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4다208194 손해배상
원고피상고인
1. A
2. B
3. C.
4. D
5. E
6. F
7. G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한별
담당변호사 강래혁
피고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서규영, 김태훈, 박유화, 이재형, 정상수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 3. 27. 선고 2013나2023271 판결
판결선고
2014. 9. 4.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다37565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 중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을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역시 국가가 아닌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때만 가능하다 할 것이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큰 상태에서 채무자가 동일하게 시효가 완성된 다른 채권자에게는 임의로 변제를 하면서 당해 채권자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시효 완성을 인정하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등의 경우를 의미한다(위 대법원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한편, 채권자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아니하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2조 제3항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진실규명결정의 결정 요지 및 결정주문에도 채권자가 포함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데 대하여 채권자가 신뢰를 가지게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워 채무자가 시효소멸의 항변을 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다216662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제1심판결을 일부 인용하여, 원고 A은 삼촌 H가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83. 12.초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라고 한다) 수사관에 의해 연행되어 1984. 1. 27.경까지 안기부 조사실에 구금된 사실, 안기부 수사관들은 그 무렵 원고 A의 삼촌 H, 외종숙 I의 혐의사실에 대해 원고 A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손, 발, 몽둥이로 원고 A의 온몸을 때리고 발로 짓밟는 등 폭행하고, 갖은 욕설을 하며 "제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등의 협박을 한 사실, 원고 A은 1984. 2. 24.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H, I는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기소되어 1984. 5. 15. 위 법원에서 H는 사형에, I는 징역 15년에 처하는 판결을 선고받았고, 위 판결은 1984. 9. 19. 서울고등법원의 항소기각 판결, 1985. 1. 22.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사실, I는 2005. 12. 14.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에 위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신청을 하였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 10. 20. I가 안기부 조사실에 최소 16일 동안 불법구금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한 사실, I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위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하여 위 법원에서 2011. 6. 9. 재심개시결정을, 2012. 5. 4. 무죄 판결을 받았고, 위 판결에 대한 검사의 항소,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2012. 11. 29. 위 판결이 확정된 사실, 원고 B은 원고 A의 어머니이고, 나머지 원고들은 원고 A의 형제자매인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 ① 원고들이 소멸시효 완성 전에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지 못하게 된 것은 피고 소속 안기부 수사관들의 조직적, 의도적 위법행위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들에 의해 I, H 등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어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므로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 전에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고 평가할 수 있고, ② 이 사건에서 원고 A에 대하여는 유죄의 확정판결이 존재하지 아니하나, 원고 A과 함께 연행되어 구금되었던 H와 I는 모두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사형 또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어 수감생활을 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 A은 I에 대한 유죄의 확정판결이 재심으로 취소되고, 그 재심사유 등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가혹행위 등이 객관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를 주장하여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인데, 원고들이 I에 대한 형사판결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된 2012. 11, 29.로부터 6개월 이내인 2013. 5. 3. 이 사건 소를 제기함으로써 위와 같은 사실상의 장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였으며, ③ 이 사건은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집단적·의도적으로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에 관한 것으로서 피해자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매우 큰 반면, 손해배상의무 이행에 관한 피고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작고, ④ I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참고인이자 그 관련 사건의 피의자로서 I의 진실규명신청을 통해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행된 조사에 성실하게 임한 원고 A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 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①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 전에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고 볼 수 없고, ② 원고 A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적이 없는 이 사건에서 I에 대한 유죄판결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된 2012. 11. 29.까지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으며, ③ 이 사건에서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큰 상태에서 채무자가 동일하게 시효가 완성된 다른 채권자에게는 임의로 변제를 하면서 당해 채권자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도 없고, ④ 원고 A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적이 없는 이 사건에서 피고가 시효완성 후에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들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을 들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민일영
대법관이인복
주심대법관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