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당 사 자】
청 구 인 황○범
대리인 변호사 황성필
당해사건
인천지방법원부천지원 2003고정26 근로기준법위반
주문
1.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에 대한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2. 근로기준법 제24조 제2문, 제115조 제1호 중 ‘제24조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로서 근로자 채용시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구두로만 설명하고 서면으로 명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유로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15조 및 동법 시행령 제8조 위반으로 기소되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2003고정26 근로기준법위반), 재판의 근거가 되는 위 법률 및 시행령이 죄형법정주의,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제청신청(2003초기566)을 하였으나 2004. 10. 8. 위 위헌제정신청이 기각되자 같은 달 13.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청구인은 이 사건 심판청구의 청구취지에서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1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8조 전체에 대한 위헌판단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구인이 이 사건 헌법소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다투고 있는 것은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문의 위헌성이 아니라,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4조 제2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근로기준법 제24조 제2문(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과 ‘제24조’의 규정에 위반한 자에 대하여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제115조 제1호 중 ‘제24조에 관한 부분’(이하 ‘이 사건 처벌조항’이라 한다) 및 같은 법 시행령 제8조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라 할 것이고, 그 규정 및 관련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심판의 대상
근로기준법 제24조(근로조건의 명시) 사용자는 근로계약 체결 시에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근로시간 기타의 근로조건을 명시하여야 한다.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하여야 한다.
제115조(벌칙)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 제24조 …… 의 규정에 위반한 자
2. 내지 5. 생략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근로조건의 명시방법) 사용자는 법 제24조 후단의 규정에 의하여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한다.
(2) 관련규정
근로기준법 제10조(적용범위) ① 이 법은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의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제96조(취업규칙의 작성․신고) 상시 1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다음의 사항에 관한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변경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또한 같다.
1.시업․종업의 시각, 휴게시간, 휴일, 휴가 및 교대근로에 관한 사항
2.임금의 결정․계산․지급방법, 임금의 산정기간․지급시기 및 승급에 관한 사항
3. 가족수당의 계산․지급방법에 관한 사항
4. 퇴직에 관한 사항
5.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한 퇴직금, 상여 및 최저임금에 관한 사항
6. 근로자의 식비, 작업용품 등 부담에 관한 사항
7. 근로자를 위한 교육시설에 관한 사항
7의2. 산전 후 휴가․육아휴직 등 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에 관한 사항
8.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
9. 업무상과 업무 외의 재해부조에 관한 사항
10. 표창과 제재에 관한 사항
11.기타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 전체에 적용될 사항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1조의2(적용범위)「근로기준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10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법 규정은 별표1과 같다.
제7조(명시하여야 할 근로조건) ① 법 제24조 전단에서 “기타의 근로조건”이라 함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말한다.
1. 취업의 장소와 종사하여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2. 법 제96조 제1호 내지 제11호에 규정된 사항
3.사업장의 부속기숙사에 근로자를 기숙하게 하는 경우에는 기숙사 규칙에 정한 사항
2.청구인의 주장, 법원의 제청신청 기각이유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의 주장
(1) 근로조건의 명시는 민법 제103조 및 제104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 한 구두명시, 서면명시 선택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개인사업자의 경우 구두로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계약하는 구두계약이 일반적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사용자의 근로조건 명시를 의무화하면서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에 위임을 하여 동법 시행령 제8조에서 이를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구두로 근로조건
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사람까지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24조는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 명확성의 원칙 등을 위반하는 위헌적 법률이다.
(2) 근로기준법 제24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8조는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 시행령에 독자적인 범죄의 구성요건을 정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공익상 근로조건의 서면작성을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행정지도나 과태료 부과 등의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한데 처벌규정을 둔 것은 과잉처벌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 나아가 서면으로 근로조건을 명시한 사람과 구두로 근로조건을 명시한 사람을 합리적 근거없이 차별하여 처벌함으로써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나. 법원의 위헌제청신청 기각이유
근로조건은 근로계약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에 해당되는데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로서는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이 생길 경우 그 입증의 부담으로 인하여 사실상 불리한 지위에 처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일반 민사계약법의 원칙을 넘어서 “서면명시방법”을 사용자에게 추가로 의무지운 것이라 할 것이고, 서면명시방법이라는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서 근로자의 생활 보장 및 향상이라는 입법목적을 구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면에 의한 명시의무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근로조건의 명시방법을 하위법령에 위임하였다고 하여 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며 따라서 헌법상 평등원칙 위배 주장은 이유 없고, 같은 이유로 비례원칙, 과잉처벌입법금지원칙에 위반하였다는 주장도 이유 없다.
다. 노동부장관의 의견
(1) 노동시장에서 사실상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있는 근로자는 취업에 급급한 나머지 임금 및 제반 근로조건이 미확정된 상태로 불리한 취업계약을 체결할 위험성이 크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에게 임금, 근로시간 및 기타의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고 그 중에서 특히 근로자의 생계와 직접 관련되는 임금에 대해서는 그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 근로조건의 내용을 명시하는 방법으로는 구두, 서면, 공증서면, 일반우편, 내용증명우편, 전자문서 등 여러 형태를 예상할 수 있다. 이때 그 구체적인 방법의 선정은 이 사건 법률의 입법목적인 ‘근로조건이 미확정된 상태에서
계약관계에 들어서게 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예방 및 분쟁발생 시 당해 근로조건에 대한 외부에서의 객관적 입증 용이’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함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사건 법률규정은 이미 대통령령에 위임되어 규정될 내용 및 범위에 관해 기본적 사항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누구라도 하위법령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되어 있다. 또한 동법 시행령이 당해 임금의 구성항목 등에 관해서는 “서면으로 명시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그 위임의 취지에 따라 명시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를 처벌법규의 포괄위임금지원칙 내지 죄형법정주의원칙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3)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동법 제96조의 취업규칙에 의해 임금 및 주요 근로조건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명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10인 이하 중소영세기업은 근로조건의 명시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아 근로자의 피해가 크고 계약문화의 미성숙, 특히 임금체불 등 임금에 대한 분쟁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근로조건의 서면 명시 의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하였다고 하여 이를 입법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3.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규정에 따른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때에 당사자가 위헌제청신청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이를 배척하였을 경우에 법원의 제청에 갈음하여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의 형태로써 심판청구를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그 심판의 대상은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률인 것이지 대통령령은 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헌재 1997. 10. 30. 95헌바7 , 판례집 9-2, 437, 447; 헌재 1999. 1. 28. 97헌바90 , 판례집 11-1, 19, 27-28 참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 중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에 대한 부분은 그 심판대상이 될 수 없는 대통령령에 대한 것이므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부적법하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근로기준 명시제도
헌법 제3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3항에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이와 같은 헌법규정을 근거로 하여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고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관계의 성립․존속 또는 종료와 관련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용자의 근로조건 명시의무규정(제24조)이다. 근로계약에 있어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는 사실상의 교섭력 차이가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거나 확정적 근로조건을 제시하지 않음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거나 부당한 근로를 강요할 위험이 항시 존재한다. 이에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근로시간 기타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하고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급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이 명시한 방법”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근로시장에서 근로자가 근로조건이 미확정된 상태에서 계약관계에 들어서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며, 분쟁이 발생한 경우 당해 근로조건에 대해 객관적 입증이 용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사건 처벌조항인 근로기준법 제115조 제1호는 근로기준법 제24조를 위반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여 동 규정의 실행을 담보하도록 하고 있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의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배 여부
(1) 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죄형법정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원칙은 죄와 형을 입법부가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규정하는 것을 그 핵심적 내용으로 하고, 나아가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규정하더라도 그 법률조항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그러나 아무리 권력분립이나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의 원리라 하더라도 형벌법규를 법률에 의하여 규정하라는 원칙을 예외 없이 관철한다는 것은 사회현상이 갈수록 복잡다기해져가는 현대국가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에 적합하지도 아니하므로 형벌법규에 대하여도 행정부의 명령에 위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위임입법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나, 의회입법의 원칙, 법치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헌법 제75조는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서만 위임할 수 있도록 그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특히 형벌법규의 위임에 있어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예측성의 원칙에 의하여 위임법률이 그 적용을 받는 국민에 대하여 범죄의 구성요건과 형벌의 예측가능한 구체적 내용을 규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예측가능성의 유무는 당해 특정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종합판단하여야 하며, 각 대상법률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헌재 1994. 7. 29. 93헌가12 , 판례집 6-2, 57-58; 헌재 2005. 9. 29. 2003헌바94 , 판례집 17-2, 157-158 참조).
(2)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로 하여금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급방법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하도록 하여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라 할 수 있는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을 법률로 규정하지 않은 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포괄위임으로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고 할 것이다.
임금에 관한 명시방법을 기타 다른 근로조건들의 명시방법과 동일하게 정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객관적으로 명확한 방법을 택할 것인지, 그리고 좀 더 명확한 명시방법이 요구된다면 가능한 여러 명시방법들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가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 여러 근로조건들 가운데서도 특히 근로자의 생계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는 임금에 관련된 사항은 사용자가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미리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용자가 그 지
위를 이용하여 근로자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할 위험이 크다. 또한 임금에 관한 근로조건의 미확정 및 불명확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분쟁의 예방은 근로자의 보호에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임금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명확한 입증이 보다 더 요구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입법자는 임금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기타의 근로조건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분명한 명시방법 및 수단을 요구하기 위하여 그 대강을 정한 채 구체적인 것의 규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이는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보호라는 헌법적 요청과 이를 근거로 한 근로기준법의 제정목적에 비추어 볼 때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물론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임금에 관한 명시방법 또한 대통령령에 위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명확히 규율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의사표현의 수단이 다양한 상황에서 상정 가능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명시방법들 중 어느 것이 위와 같은 근로자 보호의 입법취지에 가장 적합할 것인지, 또한 그러한 명시방법의 효력 발생을 부가적인 다른 절차나 요건과 연계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그때 그때의 노사 간 근로관계의 상황 그리고 사회적․경제적․기술적 제반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관하여는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을 통하여 탄력적으로 규율할 필요가 없지 않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근로조건 중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을 대통령령에 위임할 입법기술상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근로조건이 명시되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문을 전제로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급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이 명시한 방법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당해 규정을 통해 대통령령으로 위임되어 규정될 내용이 여러 근로조건들 중 임금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 임금에 관한 사항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뿐이라는 점을 명료히 규정함으로써 이미 법률로 대통령령에 위임될 내용과 범위 그리고 그 한계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문이 근로조건에 대해 명시할 것을 규정하면서 특별히 근로자의 근로조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만은 대통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이는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은 다른 근로조건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하여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명시방법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점이 예측되고, 명시의 방법이라는 것도 구두, 서면, 내용증명, 공증 등 그 선택의 여지가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탓에 이 사건 법률조항에 따라 대통령령에 규정될 내용에 대해서는 그 구체적인 예측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위임입법의 예측가능성이라는 점에 있어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을 대통령령에 위임할 입법기술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며, 대통령령에 의해 정해질 ‘명시방법’의 범위나 한계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명시방법을 직접 법률에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괄위임에 따른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 볼 수는 없다.
다. 이 사건 처벌조항의 위헌 여부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범죄의 설정과 법정형의 종류와 범위의 선택은 행위의 사회적 악성과 범죄의 죄질 및 보호법익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일반의 가치관과 법감정 그리고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으로서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인정되어야 할 분야이다. 따라서 어느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그 법정형을 정한 것이 그 범죄의 죄질 및 이에 따른 행위자의 책임에 비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어서 현저히 형벌체계상의 균형을 잃고 있다거나 그 범죄에 대한 형벌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달성함에 있어 필요한 정도를 일탈하였다는 등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 및 비례의 원칙 등에 명백히 위배되는 경우가 아닌 한, 쉽사리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된다(헌재 1992. 4. 28. 90헌바24 , 판례집 4, 225, 229; 헌재 1995. 10. 26. 92헌바45 , 판례집 7-2, 397, 404; 헌재 1999. 5. 27. 96헌바16 , 판례집 11-1, 529, 538-539; 헌재 2002. 11. 29. 2001헌가16 , 판례집 13-2, 578-579 등 참조).
이 사건 처벌조항이 위와 같은 헌법원리에 위배될 정도로 입법자가 입법재량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경우에 해당하는 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근로계약의 당사자는 실질적으로 대등하다고 할 수 없다.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의 결정에 있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근로자는 근로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현재도 이와 같은 위험성
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에 우리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자의 인간존엄성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에 대한 법률유보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 및 향상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정을 두고 있고 그 실질적인 규범력 확보를 위해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근로자보호와 관련된 법규정을 위반한 경우 그 제재수단을 행정질서벌로 규율할 것인지 국가형벌권으로 규율할 것인지 여부는 우리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의 여건과 문화, 사용자와 근로자의 권리의무관계에 대한 의식의 성숙도, 근로계약의 관행, 근로계약과 관련된 분쟁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영역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자에게 있어 근로조건, 그 중에서도 특히 임금은 단순히 근로제공의 대가라는 의미 외에도 근로자 자신 및 그 부양가족의 생존권과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에서 임금과 관련된 분쟁은 임금체불과 함께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곧 근로자의 불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임금조건이 미확정된 상태에서 근로자에게 발생 가능한 위험 및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 그 입증을 용이하게 하여 근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임금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을 대통령령에 규정하고 사용자가 이를 따르도록 하고 그 위반 시 행정질서벌이 아닌 형벌을 부과 하였다고 하여 이를 두고 입법재량권을 남용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법정형의 종류와 상한을 정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요소도 근본적으로 같지 않으므로 법정형의 범위를 단순히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그 과중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처벌규정이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행위자의 책임에 비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라거나 그 범죄에 대한 형벌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달성함에 있어 필요한 정도를 일탈하여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
5. 결 론
따라서 청구인의 심판청구 중 시행령 부분은 부적법하므로 각하하고, 법률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주선회의 아래 6.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6.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
나는 다수의견과 달리 근로계약 체결 시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의 구성항목 등에 관한 ‘명시방법’을 법률로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보므로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바이다.
가. 죄형법정주의와 위임입법의 한계
‘법률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말로 표현되는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의 구성요건과 그에 대한 형벌의 내용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부가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치국가 형법의 기본원칙이다.
현대국가가 복리국가를 지향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사회, 경제, 과학기술 등 행정현상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탄력적인 입법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처벌법규에 있어서도 그 구성요건의 일부를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경우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나, 처벌법규의 위임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원칙의 하나인 죄형법정주의의 중대한 예외가 되는 것이므로, 특히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하고, 이러한 위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예측가능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재판소는 어업단속․위생관리․유통질서 기타 어업조정을 위하여 어구의 선적․사용에 관한 제한 또는 금지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수산업법 제52조 등 위헌제청 사건에서 어족자원 보호를 위한 각종 행정명령이 수온, 해류, 먹이생물 등의 상태에 따라 수산동식물의 서식장소가 이루어지므로 이에 상응하게 발해져야 하고, 이러한 상태들이 시간적(월별, 계절별)․공간적(해역별, 수심별)으로 다양하게 변동되기 때문에 법률로 일일이 규정할 경우 그러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생겨날 수 있으므로 그 위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고(헌재 1994. 6. 30. 93헌가15 등, 판례집 6-1, 576-591 참조), 다단계 판매조직의 개설 또는 관리․운영행위를 금지하면서, 그 구성요건의 일부인 ‘조직’의 내용을 상공부령에 위임하고 있는 구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제18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사건에서 다단계 판매조직이 그 운영방식이나 활동내용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새로운 판매기법이 개발되고 있어 그에 맞추어 규제도 시기적절하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입법자인 국회가 이러한 다단계 판매조직의 조직
형태, 운영방식이나 활동내용에 관한 규정을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하지 아니하고 이를 행정입법에 위임한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는 바(헌재 1997. 11. 27. 96헌바12 , 판례집 9-2, 607-621 참조), 이는 결국 우리 재판소도 국회의 전문적, 기술적 능력의 한계 및 시간적 적응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만, 다시 말하면 전문적 기술영역에 관련된 것이거나 급변하는 상황의 변화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요청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처벌법규의 위임이 허용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의 명시의무를 규정하면서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의 ‘명시방법’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에 위임을 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령으로 위임된 사항은 사용자에게 있어서는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처벌법규를 위임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그 위임에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먼저 ‘명시(明示)’의 사전적 의미는 ‘밝게 드러내 보임’이므로 명시방법이란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라고 해석된다. 그런데 임금의 구성항목 등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 전문 기술적 영역에 속하거나,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동을 요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명시방법으로는 구두에 의한 방법, 일반서면이나 공증서면, 일반우편, 내용증명 및 전자문서 등에 의한 방법을 예상할 수 있으나, 사실상 ‘구두’에 의한 방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서면’에 의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 명시방법의 종류는 오히려 제한적이고, 실제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임을 받은 근로기준법시행령 제8조는 신설 당시부터 근로조건의 명시방법을 ‘서면명시’로 규정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개정된 바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시방법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할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입법기술상 이를 미리 법률로써 규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
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처벌법규의 위임을 허용하는 요건인 특히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예측가능성이 확보되었는지 여부와는 관
련 없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어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주심)
주선회 전효숙 이공현 조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