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3가합42352 손해배상(기)
원고
1. A
2. B
3. C.
4. D
5. E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4. 4. 3.
판결선고
2014, 4, 24.
주문
1. 피고는 원고 A에게 17,450,503원 및 이에 대하여 2014. 4. 3.부터 2014. 4. 2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 A의 나머지 청구 및 원고 B, C, D, E의 각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원고 A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그 중 10%는 원고 A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하고, 원고 B, C, D, E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 B, C, D, E이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A에게 18,529,256원, 원고 B, C, D, E에게 각 3,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1949. 7.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인정사실
가. 대구10월사건
1) 대구10월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의 친일관리 고용, 토지개혁 지연 및 강압적 식량공출 시행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 및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으로, 1946. 9. 하순경 일어난 노동자들의 전국적 총파업에 이어 1946. 10. 1.부터 그 다음날까지 사이에 대구 지역에서 주민봉기의 형태로 발생했다.
2) 1946. 10. 1, 대구역 및 대구공회당 인근에 노동자 등 수천 명이 집결하여 경찰 100여명과 대치하면서 시작된 대구 지역의 시위는 미군정이 1946, 10, 217:00경 계엄령을 선포하여 진압했으나 1946. 10. 6.까지 경북지역으로, 1946. 12. 중순경까지 남한 전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나.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1) 대구·경북 지역 주민 중 대구10월사건의 진압과정에서 검거된 7,500여 명은 취조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석방된 뒤 경찰 및 우익단체에 의해 가옥과 재산을 파괴 · 몰수당하는 등의 보복을 당한 경우도 있고, 적법절차 없이 사살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군경에 의한 진압이 강경하자 대구 10월사건 참여자 중 일부는 잠적하거나 입산 후 야산대를 조직하여 빨치산유격대로 발전하였고, 이에 맞서 경찰은 수시로 빨치산 토벌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입산한 자들 뿐 아니라 주거지역에 있던 대구10월 사건 관련자, F당 가입자와 그 가족들 또는 대구10월사건과 무관한 지역주민들 중 일부를 살해하기도 하였다.
2) 칠곡군 G에 거주하던 H은 형 I(대구 철도 화물 조역)이 대구 10월사건 관련 자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1949. 5. 말경 지천지서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H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을 칠곡경찰서로 강제연행하여 구금했다가 일부는 석방하고 일부는 석적읍 성곡리에 있는 벼랑골로 끌고 가 사살하였는데, 그 중 H은 1949. 6. 초순경 위 벼 랑골에서 사살되었다(이하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이라 한다).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1)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 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2005. 12. 7.부터 2006. 11.24.까지 사이에 J 외 5명으로부터 1946. 10. 초순경 경북 칠곡, 영천 지역에서 대구10월사건의 진압과정 및 한국전쟁 전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관하여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 이를 '대구10월 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으로 분류하고 '1945. 8. 15.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여 조사개시결정을 하였으며, 2008. 1.경부터 2010. 3.경까지 신청인들, 사건 목격자 및 진실규명 대상자의 가족과 이웃, 마을주민 등 피해자 측 참고인 108명과 사건 당시 경찰 및 청년단원 등 가해자 측참고인 20명을 조사하였고, 국회, 경찰서, 국방부 등에서 조사보고서, 신원기록편람, 경찰 연혁사, 미군문서, 전사(戰史), 언론보도자료, 연구문헌, 회고록 등을 입수하여 분석 · 검토하는 한편, 신청인과 참고인들이 사건 발생 장소로 지목한 대구, 칠곡, 영천, 경주 지역을 찾아가 사건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조사하였다.
2)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 결과 2010. 3. 30.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 (대구·칠곡·영천·경주지역) 진실규명결정서'를 통해 진실규명 대상자 5명과 진실규명 신청이 없었던 55명을 1946. 10. 초순경부터 1948. 8. 15.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의 기간 대구·경북 지역 대구10월사건 진압과정의 희생자로, H 등을 1948. 8. 15.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한국전쟁까지의 시기에 대구 10월사건의 관련 자라는 이유로 군경에 의해 희생된 희생거명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면서,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법적 절차 없이 민간인을 임의로 살해한 현지의 경찰에게 있으므로, 피고는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자 및 그 유족들에게 위령·추모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역사기록 수정 및 등재,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라. 당사자들의 관계
원고 A은 H의 아들이고, 원고 B, C, D, E은 원고 A의 자녀(H의 손자)이다. H의 사망 당시 가족으로 부 K, 모 L, 형 I, 매 M, 제 N1), 매 0, 제 P, Q, R, 처 S, 장남 T, 차남 A이 있었고, 이후 장남 T은 1951. 12. 7.에, 부 K은 1965. 3. 5.에, 모 L는 1966. 3. 7.에, 제 Q이 1979. 10. 14.에, 제 N이 1992. 4. 16.에 각 사망하였다. 마. 관련사건 소제기 및 원고 일부승소 판결
1) 원고 A은 2011. 4. 7. 피고를 상대로 이 법원 2011가합6765호로 피고 소속 경찰이 H을 대구10월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사살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에게 H 본인의 위자료, 부 K의 위자료 및 모 L의 위자료 중 원고 A이 상속한 부분 및 원고 A 고유의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이하 '이 사건 관련 사건'이라 한다).
2) 제1심 법원은 2013. 1. 16. 피고 소속 경찰이 H을 대구10월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사살하였음을 인정하는 원고 A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하였고, 이에 피고가 부산고등법원 2013나1044호로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도 2014. 1. 9. 제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피고 소속 경찰이 H을 대구10월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사살하였음을 인정하는 취지로 항소 일부인용 판결(위자료 액수가 일부 감액되었다)을 선고하였다(이 사건 관련사건은 현재 상고심 계속 중이다).
바. 채권양도 및 양도통지의 도달제 R, 매 0, 제 N의 아들(원고 A의 조카)인 V, W은 2013. 3. 5.경 자신들이 피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 사건과 관련된 일체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원고 A에게 각 양도(이하 '이 사건 각 채권양도'라 한다)하고, 2013. 3. 26. 피고에게 이 사건 각 채권양도의 통지를 발송하였으며, 그 무렵 피고에게 위 각 통지가 도달하였다.
[인정근거 :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6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H이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의 희생자인지 여부
가. 당사자의 주장
원고들은, H이 대구10월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피고 소속 경찰에 의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희생당하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고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은 주로 간접증거나 전문증거 등에 의존하여 내려진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근거로 H을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의 목적과 내용,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 방식, 조사보고서의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고, 대상사건 및 시대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그러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에 대하여 조사보고서 중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그 절차에서까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조사보고서 자체로 개별 신청대상자 부분에 관하여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이거나, 조사보고서에 희생자 확인이나 추정 결정의 인정 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거나, 그것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누구로부터 전해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목격한 것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으로 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논리와 경험칙상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는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을 담은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과거사정리위원회가 H을 대구10 월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군경에 의해 희생된 희생거명자로 확인한 사실에다가, 앞서 든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전 관련사건의 제1심 및 항소심 법원은 H을 대구10월사건 관련 만간인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한 점, ②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에 관하여 신청인들, 사건 목격자 및 진실규명 대상자의 가족과 이웃, 마을주민들, 사건 당시 경찰 및 청년 단원 등에 대한 진술조사, 현장조사, 관련 조사보고서, 신원기록편람, 경찰연혁사, 미국문서, 언론보도자료, 연구문헌 등 자료조사를 근거로 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는바, 그 판단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기준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 특히, 희생자 H에 대하여 이 사건 관련사건의 항소심 증인 S(H의 처)은 "H이 왜관경찰서로 강제연행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고, 그로부터 며칠 뒤인 1949년 음력 4월경 왜관 뒷산 골짜기에서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 골짜기에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으며, 이후 매년 음력 4. 22. H의 제사를 지낸다."라는 취지로 진술하는 등 사건 발생 시점, 사고 발생 경위 및 시신수습과정 등에 관하여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이 사건 관련사건의 제1심 증인 X(H의 처남)의 증언의 주요 내용도 이에 부합하는 점, ④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희생자 H의 아들인 원고 A은 모친으로부터 "H은 지천지서 경찰에 의해 Y, Z, AA 등과 왜관경찰서로 강제연행된 후 1949년 음력 5월경 벼랑골(석적읍 성곡리 소재 저수지)에서 수십 명과 함께 사살되었다. 큰아버지 이 대구10월사건 당시 대구에서 철도 조역을 하면서 파업에 연관되었기 때문에 대구10월사건 관련 자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이후 모친이 위 벼랑골에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는데 당시 벼랑골에서 여러 명이 함께 총을 맞아서 죽어 있었고, 이후 H의 시신은 7~8년 뒤 선산으로 이장하였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⑤ H과 함께 희생거명자로 확인된 망 AA의 아들인 AB도 "AA는 1949년 음력 4. 20.경 강제연행된 후 1950년 음력 5. 3. 유학산 아래 벼랑골에서 사살되었다. Y, H, Z 등 마을사람 5~6명과 함께 왜관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사살되었다."라고 진술하여 그 내용이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과 대부분 일치하는 점, ⑥⑤ 사건 발생 시점에 관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비롯한 관련 증거의 내용이 다소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는 약 60년 전이라는 오래된 기억의 차이 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 범위의 것이고, 이 사건은 국가적 혼란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집단적 · 조직적으로 연행되어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인 점에 비추어 참고인들이 당해 사실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H이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인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
3.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원고 A의 청구에 관한 판단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 경찰 등은 1949. 6.경 H을 대구10월사건의 관권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이유 및 적법한 절차 없이 사살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였다 할 것인바, 이로 인하여 희생자인 H과 그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제헌 헌법(1948. 7. 17. 제정되어 1960, 6, 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H및 그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나머지 원고들의 각 청구에 관한 판단
한편 H의 손자들인 원고 B, C, D, E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의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 고유의 위자료로서 피고에게 각 300만 원의 지급을 구하나, 희생자 본인, 희생자의 배우자, 부모자녀 및 형제자매가 아닌 원고 B, C, D, E이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금전으로 위자하여야 할 만큼의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고, 달리 원고 B, C, D, E이 위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 B, C, D, E의 각 청구는 이유 없다.
나. 피고의 주장 등에 관한 판단
1) 이 사건 각 채권양도가 무효라는 주장
피고는 이 사건 각 채권양도가 국가배상법 제4조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국가배상법 제4조는 '생명·신체의 침해로 인한 국가배상을 받을 권리는 양도하거나 압류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와 같이 생명의 침해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의 양도를 금지하는 취지는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인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보장하는 제도를 확립하고 유족들을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보호함으로써 피해의 구제에 만전을 기하려는 뜻이라고 할 것이므로, 채권양도인들과 채권양수인인 원고와의 관계, 채권양도의 목적, 국가배상법 제4조의 취지 등에 비추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생명이 침해된 망인의 유족들 사이에서 유족들의 이익을 위하여 위자료 청구권을 양도하는 것은 국가배상법 제4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81. 6. 23. 선고 80다1351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앞서 인정한 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이 사건 각 채권양도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입은 H의 유족들 사이에서 위자료 청구권의 효율적인 회수를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국가배상법 제4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소멸시효 항변
가) 피고는, 원고 A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1921, 4. 7. 조선총독부법률 제42호로 제정되고, 1951. 9. 24. 법률 제217호로 제정된 구 재정법 제82조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구 회계법 제32조), 원고 A의 이 사건 소가 불법행위일인 1949. 6.경으로부터 5년이 훨씬 지난 후인 2013. 3. 27.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기는 하다.
나) 그러나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참조).
그런데 피고는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 등에 대하여 위와 같이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때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산하에 과거사정리위원회를 구성한 후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진실규명 활동을 해 왔고, 과거사정리법을 통하여 피고 스스로 진실 규명사건 피해자들의 피해 및 명예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국민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며,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처럼 과거사정리법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피해자를 특정하여 피해경위 등을 밝히고 그에 대한 피해회복까지를 목적으로 하여 제정된 법률임을 명시하여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관하여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적용 대상인 피해자의 진실규명신청을 받아 같은 법에 의하여 설치된 피고 산하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면, 그 결정에 기초하여 피해자나 그 유족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한다면 이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아울러 비록 피해자 등으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이 없었더라도 정리위원회가 "역 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진실규명사건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진실규명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이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과거 사정리법 제22조 제3항에 따라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하여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에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목적 및 위 조항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당해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그 희생자의 피해 및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수용하겠다는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국가의 의사가 담긴 것으로 보아야 하고, 피해자 등에 대한 신뢰부여라는 측면에서 진실규명신청에 의하여 진실규명 결정이 이루어진 경우와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 희생자나 유족의 권리행사에 대하여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3다16602 판결 참조).
따라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직권으로 희생자로 진실규명결정한 H의 유족인 원고 A에 대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다) 한편, 위와 같이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그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할 것이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 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보건대, H에 대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 A으로서는 진실규명신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
또한 이 사건의 경우 2010. 3. 30. H을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거명자로 확인하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졌지만, 원고 A을 포함한 희생자의 유족들이 과거사정리법의 규정과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피고가 입법을 통하여 망인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리라고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원고 A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설규명결정 이후 단기소멸시효의 기간 경과 직전까지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기다린 것이 상당하다고 볼 만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진실규명결정일인 2010. 3. 30.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인 2013. 3. 27. 제기된 이 사건 소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위자료의 액수
H의 희생이 국민들의 생명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피고 소속 경찰관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H 및 그 유족들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겪었을 극심한 정신적 고통 및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후 우리 민족이 겪게 된 남북분단의 현실과 이념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 유족들이 받은 차별과 경제적 궁핍을 고려해야 하는 점, H의 사망 당시 일실수입 산정을 위한 통계소득 자료가 없어 망인의 일실수익을 산정할 수 없는 점, 그 동안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크게 상승한 점, 유사사건과의 형평 기타 이 사건 기록 및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위자료는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희생자 부모와 자녀에 대하여는 각 800만 원, 형제자매에 대하여는 각 400만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나. 상속관계 및 인용금액
1) 부 K의 사망과 상속1965. 3. 5. 사망한 부 K의 가족으로는 처 L, 장남 I, 장녀 M, 2남 H(희생자), 3남 N, 3녀 0, 4남 P, 5남 Q, 6남 R이 있었다.
장남 1은 1940. 3. 23. 혼인하여 AC 등의 자녀를 둔 채 1959. 10. 7. 이미 사망하였고, 장녀 M는 1935, 12. 23. 혼인하여 출가하였으며, 2녀 AD은 1929. 6. 17. 이미 사망하였고, 3녀 0은 1954. 5. 10, 혼인하여 출가하였다. 그리고 H의 장남 T은 1951. 12. 7. 사망하였다.
따라서 구 민법(1970. 6. 18. 법률 제220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부 K의 상속재산을 호주상속인이 될 I(1.5), 동일 가적 내에 없던 여자인 M와 O(각 0.25), 남자인 H, N, P, Q, R(각 1)이 상속할 것인데, 의 상속분은 직계비속인 AC 등이 대습상속하고 H의 상속분은 원고 A이 단독으로 대습상속하여, 결국 부 K의 위자료(800만 원) 채권을 모 L, 형 I의 상속인들, 매 M, 원고 A, 제 N, 매 0, 제 P, Q, R이 2:6:1: 4:4:1:4:4:4의 각 비율로 상속 또는 대습상속하였다.
2) 모 L의 사망과 상속모 L가 1966. 3. 7. 사망하여 구 민법(1970, 6. 18. 법률 제220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모 L의 상속재산(8,533,333원의 위자료 채권 = 부 K의 위자료 800만 원 X2/30 + 모 L의 위자료 800만 원, 원 미만 버림)을 남자인 I, H, N, P, Q, R(각 1), 동일가적 내에 없던 여자인 M와 O(각 0.25)이 상속할 것인데, I의 상속분은 직계비속인 AC 등이 대습상속하고, H의 상속분은 원고 A이 단독으로 대습상속하여, 결국 모 L의 상속재산을 I의 상속인들, M, 원고 A, N, O, P, Q, R이 4:1:4:4:1:4:4:4의 각 비율로 상속 또는 대습상속하였다.
3) 제 Q의 사망과 상속제 Q이 1979. 10. 14. 미혼으로 사망하여 구 민법(1984. 4. 10. 법률 제372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제 Q의 상속재산(6,379,487원의 위자료 채권 - 부 K의 위자료 800만 원 X 4/30 + 모 L의 상속재산 8,533,333원 × 4/26 + 제 Q의 위자료 400만 원, 원 미만 버림)을 남자인 I, H, N, P, R(각 1), 동일 가적 내에 없던 여자인 M와 0(각 0.25)이 상속할 것인데, I의 상속분은 직계비속인 AC 등이 대습상속하고, H의 상속분은 원고 A이 단독으로 대습상속하여, 결국 제 Q의 상속재산을 1의 상속인들, M, 원고 A, N, O, P, R이 4:1:4:4:1:4:4의 각 비율로 상속 또는 대습상속하였다. 4) 제 N의 사망과 상속제 N이 1992. 4. 16, 사망하여 구 민법(1997. 12. 13. 법률 제543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제 N의 상속재산(7,539,393원의 위자료 채권 = 부 K의 위자료 800만 원 X 4/30 + 모 L의 상속재산 8,533,333원 X 4/26 + 제 Q의 상속재산 6,379,487원 X4/22 + 제 N의 위자료 400만 원, 원 미만 버림)을 처 AE, 자 AF, V, W이 공동상속하고, 처 AE가 2008. 2. 18. 사망하여 처 AE의 상속분을 자 AF, V, W이 공동상속하므로, 결국 자 AF, V, W이 처음부터 N의 상속재산을 균분상속하는 결과와 동일하게 된다.
5) 채권양도0, R, V, W이 원고 A에게 이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 일체를 양도하였으므로, ① 0의 손해배상채권 (4,884,848원의 위자료 채권 = 부 K의 위자료 800만 원 X 1/30 + 모 L의 상속재산 8,533,333원 X 1/26 + 제 Q의 상속재산 6,379,487원 X 1/22 + 매 0의 위자료 400만 원, 원 미만 버림), ② R의 손해배상채권(7,539,393원의 위자료 채권 = 부 K의 위자료 800만 원 × 4/30 + 모 L의 상속재산 8,533,333원X 4/26 + 제 Q의 상속재산 6,379,487원 X 4/22 + 제 R의 위자료 400만 원, 원 미만 버림), ③ V, W의 각 손해배상채권(각 2,513,131원의 위자료 채권 - 제 N의 상속재산 7,539,393원 × 각 1/3)은 모두 원고 A에게 귀속된다.
6)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A에게 위 위자료 채권의 양수금 합계 17,450,503원(= 0의 위자료 채권 4,884,848원 + R의 위자료 채권 7,539,393원+ V의 위자료 채권 2,513,131원 + W의 위자료 채권 2,513,131원)을 지급하여야 한다.다. 지연손해금의 기산일
원고 A은 1949. 7. 1.부터의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므로 살피건대, 불법행위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 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H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9. 6.경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4. 4. 3.까지 6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크게 상승하였다는 점과 아울러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됨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전혀 가산되지 않는 사정까지 모두 참작하여 위 희생자들 등의 위자료 액수를 산정하였으므로,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4. 4. 3.부터 발생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위 인정범위를 초과하는 원고 A의 지연손해금 칭구부분은 이유 없다.
라.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A에게 17,450,503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4. 4. 3.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4. 4. 24.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 A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며, 원고 B, C, D, E의 이 사건 각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차경환
판사장민경
판사우상범
주석
1) 아래 이 사건 관련사건의 판결에는 'U'이라고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