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0노1573 강간,유사강간
피고인
A
항소인
검사
검사
김종호(기소), 김찬중(공판)
변호인
변호사 김효선(국선)
원심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20. 8. 20. 선고 2019고합357 판결
판결선고
2020. 12. 22.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항소이유 요지 (사실오인 주장)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 진술은 믿을 수 있는 점, 이 사건 이후 피해자 언행이 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큼 비합리적인 것은 아닌 점,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행사하였던 유형력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정도에 이르렀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된다. 이와 달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던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잘못이 있다.
2. 직권 판단(공소장변경)
가. 검사는 당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하였고, 당심법원은 이를 허가하였다.
1) 원심판결 2쪽 7행~12행 부분('강간' 부분)을 "피고인은 그날 23:30경 피고인의 집 거실 소파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피해자에게 너무 강하게 키스를 하자, 피해자가 팔을 밀어냈음에도, 갑자기 피해자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집어넣고 피해자를 들어 올린 다음 방으로 끌고 가서 피해자를 침대 위에 눕히자, 피해자가 '이건 아닌 것 같아. 하지 마'라는 등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피해자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누르고 피해자의 양 팔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후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로 고치는 내용
2) 원심판결 2쪽 14행~17행 부분('유사강간' 부분)을 "피고인은 같은 날 23:50 경 피고인의 집 거실에서, 자신이 화장실에 간 틈을 이용하여 몰래 도망가기 위하여 출입문 카드키를 찾다가 인기척에 맥주를 마시는 척하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갑자기 하의를 탈의한 채로 피해자에게 다가와 손으로 피해자의 목덜미를 잡아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후 피고인의 성기를 피해자의 입속에 강제로 집어넣었다."로 고치는 내용
나. 이와 같은 공소장변경에 따라 당심법원의 심판대상이 변경되었으므로, 원심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원심판결에는 이와 같은 직권파기 사유가 있지만,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던 점을 제외하고 변경 전 공소사실 내용과 변경 후 공소사실 내용은 거의 같고 쟁점도 동일하므로, 검사의 주장에 관하여 판단한다.
3. 검사의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원심은 판시와 같은 여러 사정을 들면서 '피고인에게 강간 및 유사강간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행사하였다는 유형력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에 관한 증명 부족 등을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원심과 당심에서 적법하게 채택 ·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심법원의 판단은 정당하고,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나. 특히 원심 지적과 같이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보였던 행동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① 이 사건 직후 피해자와 만났던 H이 수사관과의 문답에서 "피해자가 강제로 당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수치스럽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만나서 한 이야기는 거의 바람 이야기였다."라고 진술하였던 점, ② H이 피고인에게 "만나서 술 마실 때는 솔직히 피고인한테 놀아난 여자 둘이서 회포 푸는 자리랄까 난 울고 깬 나 달래고 오빠 욕하고"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점,2) ③ 피해자가 H과 만나기 직전 전화통화에서 "그러니까 뭐 약간 좀 속임을 당해서 낚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만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가 많은 건지", "(H이) 되게 예쁘시더라고요. 예쁘시고 그런데 너무 안타까워서 전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라고 얘기하였던 점,3) ④ 피해자와 H이 만난 직후에도 피고인의 배신적인 태도를 비난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점4)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가 이른바 '양다리'를 걸친 배신적 태도에 대한 분노 때문에 피고인을 고소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 ①)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직후에는 "성관계 직후 이상한 기분이 느껴져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던 점(이후 피해자는 '무서워서 피고인 집을 나서기 위해 카드키를 찾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5) ② 피해자가 이 사건 직후 피고인에게 강간 범행 등에 대해서는 항의하지 않은 채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봤다'라고 화를 내면서 피고인 집을 나왔던 점,6) 3 피해자가 경찰에서 "피고인이 C에서 여자를 만나 이런 식으로 양다리를 걸치며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진술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렇다.7)
라. 두 번째 성적 접촉 과정과 그 내용에 관해서는 피고인 진술과 피해자 진술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검사는 피해자 진술에 기초하여 이 부분을 유사강간으로 공소제기하였다.
① 피해자 진술에 따르더라도, 첫 번째 성관계가 있었던 시점('강간'으로 공소제기되었던 부분)과 두 번째 성적 접촉 시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매우 짧았던 점, ② 두 시점 사이에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나 분위기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정황은 발견할 수 없는 점, ③ 앞서 본 것처럼 두 번째 성적 접촉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항의했던 내용과 그 경위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유사강간의 점을 따로 떼어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마. ① 피고인 행위를 강간 또는 유사강간으로 의율할 수는 없지만, 피고인과의 성관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피해자가 갑작스러운 피고인의 성적 접촉과 다소 이례적인 피고인의 성적 취향에 당황했을 수는 있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 ② 특히 피고인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교제하는 여성이 있음에도, 재력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에게 접근한 다음 성관계를 시도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여성으로서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H과 처음 통화하면서 '속았다' 또는 '낚였다'라고 표현한 데에서도 이를 추단할 수 있다. ③ 실제로 피고인이 자신의 집에 다른 여성을 데려온 다음 부적절한 방법으로 신체 접촉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고, 피고인이 H과 교제 중임에도 이를 속인 채 피해자와 성적 접촉을 시도하였던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도의적·윤리적인 측면에서 피고인 행동에 대해 비난의 여지가 있더라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한 증명이 이루어졌거나 기망 정도에 불과한 피고인 행위가 형사법적으로 범죄를 구성한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4. 결론
원심판결에는 직권파기 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따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은 제2의 가항 기재와 같이 고치는 외에는 원심판결 1쪽 14행~2쪽 17행 기재와 같다.
원심에서 판시한 사정과 판시 제3항에서 판시한 사정과 같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부족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되,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지는 않는다.
판사
재판장판사윤종구
판사최봉희
판사조찬영
주석
1) 증거기록 1권(증거목록에는 2권으로 기재되었다. 이하 같다) 200쪽, 204쪽, 205쪽
2) 증거기록 1권 218쪽
3) 증거기록 2권 3쪽, 5쪽
4) 증거기록 1권 219쪽
5) 증거기록 1권 6쪽
6) 증거기록 1권 25쪽
7) 증거기록 1권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