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0다71494, 71500 판결
[손해배상(기)][공2002.4.15.(152),794]
판시사항

[1] 수표지급인인 은행의 수표금 지급에 있어서의 주의의무

[2] 은행이 고액 수표에 대하여 단지 사고수표인지 여부와 실명 여부만을 확인하여 고액의 현금을 지급한 것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수표금 지급에 있어서의 지급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수표법 제35조의 취지에 의하면, 수표지급인인 은행이 수표상 배서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 혹은 수표소지인이 적법한 원인에 기하여 수표를 취득하였는지 등 실권리관계를 조사할 의무는 없다고 할 것이지만, 수표금 지급사무를 처리하는 은행에게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를 기울여 그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 이상, 통상적인 거래기준이나 경험에 비추어 당해 수표가 분실 혹은 도난·횡령되었을 가능성이 예상되거나 또는 수표소지인이 수표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때에는 그 실질적 자격에 대한 조사의무를 진다.

[2] 고액 수표의 전액 현금지급요청은 정상적인 자기앞수표 소지인이라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어서 그 수표가 혹시 분실·도난·횡령된 것이거나 혹은 수표제시자가 그 수표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초면의 내방객으로부터 고액의 현금 지급을 요청받은 은행으로서는 마땅히 발행지점에 그 수표의 발행경위와 발행의뢰인 등을 확인하고 발행의뢰인 또는 발행지점을 통하여 그 수표를 사용하거나 타에 양도한 경위 등에 관하여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사고수표인지 여부와 실명 여부만을 확인하여 고액의 현금을 지급한 것은 수표금 지급에 있어서의 지급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사례.

원고,상고인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대전제일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김인중)

피고,피상고인

주식회사 하나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한빛 담당변호사 성민섭 외 2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이유

1. 원심은, 제1심 공동피고 1은 원고 연합회의 충남지부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자금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여 오던 중 그의 친구이자 대봉산업 주식회사(이하 '대봉산업'이라 한다) 대표이사인 제1심 공동피고 4와 공모하여 원고 조합의 예금을 인출 횡령하는 범죄행위를 하기로 공모하였는데, 마침 1998. 11. 30. 위 충남지부 부지부장 소외 1로부터 피고 은행(대전) 역전지점에 예치된 원고의 정기예금 중 만기가 된 20억 원을 인출하여 다른 은행에 10억 원씩 나누어 예금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자 그 날 10:00경 위 역전지점에서 위 20억 원에 해당하는 액면 1억 원씩의 자기앞수표 20장을 발행받아 인출한 사실, 한편 제1심 공동피고 4는 그 며칠 전인 1998. 11. 24.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피고 은행 역전지점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소외 2에게 "위 대봉산업이 아파트공사를 재개하려고 하는데 밀린 임금 등의 지급을 위하여 서울에서 내려오는 자금인 고액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하니 피고 은행 직원을 소개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그의 소개로 피고 은행 은행동 지점장과 대리 및 피고 은행 대흥동지점 대리를 각각 만나 "며칠 뒤에 고액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하니 현금을 준비하여 줄 것"을 요청한 뒤 위 두 지점에 대봉산업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두었던 사실, 이어 제1심 공동피고 4는 1998. 11. 30. 제1심 공동피고 1을 만나 그로부터 위 자기앞수표 20장을 건네 받은 후, 피고 은행 대전지점을 찾아가 입출금통장을 개설하고 사고수표인지 여부의 확인을 거쳐 위 자기앞수표 20장을 입금처리한 뒤 이를 액면 금 5억 원, 3억 원, 1천만 원권의 자기앞수표로 발행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위 대전지점측의 사정으로 제1심 공동피고 4의 요구대로 되지 아니하자 원래의 자기앞수표 20장을 다시 반환받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앞수표 1장의 표면에 전산결제사실이 찍히게 되자 그 자기앞수표 대신 위 대전지점 발행의 자기앞수표 1장을 새로이 발행받게 된 사실, 이어서 제1심 공동피고 4는 피고 은행 은행동지점과 대흥동지점을 차례로 방문하여 위 자기앞수표 20장을 현금으로 교환하게 되었는데, 위 각 지점은 1998. 11. 28. 소외 2로부터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할 테니 현금을 준비하여 달라는 연락을 미리 받아 현금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피고 은행 은행동지점은 제1심 공동피고 4로부터 제출 받은 자기앞수표 17장이 사고수표인지 여부를 전산으로 확인한 뒤 그 날 11:37경 이를 일단 대봉산업의 예금계좌에 입금시켰다가 바로 현금 17억 원으로 인출하여 제1심 공동피고 4에게 지급하였으며, 피고 은행 대흥동지점 역시 제1심 공동피고 4로부터 제출 받은 자기앞수표 3장이 사고수표인지 여부와 제1심 공동피고 4의 실명 여부를 전산으로 확인한 뒤 그 날 12:10경 현금으로 3억 원을 제1심 공동피고 4에게 지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제1심 공동피고 4는 대봉산업의 대표이사로서 위 자기앞수표를 제시하기 6일 전부터 피고 은행 전직 행원이던 소외 2를 통하여 미리 피고 은행의 은행동지점과 대흥동지점에 밀린 임금 등의 지급을 위하여 필요하니 현금을 준비하여 줄 것을 부탁하면서 대봉산업 명의로 예금계좌까지 개설하였고, 교환 당일 위 은행동지점에서는 그 계좌로 자기앞수표를 입금한 뒤 이를 현금으로 인출하였던 이상, 피고 은행 은행동지점 및 대흥동지점의 직원들은 위 자기앞수표를 현금으로 지급하여 줌에 있어 사고수표인지 여부의 확인 내지 실명확인을 거침으로써 자신들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것이고, 달리 피고 은행으로서 제1심 공동피고 4가 무권리자임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수표법 제35조의 취지에 의하면, 수표지급인인 은행이 수표상 배서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 혹은 수표소지인이 적법한 원인에 기하여 수표를 취득하였는지 등 실권리관계를 조사할 의무는 없다고 할 것이지만, 수표금 지급사무를 처리하는 은행에게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를 기울여 그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 이상, 통상적인 거래기준이나 경험에 비추어 당해 수표가 분실 혹은 도난·횡령되었을 가능성이 예상되거나 또는 수표소지인이 수표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때에는 그 실질적 자격에 대한 조사의무를 진다 고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제1심 공동피고 4가 제1심 공동피고 1로부터 액면 1억 원의 자기앞수표 20장을 건네 받아 피고 은행 은행동지점과 대흥동지점에서 이를 현금으로 바꾸어 지급받음에 있어, 피고 은행 위 지점들은 비록 사전에 자기 은행의 퇴직 직원을 통하여 위 제1심 공동피고 4가 고액의 수표를 현금으로 인출하려고 하니 이를 준비하여 줄 것을 요청받은 바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위 대봉산업이나 제1심 공동피고 4와는 종전에 전혀 거래관계가 없었고 이 사건 수표금 지급으로 처음 거래관계를 맺게 된 것이어서 대봉산업의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한 외에는 그들의 신용이나 재산상태, 영업현황 등에 관하여 전혀 파악한 바가 없었고, 당초 서울에서 자금이 내려온다고 하던 말과 달리 현금 인출을 위하여 제시된 것은 피고 은행 대전 지역의 지점에서 당일 아침 불과 1시간 전에 발행된 자기앞수표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발행지점(역전지점)이 같은 시내(더구나 거리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발행 당일 이에 인접한 은행동지점과 대흥동지점에 액면 1억 원의 자기앞수표 17장과 3장을 일거에 모두 현금(소액인 10만 원권의 자기앞수표도 전혀 포함되지 않기를 희망하였다는 것이다)으로 인출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과 위 두 지점에 지급요청한 금액의 규모와 현금으로 인출할 때의 엄청난 부피, 용도, 취급에 있어서의 번잡과 위험부담 등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고액 수표의 전액 현금지급요청은 정상적인 자기앞수표 소지인이라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어서 그 수표가 혹시 분실·도난·횡령된 것이거나 혹은 수표제시자가 그 수표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처럼 초면의 내방객으로부터 고액의 현금 지급을 요청받은 위 두 지점 직원으로서는 마땅히 발행지점에 위 수표의 발행경위와 발행의뢰인 등을 확인하고 다시 그 확인된 발행의뢰인에게 직접 또는 발행지점을 통하여 위 수표를 사용하거나 타에 양도한 경위 등에 관하여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다(특히, 위 발행지점과 원고의 충남지부는 같은 건물의 1층과 3층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인이나 파악·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채 단지 사고수표인지 여부와 실명 여부만을 확인하여 고액의 현금을 지급한 것은 수표금 지급에 있어서의 지급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원심이, 피고 은행 은행동지점과 대흥동지점이 수표지급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고 달리 제1심 공동피고 4가 무권리자임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은 수표지급인의 주의의무에 관한 구체적 사정에 대하여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기로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용우(재판장) 서성 배기원 박재윤(주심)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