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인지청구권의 행사에 실효의 법리가 적용되는지 여부(소극)
[2] 인지청구권의 행사가 상속재산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정당한 신분관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라면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 하여 막을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인지청구권은 본인의 일신전속적인 신분관계상의 권리로서 포기할 수도 없으며 포기하였더라도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이고, 이와 같이 인지청구권의 포기가 허용되지 않는 이상 거기에 실효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도 없다.
[2] 인지청구권의 행사가 상속재산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정당한 신분관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라면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 하여 막을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판례
[1][2] 대법원 1982. 3. 9. 선고 81므10 판결
원고,피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신현호 외 1인)
피고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피고보조참가인,상고인
피고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정현 담당변호사 김성기 외 4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보조참가인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기간경과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본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증거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가. 원고의 생모인 소외 1은 소외 2와 혼인하였다가(1957. 3. 8. 혼인신고) 1958. 6. 12. 협의이혼하고 같은 해 부산 중앙동 근처에서 다방을 경영하였는데, 그 무렵 위 다방에 손님으로 드나들던 소외 망 소외 3을 알게 되었다. 소외 3은 그 당시 피고보조참가인과 혼인하여 살면서 부산 대연동 소재 모직물 공장을 소유하고 부산 범일동에서 모직물 판매상을 하고 있었는데 소외 1에게는 자신의 처가 난치병을 앓고 있으니 사별하게 되면 결혼하자고 말하였고, 소외 1은 이를 믿고 소외 3과 동거하였고, 그 무렵 원고를 포태하였다.
나. 소외 1은 그 후 소외 3의 권유로 다방을 그만두고 소외 3이 마련해 준 집에서 살면서 1959. 7. 24. 원고를 출산하였는데, 소외 3은 작명소에 가서 원고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1963년경 소외 3의 처인 피고보조참가인이 소외 1과 소외 3 사이의 관계를 알고 소외 1의 집에 찾아옴으로써 소외 1은 소외 3이 자신을 속여서 동거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소외 3과의 5년간의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하숙업 등을 하면서 혼자서 원고를 양육하였다. 소외 3은 그 당시 소외 1에게 화폐개혁 후 찾은 돈이라면서 금 20만 원을 건네 주었고, 그 후에도 불규칙적으로 4, 5 등을 통해 원고의 양육비 명목으로 금원을 전달해 주었다.
다. 소외 1은 1971년경 원고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위 소외 5를통해 소외 3에게 원고를 소외 3의 호적에 올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얼마 후 소외 3은 6·25 전쟁 당시 월북하여 생사불명인 자신의 형 소외 소외 6의 호적에 같은 해 10월 15일 소외 6과 소외 1이 혼인신고한 것으로 등재되고, 소외 6과 소외 1 사이에서 원고가 1959. 7. 24. 부산 서구 부민동 3가 1의 6에서 출생하였다는 내용의 출생신고를 같은 날짜에 소외 6이 한 것으로 기재된 호적등본을 소외 1에게 건네 주었다.
라. 그 후에도 소외 3은 소외 7 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소외 1과는 만나지 않았으나 원고에 대해서는 그 성장과정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즉, 소외 3은 원고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소외 7 주식회사에서 영업과장을 하던 소외 8을 시켜 원고와의 연락 및 생활비 전달 등의 일을 중간에서 맡아 처리하게 하였고, 그 후 원고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삼호아파트를 전세 얻어 소외 1과 원고를 살게 하였으며, 원고의 대학 입학금 및 그 이후의 학비 등을 부담하였다. 또한, 1981년경에는 소외 8을 시켜 소외 6이 1974. 9. 6. 사망하였다는 내용의 사망신고를 함으로써 원고가 6개월의 방위 복무만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였다. 또한 소외 3은 원고가 인턴 과정을 마칠 무렵 카톨릭 의대 교수이던 소외 9와 성형외과 학회장이던 소외 10을 자신이 직접 만나 원고가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할 병원을 소개하여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고, 원고가 1993년경 소외 11과 혼인하자(혼인신고는 1994. 6. 11. 경료되었다) 같은 해 11월경 직접 신혼집에 찾아와 소외 11에게 자신이 원고의 친아버지임을 밝히고 원고에게 결혼 축하금 및 병원 개업 자금 명목으로 금 1억 원을 주었고, 1994. 11. 1. 원고와 소외 11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그 이름도 자기 집안의 항렬자인 "준(준)"이라는 글자를 넣어 "○준(○준)"으로 지어주었으며, 1995년 11월경에는 소외 12의 돌 선물로 1,000만 원을 내 놓으면서 교육보험에나 가입하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마. 원고는 1995년 11월경 소외 3을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소외 3에게 호적을 제대로 정리해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이에 소외 3은 자신이 알아서 해 주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원고는 소외 3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였고, 1996. 11. 3. 신문보도를 통해 소외 3이 그 전날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소외 3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한편 소외 3의 처인 피고보조참가인에게 자신의 호적을 제대로 정리해 줄 것과 소외 3이 자신을 위하여 배려해 둔 것이 없는지 여부를 물어보았으나 피고보조참가인을 비롯한 소외 3의 유족들이 자신을 소외 3의 아들로 인정해 주지 않자 같은 해 12월 24일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판결을 기록에 대조하여 살펴보니,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제1심법원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법의학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혈액채취에 의한 유전자감정을 촉탁하였는데, 두 곳에서는 모두 소외 3의 처인 피고보조참가인과 그 자식들인 소외 13, 14, 15, 16, 17 그리고 원고와 소외 1 등 8인의 유전자형을 검사하여 대립유전자들을 밝혀낸 후, 피고보조참가인과 그 자식들의 유전자형의 대조과정을 통해 소외 3의 유전자형을 추정한 후, 그 추정된 유전자형과 원고의 모인 소외 1의 유전자형 사이에서 원고의 유전자형이 생성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한국인에게 각 유전자형이 발현하는 빈도를 사용하여 원고가 소외 3의 친자일 수 있는 가능성의 누적확률을 계산하였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법의학연구소에서는 13종의 유전자형에 관하여 검사를 시행하였는데, 소외 3의 유전자형으로 추정되는 13종의 유전자형 중 TPOX 유전자형을 제외한 나머지 12종의 유전자형은 모두 소외 1과의 결합에 의하여 원고에게 생성될 수 있는 것이고, TPOX 유전자형의 경우 소외 3의 것은 8-9형 또는 8-11형으로 추정되는바, 위 유전자형이 8-9형이라면 소외 1과의 결합에 의하여 원고의 유전자형이 생성될 수 없으나, 소외 3의 TPOX 유전자형이 8-11형인 경우에는 원고의 유전자형이 생성될 수 있고, 그 경우 원고가 친자일 확률이 97.12%라고 감정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는 32종의 상염색체 유전자와 3종의 성염색체(Y염색체) 유전자형에 관한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상염색체 유전자형에 대한 검사결과 원고가 소외 3의 친자일 확률은 100%이고, 성염색체 유전자형에 대한 검사결과 원고의 유전자형이 소외 3의 아들인 소외 13, 17의 것과 동일하여 원고와 13, 14는 모두 동일 부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감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심은 위 각 감정기관들이 친자 가능성 판정 과정에서 배제한 5종의 유전자형(HLA-A, HLA-B, D3S2406, TPOX, CF1P0형)에 관하여 위 각 감정촉탁결과에 의하더라도 소외 3의 유전자형은 이를 확정할 수 없으므로 소외 3이 어느 형의 유전자형을 가진 것인지 단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위 5종의 유전자형을 배제하고 행하여진 감정촉탁결과가 원고의 친자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나머지 종별의 유전자형의 경우에는(고려대학교 12종, 서울대학교 33종) 원고의 것과 배치·모순되지 아니하고, 그 각 유전자형만의 발현빈도에 따른 친자 가능성의 확률도 아주 높은 것인데다가, 위 각 감정촉탁 결과 어느 것에 의하더라도 소외 3의 것으로 확정된 유전자형의 경우는 원고의 것과 배치·모순되는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여, 위 각 감정촉탁결과를 취신하고 여기에 앞서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3 사이에서 출생한 소외 3의 친생자임을 인정하고, 원고의 이 사건 인지청구를 인용하였다.
관련 증거들을 기록에 대조하여 살펴보면, 이러한 원심의 증거채택과 사실인정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 또한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3.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원심은, 원고가 출생 이후 38년간을 살아오면서도 소외 3을 상대로 자신이 소외 3의 친자임을 주장하지 않았고 소외 6의 친자로 입적된 데 대하여 아무런 이의 없이 살아왔으며, 그리하여 피고보조참가인을 비롯한 소외 3의 친족들도 원고가 더 이상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 또는 신뢰를 갖고 장기간에 걸쳐 사회생활 및 법률관계를 형성해 왔던 점에 비추어 소외 3의 사망 이후 비로소 제기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른바, 실효의 법리에 따라 인지청구권이 실효된 후에 행하여진 것으로써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피고보조참가인의 주장에 대하여, 인지청구권은 본인의 일신전속적인 신분관계상의 권리로서 포기할 수도 없으며 포기하였더라도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이고, 이와 같이 인지청구권의 포기가 허용되지 않는 이상 거기에 실효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도 없다 고 판단하여, 피고보조참가인의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실효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고, 한편 피고보조참가인이 상고이유에서 들고 있는 대법원판결들은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 하여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다.
4. 상고이유 제4점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피고보조참가인이 원심에서 원고의 이 사건 제소는, 소외 3과의 친생자관계의 확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외 3이 남긴 상속재산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원고가 인지청구권을 장기간 행사하지 아니함으로써 실효된 후에 행사된 것이므로 신의칙에 반하는 소권의 남용으로서 각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음에도(기록 1116쪽) 원심이 이에 대한 판단을 유탈한 위법이 있음은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원고의 이 사건 인지청구권 행사에 실효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또한 원고의 이 사건 제소가 소외 3이 남긴 상속재산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정당한 신분관계를 확정하기 위한 이 사건 제소를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 하여 막을 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 피고의 위 항변은 결국 이유 없어 배척될 경우임이 명백하다(대법원 1982. 3. 9. 선고 81므10 판결 참조).
따라서 원심의 이러한 잘못은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어 판결의 파기사유가 되는 위법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 부분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5.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피고보조참가인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