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0도5503 가. 살인[인정된 죄명: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
사)]
나. 자동차매몰
피고인
A
상고인
피고인 및 검사
변호인
법무법인(유한) 동인
담당변호사 박용우, 이민규
원심판결
광주고등법원 2020. 4. 21. 선고 2019노398 판결
판결선고
2020. 9. 24.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원심은, '피고인이 밀지 않고서는 피해자가 탑승하고 있던 이 사건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할 리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고, 주위적 공소사실에 적시된 범행방법에 경험칙상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피고인이 금전적 이득만을 노리고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보기에는 범행의 동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 등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로 판단하였다.
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은 피고인이 이 사건 차량을 미는 등의 방법으로 이 사건 선착장 방파제 경사로를 따라 바다에 추락시켜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정황이다. 즉, 피해자가 이 사건 2개월여 전에 피고인의 권유로 종전에 피해자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3건의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5건의 보험계약을 새로 체결함으로써 피해자 사망 시에 지급될 보험금이 합계 3억 7,000만 원 내지 3억 7,500만 원에서 합계 11억 5,000만 원 내지 12억 5,000만 원으로 증가한 점, 위 5건의 보험계약 중 E 주식회사가 인수한 AH, AI 2건의 보험계약의 특약으로 정한 사망보험금이 합계 10억 원으로, 당시 위 회사가 피해자와 같이 전업주부인 피보험자에 대하여 인수할 수 있는 사망담보의 최대 한도액에 상당하는 점, 그 후 이 사건 10여 일 전에 피해자가 피고인의 권유로 가입한 위 5건의 보험계약의 수익자가 모두 피고인으로 변경된 점,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이 사건 선착장 방파제 끝의 경사로가 시작되는 부분 주변에서 혼자 하차하였고 그 후 이 사건 승용차가 방파제 끝 부분에 이어진 경사로를 따라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 다음날 인양된 이 사건 승용차의 변속기가 중립(N) 상태에 있었고, 사이드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은 상태였던 점 등이 그것이다.
또 피해자 사망 시 지급되는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한 범행의 경우, 살인 시도가 성공하면 다액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는 이익을 누리게 되는 경제적 유인이 있는 반면, 범행 의도가 발각되지 않는 이상 그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거나 적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살인할 것을 마음먹는다면 별다른 시간적 제약이나 시한 없이 통상 자신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의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면서 언제든 반드시 피해자 사망의 결과를 확실하게 기대할 수 없더라도 피해자의 사망을 우연한 사고 탓으로 손쉽게 돌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즉각적으로 실행하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구체적인 범행 방법에 있어서도 즉흥적 · 우발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여 실행함으로써 비의도적인 사망사고로 가장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점에서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인 살인의 경우 피해자가 확실하게 사망하는 결과가 달성될 수 있는 범행의 장소나 실행방법을 사전에 치밀하게 탐색하여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제한 다음 공소사실에 기재된 범행방법에 즉흥적이고 우연적 요소가 많다는 점을 무죄판단 이유의 하나로 든 원심의 이유 설시는 다소 적절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사정까지 더하여 함께 살펴보면,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적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① 주위적 공소사실에 기재된 구체적 실행행위, 즉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경사로를 따라 밀었다는 점에 관하여 아무런 직접적 증거가 없다. 또 원심의 현장검증에 의하여 이 사건 방파제 끝 부분의 어느 지점에 차량을 정차하느냐에 따라 변속기를 중립 상태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은 채로 하차할 당시에는 정지한 채로 있다가 그 후 외부에서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는데도 내부 탑승자의 움직임 등만으로 비로소 경사로를 따라 굴러 내려가 바다에 추락할 수 있음이 밝혀졌지만, 피고인이 하차할 당시 이 사건 승용차의 정차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변속기를 중립 상태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은 채로 이 사건 승용차에서 하차한 후에 이 사건 승용차가 바다로 추락하였다는 점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밀었다고 추단할 수도 없다.
원심의 현장검증 결과와 증인 U의 진술에 의하면, 변속기를 중립 위치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더라도 일단 그 자리에 차량이 정지하였다가 그 후 내부 탑승자의 움직임 등으로 비로소 이동하기 시작하는 정차 위치를 미리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고, 설령 그 위치를 파악해두었다고 하더라도 그믐날이던 이 사건 발생일 23:00경에 아무런 조명이 없는 위 방파제 끝 부분에서 이 사건 승용차를 후진하여 정확히 그 위치에 정차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이 사건 승용차가 경사로를 따라 굴러내려 가게 한다고 하더라도 당시 위 선착장 왼편에는 웅덩이가 있고 오른편에는 돌이 놓여 있어 이 사건 승용차를 바다로 추락시키려면 위 웅덩이와 돌 사이로 통과시켜야 했다는 것이므로 정차 위치뿐 아니라 차체의 방향 및 바퀴의 정렬방향까지 고려하여 정차하였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이 사건 승용차를 그와 같은 위치에 정차한 후에 자신만 하차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필요한 여건을 인위적 · 의도적으로 조성하여 범행을 실행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②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성관계가 갑작스럽게 중단된 후 숙소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방파제 끝 부분에 바다를 향해 주차되어 있던 이 사건 승용차를 되돌리기 위해 후진하던 중 추락방지용 난간을 들이받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약간 전진시킨 다음 정차·하차하였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사건 다음날 피해자의 몸 안에서 남성의 성기에 착용하는 방법으로 성관계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여성의 몸 안에 잔류할 경우 신체의 안전에 위험이나 위구심을 불러올 수 있는 기구가, 위 방파제 끝 부분 측면에 설치된 추락방지용 난간에서 차량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충격흔이 각각 발견되었다. 또 이 사건 승용차의 변속기를 전진(D) 상태에서 주차(P) 상태로 변경하려면 변속기 조작 봉을 중립 위치까지 한 단계 위로 올린 다음 오른쪽으로 밀고 나서 다시 위로 올려야 하는 다소 특이한 조작 방법에 따라야 하는데,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구입한 것은 이 사건으로부터 3개월여 전인 2018. 9. 11.경이고, 그 전에는 스포티지 차량을 보유 · 운행하였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피고인이 아직 이 사건 승용차의 변속기 조작 방법을 숙달하지 못하였을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 당황하여 경황이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변속기를 주차 상태에 둔다는 것을 실수로 중립 상태에 둔 채하차하였다'는 피고인의 변명을 쉽사리 일축하기 어렵다.
③ 피해자는 피고인의 권유에 따라 AH과 AI 2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각 보험에 부가된 특약으로 피해자가 사망한 때에 지급될 보험금을 가능한 최대한으로 늘려 선택하였고, 이는 피보험자 생존 중의 보험사고로 지급되는 보험금의 비중을 가급적 높게 구성하고 피보험자 사망 시에 지급되는 보험금 증액을 선호하지 않는 통상의 경우와 달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위 2개 보험계약은 피해자가 유사한 보장을 제공하는 종전 가입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대신 가입한 것으로서 이로써 피해자의 보험료 부담이 종전보다 상당히 감소한 점, 그 중 사망담보 특약에 따른 보험료의 비중이 10% 미만으로 보이고, 위와 같은 사망담보 증액으로 인하여 추가적으로 부담할 보험료의 액수는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보이는 점, 여러 가지 보장을 제공하는 보험상품을 선택하면서 이른바 사망담보와 생존담보의 구성을 어떻게 정할지는 부담할 보험료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보험계약자의 가치관과 선호에 따라 정해진다고 할 것인데, 피고인이 피해자와 동시에 같은 운전자보험 상품[AI]에 가입하면서 사망담보를 최고한도인 5억 원으로 정하였고 피해자와 교제하기 전에도 자동차상해담보나 무보험차상해담보의 담보 한도액을 최대한도로 늘려 보험에 가입하는 등 자신이 사망할 경우 남은 가족이 누리게 될 보장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 점 및 위 2개 보험계약 체결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를 고려하면, 반드시 살해 계획에 의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위 2개 보험계약의 사망담보를 증액하도록 권유한 경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④ 피해자가 피고인의 권유로 체결한 위 5개 보험계약의 수익자가 이 사건 10여일 전에 피고인으로 변경되기는 하였으나, 그 변경의 경위가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고, 피고인이 이를 주도하거나 피해자를 조종하였다고 볼 만한 뚜렷한 정황이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피고인은 오히려 피해자가 피고인과 혼인신고를 마친 직후부터 각자 가입한 보험의 수익자를 상대방으로 서로 변경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였고 피고인이 이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위 5개 보험계약의 수익자가 피고인으로 변경된 날에 피고인이 가입한 보험 중 2개의 수익자가 피해자로 변경된 점, 피고인은 자신이 가입한 보험 중 피해자가 그 존재를 알고 있는 2개의 상품에 대하여만 보험수익자를 피해자로 변경하여 준 점, 피고인이 2개의 보험상품의 수익자를 피해자로 변경한 지 불과 5일 만에 피고인의 동생인 BC로 다시 변경한 점은 피고인의 위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피해자 유족들의 진술, 피해자가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자녀와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및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으로 알 수 있는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친밀하고 적극적인 태도까지 더하여 보면, 피고인과의 혼인신고 직후라는 점 등만을 내세워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험수익자 변경을 요구하였을 리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만일 주위적 공소사실의 기재대로 피고인이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계획 아래 피해자를 회유 · 기망하여 위 5개 보험계약의 수익자를 자신으로 변경하도록 한 것이라면, 위와 같이 피고인이 가입한 일부 보험의 수익자를 피해자로 변경하였다가 불과 며칠 만에 피고인의 동생으로 재변경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범행 전에 보험수익자 재변경이 발각되는 때에는 피해자의 경계심을 유발하여 범행의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게 될 수 있고, 범행 실행 후에는 피해자 사망의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남편인 피고인의 보험수익자 변경 및 재변경 내역이 드러나 기망적인 방법에 의해 보험수익자를 피고인으로 변경하게 한 후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의심이 증폭될 것이므로, 결국 보험금 수령이라는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피해자 살해를 계획 중이었다면 위와 같은 위험을 당연히 미리 인지하였을 터인데, 검사는 피고인이 보험수익자를 재변경하여 위험을 자초할 만한 이유나 경위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거나 이에 관한 실마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고인이 사망할 경우에 그 보험금을 피고인의 동생이 지급받도록 보험수익자를 재변경한들 피고인 본인은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일 뿐이다.
라. 따라서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사정이 병존하고 증거관계 및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참조)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다. 거기에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마. 한편 검사는 원심판결 전부에 대하여 상고하였으나, 유죄 부분에 대하여는 상고장이나 상고이유서에 이에 대한 불복이유의 기재가 없다.
2.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예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죄의 성립과 적용법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에 의하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만 양형부당을 사유로 한 상고가 허용되므로, 피고인에 대하여 그보다 가벼운 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박상옥
주심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