과 국방부장관이, 하부 지도위원장 또는 지도위원은 검찰과 경찰 간부들이 맡아 조직을 관리하는 관변단체의 성격을 띠었다.

2) 1949. 4. 15. 국민보도연맹 창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1949. 4. 20. 서울시 경찰국 회의실에서 국민보도연맹 창립식이 거행되었으며, 1949. 6. 3. 국민보도연맹 보강협의회가 개최되어 조직구성을 마치고, 1949. 6. 5. 서울시 공관에서 국민보도연맹 중앙본부 선포대회가 개최되었다.

3) 위 국민보도연맹 중앙본부가 구성․선포된 후 1950. 1.경까지 서울시 연맹의 하부 조직 구성이 완료되었고, 1950. 2.경까지 대부분의 시․군 연맹이 결성되었으며, 일부 시․군 연맹과 읍․면 지부는 한국전쟁 직전까지 계속 결성되었는바, 1949. 11. 1.국민보도연맹 경상북도연맹이 결성되었고, 1950. 2.경 국민보도연맹 대구시연맹이 결성되었다.

나. 한국전쟁 발발 및 예비검속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전국 각 도의 경찰국장들에게 ‘전국 요시찰인을 단속하고 형무소 경비를 강화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 ‘보도연맹 및 기타 불순분자를 구속, 본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석방을 금한다’는 내용의 ‘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 등을 긴급 하달하였다. 또한 1950. 7. 11.에는 ‘불순분자 검거의 건’을 하달하여 전국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인에 대한 예비검속을 단행하였다.

다. 경산코발트광산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

그 과정에서 대구형무소 재소자들과 경산, 청도, 대구, 영동 등지에서 끌려온 국민보도연맹원 및 요시찰대상자들은 1950. 7.경 내지 1950. 8.경 방첩부대의 분류작업을 거쳐 경산시 코발트광산 등 여러 곳에서 제22연대 소속 헌병대, 대구지역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이하 ‘경산코발트광산사건’이라 한다).

라. 망 K의 사망에 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정

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경산코발트광산사건 관련자들의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였다.

2) 소외 M은 아버지 망 K(1919. 11. 9.생, 주소 및 본적 경산시 남천면 산전동 121)가 경산코발트광산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2006. 1. 19.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였고, 그 조사절차에서 “K가 1950. 7.경 경찰관에 의해 남천지서에 연행되었다가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었고, 이후 경산 광산에서 처형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큰어머니와 사촌들로부터 K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와 같은 M의 진술과 K의 제적등본 등 관련자료조사, 유해발굴조사, 현장조사 등을 한 끝에, 2009. 11. 17. K가 경산코발트광산사건에서 희생된 희생자임을 확인 또는 추정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9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제1심 증인 M의 증언, 제1심 법원의 원고 A 본인신문결과, 당심 법원의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들 주장의 요지와 쟁점의 정리

가. 원고들 주장의 요지

원고 A은 K의 당시 배우자, 원고 B은 그의 딸인데, K가 경산코발트광산에서 경찰과 헌병 등에 의하여 처형되었고 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피고는 위자료로 원고 A에게 금 4,000만 원, 원고 B에게 금 8,800만 원(망 K의 위자료 8,000만 원과 본인의 위자료 800만 원)과 각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나. 이 사건의 파기환송 과정

1) 제1심판결은 원고들의 이 사건 소의 제기가 K에 대한 진상규명결정이 있었던 2009. 11. 7.로부터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도과하였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환송전 당심 법원도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2) 원고들이 상고한 대법원 환송판결에서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와 관련하여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진실규명결정일이 아닌 그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날인데(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다220526 판결 참조), 원고들에게는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적이 없어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환송전 판결을 파기하였다(K의 아들인 M에게만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되었다).

다. 이 사건의 쟁점

피고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K가 경산코발트광산 사건의 피해자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하므로, 소멸시효 쟁점을 제외한 이 사건의 쟁점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K에게 한 진상규명결정과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K가 실제 불법적으로 처형을 당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할 것이다.

3. 판단

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의 조사보고서에서 대상 사건 및 시대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할 것이지만,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그러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에 대하여 조사보고서 중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그 절차에서까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조사보고서 자체로 개별 신청대상자 부분에 관하여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이거나, 조사보고서에 희생자 확인이나 추정 결정의 인정 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거나, 그것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누구로부터 전해 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목격한 것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으로 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논리와 경험칙상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는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을 담은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사법적 절차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실심리의 자세이다. 물론 그러한 심리의 과정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자료 등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 측에서 개별 사건의 참고인 등이 한 진술 내용의 모순점이나 부족한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에 관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 다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고, 그러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때에는 민사소송의 심리구조상 국가에 불리한 평가를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바로 상대방의 주장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원고들의 주장과 증거들을 검토하건대,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망 K는 경산코발트광산에서 학살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1) 갑 제2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희생자 확인의 기준은 유족의 진술, 참고인 진술의 유무, 회생자의 시신 수습여부, 양민학살진상규명신고서, 경찰자료 신고 또는 기재 여부이고, 그 중 2가지 이상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 희생자로 확인하였다. 경산코발트광산사건 희생자의 경우에는 모두 시신수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망 K의 시신은 수습되지는 않았으나, 유족 M의 진술 이외에도 1960년 신고 기록과 경찰 기록에 기재가 있었다(71/89면).

2) 원고 A과 M이 망 K의 사망 경위는 큰어머니나 사촌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경산코발트광산사건 당시 원고 A은 원고 B을 임신한 상태였고, M은 유아로서 망 K의 사망에 관하여 무슨 대책을 세우거나 탐문할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1960년대에 망 K의 사망사실을 신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큰집 식구들로 보이므로, 원고 A과 M이 망 K의 사망사실을 큰아버지나 사촌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이를 수긍할 수 있다.

3) 갑 제3호증(제적등본)의 기재에 의하면, K의 사촌이 1969. 7. 18. K의 사망일을 1948. 10. 9. 사망한 것으로 신고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어 경산코발트광산 사건이 있었던 1950. 7.경과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나고, 갑 제3호증(제적등본)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 B의 경우에는 출생일이 1952. 1. 10.로 기재되어 있어 경산코발트광산 사건이 있은 1950년 7-8월경 이후 거의 1년 3개월 뒤에 출생하였으므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K의 사망시기와 원고 B의 출생시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고 B의 출생신고는 1959. 8. 29. 부가 한 것으로 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위 제적등본의 기재가 모순되어 추정력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실제 원고들과 M의 호적들도 사촌들이 정리를 해준 것으로 보인다.

4) 따라서 원고들이 사촌들로부터 망 K가 경산코발트광산에서 처벌되었다고 전해들은 것과, 과거의 경찰 기록과 신고 내역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는 망 K는 경산코발트광산사건에서 학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앞서 본 바와 같이 경찰, 군인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인 망인들을 살해하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이상, 이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객관적으로 공무원인 경찰, 군인 등의 직무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그와 같은 행위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로 인하여 망인들과 그 유족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헌 헌법(1948. 7. 17. 제정되어 1960. 6. 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망인들과 그 유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다. 손해배상의 범위

망 K와 그 유족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겪었을 정신적 고통, 그 후 상당기간 계속되었을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이 사건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불법의 중대함, 유사 사건과의 형평, 망 K의 사망 당시 일실수입 산정을 위한 통계소득 자료가 없어 망인들에 대한 일실수익을 산정할 수 없는 점, 한편 이 사건과 같은 민간인 희생사건은 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위급 시기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점 등 이 사건 기록 및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에 대하여는 8,000만 원, 그 배우자인 원고 A에 4,000만 원, 그 자녀인 원고 B에 대하여는 800만 원을 위자료로 정함이 상당하다.

라. 소결론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 A에게 4,000만 원, 원고 B에게 4,800만 원(망 K의 위자료 8,000만 원 중 상속분 1/2인 4,000만 원1)과 본인의 위자료 800만 원의 합계액)과 각 이에 대한 이 사건 2021. 6. 2.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부본이 피고에게 송달된 다음 날인 2021. 6. 10.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와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당심 판결 선고일인 2021. 9. 9.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당심에서 감축한 원고 A의 청구는 이유 있고, 당심에서 확장한 원고 B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는데,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이를 변경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정석원

판사 진세리

판사 김낙형

주석

1) 1960, 1. 1. 민법이 공포시행되기 전에 있어서는 조선민사령 제11조의 규정에 의하여 친족및 상속에 관하여는 관습에 의하도록 되어 있었는바, 호주 아닌 가족이 사망한 경우에 그 재산은 동일 호적 내에 있는 직계비속인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상속된다는 것이 당시의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대법원 1990. 2. 27. 선고 N 전원합의체판결 등 참조) 갑 제3호증의 기재에의하면, 망 K는 호주가 아니었고, 그의 자녀로는 M과 원고 B이 있었으므로, M과 원고 B이망 K의 재산을 균분상속한다.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