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 피고인은 1977. 7. 14. 광주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6월에 1년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로서, 의류행상을 하고 있는 자인바, 전남 지역 대학생들이 1980. 5. 14.부터 전개시켜온 불법가두시위가 점차 격렬화되어 마침내 계엄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개입하는 과정에서 대학생들과 약간의 유혈사태가 생기자 “경상도 출신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러 왔다”, “계엄군이 여대생의 유방을 칼로 도려내어 죽였다”는 등의 지역감정 및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각종 유언비어가 날조 유포되어 이에 현혹된 일부 시민까지 이에 가세하여 폭도화됨으로써 급기야는 차량탈취, 방화, 광주세무서, 충장파출소 등 관공서 파괴, 방화, B방송국 등 언론기관 방화, 나주, 화순 등 각지의 무기고 습격 방화, 시내 각처의 수많은 약탈, 살상행위 등 각종 범법행위가 자행되는 등 광주 일원의 국가기능 및 교통, 시장기능이 마비되어 극도의 차인부재의 상태에 이르자, 피고인은 이에 가세할 의사로,
가. 1980. 5. 21. 10:00경 광주시 동구 불로동 소재 불로다리 앞 노상에서 성명미상 약 8명의 폭도가 탈취 승차한 번호 미상의 C에 편승 합세하여 “비상계엄해제”, “D 물러가라”, “E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광주시 월산동 - 백운동 - 서동5거리 - 광주공원앞 - 광남로 - 공용터미널 - 계림동 - 산장입구까지 다중의 위력으로 불법시위하고,
나. 같은 달 22. 17:00경 광주시 구동 소재 광주공원 광장에서 성명미상 폭도로부터 엠원 소총 1정을 지급받아 소지 후 동소에 있는 광주시민회관 앞 계단에서 자진해서 성명미상 폭도 약 3명과 함께 계엄군의 시내진입 여부를 살필 의도로 동일 19:00경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