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채권자의 담보상실ㆍ감소 행위로 인한 법정대위자의 면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시점(= 담보상실ㆍ감소 시점)
[2] 채권자가 제3자에 대하여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성실히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채권자의 고의나 과실로 담보가 상실 또는 감소된 경우, 민법 제485조에 의하여 법정대위자가 책임을 면하는지 여부는 담보가 상실 또는 감소된 시점을 표준시점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행사할지 여부는 채권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채권자가 제3자에 대하여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성실하게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포기하였다고 하여 이를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위변제의 정당한 이익을 갖는 자가 채권자의 담보상실 또는 감소 행위를 들어 민법 제485조 소정의 면책을 주장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위변제의 정당한 이익을 갖는 자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성실히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는 할 수 없다.
원고,피상고인겸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용근)
피고,상고인겸피상고인
주식회사 한국외환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대륙 담당변호사 여상조 외 8인)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이 그 채택증거를 종합하여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가. 원고는 주식회사 거성통신(이하 '소외 회사'라고 한다)의 피고에 대한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1995. 7. 19. 원고 소유인 서울 구로구 (주소 1 생략), (주소 2 생략) 지상 ○○아파트 (동, 호수 1 생략)(이하 '제1부동산'이라고 한다)에 관하여 채권최고액을 6,500만 원으로 한 피고 명의의 근저당권설정등기(이하 '제1근저당권'이라고 한다)를 경료하였다.
나. 같은 날 소외 회사의 대표이사이던 소외 1 역시 소외 회사의 피고에 대한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인 같은 아파트 (동, 호수 2 생략)(이하 '제2부동산'이라고 한다)에 관하여 채권최고액을 6,500만 원으로 한 피고 명의의 근저당권설정등기(이하 '제2근저당권'이라고 한다)를 경료하였다.
다. 당시 제1부동산 및 제2부동산의 시가는 각 1억 2,000만 원이었다.
라. 제2부동산에 대하여는 피고 명의의 제2근저당권보다 선순위로, 주식회사 경안상호신용금고 명의의 채권최고액 7,500만 원인 근저당권과 한국렌탈 주식회사 명의의 채권최고액 1억 400만 원인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마. 피고는 소외 회사로부터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96. 5. 13. 소외 회사로부터 대출금 이자 1,197,575원과 피고 명의로 질권이 설정되어 있는 소외 회사의 적립신탁금계좌에 375만 원을 불입하도록 한 다음, 선순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가 과다하여 제2근저당권의 가치가 없으며, 소외 회사의 채무가 7,100만 원인 반면 이를 위한 담보가 제1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6,500만 원과 위 적립신탁금의 목표액 1,300만 원을 합한 7,800만 원이어서 담보비율이 109%에 상당하므로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도 채권보전에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1996. 5. 28.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주었다.
바. 제2근저당권 말소 후 소외 1은 1996. 5. 31. 소외 2에게 제2부동산에 관하여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주었고, 1996. 7. 25. 제2부동산에 관한 위 각 선순위 근저당권설정등기까지 모두 말소되었다.
사. 한편, 피고의 신청으로 1997. 4. 22. 제1부동산에 관한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자, 원고는 제1부동산이 경매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소외 회사를 대위하여 피고에게 합계 금 58,782,505원을 변제하였다.
2. 먼저 피고의 상고이유를 본다.
가. 원심은, 민법 제485조에 의한 면책의 여부 또는 면책의 액을 결정하는 표준시기는 객관적으로 보아 담보권을 실행하거나 또는 실행할 수 있었을 때를 표준으로 한다고 전제한 후, 이 사건에서는 제1부동산에 대하여 임의경매개시결정이 있은 1997. 4. 22.을 면책의 여부 및 면책의 액을 결정하는 표준시기라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위와 같은 판단에 기초하여, 위 1997. 4. 22. 당시에는 제2부동산에 관한 선순위의 근저당권이 모두 말소되었으므로 제2부동산에 대한 피고의 제2근저당권은 담보가치를 갖고 있었을 터인데, 피고가 1996. 5. 28.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담보를 상실 또는 감소하게 하였으므로 대위변제의 정당한 이익이 있는 원고는 그 담보의 상실 또는 감소로 인하여 상환받을 수 없는 한도에서 그 책임을 면한다고 판단하였다.
나. 그러나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
피고가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준 것이 민법 제485조 소정의 "담보가 상실되거나 감소된 때"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피고가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준 시점을 표준시점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그 이후 피고의 제2근저당권 말소행위와 무관한 사정에 의하여 선순위의 근저당권이 말소된 사정을 참작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제2부동산에 관한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준 1996. 5. 28. 당시에는 제2부동산의 시가가 1억 2,000만 원인 반면, 주식회사 경안상호신용금고 명의의 채권최고액 7,500만 원인 근저당권과 한국렌탈 주식회사 명의의 채권최고액 1억 400만 원인 근저당권이 선순위로 설정되어 있었으므로 피고 명의의 제2근저당권은 그 담보가치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가 담보가치가 없는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주는 대신 질권이 설정된 소외 회사의 적립신탁금계좌에 추가 예금을 받아 질권으로 담보되는 범위를 확대하였다면 이러한 피고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이고 이러한 피고의 선택을 들어 민법 제485조에서 정한 "담보가 상실되거나 감소된 때"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3. 이어서 원고의 상고이유를 본다.
가. 원고는 제1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는 소외 회사가 1995. 7. 21. 피고로부터 5,000만 원을 대출 받은 채무에 한정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원심은 그 채택증거를 종합하여 제1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는 소외 회사가 피고에 대하여 당시 및 장래에 부담하는 어음대출, 어음할인, 증서대출, 당좌대출, 기타 여신거래에 관한 모든 채무라고 인정하였는바,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보면 원심의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이에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상고이유 제1점의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원고는 피고가 제2부동산에 관한 제2근저당권을 말소하여 주고 소외 회사에 대한 채권 확보를 게을리하는 등 피고가 소외 1 등과 공모하여 원고의 법정대위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행사할지 여부는 채권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채권자가 제3자에 대하여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성실하게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포기하였다고 하여 이를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위변제의 정당한 이익을 갖는 자가 채권자의 담보상실 또는 감소 행위를 들어 민법 제485조 소정의 면책을 주장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위변제의 정당한 이익을 갖는 자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을 성실히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는 할 수 없다 . 따라서 원고가 소외 회사의 피고에 대한 채무를 대위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다는 사정 이외에 달리 피고가 원고에게 소외 회사에 대한 채권과 담보권을 성실하게 행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원인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이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가 소외 회사에 대한 채권과 담보권을 소홀히 행사한 것이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위 청구는 그 주장 자체로서 이유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고 이에 채증법칙 위배, 판단유탈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의 상고이유 제2점 및 제3점의 주장 또한 이유 없다.
다. 원고는, 상고이유 제4점에서, 제1심판결 선고일 다음날 이후에는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원심이 제1심판결 선고일부터 원심판결 선고일까지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3조 제1항 소정의 법정이율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므로 원고의 상고이유 제4점의 주장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4. 그러므로 피고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새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