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함에 따라 권리자가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2]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국가가 소멸시효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이 경우 ‘상당한 기간’의 범위
참조판례
[1][2]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3하, 1077) 대법원 2013. 8. 22. 선고 2013다200568 판결 (공2013하, 1700) [1]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공2011하, 2046)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병영)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소외인이 1956. 12. 15. 사망에 이르게 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에 의하여 소외인이 사망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소외인과 그 직계비속 및 배우자인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 사고 발생에 관하여 소외인에게 어떠한 부주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의 과실상계 주장을 배척하였다.
관련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불법행위책임에 있어 과실과 상당인과관계의 입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제1심이 채택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피고 산하 육군은 이 사건 사고 발생 11개월 후인 1957. 11. 15.경 원고들을 비롯한 소외인의 유족들에게 이 사건 사고에 대한 설명 없이 소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는 내용의 통지만을 한 사실, 소외인의 딸인 원고 1은 2008. 8.경 국민신문고에 소외인의 사망원인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하였고, 국방부조사본부 사망사고민원조사단은 2009. 12. 7.경 원고 1에게 이 사건 사고로 소외인이 사망하였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알려 준 사실을 인용한 다음,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원고들이 2009. 12. 7.경 국방부로부터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때에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소멸하였고, 그 무렵 원고들은 비로소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때로부터 3년의 시효기간이 새로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객관적 장애사유가 소멸한 시점부터 6개월 이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나. 먼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분에 관하여 본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위 법리에다가 원심이 든 판시 사정과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 즉 그간 은폐되어 군 외부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소외인의 사망 원인에 대하여 재조사를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되자 국방부가 2009. 12. 7.경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 사망원인에 대하여 알려줌으로써 소외인의 유족인 원고들에게 그 사망 원인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상당한 기간 내에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였다고 한다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로 한 원심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다. 그러나 원고들이 2009. 12. 7.경 국방부로부터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때에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소멸하였고, 그 무렵 원고들은 비로소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때로부터 3년의 시효기간이 새로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할 수 없다.
1)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여야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된다 할 것이지만( 민법 제766조 제1항 ), 다른 한편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 1961. 12. 19. 법률 제849호로 폐지되기 전의 구 재정법 제58조 ).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은 위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과 달리 불법행위일로부터 바로 진행이 되므로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2009. 12. 7.경에서야 국방부로부터 이 사건 사고로 소외인이 사망하였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이 사건 사고로 소외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2) 하지만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되지 아니함으로써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면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3) 위 법리에 비추어 원심으로서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피고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피고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원고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하면서 원고가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을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정지사유가 소멸된 날부터 6개월 내)으로 제한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최장기간인 3년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4) 그럼에도 원심은 마치 원고들이 국방부로부터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2009. 12. 7.경부터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 내에는 당연히 그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그에 따른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라. 따라서 이러한 취지를 포함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