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무죄
red_flag_2
서울서부지방법원 2010. 12. 7. 선고 2010노1070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검사

김윤정

변 호 인

법무법인 화인 담당변호사 김홍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주장

① 이 사건 사고 당시 피해자는 검은 색상의 하의를 입은 채 술에 만취한 상태로 경사 17도의 내리막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고 판단되는데, 피고인으로서는 좌회전을 하여 위 내리막 길에 진입하는 터에 그 좌회전 지점으로부터 불과 2-3미터 거리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피해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또 그곳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운전하던 택시차량으로 피해자를 역과한 피고인에게 어떠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할 수 없음에도 원심은 만연히 피고인이 차량운전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만 판시하여 원심판결에는 이유불비의 잘못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과실범에 있어 주의의무 내지는 예견가능성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② 설령 피고인에게 어떠한 주의의무 위반의 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그 내리막 길에 사람이 쓰러져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무언가 역과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를 단순히 쓰레기봉투 정도로만 생각하였을 뿐이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역과한 직후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따라 운행하였으므로, 후사경으로 쓰러진 피해자를 발견할 수도 없었으므로, 피고인에게 도주의 범의가 있었다고 할 수 없음에도, 만연히 피고인에게 도주의 범의가 있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나. 양형부당 주장

설령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의 유죄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과실이 중하다고 볼 수 없는 점, 피고인이 자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점 등에 비추어 원심의 형(징역 3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차량번호 생략) 택시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2010. 3. 26. 00:49경 위 택시를 운전하여 서울 은평구 불광2동 (지번 생략) ○○빌라 앞 내리막 골목길을 원광빌라 방면에서 ‘ □□빌라’ 방면으로 좌회전하였다. 그곳은 주택가 골목길이고 야간이어서 주위가 어두웠으므로 운전업무 종사자로서는 전방 및 좌우에 사람 등이 있는지를 잘 살펴서 안전하게 운행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는데, 피고인은 이를 다하지 않은 채 좌회전하면서 술에 취하여 앉아 있던 피해자 공소외 1(여, 26세)을 택시 앞부분으로 밀어 넘어뜨리고 피해자의 몸통 부위를 택시 바퀴로 밟고 지나가 그 자리에서 피해자를 흉부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에 앉아있었다고 인정하여 피고인이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보지 아니한 채 위 골목길로 좌회전함으로써 피해자를 자신의 택시차량으로 역과한 데에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고, 설령 피고인의 주장대로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에 쓰러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야간에 주택가 골목길을 통과하는 차량 운전자로서 다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없어진다고 할 수도 없으며, 이 사건 사고 직후 어떤 물체를 타고 넘었다는 인식을 하고서도 즉시 정차하고 차에서 내려 직접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사고의 발생사실을 인식하고도 도주할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다. 당심의 판단

우선, 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인정하기 위하여는 피고인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이 사건 내리막 골목길 위에 있던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나아가 자신이 운행하던 차량으로 피해자를 역과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8도2254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공소사실의 기재와 같이 이 사건 사고 당시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었는지’ 여부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여부와 직접 관련되므로 먼저 그 점에 관하여 살펴본다.

원심이 조사한 여러 증거에 의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당일 00:42경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의 각 사정들, 즉 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감정인 공소외 2, 3 작성의 이 사건 택시 차량 및 피해자의 의류에 대한 감정서(수사기록 제234 내지 237면)에는, 위 택시 차량의 전면부에 피해자를 충격하였다고 볼 수 있는 특이 손상과 부착물(섬유 등)이 발견되지 않았고, 단지 택시 차량의 좌측 하부구조물에서 피해자를 충격한 뒤에 이를 닦은 흔적 및 피해자의 의류 섬유가 검출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 ②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이 그 인근 CCTV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각인 00:42경과 이 사건 사고의 발생시각인 00:49경 사이에는 7분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으므로, 이 사건 사고 당시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있었던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다가 위 7분 정도 사이에 균형을 잃거나 다른 어떤 사유로 쓰러져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앞의 인정사실만으로 이 사건 사고 당시에도 피해자가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달리 검사의 전 입증으로도 이 점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위와 같이 피해자가 이 사건 사고 당시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앉아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이상, 나아가 피고인의 변소와 같이 피해자가 그곳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고 보아 피고인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면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고, 또한 자신이 운행하던 차량으로 피해자를 역과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그 택시 차량을 운전하여 좌회전을 하자마자 이 사건 내리막 골목길에 진입하였는데, 위 내리막 골목길 진입 지점은 경사도 약 9.6° 정도의 심한 경사구간인 사실, 위 내리막 골목길의 좌측에는 차량들이 일렬로 주차되어 있어 위 골목길의 폭인 4.8m보다 훨씬 좁은 폭만이 도로로 확보되어 있었고, 이 사건 사고지점은 위 내리막 골목길의 진입지점으로부터 약 7.7m 떨어져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 측이 당심에 제출한 사진 영상들과 당심의 현장검증조서의 기재 등에 의하면, 피고인이 택시 차량을 운행한 도로는 직진 후 90° 정도로 급격하게 좌회전하는 지역으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급경사인 위 내리막 골목길에 진입하게 되어 택시차량의 보닛, 좌측 백미러, 앞 차창의 좌측 프레임 등에 가려져서 그 운전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야의 사각지대가 상당부분 존재하였던 사실, 그리고 일단 위 내리막 골목길에 좌회전 진입한 운전자로서는 의도적으로 왼쪽 창 쪽으로 고개를 젖히거나 몸을 운전석에서 일으켜 세운 후 정면 차창의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지 않는 이상 그곳 골목길 바닥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없는 상태였던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피고인이 그 택시 차량의 왼쪽 창 쪽으로 고개를 젖히거나 몸을 운전석에서 일으켜 세운 후 차창의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면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볼 수 있다고는 하나, 피고인이 위 내리막 골목길의 바닥 위에 누군가 쓰러져 있을 가능성을 예상하고서 거기에 대비하여 택시차량을 일시 정지하여(앞서 본 사정에 비추어 단순히 차량을 서행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피해자를 미리 발견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왼쪽 창쪽으로 고개를 젖히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거나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정면 차창 아래를 내려다 보아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어(당시는 심야시간대였고, 또한 현장은 주택가의 골목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숙이 필요하므로, 위와 같이 시야가 확보되지 아니하는 사각지대가 상당 부분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이 미리 도로에 사람이 쓰러져 있을 것 등을 예상하여 경적소리를 울리는 등의 조치를 취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할 수 없고, 당시 피해자는 술에 만취한 상태였으므로 피고인이 경적소리를 울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이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피고인이 운전자로서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위 내리막 골목길 위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보지 못하였다고 하려면, 피고인이 위 택시차량을 운전하여 좌회전을 하던 시점으로부터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지점에 도달하는 시점까지 사이에 위와 같은 시야의 사각지대를 벗어나 위 내리막 골목길의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위 택시 차량을 운행한 적이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검사가 이 사건에서 제출한 증거들 중에는 이와 같은 점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다(혹 피고인이 이 사건 급경사 좌회전 지점에 이르러 가능한 한 차량을 골목길 도로 우측으로 붙여 운행하면서 회전반경을 최대한 크게 하여 진입하였다면, 도로에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미리 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통상의 자동차 운전자에게 이 사건과 같은 이례적인 상황까지 미리 예상하여 그렇게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이 당시 실제로 그러한 경로로 이 사건 택시를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도로에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볼 수 있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은 이 사건과 같이 업무상 과실이 문제되는 경우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할 것인바, 제반 사정이 위와 같다면 결국 피고인에게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된 어떠한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잘못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이 사건 공소사실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자동차 운전자의 업무상 주의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인의 위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따라서, 피고인의 항소는 도주의 범의 유무나 양형부당 주장에 관하여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제2의 가. 항 기재와 같은바, 이는 같은 다. 항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판사 배기열(재판장) 이현경 정기상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