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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1. 8. 30. 선고 2008헌마648 공보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확인]
[공보(제179호)]
판시사항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원폭피해자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적극)

결정요지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제10조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위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원폭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는,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침해 위험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작위로 나아갈 경우 진정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 범위 내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불법적인 강제징용 및 징병에 이어 피폭을 당한 후 방치되어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 채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불법적인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과정에서 도구화되고 피폭 후에도 인간 이하의 극심한 차별을 받음으로써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침해되는 기본권이 매우 중대하다. 또한, 원폭피해자는 모두 고령으로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원폭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되고,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구제가능성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부작위의 이유로 내세우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라거나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상과 같은 점을 종합하면, 결국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는 것만이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라 할 것이고,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하였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위 작위의무의 도출근거는 헌법의 명문, 헌법의 해석, 법령의 규정 3가지이다.

우선, 헌법 제10조의 국민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 제2조 제2항의 재외국민 보호의무, 헌법 전문(前文)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선언한 것이거나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를 선언한 것일 뿐이어서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이는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은 한·일 양국이 당사자가 되어 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체결된 조약이기에 위 협정 제3조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작위의무’는 도출될 수 없으며, 더구나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위 협정 제3조에 기재된 외교적 해결, 중재회부 요청은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재량사항’에 해당한다는 선례(헌재 2000. 3. 30. 98헌마206 결정)도 있는데, 다수의견은 결론적으로 위 선례와 배치되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말하는 ‘외교적 해결의무’는 그 이행의 주체나 방식, 이행정도, 이행의 완결 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 힘든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은 되지만 사법자제가 요구되는 분야에 해당한다.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에 끌려간 후 원자폭탄에 피폭되었음에도 일본으로부터 구호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구제해 주어야 할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나 헌법과 법률의 규정 및 그에 관한 헌법적 법리해석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피청구인에게 그 외교적 문제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다.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이다.

참조조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제2조, 제3조

참조판례

헌재 1993. 12. 23. 89헌바189 , 판례집 5-2, 646

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 판례집 20-2상, 91, 100-101

당사자

청 구 인강○지 외 2,541인대리인 법무법인 삼일담당변호사 최봉태 외 7인

피청구인외교통상부장관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담당변호사 김성식 외 3인

주문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원폭피해자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위헌임을 확인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인들은 일제강점기인 1945. 8. 6.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그리고 같은 달 9. 나가사키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하여 피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다. 피청구인은 외교, 외국과의 통상교섭 및 그에 관한 총괄·조정, 국제관계 업무에 관한 조정, 조약 기타 국제협정, 재외국민의 보호·지원, 재외동포정책의 수립, 국제정세의 조사·분석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이다.

(2) 대한민국은 1965. 6. 22. 일본국과의 사이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3) 청구인들은, 청구인들이 일본국 및 일본기업에 대하여 가지는 원폭피해자로서의 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일본국은 위 청구권이 위 규정에 의하여 모두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며 청구인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청구인들의 위 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한·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으로서는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위와 같은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08. 10. 29. 이러한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원폭피해자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고, 이와 관련된 위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규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1. 일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a)현재에 있어서 1천 8십억 일본 원(108,0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3억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무상으로 제공한다. 매년의 생산물 및 용역의 제공은 현재에 있어서 1백 8억 일본 원(10,8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3천만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를 한도로 하고 매년의 제공이 본 액수에 미달되었을 때에는 그 잔액은 차년 이후의 제공액에 가산된다. 단, 매년의 제공 한도액은 양 체약국 정부의 합의에 의하여 증액될 수 있다.

(b)현재에 있어서 7백 20억 일본 원(72,0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2억 아메리카합중국 불($2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에 달하기까지의 장기 저리의 차관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요청하고, 또한 3의 규정에 근거하여 체결될 약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업의 실시에 필요한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대한민국이 조달하는 데 있어 충당될 차관을 본 협정의 효력 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행한다. 본 차관은 일본국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일본국 정부는 동 기금이 본 차관을 매년 균등하게 이행할 수 있는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전기 제공 및 차관은 대한민

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 아니면 아니된다.

2.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권고를 행할 권한을 가지는 양 정부 간의 협의기관으로서 양 정부의 대표자로 구성될 합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약정을 체결한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제3조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 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 중의 어느 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 된다.

3.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제3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 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재위원회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일의 기간 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한다.

4.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한다.

제4조

본 협정은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는 가능한 한 조속히 서울에서 교환한다.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청구인들의 주장요지

(1) 청구인들은 일본의 침략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일본에 머무르던 중 원폭피해를 입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피폭자들과는 달리 방치되어 차별을 받아 왔다는 점에서 이중, 삼중의 피해자이다. 청구인들은 그 동안 일본 법정은 물론 한국 법정에서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여 왔으나, 일본정부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해 위 청구인들이 가진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법적 책임을 부정하였다.

이에 반하여, 우리 정부는 2005. 8. 26. 원폭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국의 법적 책임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한·일 양국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

(2) 한편,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분쟁이 있을 경우 외교상 경로나 중재절차에 의한 해결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체약국에게 위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해결의무를 부

담시키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에게는 위와 같은 이 사건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또한 우리 정부로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전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재산권의 보장에 관한 헌법 제23조 등과 이 사건 협정의 체결당사자로서 행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 입각한 작위의무가 있고, 헌법 제37조 제1항 소정의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인 외교적 보호권에 대응한 외교적 보호의무 등이 있다.

(4)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외교적 보호조치나 중재회부 등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러한 행정권력의 부작위는 위의 헌법규정들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의견요지

(1)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되는 것인바, 우리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여야 한다거나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분쟁해결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헌법이나 법령 규정이 없고, 헌법의 해석상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바, 이러한 부작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2)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피해구제를 위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일본 정부로부터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금을 받았고, 이를 기초로 기금을 마련하여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 왔으며, 일본 내의 차별적인 법령 개정 및 합리적인 법 적용을 촉구하는 등 청구인들의 지위향상 및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한 것이며,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규정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 정부는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여부 및 행사방식에 대하여 고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고,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규정과 외교적 문제라는 특성에 따라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 분쟁 해결방식에 있어서도 포괄적인 재량권을 부여받았다. 이와 같은 재량권 행사가 일본과의 마찰에 의한 국내외적 문제를 우려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 행사를 최소한도로 제한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없다.

3. 이 사건의 배경

이 사건에 관한 판단을 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 사건의 배경 및 전체적 경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 이 사건 협정의 체결경위

(1) 해방 후 한국에 진주한 미군정 당국은 1945. 12. 6. 공포한 군정법령 제33호로써 재한 구 일본재산(在韓 舊 日本財産)을 그 국유·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시켰고, 이러한 구 일본재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직후인 1948. 9. 20.에 발효한 ‘한미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으로 한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2) 한편, 1951. 9. 8.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에서는 한국에게 일본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고, 다만, 위 조약 제4조 a항에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것을, 제4조 b항에 일본은 전기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일본 및 일본인의 재산을 처분한 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각 규정하였다.

(3) 위 조약 제4조 a항의 취지에 따라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10. 21. 예비회담 이후 1952. 2. 15.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가 열려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7차례의 본회의와 이에 따른 수십 차례의 예비회담, 정치회담 및 각 분과위원회별 회의 등을 거쳐, 1965. 6. 22. 이 사건 협정과 어업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의 부속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4) 피청구인이 제출한 ‘청구권 관계 해설자료’에 의하면, 제1차 한·일회담(1952. 2. 15.∼4. 25.)시 우리 정부는 ‘한·일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1. 한국에서 반출된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그 외 국보, 지도원판 및 지금, 지은을 반환할 것, 2. 1945. 8. 9. 현재, 일본 정부의 대 조선총독부 채무를 변제할 것, 3. 1945. 8. 9. 이후, 한국에서 이체 또는 송금된 금액을 반환할 것, 4.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사 또는 주

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 재산을 반환할 것, 5. 한국법인 또는 자연인의 일본 및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그 외 한국인의 청구권을 변제할 것, 6.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 소유의 일본법인 주식 또는 그 외 증권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 7. 전기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과실을 반환할 것, 8. 전기반환 및 결제는 협정 성립 후 즉시 개시하고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종료할 것의 8개 항목이다.

(5) 그러나 제1차 회담은 위 8개 항목의 청구권 주장에 대응한 일본측의 대한·일본인재산청구권 주장으로 결렬되었고, 이후 독도 문제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이견, “일본에 의한 36년 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는 일본측 수석대표 구보타(久保田) 망언 및 양국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제4차 한·일회담까지는 청구권문제에 관한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6) 그 뒤 8개 항목에 대한 실질적 토의가 이루어진 것은 제5차 한·일회담(1960. 10. 25.∼1961. 5. 15.)이었는데, 8개 항목 각 항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은 대체로, 제1항과 관련하여서는, 지금 및 지은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반출한 것이므로 반환의 법적 근거가 없고, 제2, 3, 4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군정법령 제33호가 공포된 1945. 12. 6. 이후의 것에 한하며, 제5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 측에 철저한 근거의 제시를 요구, 즉, 구체적인 징용, 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5차 회담의 청구권 위원회에서는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해 회담이 중단되기까지 8개 항목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였을 뿐,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다.

(7) 이에 1961. 10. 20. 제6차 한·일회담이 재개된 후에는 청구권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시일만 소요될 뿐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 하에 정치적 측면의 접근이 모색되었다. 1961. 11. 22. 박정희·이케다 회담 이후 1962. 3. 외상회담에서는 한국측의 지불요구액과 일본측의 지불용의액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한국측의 순변제(純辨濟) 7억 불에 대하여 일본측의 순변제 7만 4천불 및 차관 2억 불이라는 차이가 확인되었다.

(8)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측은 당초부터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될 뿐 아니라 38선 이남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금액도 적어져서 한국측이 수락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서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측은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나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와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해결할 것을 처음에 주장하였고, 그 후에 다시 양보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 및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하되 그 금액을 각각 구분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 표시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9) 이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일본에서 이케다 일본 수상과 1차, 오히라 일본 외상과 전후 2차에 걸쳐서 회담하고, 오히라 외상과의 1962. 11. 12. 제2차 회담시 청구권 문제의 금액, 지불세목 및 조건 등에 관하여 양측 정부에 건의할 타결안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고, 구체적 조정과정을 거쳐 제7차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5. 4. 3.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이동원과 일본의 외무부 대신이었던 시이나 간에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1965. 6. 22. 명목을 구분표시하지 않고 일본이 대한민국에게 일정 금액을 무상 및 차관으로 지불하되,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되었다.

(10) 징병·징용에 이은 원폭피해자 문제는 이 사건 협정체결을 위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8개 항목 청구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나.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처리경과

(1)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당시 조선인)은 히로시마에서 약 5만명, 나가사키에서 약 2만명 가량으로, 이는 전체 피폭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 중 4만명이 사망하고, 생존자 3만명 중 2만 3천명이 귀국하였으며, 2만 3천명 중 2천명은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일제 강점기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징용·징병 등의 강제동원에 의해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로, 피폭 후 일본인들과는 달리 구호조치 및 보호조치를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에서 한

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사망률은 전체 피폭자 691,500명 대비 사망자 233,167명의 비율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이는 피폭 후의 차별적 방치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에 나서, 1957년 ‘원자폭탄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 법에 따라 인정을 받은 피폭자에게 피폭자 건강수첩(이하 ‘건강수첩’이라 한다)을 교부하여 치료비와 검진료를 국가가 부담하게 하였으며, 1968년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피폭자의 생활보호를 위한 각종 수당을 지급하였다.

위 두 법률에는 국적에 관한 아무런 제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건강수첩 신청을 각하하고, 이후 “일본국 내에 거주관계를 가지는 피폭자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이라는 요건을 새롭게 만들어 명시적으로 일본 밖의 피폭자를 차별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원폭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하여도 이 사건 협정에 의해 원폭피해자들의 권리가 모두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법적 책임을 부정하여 왔다.

(3) 이에 원폭치료를 요구하며 1970년 도일(渡日)한 손진두는 밀입국자로 체포되어 복역 중 피폭자 무료진료를 받기 위해 후쿠오카현(福岡縣)지사를 상대로 건강수첩 교부를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972년 각하처분 취소소송(일명 ‘원폭수첩재판’)을 제기하였고,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8. 3. “일본의 ‘원자폭탄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은 피폭된 모든 인간이 국적과 거주 장소와는 차별 없이 향수할 권리를 가진다.”며 최종적으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4) 한편, 우리 정부는 이 사건 협정체결 후 1966. 2. 19.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3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이후 1971. 1. 19.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보상신청을 받고, 그 뒤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합계 91억 8,769만 3천원을 지급하였으나, 그 대상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위 회담 과정에서 대일 민간청구권자로 논의되어 알려졌던 민사채권 또는 은행예금채권 등을 가지고 있는 민사청구권 보유자에 한정되었고, 청구인들과 같은 원폭피해자, 피징용부상자, 일본위안부 피해자 등은 그 보상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하였다.

(5) 원폭수첩재판 이후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한·일 양국 정부에 대하여 대책마련을 호소한 결과, 양국 정부는 1981. 12. 유효기간을 5년으로 한 ‘재한(在韓) 피폭자 도일 치료 실시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위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도일한 피폭자에 대하여 건강수첩을 교부하여 무료치료를 실시하였고, 치료 대상자의 왕복여비는 한국측에서 부담하고 도일 치료자의 입원 기간(입원 치료기간은 2개월, 최장 6개월까지 가능) 중 의료급부 및 건강관리수당과 특별수당 등 각종 수당은 일본 정부가 지급하기로 하여 1981년부터 5년간 349명이 도일 치료를 받았으나, 도일의 부담, 치료기간의 한정 등으로 효과는 크지 않았다.

(6) 일본 정부는 1990. 5.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에 즈음하여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치료비 및 건강진단비용 지원, 피폭자 복지센터건립 지원을 목적으로 한 40억 엔의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1991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로부터 40억 엔을 수령하여 국내에 ‘원폭피해자 복지기금’을 마련하고, 원폭피해자에게 병원진료비, 병원진료시 필요한 교통비와 비급여대상 진료비 등 진료보조비, 사망시 150만원의 장례비를 지급하였으며, 1996. 10. 경남 합천군에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을 건립하여 피폭자에 대한 일상생활 지원 및 건강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였다.

(7) 일본 정부는 위와 같은 사정으로 도일한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 건강수첩을 발부하기 시작하였지만, 일본 내에 있는 경우에는 원호대상이 되나 일본 국외로 나가게 되면 원호조치를 일체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의 1974. 7.자 제402호 통달(通達 : 국가로부터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발해지는 명령)에 의거하여, 건강수첩을 발부받은 원폭피해자가 일본 국외로 나가는 경우 건강수첩에 의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함으로써, 한국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들이 건강수첩을 신청할 실익이 없도록 만들었다. 1994년에 이르러 위 ‘원자폭탄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과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을 통합한 ‘원자 폭탄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에서도 피폭자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의료지원 혜택 및 생계보조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위 통달을 적용하여 일본 내에 거주하는 피폭자에 대해서만 위 법에 의한 지원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8) 이에 한국인 원폭피해자로서 일본에 와서 건강

수첩을 취득하고 건강관리수당을 받다가 일본 국외로 출국함으로써 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곽○훈이 소송을 제기하였고,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2002. 12. 5. “일본에서 출국했다는 이유로 제402호 통달로 피폭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위 판결이 확정되자, 일본 정부는 2003년 위 통달을 폐지하였다.

(9) 위와 같은 경위로 2003. 9.경부터 대한적십자사가 일본 정부와 원호수당 지급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에서 건강수첩을 교부받고 수당지급 인정을 받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귀국 후에도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리인을 통한 수당신청과 건강수첩 신청은 인정되지 않다가, 최고재판소가 2007. 11. 1. 한국거주 원폭피해자들이 위법한 제402호 통달에 의해 건강수첩을 교부받고 각종 수당을 지급받을 권리를 29년간이나 박탈당한 데 대하여 일본국은 그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자, 2008. 6. ‘원폭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으로써, 비로소 국외 거주 원폭피해자도 일본 재외공관을 통하여 원호수당을 신청하고 건강수첩을 교부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1세대) 중 2010. 10. 현재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사람은 총 2,631명이며, 이 중 2,468명이 ‘건강수첩’을 소지하고 있다.

(10) 한편,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1995. 12. 11.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일본국 및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등 일본기업을 상대로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에 이은 피폭, 피폭 후 방치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소송 등을 제기하였고{1995(ワ)2158, 1996(ワ)1162, 1998(ワ)649}, 당시 피고 측은 제척기간경과, 소멸시효완성 또는 이 사건 협정에 따라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는데, 위 재판소는 1999. 3. 25. 원고 등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위 원고 등이 항소하자, 항소심{1999(ネ)206}인 히로시마고등재판소는 2005. 1. 19.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과정에서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원고 등에 대한 구호나 보호조치 등 안전배려의무 불이행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20년의 제척기간 경과로, 안전배려의무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각 소멸하였으며, 부가적으로 이 사건 협정에 따라 원고 등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고, 상고심인 최고재판소{2005(オ)1691}에서도 2007. 11. 1. 상고가 모두 기각됨으로써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

(11) 위 원고 등은 히로시마지방재판부의 1심 판결을 받은 후 2000. 5. 1. 대한민국 부산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동일한 청구원인에 의한 소송을 제기하였고, 피고가 이 사건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으므로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항변을 하자, 대한민국 정부에 이 사건 협정 관련 서류의 공개를 청구하였다.

한국 정부는 위 서류의 공개를 거부하다가 2004. 2. 13. 이 사건 협정 체결을 위한 한·일회담관련 문서의 공개를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자 이를 공개한 후,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피청구인을 정부위원으로 하는 ‘민관공동위원회’의 2005. 8. 26. 결정을 통해, 이 사건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및 원폭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위 소송의 1심(부산지방법원 2000가합7960)에서는 2007. 2. 2.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이미 시효로 소멸되었다고 하여 원고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고, 항소심(부산고등법원 2007나4288)은 일본국 재판소의 위 확정판결의 효력이 대한민국에서 승인되므로 기판력이 미친다는 이유로 원고청구를 기각하였으며, 현재 상고심(대법원 2009다22549) 계속중이다.

4.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가. 행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판례집 12-1, 393, 393- 393).

위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 헌법상 명문으로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 둘째, 헌법의 해석상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경우, 셋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 판례집 16-2하, 212, 219).

나.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만약 공권력의 주체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없다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게 되므로,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를 살핀다.

이 사건 협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위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같은 조 제2항은,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 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위 분쟁해결조항에 의하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정부는 이에 따라 1차적으로는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2차적으로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앞에서 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본다.

청구인들은 일제강점기 징병·징용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체류하게 되었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에 의해 피폭을 당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로서, 일본국에 대하여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일본국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배상청구권이 모두 소멸되었다며 청구인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인들의 위 배상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존속한다는 입장이므로, 결국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한·일간에 분쟁이 발생한 상태이다.

우리 헌법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그리하여 국가는 인간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를 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재외국민 보호의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재외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의하여 재외국민이 거류국에 있는 동안 받는 보호는 조약 기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와 당해 거류국의 법령에 의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거류국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하는 외교적 보호와 국외거주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인 고려에서 특별히 법률로써 정하여 베푸는 법률·문화·교육 기타 제반영역에서의 지원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판시함으로써(헌재 1993. 12. 23. 89헌마189 , 판례집 5-2, 646), 국가의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의무가 헌법에서 도출되는 것임을 인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바, 비록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징병과 징용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이주 당하여 전쟁수행의 도구로 활용되다가 원폭피해를 당한 상태에서 장기간 방치됨으로써 심각하게 훼손된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헌법 규정들 및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위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원폭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위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의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피청구인에게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 공권력의 불행사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청구인은 위와 같은 작위의무의 이행으로서 원폭피해자들의 일본국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소멸된 것인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간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로서의 조치를 특별히 취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청구인은 이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의 피해구제를 위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일본 정부로부터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금을 받았고, 이를 기초로 기금을 마련하여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 왔으며, 일본 내의 차별적인 법령 개정 및 합리적인 법 적용을 촉구하는 등 청구인들의 지위향상 및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는바, 이는 우리 정부에 폭넓게 인정되는 외교적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으로서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의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므로 공권력의 불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원폭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의 불이행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를 제외한 그 밖의 외교적 조치는 이 사건 작위의무의 이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라. 소결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본안에 나아가 피청구인이 위와 같은 작위의무의 이행을 거부 또는 해태하고 있는 것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5.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협정 관련 해석상 분쟁의 존재

(1)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합의의사록 제2조 (g)항은 위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2)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 정부 및 사법부의 입장은 원폭피해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일본국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모두 포괄적으로 이 사건 협정에 포함되었고 이 사건 협정의 체결 및 그 이행으로 포기되었거나 그 배상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며, 반면, 우리 정부는 2005. 8. 26.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원폭피해자 문제 등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3) 피청구인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과정에서도, 일본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해 원폭피해자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원폭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이에 대하여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있고, 이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확인하였다.

(4) 따라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대일청구권에 원폭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해석 차이가 존재하고, 이는 위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 분쟁의 해결절차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의 분쟁은 우선 외교적인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위 규정들은 협정체결 당시 그 해석에 관한 분쟁의 발생을 예상하여 그 해결의 주체를 협정체결 당사자인 각 국가로 정하면서, 분쟁해결의 원칙 및 절차를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은 위 분쟁이 발생한 이상,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하고, 그러한 해결의 노력이 소진된 경우 이를 중재에 회부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다.

다. 피청구인의 부작위의 기본권 침해 여부

(1) 선례와의 구별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에 따라 중재요청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한 사건(헌재 2000. 3. 30. 98헌마206 중재요청불이행 위헌확인사건)에서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의 특성으로 보나,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교상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재에 회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량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협정당사자인 양국간의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 및 그 유족들인 청구인들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반드시 중재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로 청구인들에게 중재회부를 해달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국가의 재외국민보호의무(헌법 제2조 제2항)나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보호의무(헌법 제10조)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분쟁을 중재라는 특정 수단에 회부하여 해결하여야 할 정부의 구체적 작위의무와 청구인들의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위 결정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의 ‘중재회부에 의한 분쟁해결방식’을 취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서, 제3조 제1항에서 우선적으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이를 제쳐 두고 제3조 제2항의 ‘중재회부방식에 의한 분쟁해결’을 도모할 피청구인의 의무를 곧바로 도출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에 의한 분쟁해결로 나아가야 할 의무를 지는가 하는 점이고, 특히 제3조 제1항에서는 특정방식이 아닌 광범위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분쟁이 발생한 현 시점에서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을 모색하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 중재회부로 나아가야 할 헌법적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이다.

즉 이 사건의 쟁점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특정 방법을 취할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아니고,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위 협정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 등을 할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이므로, 위 선례의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

(2) 피청구인의 재량

외교행위는 가치와 법률을 공유하는 하나의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를 넘어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하는 국제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정부가 분쟁의 상황과 성질, 국내외 정세, 국제법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관행 등을 감안하여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상의 기본권은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므로 행정권력 역시 이러한 기본권 보호의무에 따라 기본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행사되어야 하고, 외교행위라는 영역도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국민의 기본권이 관련되는 외교행위에 있어서, 앞서 본 바와 같이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의 불이행이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기본권 침해행위로서 위헌이라고 선언되어야 한다. 결국 피청구인의 재량은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침해 위험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진정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범위 내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3) 부작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

(가)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일본국 및 일본기업에 대한 배상청구는, 일본인 원폭피해자들과는 달리, 침략전쟁을 위한 징병·징용 등 불법 동원에 의하여 피폭지인 일본에 강제로 체류하게 되었다가 피폭을 당하고, 피폭 후에도 일본 자국민들과는 달리 구호조치나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됨으로써 피해가 확대된 데 대하여 침략전쟁국이자 비인도적 차별국으로서의 일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문제를 제기할 때 위와 같은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피해자, 희생자들 모두의 공통점만을 강조하는 것은, 원폭투하의 원인이 되었던 일본의 침략전쟁과 이에 수반된 각종 범죄적 행위에 대하여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회피하는 길을 터주는 것이며, 피폭을 당하게 된 경위 및 그 이후의 차별과 배제의 과정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을 적절히 구제하지 못하는 길이다.

이와 같이 불법적인 강제징용 및 징병에 이어 피폭을 당한 후 방치되어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 채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단지 헌법상의 재산권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불법적인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과정에서 도구화되고 피폭 후에도 인간 이하의 극심한 차별을 받음으로써 침해된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헌법상 재산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 판례집 20-2상, 91, 100-101 참조).

(나)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일본 법정에서의 소송결과에 따라 ‘원폭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을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게도 적용하게 되었지만, 강제징용·징병에 이은 피폭, 피폭 후의 방치 등 일련의 불법행위에 관하여 일본국 및 일본기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일본 측은 여전히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며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고, 그에 따라 일본에서의 배상청구 소송은 패소로 종결되었다.

청구인들이 피폭을 당한 지는 60여년이 훨씬 넘었고, 수 만의 한국인 원폭피해자들 중 2010. 10. 현재 원폭피해자 1세대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사람은 2,631명에 불과하며, 이 사건 청구인들도 본래 2,745명이었으나, 이 사건 심판청구의 심리중에도 203명이 사망하여 2,542명만이 생존해 있다. 나아가 이 사건 원폭피해자들은 모두 고령인데다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원폭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다)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침해되는 기본권이 중대하고 그 침해의 위험이 급박하다고 하더라도 구제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구제가 완벽하게 보장된 경우에만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구제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족하다 할 것이며, 이때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대한 배상청구가 최종적으로 부인되는 결론이 나올 위험성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피청구인으로서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2006년 유엔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채택되고 총회에 제출된 ‘외교적 보호에 관한 조문 초안’의 제19조에서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권리를 가진 국가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특히 외교적 보호의 행사가능성을 적절히 고려하여야 하고, 가능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외교적 보호에의 호소 및 청구될 배상에 관한 피해자들의 견해를 고려해야 함을 권고적 관행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청구를 통하여 피청구인의 작위의무의 이행을 구하고 있으므로 피해자들인 청구인들의 의사는 명확하다 할 것이고, 비록 제척기간이나 소멸시효라는 민법 제도상의 장해가 있기는 하나 불법행위, 안전배려의무위반 등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자체는 일본 사법부에 의해서도 인정된 바 있는 점 및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 등에 비추어 보면,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노력을 경주할 경우 일본국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라)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피청구인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주장할 경우 일본 측과의 소모적인 법적 논쟁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구체적 작위의무의 이행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 또는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그것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된다거나 또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과거의 역사적 사실 인식의 공유를 향한 노

력을 통해 일본 정부로 하여금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함으로써 한·일 양국 및 양 국민의 상호이해와 상호신뢰가 깊어지게 하고,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다지는 방향인 동시에,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마) 소결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부작위는 청구인들의 중대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라. 소결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및 전문과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 등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 할 것이고,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재산권 등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가능성, 구제의 절박성과 가능성 등을 널리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이러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재량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피청구인이 현재까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할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러한 부작위는 헌법에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6.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7.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우리 헌법상의 명문 규정이나 어떠한 헌법적 법리에 의하더라도 ‘청구인들에 대하여 피신청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서 정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청구인들의 이 사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고 보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한다.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뿐 아니라 공권력의 불행사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공권력의 불행사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위 헌법소원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헌재 1991. 9. 16. 89헌마163 , 판례집 3, 505, 513; 2000. 3. 30. 98헌마206 , 판례집 12-1, 393, 401 등 참조).

또한 여기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가, 헌법상 명문으로 작위의무를 규정하고 있거나, 헌법의 해석상 작위의무가 도출되거나,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3가지 경우를 포괄하고 있음도 역시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 판례집 16-2하, 212, 219 참조).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헌법의 명문규정상, 헌법해석상, 법령상 도출되는 공권력 주체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 대한’ 의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로서 그 침해의 원인이 되는 행정권력의 부작위를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前文) 중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부분,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을 종합하여, 이 사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가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나아가 피청구인이 부담하는 구체적 작위의무의 내용을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라고 보았는바, 과연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

나. 우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전문의 규정 자체 또는 그 해석에 의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구체적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는 없다.

국가와 국민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정한 헌법의 조항들 중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미로 국민의 기본권 기타 권리를 부여하는 조항들도 있지만, 개방적·추상적·선언적인 문구로 규정되어 있어서 헌법해석이나 구체적 법령 등이 매개되어야만 국가와 국민간에 구속적인 권리의무를 발생시키는 조항들도 있다. 그런데 ‘국민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

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기본권 보장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규정한 것일 뿐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문구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헌법 전문(前文)이 국가적 과제와 국가적 질서형성에 관한 지도이념·지도원리를 규정하고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규범화한 것으로서 최고규범성을 가지고 법령해석과 입법의 지침이 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는 없다.

이처럼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으로부터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와 그러한 작위의무를 청구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은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기도 하다(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에 관하여는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판례집 12-1, 393, 402-403 ; 1998. 5. 28. 97헌마282 , 판례집 10-1, 705, 710, 헌법 전문에 관하여는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 판례집 17-1, 1016, 1020-1021 참조).

따라서, 아무리 이 사건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상태가 중대하고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만에 기하여서는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고, 결국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법령’이 존재하여야 이를 매개로 국가의 청구인들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절차에 관한 조항이 위에서 말하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1) 먼저,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서의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특정의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기재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규정된 작위의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는 것이므로(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판례집 12-1, 393), 법령에 규정되는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게 국가에 대하여 특정 작위의무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가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에 있어서 기본권침해가능성 내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전제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행정법규에 구체적인 권리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이 있다면 이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 재판소에 제기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은 거의 모두가 국내 법령에 국가의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지, 그 의무에 대한 부작위가 있는지가 쟁점인 사건들이었으며, 해당 법령에 문제된 구체적 작위의무가 행정권력의 국민에 대한 기속행위로 규정되어 있거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공권력 불행사의 결과 청구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다는 등의 사유로 기속행위로 해석해야 할 경우에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었고(전자에 관하여는, 헌재 1998. 7. 16. 96헌마246 , 판례집 10-2, 283; 2004. 5. 27. 2003헌마851 , 판례집 16-1, 699, 후자에 관하여는, 헌재 1995. 7. 21. 94헌마136 , 판례집 7-2, 169 참조), 반대로 순수한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 판례집 17-1).

하지만, 이 사건 협정과 같은 조약 기타 외교문서에서, 체약국이 서로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내용과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체약국 당사자 사이에서 체약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므로, 일정한 의무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체약국 당사자가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약에 근거하여 자국이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조약상 권리의무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자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구체적 문구가 해당 조약에 기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약에 그러한 내용의 명시적 문구가 없는 이상, 해당 조약이 국민의 권

리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약상 정해진 절차상 조치를 취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구할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협정은 양국간 또는 일국 정부와 타국 국민간, 양국 국민 상호간의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였는바(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이 사건 청구인들과 같은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국의 배상책임문제는 위 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아니할 정도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로 기재하고 있어, 그 결과 실제로 양국간의 입장 차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권리 문제에 관하여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상태라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아가 이 사건 협정에서 관련국 국민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상의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 이상,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위 조약상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구체적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협정 내용에 기하여 다수의견이 인정한 바와 같은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다.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해당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문구가 이 사건 협정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에 의하여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가 직접 인정될 수도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협정과 위 헌법 규정을 종합하더라도 이 사건 청구인들에 대한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도출될 수 없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비추어 볼 때 다수의견이 말하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조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를 할 작위의무”라는 것이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볼 수도 없다.

(가)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제1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 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조항에도, 분쟁이 있으면 ‘반드시’ 외교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외교적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반드시’ 중재절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는 문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양 체약국 사이의 외교적 약속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는 것 역시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이 접수되면” 회부되는 것인데, 어느 문구에도 중재를 요청하여야 한다는 ‘의무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석할 만한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제3조 제1항, 제2항 어디에서도 외교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 외교상 해결이 안되면 중재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해 낼 수는 없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러한 해석상 의문점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침해되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에만 근거하여 “피청구인에게 이러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재량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국가간 조약에 기재된 의무성조차 없는 문구를, 그로 인하여 사실상 영향받는 국민이 절박한 사정에 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 체약국의 정부인 피청구인에 대하여 조약상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의무’조항이라고 해석해 버린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재된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는 행위는 규정의 형식과 내용으로 볼 때 양 체약국의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이 사건 협정 제3조를 근거로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일본국에 대한 보상청구권에 관한 다툼을 중재에 회부해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청구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우리 재판소 역시 이를 재량행위라고 해석한 바 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상대국 정부에 중재를 요청하여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의 특성으로 보나,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교상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재에 회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량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협정당사자인 양국간의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 및 그 유족들인 청

구인들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반드시 중재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 이유로, 청구인들에게 중재회부를 해 달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렵다』(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판례집 12-1, 393, 402)

다수의견은, 위 선례는 제3조 제1항의 ‘외교적 해결의무’를 제쳐 두고 제2항의 ‘중재절차회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기에 ‘제3조 전체에 기한 분쟁해결절차 이행의무’를 문제삼고 있는 이 사건에서는 결론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위 선례와 이 사건은 차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위 선례의 취지를 오해한 것이다. 위 선례에서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주된 근거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한 ‘외교적 해결’이나 ‘중재절차회부’ 모두 ‘의무사항’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재량사항’이라는 데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할 것이다.

(나) 나아가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외교적 해결’, ‘중재절차회부’에 어떤 의무성이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의무’란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재외국민 보호의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신체장애자 등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나 마찬가지로,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란 그 자체가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아니므로 비록 헌법에 명시적인 문구로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되지 않는다. 국민과 국가의 규범적 관계를 규율하는 근본규범인 ‘헌법’에 명시하고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구할 수 없는데, 하물며 헌법보다 하위규범인 ‘조약’에 명시되어 있을 뿐인데도 이를 근거로는 조약의 당사자도 아닌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의무의 이행을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외교적 해결을 할 의무’란 그 이행의 주체나 방식, 이행정도, 이행의 완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도 힘들고, 그 의무를 불이행하였는지 여부의 사실확정이 곤란한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에 해당하므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권력분립원칙상 사법자제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 사건 협정만 보더라도, 국내 원폭피해자 문제의 심각성과 이에 반하여 한일간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한일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이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지 현재까지 40여년이 지났는데 초기에 외교적 해결노력을 하다가 현재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청구인들이 만족할 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외교적 해결의무를 불이행한 것으로 되는 것인지, 제2항의 중재절차회부의무는 그러면 언제쯤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 등 그 이행여부를 판단할 아무런 명확한 기준을 발견할 수 없다. 과연 이러한 실질을 가지는 ‘외교상 의무’를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행내용이 구체적인지 여부는 불문하고 조약에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막연히 ‘외교적 노력을 하라’는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과시키는 것은, 헌법이 정치적, 외교적 행위들에 관한 정책판단,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권한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는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라. 소결

따라서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의 규정,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하여서는 이 사건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정한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청구인이 위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지 않고 있는 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법하여 각하하여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침략전쟁을 수행을 위한 징용·징병 등의 강제동원에 의해 일본에 끌려간 후 원자폭탄에 피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피폭된 일본인들과는 달리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구호조치 및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귀국 이후 우리 정부로부터도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재판을 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재판당사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국가적으로 중대하고 개인적으로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의 규정 및 그에 관한 헌법적 법리를 뛰어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건 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헌법과 법률, 헌법해석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에게 그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인 것이다.

재판관

재판관 이강국(재판장) 조대현(퇴임으로 서명날인 불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박한철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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