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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9다11570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진술이 언론보도의 내용이 된 경우, 명예훼손 여부의 판단 기준

원고, 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신세기 담당변호사 이태진외 1인)

피고, 피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청솔 담당변호사 이한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나서 제출된 보충상고이유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언론보도의 내용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인지 여부는 일반인이 이를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그 전체적인 취지와의 연관 하에서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다가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37647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진술도 그것이 언론보도의 내용이 된 이상 같은 방법으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그 경우에는 보도내용에 나타난 진술자와 진술의 대상이 된 자의 관계, 진술자의 의도 등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1980. 4. 21.부터 4. 24.까지 강원도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일대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이하 ‘사북탄광사태’라 한다)의 발생 및 사태수습 과정에서 동원탄좌노조지부 지도위원으로서 광부들 측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피고가 2005. 8. 8.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로 결정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진술과 관련하여, 사북탄광사태 중에 광부들과 부녀자들로부터 극심한 성적 가혹행위 및 폭행를 당하였던 원고가 명예훼손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명예훼손 부분에 관하여는, 이 사건 각 인터뷰보도를 통하여 청취자나 독자들이 사북부읍장 소외인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고에 의해 원고에 대한 구조·후송이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범죄행위의 피해자로서의 원고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는 한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침해에 관하여는, 원고에 대한 구조·후송은 당시의 신문들 또는 이후의 관련 책자나 자료들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그 의미가 계속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여 사생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피고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결정된 후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수동적으로 응하여 당시의 상황을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범위 내에서 소극적으로 답변한 것에 불과하고, 원고의 객관적인 피해사실을 다소 축소한 그 진술내용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수인한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하여 청구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비록 원고의 피해사실이 사북탄광사태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고, 이 사건 각 인터뷰에서 원고에 대한 성적 가혹행위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도 아니어서 그로 인하여 원고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원심의 판단 중 이 사건 각 인터뷰로 인하여 원고의 명예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를 수긍할 수 없다.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원고는 1980. 4. 22. 오후 늦게 피고가 광부들을 설득하여 묶여 있던 게시판 기둥에서 풀려나기는 했으나 농성지역 밖으로 내보내지거나 병원으로 후송되지 않았고 이후 광업소 근처 창고에 갇혀 있거나 끌려 다니다가 4. 24. 8:00경 사북부읍장 소외인과 일부 광부 등에 의하여 구조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것이므로, 원심판결 별지 ‘피고의 발언 목록’ 제1항의 “피고가 4. 21. 원고를 바로 풀어주었는데도 4. 24.에 풀어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지금까지 권력 등에 의해서 과장되었던 것이고, 당시의 폭력성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내용 및 제2항의 “피고가 원고를 게시판에서 풀어준 뒤 병원으로 보냈다”는 취지의 인터뷰내용은 원고가 피해를 입은 객관적인 경위 및 내용과 다른 허위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위 목록 제1, 2항의 피고의 인터뷰내용을 보면, 자신이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된 기회에 원고의 피해내용과 정도를 되도록 축소시킴으로써 사북탄광사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원고가 입은 피해에 대한 자신의 관련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피고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사건 인터뷰내용에 나타난 원·피고의 관계, 원고가 입은 피해의 내용과 정도, 진술내용의 진위, 사건의 배경 및 진술의 전후 맥락, 피고의 진술 의도 등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이처럼 가해자 측에 있는 피고가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된 기회에 위와 같은 의도로 극심한 성적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인 원고의 피해내용과 정도를 축소·왜곡한 허위내용의 인터뷰를 한 것은, 그 자체로 위 범죄행위의 피해자인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보도내용을 접하는 독자나 청취자에게 마치 원고가 입은 피해가 그리 중한 것이 아님에도 이를 과장하여 민주화운동을 매도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 여지도 있으므로, 원고의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한편, 피고의 인터뷰는 이처럼 원고의 피해를 축소·왜곡한 허위의 내용일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내용의 인터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없으며,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 등에 의하면, 원고의 피해내용 및 구조일시 등은 사건 당시 신문들에도 여러 차례 보도되었고, 피고가 민주화운동관련자 신청을 하면서 첨부하여 제출한 ‘사북사건자료집’에도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설령 피고가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적시한 데에 위법성조각사유가 인정될 여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명예훼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으므로,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시환(재판장) 박일환 안대희(주심)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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