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약식명령에 대해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제1심이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한 데 대하여 피고인만이 항소한 사안에서, 원심이 제1심과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병과한 것은 전체적·실질적으로 볼 때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한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 사례
참조조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김형식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은,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고의적으로 추행행위를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심이 잘못된 사실인정을 함으로써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이 위법하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사실의 인정과 그 전제로 이루어지는 증거의 취사선택 및 평가는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실심법원의 전권에 속한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아도 그 판시와 같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의 사실인정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고이유 주장은 원심법원의 전권에 속하는 사항을 비난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2. 직권판단
가. 약식명령에 대하여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하여는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 ). 또한 피고인만이 항소한 사건에 대하여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 형사소송법 제368조 ). 이때 그 형이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변경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형법상 형의 경중을 기준으로 하되 이를 개별적·형식적으로 고찰할 것이 아니라 주문 전체를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한지 아닌지를 보아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도12967 판결 등 참조).
나.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19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으로서 피고인에 대하여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이 발령되자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였고, 이에 제1심도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자 피고인만이 항소하였다.
원심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법률’) 제13조 제1항 을 들어 피고인에게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300시간의 범위에서 재범예방에 필요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을 필요적으로 병과하여야 하고, 다만 피고인에게 형법 제10조 의 심신장애자 등 이수명령을 부과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이수명령을 병과하지 아니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에게 그러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수명령의 선고를 누락한 제1심판결은 위법하다고 하여 제1심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하였다. 원심은 나아가, 위 ‘이수명령’은 형벌 그 자체가 아니라 보안처분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므로,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항소한 이 사건에 있어서 원심이 새로이 이수명령을 병과한다고 하더라도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제1심과 동일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고, 아울러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하는 이수명령을 병과하였다.
다. 법률 제13조 제1항 은 ‘법원은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면서 300시간의 범위에서 재범예방에 필요한 수강명령 또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을 병과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수명령은 이른바 범죄인에 대한 사회내 처우의 한 유형으로서 형벌 그 자체가 아니라 보안처분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지만,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의무적 이수를 받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된다.
이를 앞서 본 법리와 종합하여 보면,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에 대하여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제1심판결이 동일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데에 대하여 피고인만이 항소한 이 사건에서 원심이 제1심판결에서 정한 벌금형과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새로 이수명령을 병과한 것은 전체적·실질적으로 볼 때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한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이 사건에서 약식명령에서 정한 벌금형과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이수명령을 병과하지 않은 제1심의 조치가 결과적으로는 위법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원심이 제1심판결이 위법하다고 하여 파기한 것은 그 점에서도 잘못되었다.
3. 결론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되, 이 사건은 소송기록과 원심에 이르기까지 조사된 증거들에 의하여 상고법원에서 바로 판결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되므로 형사소송법 제396조 에 의하여 대법원이 직접 판결을 하기로 한다.
제1심판결에 대한 피고인의 항소이유 주장의 요지는 피고인이 추행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피고인이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는 한편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이는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 항소이유 주장은 이유 없고, 제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 및 기록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이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 부분 항소이유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