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계약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없으면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하는지 여부(적극) 및 이는 약정해지·해제권을 유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여부(적극)
[2] 계약 당사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무관한 사유를 약정해지 또는 해제사유로 정한 경우,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하면서 귀책사유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 계약 내용이라고 해석하기 위한 요건
[3]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채권자가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및 이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지출비용의 범위 / 지출비용 상당의 배상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2] 계약의 내용이 통상의 경우와 달리 어느 일방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게 하는 경우에는 계약 문언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므로, 당사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무관한 사유를 약정해지 또는 해제사유로 정한 경우에 그 사유로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하면서 귀책사유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 계약 내용이라고 해석하려면, 계약의 내용과 경위, 거래관행 등에 비추어 그렇게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3]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채권자는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지출비용 중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통상의 손해로서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하여 지출한 비용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상대방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한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 제393조 ). 다만 지출비용 상당의 배상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
참조판례
[1] 대법원 1983. 5. 24. 선고 82다카1667 판결 (공1983, 1010) [2] 대법원 1995. 5. 23. 선고 95다6465 판결 (공1995하, 2239) [3] 대법원 1992. 4. 28. 선고 91다29972 판결 (공1992, 1698)
원고, 피상고인
주식회사 푸른공간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신광 담당변호사 권경열)
피고, 상고인
대보건설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한결 담당변호사 김인진 외 3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계약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지만( 민법 제551조 ),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손해배상책임 역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 대법원 1983. 5. 24. 선고 82다카1667 판결 ), 상대방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을 때에는 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 민법 제390조 ). 이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약정해지·해제권을 유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자기책임의 원칙에 부합한다.
또한 계약의 내용이 통상의 경우와 달리 어느 일방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게 하는 경우에는 그 계약 문언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므로 ( 대법원 1995. 5. 23. 선고 95다6465 판결 ), 당사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무관한 사유를 약정해지 또는 해제사유로 정한 경우에 그 사유로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하면서 귀책사유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 계약 내용이라고 해석하려면, 계약의 내용과 경위, 거래관행 등에 비추어 그렇게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한편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채권자는 그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그 지출비용 중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통상의 손해로서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하여 지출한 비용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상대방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한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민법 제393조 ). 다만 그 지출비용 상당의 배상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1992. 4. 28. 선고 91다29972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그 채택 증거에 의하여 다음 사실을 인정하였다.
가. 피고는 2012. 4. 3. 원고와 사이에, ○○○○○○○ 주식회사로부터 도급받은 육군 △△·□□ 병영시설 민간투자시설사업 중 조경 및 정자 등 시설물과 포장공사를 공사대금 932,800,000원(부가가치세 포함), 공사기간 2012. 4. 3.부터 2012. 7. 19.까지로 정하여 원고에게 하도급하는 내용의 공사하도급계약(이하 ‘이 사건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이 사건 하도급계약의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1항은 ‘원고 또는 피고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 서면으로 계약의 이행을 기간으로 정하여 최고한 후 동 기간 내에 계약이 이행되지 아니하는 때에는 당해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해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해지사유의 하나로 제6호에서 ‘제14조 제1항에 의한 공사의 정지기간이 전체공사 기간의 50/100 이상인 때’를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제14조 제1항은 ‘피고는 발주자의 요청 혹은 자신의 설계 변경 등에 의하여 공사 내용을 변경·추가하거나 공사의 전부나 일부에 대한 시공을 일시 중지할 경우에는 변경계약서 등을 사전에 원고에게 교부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4조 제1항은 ‘피고는 도급공사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이 공사와 관련이 있는 공사와의 조정이 필요한 경우에 원고와 협의하여 이 공사의 공사기간, 공사 내용, 계약금액 등을 변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아울러 제25조 제5항에서는 ‘피고 또는 원고는 제1항에 의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다. 원고는 2012. 6. 21. 피고에게, 선행공정의 미비로 인해 조경공사 진행을 위한 수목 식재 기반 조성 및 시설물 설치 기반 등의 확보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입찰 당시 고려되지 않은 장마철 식재로 인하여 수목의 하자 위험이 증가되고 장비 및 인원 투입의 효율성도 떨어지게 되어 심각한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태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라. 피고는 2012. 7. 16. 협력업체 대표자회의에서 부대토목공사업체들에게 현재의 공정으로는 포장공사가 불가능하다며 장비 및 인원을 추가 투입하여 토공, 오수공, 포장공 등 각 공종을 병행 시공하여 공정을 만회하여 줄 것을 촉구하였고, 원고에 대하여는 조경부지 현황을 파악하여 정지작업을 우선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마. 피고는 2012. 7. 20. 원고에게 계약금액의 조정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조속히 계약기간을 변경하고, 공사이행증권의 기간을 연장하여 발부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바. 원고는 2012. 7. 23.경 작업인원을 현장에서 철수시키고 2012. 7. 25. 피고에게, 당초 계약기간과 상이한 내용으로는 원가 상승과 하자의 증대 우려로 인하여 공사 추진이 불가하다고 판단된다며 공사 정산을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3.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 및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원고가 2012. 6. 21. 선행공정의 이행을 촉구할 무렵까지 이미 선행공정의 지연으로 전체 공사기간의 50/100 이상의 기간 동안 공사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가 2012. 7. 23. 공사를 중단하고 2012. 7. 25. 계약을 해지한다는 취지의 통지를 한 것은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1항에 의한 해지권의 행사로서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하도급계약조건 제14조 제1항 및 제25조 제1항 제6호의 각 문언 및 그 취지에 비추어, 위 규정에 따른 계약의 해제 내지 해지는 반드시 계약당사자 일방의 귀책사유에 의한 공사의 정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공사의 정지기간이 전체공사 기간의 50/100 이상인 경우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어 이는 법정해제사유인 채무불이행을 구체화한 것이라기보다는 약정해제사유를 규정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5항에 따른 손해배상도 제25조 제1항 제6호를 전제로 한 경우에는 계약당사자 일방의 귀책사유로 인해 계약이 해제 또는 해지된 경우에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약정해제권 내지 약정해지권의 행사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 계약의 해제 내지 해지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봄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그에 따라 원심은, 원고가 이 사건 하도급계약에 따른 시설물공사의 이행을 위하여 그 설계도서의 규격에 맞추어 원자재를 절단·가공하여 제작한 시설물은 다른 용도로 재사용이 불가능하므로 그 제작에 소요된 지출비용 및 그 밖에 포장공사와 시설물공사를 위하여 지출한 공사비 합계 61,625,414원 상당의 손해는 피고가 배상할 손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4. 그러나 원심의 손해배상책임의 인정 여부 및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위 판단은 다음의 이유로 수긍할 수 없다.
가.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하도급계약에 편입된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1항은 계약해제·해지사유로, ‘원고 또는 피고가 계약조건에 위반하여 그 위반으로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제1호), 원고에 대해 압류, 가압류, 당좌거래정지(부도), 회생개시신청, 파산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제2호), 피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하고 그 위반으로 공사를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제3호), 원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약정한 착공기간을 경과하고도 공사에 착공하지 아니한 때(제4호), 피고가 공사 내용을 변경함으로써 계약금액이 40/100 이상 감소한 때(제5호), 제14조 제1항에 의한 공사의 정지기간이 전체공사 기간의 50/100 이상인 때(제6호), 원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제7조에 정한 계약이행을 보증하지 아니한 때(제7호)’를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해제·해지사유를 구분해보면, 제1호, 제3호, 제4호, 제7호는 원고 또는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상대방에게 해제·해지권이 있다는 법정해제·해지사유를 구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제2호, 제5호, 제6호는 계약의 순조로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이유로 계약상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약정해제사유를 정한 것으로서, 이 계약조항은 계약이행의 장애를 이유로 계약상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고 보인다.
위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1항에 이어 제5항은 ‘제1항에 의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계약의 해제·해지와 손해배상의 관계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약조항이 약정해제·해지권을 행사하여 해제·해지한 경우에는 상대방의 귀책사유와 무관하게 손해배상책임을 지기로 한 취지라고 해석할 만한 특별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오히려 원고는 원심에서 제출한 2015. 1. 19.자 준비서면을 통하여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1항 제6호의 사유로 이 사건 하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은 피고의 이행지체로 인한 법정해제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위 제5항의 규정이 상대방의 귀책사유와 상관없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취지의 특별한 합의내용을 담은 것이라면 약정해제·해지의 경우이든 법정해제·해지의 경우이든 동일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데 이는 앞에서 본 법정해제·해지권의 행사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민법의 일반원칙을 배제하는 셈이 되므로 그럴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이는 쉽게 취하기 어려운 의사해석 방법이다. 원심과 같이 해석할 경우 심지어 쌍방에 책임이 없는 불가항력의 사유로 공사정지 기간이 길어져 약정해지권을 행사한 경우에도 그 계약관계에서 발생한 손해 전부를 배상하기로 약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과연 당사자의 의사가 그에 합치하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위 하도급계약조건의 전반적 구조와 내용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작성 및 사용을 권장하는 개정 전 ‘건설업 표준하도급계약서’와 거의 같은 점에 비추어, 위 하도급계약조건 제25조 제5항도 그에 따른 것일 뿐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의 해제·해지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상대방의 귀책사유 유무와 상관없이 부담하기로 특별히 협의한 결과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나. 그러므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하도급계약의 해제·해지사유와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하면서 앞에서 본 법리에 따른 일반원칙과 달리 약정해제·해지사유로 해제·해지된 경우에는 상대방의 귀책사유와 무관하게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 전부를 배상하기로 한 취지라고 하려면 그럴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를 먼저 밝혀 보았어야 한다. 나아가 피고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지출비용 상당의 배상은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원고가 공사로 얻을 수 있었을 이행이익이 얼마인지, 그 이행이익의 존부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원고가 청구하는 지출비용이 이행이익의 범위 내인지 등에 대하여도 추가로 심리해 보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판단을 하는 데 필요한 사실관계 등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피고는 그의 귀책사유와 무관하게 계약해지로 인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단정하였으니, 거기에는 손해배상책임의 인정 여부 및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5. 이에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