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묵시적인 의사의 합치에 의한 약혼 성립을 인정하여 이를 파기한 자에게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판결요지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당사자의 일방이 타방에게 약혼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약 2년간에 걸친 교제 및 계속되는 성적 교섭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약혼의 성립에 대한 신뢰를 주었다면, 이러한 신뢰의 보호를 위하여 당사자 사이에 약혼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따라서 당사자의 일방이 그 약혼을 부당하게 파기하였다면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한 사례.
원고
원고 (소송대리인 남부종합법무법인 담당변호사 양영식 외 1인)
피고
피고
주문
1. 피고는 원고에게 금 20,000,000원 및 이에 대한 1995. 7. 14.부터 완제일까지 연 2할 5푼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이를 2분하여 그 1은 피고의, 나머지는 원고의 각 부담으로 한다.
4. 위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금 70,000,000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판결 선고일부터 완제일까지 연 2할 5푼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이유
1. 갑 제1, 2호증, 갑 제3호증의 1 내지 13의 각 기재와 당원 조사관 작성의 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이름 생략)여고를 졸업하고 대동건설에서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던 중 1991. 9.경 서울 관철동 노상에서 우연히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금성사 기획실에 근무하고 있던 피고를 만나 교제를 시작한 사실, 원·피고는 같은 해 11.경 피고의 제의로 1박 2일 예정으로 강릉 경포대에 놀러가서 그 곳에 있는 동해관광호텔에 투숙하였는데 그날 밤 원고는 피고가 성관계를 요구하자 처음에는 이를 거절하다가 피고가 "잘 생각해 보아라, 너 왜 이래."라고 말하자 원고는 피고가 자신의 장래를 책임져 줄 의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피고의 요구를 받아들인 사실, 그 후 원·피고는 피고의 주거지 등에서 일주일에 1, 2회씩 만나 성관계를 가졌고, 원고는 3회씩이나 임신을 하여 그 때마다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으나, 피고는 원고에게 결혼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언약하지 않은 채 단지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만을 되풀이하였고, 친구들의 결혼식에 같이 간 경우에 원고에게 어쩌다가 "우리도 결혼하지."라고 지나가는 말투로 몇 번 결혼에 대하여 언급하였을 뿐 구체적인 결혼 준비나 결혼 날짜, 미래의 설계 등에 대하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사실, 그러던 중 피고는 1993. 8.경 원고의 부모가 별거를 하고 있고 원고의 오빠는 유흥업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등 원고의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자신의 부모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원고와의 혼인을 승낙할 리가 없고 자신도 학력과 가정환경에서 큰 차이가 나는 원고와 결혼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원고에게 사랑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하였고, 이에 원고는 피고가 그 전에 이미 원고의 가정환경을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완강하게 피고의 요구를 거절한 사실, 원고는 그 후 피고의 친구인 소외 1로부터 피고가 이미 같은 해 7.경 서울여대를 졸업한 후 한국 아이.비.엠(I.B.M)에 근무하고 있던 소외 2와 맞선을 보고 결혼하기로 약속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위 소외 2에게 전화를 하여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하였으나 정작 약속장소에는 위 소외 2 대신 피고가 나타나 자신은 위 소외 2와는 결혼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집안문제로 인하여 원고와도 결혼을 할 수 없으니 그만 헤어져 달라고 거듭 요청한 사실, 원고는 같은 해 8. 26. 피고의 생일축하차 만나 서울 명동에서 놀다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소재 레인보우라는 모텔에서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가졌고 그 당시를 전후하여 원고는 피고에게 자신이 피고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다고 알린 사실, 피고는 같은 해 9월 및 10월경 원고를 만나 임신중절을 요구하였으나 원고는 이를 거절하였고 그 후 원고는 피고와 헤어진 상태에서라도 아기를 출산하면 피고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1994. 4. 14. 아기를 출산한 사실, 원고는 아기를 출산하고 며칠이 지난 후 피고에게 출산 사실을 알렸으나 피고는 이미 같은 해 4. 20. 위 소외 2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사실, 한편 원고가 출산한 아기는 같은 해 12. 15. 폐렴으로 인하여 사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원고에게 위와 같은 약 2년에 걸친 일련의 행동 및 계속되는 성적 교섭에 의하여 간접적이고 묵시적이나마 원고와 혼인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여 원고에게 약혼의 성립에 대한 신뢰를 주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원고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원·피고 사이에는 약혼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피고는 원고와 교제를 시작할 당시 이미 알고 있었던 원고의 가정환경 및 학력을 핑계삼아 일방적으로 원고와 별거를 선언함으로써 위 약혼을 부당하게 파기하였다 할 것이며,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약혼이 부당하게 파기됨으로써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피고가 배상하여야 할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 보건대, 원·피고의 나이, 학력, 가족관계, 직업, 재산정도, 약혼이 부당하게 파기되기에 이른 경위와 그 책임 정도, 특히 원고도 정상적인 약혼식을 거행한 것도 아니고 결혼에 대한 어떤 명시적인 확약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와 무분별하게 성관계를 가지고 수회에 걸친 임신중절수술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아기까지 출산함으로써 스스로 피해를 확대시킨 잘못이 있는 점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보면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하여야 할 위자료의 액수는 금 2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금 20,000,000원 및 이에 대한 이 판결선고 다음날인 1995. 7. 14.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비율에 의한 법정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