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의 의미 및 구체적인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지 여부의 판단 방법
[2] 한국전기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 차세대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의 사업단장으로서 연구비 지원에 대한 사례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안에서, 뇌물수수의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배임수재의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사례
참조판례
[1]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1도670 판결 (공2002하, 1602) 대법원 2006. 6. 15. 선고 2005도1420 판결
피 고 인
피고인 1외 2인
상 고 인
피고인 2, 3 및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최성락외 1인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인 1에 대하여는 공소외 1, 2, 3, 4 및 피고인 3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점에 관한 부분, 피고인 3에 대하여는 전부를 각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검사의 나머지 상고와 피고인 2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검사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가. 이 사건 사업단장의 업무가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직무에 해당하는지 여부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에는 공무원이 법령상 관장하는 직무 그 자체뿐만 아니라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 또는 관례상이나 사실상 관여하는 직무행위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나, 구체적인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지 여부는 그것이 공무의 일환으로 행하여졌는가 하는 형식적인 측면과 함께 그 공무원이 수행하여야 할 직무와의 관계에서 합리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실질적인 측면을 아울러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1도670 판결 등 참조).
원심은 그 채택증거들을 종합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후 피고인 1이 뇌물죄의 적용에 있어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의 지위를 보유하면서 이 사건 사업단장에 임명되었지만, 사업단은 그 설치근거 법령과 감독관청, 사업단장의 공모·임명절차나 그 권한, 업무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귀속, 사업비 집행절차 등의 면에서 한국전기연구원과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 1이 사업단장의 지위에서 행한 업무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서 행한 직무가 아니라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사업단장으로서의 연구비 지원에 대한 사례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공무원의 직무에 관하여 수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뇌물수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피고인들에 대한 주위적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조치는 옳은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뇌물죄에 있어서의 직무관련성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금품을 교부하였다는 점 및 공소외 4가 2007. 2. 15. 피고인 1을 위하여 120만 원을 송금하였다는 점 관련
검사가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는 위 점들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잘못되었고 그에 따라 위 송금 부분과 관련된 법률판단도 잘못되었다는 것으로서 결국 원심판결의 사실인정을 탓하는 취지라고 할 것이나, 사실인정의 권한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것으로서, 원심판결과 기록을 대조하여 보아도 증거에 관한 원심의 판단이 위 한계를 넘어섰다고 볼 사유를 발견할 수 없는 이 사건에 있어, 상고논지는 결국 원심의 전권에 속하는 사항을 비난하는 것에 불과하여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배임수증재죄에 있어서 부정한 청탁이라 함은 청탁이 사회상규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청탁의 내용과 이와 관련되어 교부받거나 공여한 재물의 액수, 형식, 보호법익인 사무처리자의 청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야 하며 그 청탁이 반드시 명시적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2. 4. 9. 선고 99도2165 판결 등 참조).
원심은 피고인 1이 공소외 1, 2, 3, 4, 피고인 3(이하 5인을 함께 칭할 때는 ‘ 피고인 3 등’이라고 한다)으로부터 ‘향후 과제 수주시 편의를 봐주고 차년도 연구비를 삭감하지 말아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그와 같은 청탁이 있었다 하더라도 배임수증재죄의 성립에 요구되는 부정한 청탁에 해당한다고 볼 자료도 없다는 이유로, 배임수증재를 내용으로 하는 피고인 1, 3에 대한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할 수 없다.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1은 차세대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을 목표로 하는 이 사건 사업단의 연구개발사업 수행을 총괄하는 사업단장의 지위에 있으면서, 세부과제의 기획·선정, 연구기관 내지 연구자의 선정, 연구비 배정 등에 관하여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점, 사업단의 평가 내지 결정 내용에 따라 피고인 3 등은 희망하는 세부과제의 연구를 배정받거나 계획한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되어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점, 피고인 3의 경우 2회에 걸쳐 합계 4,000만 원, 공소외 4의 경우 3회에 걸쳐 합계 465만 원, 공소외 1, 2, 3의 경우 9회에 걸쳐 합계 1,350만 원의 금품을 피고인 1에게 교부하여 그 액수가 상당하고, 특히 피고인 3이나 공소외 4의 경우에는 피고인 1의 차명계좌로 송금한 점, 위와 같은 금품의 거래내역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1이나 피고인 3 등은 수사과정 초기에서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거나 수사 및 재판 진행과정에서 거래 명목을 번복하였는데 그 번복된 거래 명목도 전체적으로 신빙성이 매우 낮은 점, 이 사건 사업단의 연구개발사업은 약 10년에 걸쳐 100억 원에 가까운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으로서 이를 총괄하는 사업단장의 청렴성은 고도로 요구되는 점 등을 알 수 있는바,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비록 이 사건에서 피고인 1과 피고인 3 등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명시적으로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3 등이 향후 희망하는 새로운 과제의 연구자로 선정되거나 현재의 과제를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혹은 계획한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향후 과제 수주시 편의를 봐주고 차년도 연구비를 삭감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묵시적인 청탁은 있었다고 추인함이 상당하고, 이는 사회상규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부정한 청탁에 해당하며, 피고인 1이 교부받은 돈은 그러한 부정한 청탁과 관련되어 제공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달리 본 원심의 판단에는 형법 제357조 에서 규정하는 부정한 청탁의 해석·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피고인 2, 3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가. 피고인 2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이 아니면 형의 양정이 부당하다는 사유는 상고이유로 할 수 없는바(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 ),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법률의 규정에 따라 형의 양정에 필요한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 2에 대한 형을 정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그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2의 상고이유 주장은 결국 원심의 형의 양정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에 돌아가게 되므로, 피고인 2에게 10년 미만의 징역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
나. 피고인 3
타인으로부터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자금을 위탁받아 집행하면서 그 제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사용이 개인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는 물론 결과적으로 자금을 위탁한 본인을 위하는 면이 있더라도 그 사용행위 자체로서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되어 횡령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도9755 판결 등 참조).
원심은 판시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인 3은 연구개발과 무관한 일반 생산자재를 구매하거나 그 물품에 관하여 연구비집행정산 보고를 하였고, 연구비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들의 일반 법인계좌로 송금하여 그 운영비, 직원 임금, 판매용 기기제작을 위한 재료비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 사실을 인정한 후 피고인 3에게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는바,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판단은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불법영득의 의사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은 없으며, 상고이유 주장 중 사실심인 원심의 전권에 속하는 사실인정을 탓하는 부분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3. 파기의 범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이 피고인 3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점에 대한 배임수재의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판결의 무죄 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데, 피고인 1의 배임수재죄는 공소외 4 등 금품을 교부받은 상대방별로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뇌물수수의 주위적 공소사실과 동일체의 관계에 있으므로, 피고인 1에 대한 원심판결은 피고인 2를 제외한 피고인 3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점에 관한 부분이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또한 피고인 3이 피고인 1에게 금품을 제공한 점에 대한 배임증재의 예비적 공소사실에 관한 원심판결의 무죄 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데, 이는 뇌물공여의 주위적 공소사실과 동일체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업무상횡령죄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되어야 하므로, 피고인 3에 대한 원심판결은 모두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인 1에 대하여는 피고인 3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점에 관한 부분, 피고인 3에 대하여는 전부를 각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며, 피고인 1이 피고인 2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점에 관한 검사의 나머지 상고와 피고인 2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