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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다54709 판결
[손해배상(기)][공2011하,2442]
판시사항

[1]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

[2] 198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일어난 이른바 ‘10·27 법난’ 당시 정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내 합동수사단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구금이 되어 고문과 폭행 등을 당한 피해자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벗어난 1980. 11. 26.부터 5년이 훨씬 경과한 2009. 6. 5.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 사안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2] 198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일어난 이른바 ‘10·27 법난’ 당시 정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내 합동수사단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구금이 되어 고문과 폭행 등을 당한 피해자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벗어난 1980. 11. 26.부터 5년이 훨씬 경과한 2009. 6. 5.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벗어난 때로부터 기산되고,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10·27 법난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 발표, 국회의 ‘10·27 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등으로 국가가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나아가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채권 소멸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원고, 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담당변호사 길기관 외 1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길진오 외 4인)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살펴본다.

1. 원심의 판단

가. 원심은 먼저 198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일어난 그 판시의 이른바 10·27법난(이하 ‘10·27법난’) 당시 피고 소속 합동수사본부 내의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 수사관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계종 삼각산 도선사의 주지로 있던 원고를 강제 연행하여 25일간 구금하면서 고문과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통하여 원고가 부정축재하고 요정을 경영하였다는 내용의 허위진술서를 작성하게 하였고 그러한 내용을 언론을 통하여 공표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의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나. 원고의 위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1) 우선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반의 불법행위채권으로서 원고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국가에 대한 채권으로서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함으로써 시효로 소멸하는데, 이 사건 소는 원고가 위 불법구금상태로부터 벗어난 1980. 11. 26.부터 5년이 훨씬 더 경과한 2009. 6. 5.에 제기되었으므로 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원심은 원고의 주장, 즉 위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때부터 기산되어야 하는데, 원고는 전두환 정권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 등으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으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 10. 25. ‘10·27법난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를 발표하고 국회가 2008. 3. 28.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에야 비로소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각 그 다음날로부터 기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가 들고 있는 국내의 정치적 상황 등을 원인으로 한 권리행사의 장애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아닌 사실상의 장애사유에 그친다고 판단하고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2) 나아가 소외 1 전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10·27법난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 발표, 국회의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은 결국 피고가 10·27법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승인한 것이므로 시효이익의 포기에 해당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위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이 10·27법난의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의료지원금 지급 등에 관한 피고의 의무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는 손해배상의무 이행에 갈음하여 피고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법정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로써 피고가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상 손해배상채무에 관한 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하였다.

(3) 또한 원고는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비록 원고가 1980. 11. 26. 불법구금상태에서 벗어났으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한 1993년 2월경까지는 사실상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그 후 소외 1 전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성명이 있었지만 10·27법난의 전모는 여전히 밝혀지지 아니하여 결국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 10. 25. ‘10·27법난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를 발표하고, 국회가 2008. 3. 28.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까지 원고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객관적으로 장애사유가 있었다. 또한 10·27법난은 공무원이 통상적인 공무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저지르게 된 일반적인 불법행위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불법구금과 고문 등을 자행한 반인도주의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① 제5공화국에서의 각종 정치권력형 비리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제13대 국회는 1988. 6. 27. ‘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비리 조사특별위원회’(이하 ‘5공특위’)를 구성한 사실, ② 5공특위는 1989. 2. 22. 인권 관련 비리로 10·27법난을 조사대상으로 채택한 사실, ③ 5공특위는 1989. 3. 17.에 10·27법난 관련 피해자측 증인으로 원고를 포함하여 8명을 최종 선정하였는데, 다만 예정된 청문회는 피해자측 증인들의 ‘5공특위 여야위원 전원참석, 생중계방송, 증거자료보전’ 등을 이유로 한 연기요청에 따라 무기 연기된 사실, ④ 5공특위는 그 후 1989. 4. 6. 국방부와 보안사령부에 대한 문서검증을 실시하고, 같은 해 4. 11.까지 법무부로부터 10·27법난 관련 형사입건자 17명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을 넘겨받아 조사한 사실, ⑤ 그 후 국회는 1990. 7. 12.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국정조사결과보고’를 채택하였는데, 10·27법난에 관하여는 “국보위의 지시에 따라 합수단이 일부 스님 및 신도들 중 부정비리와 폭력행위에 관련된 자들을 수사하였으나, 사직 당국은 부정축재재산 환수에 관한 정밀수사가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실과 달리 언론에 발표하고, 또 과잉수사로 일부 불교 성직자들의 인권과 교권을 침해하였다는 피해자측 주장에 대하여, [중략] 정부측은 10·27법난으로 피해를 입은 불교계에 적극적인 지원과 적절한 피해보상을 함은 물론 10·27 불교계 수사사건의 경위를 철저히 밝혀 다시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천명하였다”는 조사결과의견이 제출된 사실, ⑥ 위 국정조사결과에 따라 법무부, 국방부 등 11개 부처는 1990. 7. 12. 국회에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비리에 관한 국정조사결과 시정 및 처리결과보고서’를 제출한 사실, ⑦ 한편 불교계에서는 소외 2 스님 등 불교계 중진 인사들로 구성된 ‘10·27법난 진상규명위원회’가 1988. 11. 16. 발족하여 같은 해 11. 22. “10·27법난을 일으킨 책임자들은 그 입안 과정과 시행자, 수사 과정 등 진상을 2,000만 불교도와 국민에게 공개 해명하고 해당자들은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고, 그 이후로도 원고 및 소외 3, 4, 5 스님 등으로 구성된 ‘10·27법난 불교대책위원회’가 2005. 7. 4. 결성식을 갖고 같은 해 8. 23.에 10·27법난에 관한 증언보고회를 개최하기도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5공특위 국정조사결과보고서가 채택된 1990. 7. 12.부터는 원고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거기에 위와 같은 원고를 비롯한 불교계 인사들의 10·27법난에 관한 진상규명 노력, 피고의 국회 차원에서의 경위 조사 및 피해회복 관련 조치 등에다가 피고가 10·27법난의 진상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는 점 등의 사정까지 더하여 보면, 원고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음을 이유로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어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2. 당원의 판단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그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에는 주의를 요하고 이를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민법 제166조 제1항 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정하고 있고, 판례는 여기서 소멸시효가 진행할 수 없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때’라고 함은 그 권리의 행사가 법률상의 장애, 예를 들면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그 행사에 사실상의 장애가 있음에 불과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취하여 왔다( 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누572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두10763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것만을 들어 그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쉽사리 인정하게 되면,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위와 같은 법규칙은 많은 부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쉽다(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점들에다가 원심이 들고 있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원고가 불법구금상태로부터 벗어난 때로부터 기산되고, 원고 주장의 여러 사유가 피고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나아가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채권 소멸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소멸시효의 기산점, 시효이익의 포기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지형(재판장) 전수안 양창수(주심)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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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11.3.선고 2009가합63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