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7다256477 부당이득금
원고피상고인
주식회사 A
피고상고인
주식회사 B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7. 20. 선고 2017나5401 판결
판결선고
2018. 4. 26.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민법 제116조 제1항은 "의사표시의 효력이 의사의 흠결, 사기, 강박 또는 어느 사정을 알았거나 과실로 알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경우에 그 사실의 유무는 대리인을 표준하여 결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리인이 상대방과 통모하여 허위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본인의 선 · 악의를 묻지 않고 그 의사표시는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며, 본인은 민법 제108조 제2항에 의한 선의의 제3자로서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2. 원심은 제1심 판결을 인용하여, 피고가 원고와 원단 제작 하도급계약(기록에 의하면 위 계약은 원단 구매 계약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고 원고로부터 선납물품대금 165,616,000원을 수령하고도 원고에게 원단을 납품하여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러한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원고의 계약해제 의사표시가 담긴 소장이 피고에게 송달됨으로써 이 사건 계약이 해제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그에 따른 원상회복으로, 선납물품대금 165,616,000원과 이에 대한 이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이 사건 계약은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통정허위표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사표시의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지 아니하고 그 불일치에 관하여 상대방과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가공거래가 실제 거래관계 없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원·피고가 모두 알았고 그에 관하여 상호 통정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C은 2010. 12.경부터 원고의 모직사업부 부장으로서 원고의 원단구매와 판매에 관한 계약체결과 대금 회수 등의 업무를 총괄하여 왔다.
2) C은 2011. 8.경 원고의 대표이사인 H 몰래 동종업체인 주식회사 E(이하 'E'라 한다)를 설립한 다음 별도의 영업을 하였다.
3) C은 자신이 원고의 원단 거래에 대하여 포괄적인 권한이 있다는 점과 E가 C의 회사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점을 이용하여 가공거래의 방법으로 원고의 자금을 편취하기로 마음먹었다.
4) C은 피고의 대표자 G에게 '원고가 E로부터 원단을 구입할 예정인데 피고가 중간 대행을 해 달라. 1 야드 당 100원을 수수료로 줄테니 원고가 피고에게 원단 대금을 입금하면 그 돈을 E로 보내주면 된다. 원단은 E가 원고에게 직접 보낼 것이다'라는 취지로 제안하였고, 피고의 대표자 G은 이를 받아들여 C과 'E가 피고 명의로 원고에게 원단을 공급한 후 원고로부터 지급받을 원단대금을 피고가 대신 지급받아 이를 E에게 전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하였다.
5) C은 2013. 4. 4.경 H를 기망하여 원고 명의로 피고에게 88,000,000원을 지급하게 하였고, 피고는 같은 날 E 명의 계좌로 위 돈을 포함한 114,400,000원을 송금하였다. 또한 피고는 원고에게 88,000,000원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였다.
6) C은 2014. 4. 30.에도 H를 기망하여 원고 명의로 피고에게 77,616,000원을 지급하게 하였다. 피고는 같은 날 원고에게 77,616,000원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였고, 2014. 5. 7. E 명의 계좌로 위 돈 중 76,692,000원을 송금하였다. 7) C은 앞서 본 편취행위 등에 관하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등의 죄로 기소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유죄가 확정되었다.
8) 한편 원고는 피고의 대표자 G이 C과 공모하여 원고를 기망하고 돈을 편취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G을 고소하였으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2015. 7. 31. 피고가 C의 범행에 이용된 것에 불과하고 피의사실에 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들어 G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위 불기소 처분에 대하여 불복하여 항고 및 재정신청을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나.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의하면, 우선 C은 원고의 모직사업부 부장으로서 원단구 매와 판매에 관한 계약체결과 대금 회수 등의 업무를 총괄하여 왔으므로, 상법 제15조 소정의 '영업의 특정한 종류 또는 특정한 사항에 대한 위임을 받은 사용인'으로서 위 업무에 관한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사용인이라 할 것이다. 또한 위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원단구매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 것처럼 보이나, 이는 C이 피고의 대표자와의 가공거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가장행위에 불과하고, 그 실질은 원고와 E 사이의 가공거래관계에서 원단의 수수 없이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원단대금을 E에 전달하는 중간대행방식의 거래대행약정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 계약은 부분적 포괄대리권을 가진 사용인인 C이 피고의 대표자와 통모하여 한 허위의 의사표시이므로 민법 제108조 제1항에 따라 무효이고, 이와 같이 대리인이 상대방과 통모하여 허위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본인은 제3자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선의의 제3자로서 보호받을 수 없으므로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계약이 유효함을 주장하거나 그를 전제로 그 이행의 청구 또는 그 의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의 해제를 주장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실제로 유효한 이 사건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고 원고의 계약해제에 따른 피고의 원상회복의무를 인정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통정허위표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권순일
주대법관고영한
대법관김소영
대법관조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