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피고인이 약 2년 전부터 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던 사이인 갑(녀)과 5차에 걸쳐 술을 마신 후 술에 취한 갑을 근처에 있는 모텔로 데려가 그곳에서 갑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갑을 간음하였다고 하여 준강간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갑이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갑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
판결요지
피고인이 약 2년 전부터 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던 사이인 갑(녀)과 5차에 걸쳐 술을 마신 후 술에 취한 갑을 근처에 있는 모텔로 데려가 그곳에서 갑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갑을 간음하였다고 하여 준강간으로 기소된 사안이다.
피고인과 갑이 투숙했던 모텔 인근에 있는 CCTV 영상에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는 점, 모텔에 들어간 지 적어도 4시간 이상의 휴식을 취한 이후 시점에 성관계가 이루어진 점, 갑은 술자리 이후 모텔에 들어와 성관계를 할 당시까지의 상황에 대해 단편적인 기억은 있어 보이는 점, 피고인은 성관계 직후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헤어졌다고 진술하였는데 갑의 진술 역시 대체로 일치하는 점, 갑은 피고인과의 성관계 당시뿐 아니라 그날 이후 3일이 지난 시점까지도 아무런 항의나 언급조차 없이 오히려 매우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던 중, 사실혼 배우자와의 통화 이후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피고인에게 성관계에 대해 따지며 피고인의 행동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피해 사실에 대한 고소는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사실혼 배우자가 작성한 고소장을 통해 이루어졌는바, 이러한 갑의 태도 변화와 고소 경위 역시 상당히 이례적인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갑이 모텔에 들어갈 당시 평소보다 과다 섭취한 알코올의 영향으로 인해 사리분별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된 상태였고 성관계 당시에도 위와 같은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당시 갑의 상태가 준강간죄에서 말하는 항거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한편 피고인은 갑과 연인관계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매우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던 것으로 보이고, 이전에도 두 차례 술자리를 한 후 자연스럽게 모텔에 가 성관계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전처럼 술자리를 한 후 갑이 피고인과 모텔에 동행하면서 성관계에 대한 교섭이 있었거나 모텔에 가는 것 자체를 성관계에 대한 묵시적 동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갑이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갑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이다.
참조조문
형법 제13조 , 제299조 , 형사소송법 제307조 , 제308조 , 제325조
피고인
피고인
검사
박지연
변호인
법무법인 삼우 담당변호사 권오성 외 1인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8. 3.경 지인의 소개로 피해자 공소외 1(여, 36세)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유지하였던 사이다.
피고인은 2020. 3. 14. 15:00경 울산 ○○군 △△읍에 있는 식당에서 피고인의 지인,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셨고, 피고인의 지인이 먼저 귀가하자 자리를 옮겨 피해자와 단둘이 추가로 술을 마신 후 2020. 3. 15. 00:44경 가게에서 나왔으나 피해자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자 근처에 있는 모텔로 피해자를 데려가게 되었다.
피고인은 2020. 3. 15. 05:00경에서 같은 날 08:00경까지 사이에 울산 ○○군 △△읍 (도로명 주소 생략) □□모텔 ◇◇◇호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들어 항거불능 상태인 틈을 타, 피해자의 하의를 벗기고 상의를 위로 올린 다음 피고인의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여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2. 피고인 및 변호인 주장의 요지
사건 당시 피해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고, 피고인은 피해자의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성관계에 나아간 것이므로, 준강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
3. 판단
가. 관련 법리
1) 형법 제299조 에서 말하는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 및 이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고의도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형법 제297조 , 제297조의2 , 제298조 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9도2001 판결 등 참조).
2) 형사재판에서 공소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도2823 판결 , 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8도4467 판결 등 참조).
나. 구체적 판단
1)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각 증거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해자는 사건 전날인 2020. 3. 14. 오후 3시경 피고인과 만나 술을 마시기 시작해 그날 자정 무렵까지 총 5차에 걸쳐 피고인과 둘이서 혹은 지인과 함께 술자리를 가져 평소 주량보다 많은 술을 마신 것으로 보이는 점, ② 피고인 역시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와 5차 술자리를 끝내고 치킨집에서 나올 때 피해자가 넘어져서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는 등 피해자가 술에 많이 취했었다고 진술한 점, ③ 피고인이 경찰 제1회 조사에서는 성관계 당시 피해자가 깨어있을 때 동의를 받고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경찰 제2회 조사 시에는 성관계를 시작할 당시 피해자는 자고 있었고, 동의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면서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을 변경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이 들거나 성적 행위에 대하여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2)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각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가) 피해자의 항거불능 여부
(1) 피고인과 피해자가 사건 당일 투숙했던 □□모텔 인근에 있는 마트 CCTV 영상을 보면, 피고인과 피해자는 2020. 3. 15. 00:42경 택시에서 내렸고, 피고인이 먼저 내려 모텔 쪽으로 이동하고, 피해자는 뒤따라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피해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피고인이 업거나 부축해 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증거기록 32, 33쪽 수사보고, 증거목록 순번 6 CCTV 영상 CD).
(2) 피고인과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에 의할 때, 두 사람이 모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성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둘 다 곧 잠이 들었고, 모텔에 들어간 지 대략 4시간 이상 지난 오전 5시에서 8시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바, 그렇다면 두 사람이 적어도 4시간 이상의 휴식을 취한 이후 시점에 성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3)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사건 전후 상황 중 기억이 나는 부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진술했다. 그 내용을 보면 술자리 이후 모텔에 들어와 성관계를 할 당시까지의 상황에 대해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긴 하나, 단편적인 기억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과 2차로 술을 마신 ☆☆식당에서 나와서 3차로 ▽▽포차에 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중간 중간 짧게 기억이 난다. / 4차로 ◎◎노래방에 갔다고 하고, 그때 제가 피고인을 때려서 경찰이 왔었다는 정도는 기억이 난다. 노래방 앞에서 넘어져 얼굴을 부딪힌 기억이 있고, 그 이후는 기억이 안 난다. / 아침 8시경에 피고인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제 몸 위에서 성관계를 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것인데, 정신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고 성관계를 하는 상태를 인식했을 때 저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흥분해서 ‘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 성관계를 하고 나서 바로 얼마 되지 않아 제가 국밥집이 일찍 문 연다고 해서 피고인이 확인하러 갔다가 씻고 같이 밥 먹으러 간 것으로 기억한다. / 목이 말라서 새벽에 제가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마신 기억은 있다. / 5시는 아닌 거 같고 더 늦은 시간인데 사실 시간은 제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
(4)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성관계 전후 사정에 대해 ‘새벽에 갈증이 나서 물을 먹고 있는데, 피해자가 새벽에 깨서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줬다. / 조금 있다 또 한 번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이 없다고 하니까 밖에 나가면 정수기 있다고 가져다 달라고 해서 물을 떠서 가져다 줬다. 그리고 같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성관계를 했다. / 제가 피해자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하니까 피해자가 옆에 돼지국밥집이 일찍 장사를 한다고 해서 제가 장사하는지 내려가서 봤다. 내려가 보니 장사를 하기에 장사한다고 말하고 씻고 나가서 국밥 먹고 헤어졌다.’라고 진술했는데(증거기록 86쪽), 이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 역시 대체로 일치할 뿐 아니라 사건 후 3일이 지난 2020. 3. 18. 오후 4시 42분경부터 4시 47분경까지 이루어진,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 대화를 보더라도,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조사받기 이전에도 위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동일한 내용을 피해자에게 이야기한 사실이 있음을 알 수 있다(증거기록 99쪽).
16:42:00 (피고인) 니가 물 달라고 새벽에 깨우고 했었다 16:42:21 (피해자) 그건 아침인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16:42:53 (피고인) 아침에 말고 새벽에도 달라고 했거든 5시에 16:43:22 (피해자) 내가 물 얘기하디? 16:43:57 (피고인) 아침에는 내가 물 없다고 하니까 니가 나가면 정수기 있다고 해서 나갔다 왔다 16:44:17 (피고인) 너 계속 물 달라고 했어 16:45:54 (피해자) 내가 물 얘기 하냐고, 물이야 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지 16:47:02 (피고인) 그래서 내가 5시에 간다고 하니까 니가 가지 말라고 있다가 가라고 했다 |
(5) 이례적인 고소 경위
(가)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성관계 후 3일이 지난 2020. 3. 18. 오후 3시 40분경까지도 피고인에게 사건 당일 성관계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언급 자체가 전혀 없다가 2020. 3. 18. 오후 3시 46분경부터 피고인에게 보내기 시작한 문자에서부터 갑자기 그날 일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증거기록 99쪽).
(나) 이후 계속되는 피해자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피해자는 사실혼 관계에 있고 현재 울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공소외 2와 전화 면회를 하면서 사건 당일 있었던 피고인과의 일을 이야기하게 된 것으로 보이고, 그 후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고, 고소와 합의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사를 계속 표시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고소 역시 피해자 본인이 아닌 공소외 2가 2020. 3. 22. 울산구치소에서 작성하여 같은 달 24일 울산울주경찰서에 접수된 고소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 이처럼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성관계 당시뿐 아니라 그날 이후 3일이 지난 시점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던 중, 사실혼 배우자와의 통화 이후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피고인에게 이 사건에 대해 따지며 피고인의 행동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피해 사실에 대한 고소는 피해자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구치소에 수감된 사실혼 배우자가 작성한 고소장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피해자의 태도 변화와 이 사건 고소 경위 역시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인다.
(6) 위 3. 나. 1)항에서 본 사정에 더하여 위와 같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가 모텔에 들어갈 당시 평소보다 과다 섭취한 알코올의 영향으로 인해 사리분별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되었던 상태였고, 이후 성관계 당시에도 위와 같은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태가 준강간죄에서 말하는 항거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는 쉽사리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나) 피고인의 고의를 추단하기 어려운 사정
(1)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모텔에 들어갈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많이 취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취한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고, 앞서 살펴본 CCTV 영상에서도 모텔에 들어갈 당시 피해자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특별한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 않았으므로, 모텔에 들어갈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를 넘어 주취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음을 알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 피고인이 경찰 제1회 조사에서는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피해자의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했으나, 피해자와 대질신문을 받은 경찰 제2회 조사 과정에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바 있다. 그런데 ① 피고인은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인지능력이 보통 사람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조사 당시 피해자가 있는 상태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아니한 채 진술한 점, ③ 조사 초반에는 제1회 조사 당시의 진술 취지를 대체로 유지하다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가 현출된 바가 없음에도 갑자기 혐의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은 수사관의 질문을 ‘성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었는지에 관한 것으로만 이해했고, ‘피해자와의 관계 및 전후 상황에 비추어 피해자가 묵시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음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3)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2018. 3.경 지인의 소개로 피고인을 알고 지냈고, 이 사건 이전인 2019. 11.경과 2020. 1.경 둘이서 술 한잔 하고 자연스럽게 모텔에 갔고,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는데(증거기록 13, 18, 19쪽),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당시 상황 역시 이전에 피해자와 성관계를 할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4)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제압한 정황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전에 성관계에 대한 교감이 없었고 피해자의 주장처럼 피고인의 일방적인 성관계였다면, 성관계를 인식한 시점에서 피해자가 거부나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할 것인데, 오히려 피해자가 성관계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정황이 있고, 성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아침 식사까지 함께한 다음 자연스럽게 헤어진 정황도, 다소 이례적이다.
(5) 이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과 피해자는 매우 친밀한 내용의 문자 대화를 주고받았다(증거기록 96~99쪽). 사건 당일 피고인과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인 2020. 3. 15. 11:10:34에 피해자는 노래방에서 피고인을 때린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문자(순번 5177번 문자, 증거기록 96쪽)를 보냈고, 다음 날인 2020. 3. 16. 11:24경부터는 위 폭행 사건에 대해 합의서를 작성하는 일을 의논하는 문자(순번 5347~5350 문자, 증거기록 97쪽)를 주고받았으며, 2020. 3. 16. 18:31경부터는 피고인이 사건 당일 있었던 성관계로 인해 피해자가 임신했을까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자, 피해자는 그런 일은 없다고 답변하는 문자(순번 5447~5452 문자, 증거기록 97, 98쪽)를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보면, 피해자는 사건 전날 노래방에서 있었던 일뿐 아니라 피고인과의 성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고, 이에 대해 아무런 항의 표시도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 피해자는 사건 당일인 2020. 3. 15. 오후부터 같은 달 18일 오후 3시 46분경 피고인에게 갑자기 사건 당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면서 피고인의 행동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기 직전까지, 위에서 본 대화 내용 외에도 피해자의 친오빠에게 피고인을 소개하기 위해 만나기로 하는 일정에 대한 이야기, 지인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 피해자의 몸 상태를 걱정하거나 출퇴근 무렵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등 매우 가깝고 친밀한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특히 피해자가 피고인을 피해자의 친오빠에게 직접 소개하기 위해 만나기로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울 오빠가 맘에 안 든다 하면 포기해라’, ‘만나보는 거지 맘에 안 든다 하지 싶은데 ㅎㅎㅎ’, ‘첫인상이 중요하거든 ㅎㅎ, 근데 내가 널 첨 봤을 때 첫인상 안 좋았는데 ㅋ’라는 문자를 피고인에게, 피고인은 ‘맘에 든다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오빠한테 잘 보여야지’, ‘그래도 오빠 처음 보는데 내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가’라는 등의 문자를 피해자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볼 때 피고인이 당시 피해자와의 관계가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바와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7)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춰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연인관계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매우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던 것으로 보이고, 이전에도 두 차례 술자리를 한 후 자연스럽게 모텔에 가 성관계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 당시에도 이전처럼 술자리를 한 후 피해자가 피고인과 모텔에 동행하면서 성관계에 대한 교섭이 있었거나, 모텔에 가는 것 자체를 성관계에 대한 묵시적 동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본문 에 따라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