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8고합293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피고인
A
검사
오준근(기소), 윤동환(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이헌
담당변호사 김호인, 황희
판결선고
2019. 2. 20.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은 2007. 10. 16.부터 2008. 2. 20.까지 B와 함께 주식회사 C(이하 'C'라고 한다)의 각자대표이사로 재직한 사람이다.
피고인은 2008. 4. 4.경 서울 중구 D건물, E호에 있는 피해자 F의 사무실에서 피해자에게 "내가 B와 함께 운영하는 회사의 운영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달라. B는 G그룹의 사위이고, 부친이 부산에서 크게 해운업을 하는 등 집안도 좋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다. 회사도 발전가능성이 높으니 나와 B를 믿고 돈을 빌려주면 1달 후에 변제하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은 2008. 2. 20.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사임하여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었고, 대표이사인 B로부터 권한을 위임을 받은 사실이 없었음에도 마치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B의 인감도장을 이용하여 회사 대표이사 B 명의의 금전소비대차계약서, 현금보관증 등을 작성하였으므로 피해자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1달 후에 빌린 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피고인은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2008. 4. 4. 1억 원권 자기앞수표 11장, 5,000만 원권 자기앞수표 2장, 1,000만 원권 자기앞수표 5장 등 합계 12억 5,000만 원을 교부받아 편취하였다.
2. 피고인의 변소 요지
피고인은 2008. 4. 4.경 F의 사무실에 간 적이 없고, C의 법인인감과 대표이사 B의 개인인감 등을 임의로 사용하여 F로부터 위 회사의 운영자금을 빌리지도 않았다.
3. 판단
가. 증거관계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거나 부합하는 듯한 증거로는 B의 이 법정 및 검찰 진술, H, F의 각 이 법정 및 수사기관 진술, 영수증, 현금보관증, 수표 사본, 이사회회의록(C), 법인인감증명서(C), C 대표 신분증 사본, 피고인 여권 사본, C 대표이사 인감증명서, 금전소비대차계약서 등이 있다. 이하에서는 위 차용 전후의 정황과 차용금의 흐름 내지 사용처 등을 밝힌 다음 이를 토대로 위에서 든 증거들로써 이 사건 공소사실이 충분히 뒷받침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다.
나. 인정되는 사실관계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알 수 있다.
1) 피고인과 B의 동업관계
가) 부산 재력가의 아들인 B는 상장사를 인수해 자동차 수입·유통업 등을 하려고 계획 중이던 2007. 9.경 지인을 통해 M&A 전문가라는 피고인을 소개받고, 코스닥 상장사인 주식회사 I를 인수하고 있으니 여기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고서 위 회사 주식 약 26만 주와 경영권을 양도받는 조건으로 인수자금 등 약 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였다.
나) 위 회사를 인수한 후 피고인과 B는 상호를 '주식회사 C'로 변경한 다음 2007. 10.경 각자대표이사에 취임하였는데, 당시 피고인과 B의 관계에 관하여 위 회사 총무팀 과장이던 J는 이 법정에서 "대주주 지분을 인수한 B가 사실상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이자 회장 격으로 최종 결재권자였고, 피고인은 B의 지시를 받아 기존에 회사가 수행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B가 하려는 신규 사업을 준비 · 조사하는 역할을 한 경영책임자로 알고 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J 증인신문 녹취서 2, 7쪽).
다) 이후 피고인은 2008. 2.경 C의 대표이사직을, 같은 해 3. 말경 이사직을 각 각 사임하였는데, 사임 후에도 같은 해 6.경까지는 위 회사의 업무를 계속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
2) F로부터의 금원 차용
가) 피고인의 K 선배이자 D에서 'L'라는 상호로 사채업 사무실을 운영하던 F는 "2008. 4. 4. D 사무실에서 C 직원 1명과 함께 찾아온 피고인에게 수표로 14억 원을 빌려주고 선이자 1억 원, 취급 수수료 5,000만 원을 돌려받았다. 피고인은 차용에 필요.
한 법인인감, 대표이사 B의 개인인감 등을 완비해 왔다"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F 증인신문 녹취서 2쪽),2) 당시 피고인의 여권 사본을 받아두었다며 이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였다(수사기록 1권 63쪽).
나) B는 검찰 및 이 법정에서는 피고인이 자기 몰래 F로부터 C 명의로 돈을 빌렸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지만, 수사 초기 경찰에서는 "차용금의 액수나 사용처 등에 대하여는 잘 몰랐지만 피고인이 K 선배인 사채업자에게 자금을 빌려 C의 기존 채권자들에게 변제하겠다고 말하며 법인 도장과 내 인감도장 등을 가져간 적이 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수사기록 2권 15, 81쪽).
다) B의 부탁을 받고 2007. 9.경부터 2009년경까지 C에서 경영지원실장으로 자금 조달 등의 업무를 도운 M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은 항상 회사 자금을 구해오겠다.
고 하고는 그러지 못했는데, 2008년경 B의 요청으로 피고인을 따라가 F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을 본 다음 B에게 피고인이 돈을 빌린 것이 맞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면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고 (M 증인신문 녹취서 3, 20, 35쪽), C의 비등기이사로 근무한 N은 이 법정에서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피고인이 D에 같이 가자고 해서 F의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피고인은 F를 '형'이라고 부르면서 원금 상환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고, F는 그 이후에 돈을 돌려받기 위해 C 사무실에 몇 번 왔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N 증인 신문 녹취서 2, 4쪽).
라) F는 위 차용금 14억 원에 대한 C 명의의 2008. 4. 4.자 영수증과 현금보관증을 받아두었는데(수사기록 3권 11, 12쪽), M은 이 법정에서 위 서류들에 손글씨로 쓴 'B' 부분이 자신의 필체인 것 같다고 진술하고 있다(M 증인신문 녹취서 37쪽).
3) 차용금의 사용처 위와 같이 피고인이 F로부터 차용한 수표 중 11억 5,000만 원의 사용처는 아래 표 기재와 같다(수사기록 2권 175쪽).
4) 상환 유예 요청과 변제 독촉 등
가) C(대표이사 B)는 2008. 7. 3.경 채무상환연장요청서(수사기록 1권 81쪽)를 첨부하여 F에게 같은 해 8. 5.까지 차용 원리금의 상환기일을 유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 F는 이 사건으로 피고인을 고소하면서, 3) 손글씨로 '차용 원리금의 변제를 확약한다'라고 적고 'C 대표이사 B'의 서명이 있는 2008. 7. 25.자 및 같은 해 9. 5.자 확약서(수사기록 1권 87, 88쪽)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H은 대체로 일관하여 "2008. 7, 25.자 확약서는 B로부터 직접 받은 것 같고, 2008. 9. 5.자 확약서는 내가 부르는 내용을 M이 적은 다음에 B의 서명을 받아다 준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고(H 증인신문 녹취서 14~16쪽),4) B도 이 법정에서 "2008. 7. 25.자 확약서는 어느 정도 내 필체로 보이고 'C 대표이사 B' 부분은 내 글씨가 맞다. 2009. 9. 5.자 확약서의 'B' 부분은 내 글씨와 비슷하다"라고 진술하고 있다(B 증인신문 녹취서 14, 17쪽).
다) H은 B와의 경찰 대질신문에서 "B가 2008. 6.경에 피고인이 빌려간 돈에 대하여 회사를 인수하고 처음 빌린 것이라서 부담스럽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갚겠다는 말을 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이러한 진술을 들은 B는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수사기록 2권 86쪽).
라) 한편 B는 2008. 6.~9.경 C가 F측에 수표로 합계 9억 2,400만 원을 변제하였다며 수표 사본 위에 손글씨로 F의 이름을 적고서 서명한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였는데(수사기록 3권 360쪽 이하), F는 위 수표 중 2억 2,400만 원은 자신이 받고 서명해 준 것이 맞으나 나머지 7억 원에 대해서는 변제받거나 서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F 증인신문 녹취서 33쪽) 위 7억 원에 대하여는 C의 변제 여부가 확실치 않다.
다. 구체적 판단
위와 같은 공소사실 기재 금원의 차용 경위, 차용 및 변제 전후에 작성된 서류 및 이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2008. 4. 4.경 F로부터 12억 5,000만 원을 차용한 사실을 추인할 수 있으므로, 자신은 F의 D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피고인의 위 변소는 선뜻 믿기 어렵다.
그러나 나아가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F를 기망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피건대, 위 사실관계 및 이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 즉 1 B는 사전에 피고인으로부터 F에게 돈을 빌리겠다는 말을 들은 후 M으로 하여금 피고인이 자금을 차용하는 현장에 동행하도록 하였고, M은 F에게 C 명의의 영수증 등을 작성하여 교부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② F로부터 차용한 공소사실 기재 금원 대부분이 C 내지 B의 계좌로 입금되거나 위 회사의 기존 채무금 변제, 운영자금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어 피고인이 이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위 표 순번 1 내지 11), ③ F는 피고인이 아닌 C를 차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위 회사에 원리금 상환을 독촉하여 온 점, ④ B는 피고인의 차용에 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함이 없이 회사 차원에서 원리금 상환기일의 유예를 요청하거나 수차례 상환을 확약하는 서류를 작성해 주는 등 채무 변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F로부터 12억 5,000만 원을 차용할 당시 C의 대표이사 B로부터 이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무단으로 위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비록 이 사건의 증거관계상 앞서 본 수표 7억 원 부분에 대한 변제 여부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소사실과 같은 기망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위 금원 차용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위와 같이 보는 이상 위 변제 여부는 차용행위 후의 정황에 지나지 않는다).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바(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도1568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든 공소사실 부합 증거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모두 모아 보더라도 피고인이 F에 대하여 편취의 범의를 가지고 공소사실과 같은 기망행위를 하였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본문에 따라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조의연
판사김영호
판사이진규
주석
1) 검사는 피고인이 대표이사 사임 후에도 C의 운영에 관여하였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피고인 명의로 작성된 상환각서(수사기록 1권 536, 562쪽)를 제출하였고, 피고인이 위 상환각서가 위조되었다고 주장하자 위 상환각서의 손글씨로 적은 피고인의 이름 부분에 대한 필적감정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위 상환각서는 F로부터의 금원 차용과는 관련이 없는 서류일 뿐 아니라, C의 소액공모실적보고서(수사기록 1권 607쪽)와 아래에서 보는 F, H, M, N의 각 진술 등에 의하면 피고인이 대표이사 사임 후에도 한동안 C의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위 상환각서의 진정성립 여부는 이러한 사실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2) 위 사무실의 직원으로 차용금의 추심 업무를 담당하던 H도 일관하여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H 증인신문 독취서 1~2쪽).
3) C가 F로부터 차용한 금원을 갚지 않자 H은 2011. 2.경 B를 고소하였고(수사기록 3권 3쪽), F는 2017. 5.경 B와 피고인을 함께 고소하였다(수사기록 1권 5쪽).
4) 2008. 9. 5.자 확약서 중 원리금 변제를 확약한다는 기재 부분에 관하여 M은 이 법정에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 필체와 비슷한데, 내가 썼는지 안 썼는지는 기억을 못 하겠다"라고 진술하고 있다(M 증인신문 녹취서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