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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다211559 판결
[손해배상(기)][공2020하,1239]
판시사항

[1] 관련 공무원에게 작위의무를 명하는 법령 규정이 없는 경우, 공무원의 부작위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그 판단 기준

[2] 상급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적용 기준을 정해 주는 ‘행정규칙’이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및 공무원의 조치가 행정규칙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공무원의 조치의 적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3]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각급 부대의 지휘관 등 관계자가 장병의 자살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취할 조치 및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속 장병의 자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다면 자살 사고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다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4] 갑이 하사로 임관하여 해군교육사령부 정보통신학교 등에서 교육을 받고 함선에서 근무하던 중 자살한 사안에서, 갑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받은 인성검사에서 ‘부적응, 관심, 자살예측’이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및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과 관련한 부대관리훈령 등에 따른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사정 등을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1]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서 ‘법령 위반’이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를 가지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 되는 경우에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작위의무를 명하는 법령 규정이 없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된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여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 상급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적용 기준을 정해 주는 ‘행정규칙’은 일반적으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 공무원의 조치가 행정규칙을 위반하였다고 해서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공무원의 조치가 행정규칙을 따른 것이라고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의 조치가 적법한지는 행정규칙에 적합한지 여부가 아니라 상위법령의 규정과 입법 목적 등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3]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과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과 관련한 부대관리훈령 등의 규정 내용을 종합하면,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각급 부대의 지휘관 등 관계자는 장병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부대관리훈령 등의 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자살이 우려되는 장병을 식별하고 장병의 신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자살의 가능성이 확인된 장병에 대해서는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거쳐 그 결과에 따라 해당 장병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자살 등의 사고를 미리 방지하고 그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각급 부대의 관계자가 위와 같은 자살예방 관련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속 장병의 자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 자살 사고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관계자의 직무상 의무 위반과 이에 대한 과실이 인정되고,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배상책임을 진다.

[4] 해군 기초군사교육단에 입소하여 교육을 받은 후 하사로 임관한 갑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받은 인성검사에서 ‘부적응, 관심, 자살예측’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나, 갑의 소속 부대 당직소대장 을은 위 검사 결과를 교관 등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갑은 그 후 실시된 면담 및 검사에서 특이사항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신상등급 C급(신상에 문제점이 없는 자)으로 분류되었는데 함선 근무 중 자살한 사안에서, 갑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받은 인성검사에서 자살이 예측되는 결과가 나타난 이상 당시 갑에게 자살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는데도 위 인성검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아니한 것은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교관, 지휘관 등 관계자가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및 장병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관련 규정들에 따른 조치 등 갑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직무상 의무를 과실로 위반한 것이고,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 위반과 위 자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원고,상고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청신 담당변호사 이근윤 외 2인)

피고,피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소외 1(생년월일 생략)은 2012. 7. 2. 해군 기초군사교육단에 입소하여 교육을 받은 다음 2012. 9. 1. 하사로 임관하여 해군교육사령부(이하 ‘교육사’라 한다) 정보통신학교에서 주특기로 부여받은 음탐사(음탐사)에 관한 후반기 교육을 받았고, 2013. 1. 7.경부터 해군 제2함대 ○○○함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2013. 5. 14. ○○○함 안에서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원고들은 소외 1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이다.

나. 소외 1은 2012. 9. 6. 교육사에서 인성검사를 받았는데, ‘부적응, 관심(앞으로 군 생활에서 부적응이나 사고 가능성이 예측되지만, 적극적인 관심이나 도움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살예측’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검사에서 소외 1은 ‘적응척도’ 중 ‘조직적합성’ 항목에서 “매우 낮음”, “기본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임무수행에 곤란을 겪거나 상관이나 동기로부터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판정을 받고, ‘특수척도’ 항목에서 가족관계 갈등, 대인관계 문제가 있어 구체적인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소외 1의 소속 부대 생활관 당직소대장인 하사 소외 2는 검사 당일 소외 1과 면담하였는데, 위와 같은 검사 결과와 달리 소외 1에게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여 누구에게도 검사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담임 교관으로서 1차 신상관리 책임자인 상사 소외 3은 인성검사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소외 1과 2차례에 걸쳐 면담을 하며 소외 1에게 특별한 특이사항이나 문제가 없다고 기록하였고, 소외 1의 소속 부대는 소외 1의 신상등급을 B급(보호가 필요한 병사 등)으로 분류하여 관리하다가 2012. 11.경 C급(신상에 문제점이 없는 자)으로 변경하였다.

소외 1은 ○○○함에 전입한 다음 2013. 1. 22. 실시된 인성검사를 비롯한 수차례의 면담과 검사에서 모두 문제없이 업무에 적응하고 있고 특이사항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함은 소외 1의 신상등급을 신규 전입 당시에는 B급으로 관리하다가 2013. 4.경 C급으로 변경하였다.

다. ○○○함은 1년 중 2회의 부사관 능력평가, 2회의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 2회의 통합대잠전 수행능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소외 1은 ○○○함으로 전입한 이후 2차례 부사관 능력평가를 치러 좋은 성적을 받았고 2013. 5. 24.로 예정된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는 ○○○함을 비롯한 1·2급 전투함의 음탐사 총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최우수 음탐사를 시상하고 작전사 경연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부여받을 장병을 선발하는 대회이다. ○○○함의 음탐직별 분대장은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계획을 세워 실시하였다. 소외 1은 이 사건 사고 전날인 2013. 5. 13. 실시한 모의평가에서 응시한 3명 중 가장 낮은 점수인 60점을 받아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다음 모의평가를 준비하던 중에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라. 소외 1은 입대 전까지 학교생활에서 특별한 문제 상황은 없었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적도 없다. 소외 1에 대한 심리부검을 한 법원감정인은 소외 1의 일기를 비롯하여 재판기록, 주변인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토대로 이 사건 사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① 소외 1은 의존적인 성향과 스스로에 대하여 자책을 하는 내향적인 경향이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여 주변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자존감을 유지해 왔다.

② ○○○함으로 전입하기 전에는 소외 1에게 고위험 자살요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소외 1이 ○○○함으로 전입한 다음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내적으로 억압하는 경향이 더 강해져 점차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를 해소할 방법이 없어 적응장애를 거쳐 우울증으로 진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③ 소외 1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했기에 자신의 어려움을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하여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죽음 직전까지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외 1의 주변에서도 우울이나 불안, 죄책감 같은 자살과 연관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외 1에게 주어진 각각의 스트레스 상황이 극단적이지는 않았으나, 스트레스 상황이 연속적으로 발생한 것이 소외 1에게는 주관적으로 극단적인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④ 소외 1이 사망 전에 위와 같은 적응문제와 우울증상이 있었다고 추정되므로, 입대 후 조기 평가를 통해 스트레스 상황이나 고립감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였고, 조기 치료 역시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⑤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이라는 판정이 나온 것은 매우 불안하거나 우울한 심리상태가 지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소외 1의 성격상 인성검사에서 어려움을 과장할 확률은 낮다. 2012. 9. 6.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는 당시 소외 1의 자살예측성이 높았다고 추정할 수 있고 임무수행에 곤란을 겪을 가능성을 충분히 나타낸 것이다. 2013. 1. 22. 실시된 인성검사는 군대 내 적응 후 두 번째 이루어진 검사로서 이미 익숙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 이전 검사보다 신뢰도가 낮으며, 일반적으로 자살예측이 나오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환경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쉽게 호전되지는 않는다. 소외 1의 성향상 부대 지휘관과의 면담은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는 반면, 접근 기회를 많이 주고 비밀보장에 대한 확신을 주는 전제에서 외부 심리상담 전문가와 상담을 하였다면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통하여 부대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2. 원심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소외 1의 소속 부대 담당자들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하였다.

가. 하사 소외 2가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를 토대로 소외 1과 면담하였을 때 소외 1은 “누구나 한 번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살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저는 지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것은 없다.”라고 답하였다. 상사 소외 3이 두 차례 소외 1을 면담하고 교육사 생활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법원감정인도 ○○○함 전입 전까지 고위험 자살요인을 발견할 수 없다고 보았고, 달리 교육사 과정에서 자살의 징후를 보였다고 볼 근거가 없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소외 2가 인성검사 결과를 인계하지 않은 것이나 소외 1을 관심병사로 분류·관리하지 않은 것이 이 사건 사고에 대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정도의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 소외 1이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 준비 과정 등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러한 상황이 통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소외 1이 주관적으로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상을 겪고 있었다고 해서 소속 부대 담당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외 1이 ○○○함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내적인 고통을 외부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징후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소속 부대 담당자들에게 이 사건 사고에 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 ○○○함 전입 후 이 사건 사고 직전까지 면담 관찰 기록에서 소외 1의 자살 징후 기타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고, 소외 1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외부에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을 가진 점 등에 비추어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가 ○○○함에 인계되어 담당자들이 이를 토대로 소외 1을 강화된 기준에 따라 관리하였다고 하더라도 소외 1의 적응문제나 우울증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거나 이 사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3. 대법원 판단

가.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서 ‘법령 위반’이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 (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7다64365 판결 등 참조).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를 가지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 되는 경우에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작위의무를 명하는 법령 규정이 없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된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관련 공무원이 그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여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8. 10. 13. 선고 98다18520 판결 등 참조).

상급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적용 기준을 정해 주는 ‘행정규칙’은 일반적으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 공무원의 조치가 행정규칙을 위반하였다고 해서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공무원의 조치가 행정규칙을 따른 것이라고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의 조치가 적법한지는 행정규칙에 적합한지 여부가 아니라 상위법령의 규정과 입법 목적 등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 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7두38874 판결 등 참조).

나.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이라 한다)은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국가에게 자살위험자를 위험으로부터 적극 구조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자살의 사전예방, 자살 발생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사후 대응의 각 단계에 따른 정책을 수립·시행할 책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제4조 ). 특히 군대는 그 특성상 엄격한 규율에 따라 행동이 통제되며 집단행동이 중시되고 업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자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국방부훈령인 부대관리훈령, 해군규정, 해군작전사령부 및 ○○○함의 신상파악 운영에 관한 예규 등은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구 「부대관리훈령」(2012. 12. 31. 국방부훈령 제148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부대관리훈령’이라 한다)은 제4편 제4장 제237조 이하에서 군인의 자살을 감소·예방하기 위하여 징병검사·신병교육·자대복무 단계별로 자살우려자를 식별·관리·처리하는 절차를 상세히 정하고 있다. 교육기간 중 교관은 신상기록, 인성검사 결과, 면담을 통하여 자살우려자 식별활동을 하여야 하고, 조교는 교육 및 병영생활 간 일일관찰, 상향식 일일결산보고 등을 통해 자살우려자 식별활동을 꾸준히 실시하여야 한다. 지휘관은 교육기간 중 자살우려자 식별 즉시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받도록 하고, 진단 결과에 따라 입원 또는 외래치료를 실시하는 등의 관리를 하며, 치료 중 의무조사 대상자로 판정되는 사람을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으로 처리하여야 한다(제240조부터 제242조까지의 규정). 자대복무 이후에는 부대의 지휘관이 전입신병에 대하여 전입기간 단계별로 집중관리하면서 자살우려자와 보호·관심병사를 선정하여 자살우려자로 식별된 사람에 대해 정신과 군의관 상담 등을 받도록 하는 등 관리·처리하여야 한다(제243조부터 제245조까지의 규정).

해군의 「군 사고예방규정」(2012. 2. 24. 해군규정 제1797호)은 장병의 자살예방을 위하여 전입기간 단계별로 자살우려자를 포함한 보호·관심병사 선정(식별), 자살우려자로 식별 시 정신과 군의관 상담 및 진단, 군병원 입원 치료, 필요 시 상급부대로 분리하여 상담 및 관찰보호(관리), 현역복무 부합 절차 의거 조치(분리)의 단계로 조치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제26조). 해군, 해군작전사령부, 제2함대도 각 부대별로 신상파악 책임자를 정하여 이들로 하여금 면접, 대인관계, 관찰, 기록 등을 통해 장병의 신상을 파악하여 기준에 따라 장병의 신상을 분류하도록 하고, A급(자살우려자)으로 분류된 자는 부지휘관 또는 지휘관이 월 2회 이상 면담하고 이를 기록하는 등 신상파악 책임자부터 지휘관까지 전 계통이 해당 장병의 신상을 파악하고 교육, 지도, 전문가(심리학자) 또는 병영생활전문 상담관과의 상담 등의 선도를 실시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며, 신상기록부 관리프로그램에 반드시 인성검사 결과를 파악하여 기록하도록 하는 내용의 신상파악 운영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각급 부대 소속 지휘관과 담당자들은 이러한 부대관리훈령 등의 규정들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은 자살예방법과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과 관련한 부대관리훈령 등의 규정 내용을 종합하면,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각급 부대의 지휘관 등 관계자는 장병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부대관리훈령 등의 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자살이 우려되는 장병을 식별하고 장병의 신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자살의 가능성이 확인된 장병에 대해서는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거쳐 그 결과에 따라 해당 장병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자살 등의 사고를 미리 방지하고 그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각급 부대의 관계자가 위와 같은 자살예방 관련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속 장병의 자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 자살 사고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관계자의 직무상 의무 위반과 이에 대한 과실이 인정되고,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배상책임을 진다 .

다. 위에서 본 사실관계를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1) 군부대에서 실시되는 인성검사는 장병 중 자살우려자를 식별하기 위한 검사이므로, 인성검사에서 ‘부적응’, ‘자살예측’ 결과가 나왔다는 사정은 해당 장병이 군부대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따라서 자살우려자의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소속 부대 지휘관 등 관계자는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활용하여 해당 장병을 자살우려자로 식별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해당 장병의 등급을 분류하며, 자살우려자로 식별된 장병을 즉시 전문가인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받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2) 하사 소외 2는 소외 1에 대한 인성검사에서 ‘부적응, 관심, 자살예측’ 결과가 나타났음을 확인하고 소외 1과 면담을 한 다음, 임의로 그 검사 결과를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 책임이 있는 교육사 관계자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당시 소외 1의 신상파악 1차 책임자인 상사 소외 3은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채 소외 1과 두 차례 면담을 하고 소외 1의 신상등급을 C급으로 조정하였고, 그 밖에 인성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 등 후속조치를 한 적이 없다. 이후 소외 1에 대한 신상관리에도 인성검사 결과가 반영되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

이후 면담, 인성검사 등에서 소외 1의 자살 징후 등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고 소외 1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는 성향이 있었다는 사정은 오히려 소외 1이 군 입대 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 노출되어 감정을 억압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외 1은 입대 후 조기 평가를 통해 스트레스 상황이나 고립감을 조절하고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한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에도 소외 1은 적극적인 관심이나 도움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기재되어 있고, 소외 1의 성향상 부대 지휘관과의 면담은 도움이 되지 않고, 비밀이 보장된 외부 심리상담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는 것으로도 부대 적응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소외 1은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에서 추정할 수 있는 성향이나 기질로 인해 통상적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앓다가 이 사건 사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지휘관 등 관계자가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를 파악하였더라면 이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교육 단계에서 자살우려자 식별 여부와 신상등급 분류를 결정하였을 것이고, 실제 소외 1을 자살우려자로 식별하거나 A급으로 분류하여 관리하였을 개연성이 크다.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위와 같은 검사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로 실시한 면담에서 소외 1에게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다른 자살 징후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와 같은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아가 소외 1이 자살우려자로 식별되거나 A급으로 분류되었다면 신상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 마련된 절차에 따라 소외 1에게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받도록 하고 진단 결과에 따라 입원 또는 외래치료를 실시하거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며, 필요 시 상급부대로 분리하여 상담과 관찰을 하거나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설령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고도 다른 사정을 고려하여 소외 1을 자살우려자로 식별하거나 A급으로 분류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소외 1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기에 외부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거나 인성검사 결과를 반영한 면담·교육·관찰·지도 등의 방법으로 소외 1에 대한 신상관리를 달리 했어야 한다. 즉,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지휘관 등 관계자가 교육사에서의 인성검사 결과를 반영하여 소외 1에 대하여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 따른 조치를 포함한 소외 1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사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3) 결국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의 결과가 나타난 이상 당시 소외 1에게 자살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는데도 소외 1에 대한 신상관리에 인성검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은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가 인성검사 결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후속조치를 할 직무상 의무를 과실로 위반한 것이고,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 위반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라. 원심으로서는 자살예방법과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 관련 규정을 상세히 살펴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 결과가 나온 경우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관리·처리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직무상 의무를 확인하고,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의 관리와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적절하지 않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등을 신중하게 살펴보았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채 피고에게 이 사건 사고에 관한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단에는 장병의 자살예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결론

원고들의 상고는 이유 있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동원(재판장) 김재형(주심) 민유숙 노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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