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원고 1 외 6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서석 담당변호사 박도영)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2. 4. 19.
주문
1. 피고는 원고 1, 2, 5에게 각 47,500,000원, 원고 3, 4에게 각 13,571,427원, 원고 6에게 86,428,570원, 원고 7에게 88,571,427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2. 4. 19.부터 2012. 5. 10.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기초 사실
가. 한국전쟁 발발 후 전남 서남부 경찰부대 및 각 지역 경찰은 인민군과 호남지방에서 일진일퇴를 반복하였다. 인민군은 1950. 8. 하순경 진도군을 점령하였는데, 1950. 7. 하순경 인민군이 진도군과 완도군에 접경한 육지에 도착하였을 때 진도군과 완도군의 일부 좌익 세력은 인민군에 합세하여 공격에 참여하였다. 인민군의 점령 당시 전남 서남부지역에는 군·면 인민위원회 등이 설치되었고, 좌익 세력에 의한 우익 인사의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특히 인민군과 좌익 세력은 1950. 9. 하순경 강진, 해남, 완도군에서 우익 인사를 대규모로 희생시켰다.
나. 유엔군이 1950. 9. 중순경 서울을 수복하면서 전남 서남부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인민군과 좌익 세력은 1950. 9. 하순경 위 지역에서 퇴각하였다. 위 지역을 수복한 경찰은 1950. 10. 초순경부터 인민군 점령기의 부역혐의자를 색출하기 시작하였고, 부역혐의자로 각 지서에서 체포되거나 자수한 주민들은 지서 및 경찰서 인근에서 희생되거나 재판을 거쳐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다. 망 소외 1은 수복 이후 용장리 인민재판에 참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어 진도경찰서에 구금되었고, 1950. 11. 10. 경찰에게 끌려 나간 후 행방불명되었다. 망 소외 2는 수복 이후 부역 혐의로 고군지서 경찰에 연행되어 지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10. 24. 고군면 오산리 저수지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2006. 11. 30. 소외 3 등으로부터 진도군 일대에서 일어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신청을 접수하여 2007. 4.경부터 2009. 2.경까지 신청인 조사, 참고인 조사, 현장 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 4. 6. 유족 진술, 참고인 진술, 시신 수습 여부 및 제적부 기록 등을 근거로 망 소외 1, 소외 2(이하 ‘망인들’이라 한다)이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 관련 희생자로서,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망 소외 1은 1950. 11. 중순경 사망하였음을 추정하고, 망 소외 2는 1950. 10. 24. 사망하였음을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다.
아울러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위 결정에서 국가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희생자의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사업을 하며, 유족들이 원할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등 잘못된 공식기록을 정정하고, 군경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내법과 관련 국제법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하였다.
마. 망 소외 1과 그의 처인 망 소외 10 사이의 자녀로는 원고 1, 2, 5, 망 소외 11이 있다. 망 소외 10은 2010. 9. 24. 사망하였고, 망 소외 11은 2004. 9. 23. 사망하였다. 망 소외 11의 사망 당시 배우자는 소외 12이고, 전처인 소외 13과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로 원고 3, 4가 있다.
망 소외 2는 망 소외 14, 소외 15의 차남으로, 망 소외 2의 사망 당시 망 소외 14, 소외 15의 장남인 소외 16이 호주였다. 망 소외 16과 그의 처인 소외 17 사이의 자녀로는 아들인 소외 18이 있다. 망 소외 16은 1965. 11. 7. 사망하였고, 망 소외 15는 1973. 7. 18. 사망하였다. 망 소외 2와 그의 처인 망 소외 19 사이의 자녀로는 원고 6, 7이 있다. 원고 6는 1968. 10. 9. 혼인하였고, 망 소외 19는 1996. 10. 5. 사망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15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산하의 진도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들을 사살하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고, 망인들 및 그 유족들은 이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입은 위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은 전문 증거를 근거로 한 것이므로, 이러한 증거만으로 망인들을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판단하여 피고가 망인들 및 그 유족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은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집단적·조직적으로 연행되어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인 점,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통지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유족이 피해자들의 사망 여부나 사망 경위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유족이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 또한 사건 당시 및 이후의 국내 사회적, 정치적 상황상 망인들의 가족들로서 받게 될 사회적 불이익으로 인하여 유족이 망인들의 사망 경위를 숨겨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가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별도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이상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설립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을 신뢰하여 망인들을 진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로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다면 이를 존중함이 마땅하고, 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사법절차의 사실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증명을 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문 증거를 근거로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 기하여 망인들을 진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로 볼 수 없다거나 피고의 망인들 및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으므로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고 항변한다.
나. 판단
이 사건 소가 망인들이 사망한 1950. 11. 중순경 및 1950. 10. 24.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후인 2012. 2. 14.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다.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참조).
위 인정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전시 중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로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의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 피고 등을 상대로 적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점, ② 전쟁이나 내란 등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집단적으로 자행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③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피고가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민의 생명을 박탈한 후 이에 대하여 진상 파악 및 피해 보상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위 집단학살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그 불법의 중대성에 비추어 현저히 불공평하여 허용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로서는 망인들의 사망에 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9. 8. 25.까지는 객관적으로 피고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위자료 액수
망인들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이 진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인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었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망인들의 사망 당시 일실수익 산정을 위한 통계소득 자료가 없어 망인들에 대한 일실수익을 산정할 수 없는 점, 이 사건은 변론종결일부터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위자료 원본을 산정할 때 참작할 필요가 있는 점(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한편 이 사건은 한국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기에 발생한 점 등 이 사건 기록 및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들에 대한 위자료는 100,000,000원, 망인들의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는 50,000,000원, 망인들의 부모와 자녀에 대한 위자료는 각 10,000,000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나. 상속관계
망인들 및 그 유족의 상속관계에 따른 위자료의 계산 내역은 별지의 기재와 같다.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1, 2, 5에게 각 47,500,000원, 원고 3, 4에게 각 13,571,427원, 원고 6에게 86,428,570원, 원고 7에게 88,571,427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2. 4. 19.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2. 5. 10.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