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원고 1 외 6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서정 담당변호사 이흥복 외 2인)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2. 4. 17.
주문
1.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금 400,000,000원, 원고 3에게 금 109,090,909원,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에게 각 금 72,727,272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2. 4. 18.부터 2012. 5. 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1/5은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금 500,000,000원, 원고 3에게 금 136,363,636원,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에게 각 금 90,909,09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들에 대한 불법 구금 및 수사, 공소제기
1) 원고 1, 원고 2와 망 소외 1(이하 함께 ‘원고 1 등’이라 한다)는, 1974. 1. 7. 문인 61명이 발표한 개헌지지성명에 관여한 후, 1974. 1. 14. ~ 22. 사이에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하여 영장 없이 연행되었다. 이는 당시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2)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은 열흘 동안 원고 1 등을 불법 구금한 채 구타, 협박, 잠 안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하면서, 일본에서 발행되는 한글 잡지인 ‘☆☆’이 반국가단체의 위장지임을 알면서 원고를 게재하고 원고료를 받았다는 등의 혐의를 자백할 것을 강요하였다. 원고 1 등은 위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허위 자백하였다.
나. 유죄판결
1) 원고 1 등은 공판절차에서 범행을 모두 부인하였으나 제1심 법원은 1974. 6. 28. 원고 1 등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원고 1에 대하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 원고 2에 대하여는 징역 1년 6월과 자격정지 2년, 망 소외 1에 대하여는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각 선고하였다( 서울형사지방법원 74고단1656호 ).
2) 원고 1 등은 서울형사지방법원 74노5604호 로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1974. 10. 31. 원고 1의 항소는 기각하고, 원고 2에 대하여는 3년간, 망 소외 1에 대하여는 2년간 각 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법원이 1976. 7. 27. 원고 1 등의 상고를 모두 기각함으로써 위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대법원 74도3733호 ).
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 5. 22.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에 관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국군보안사령부가 1974년 문인들의 개헌지지성명을 빌미로 원고 1 등을 불법 연행하여 구금하고 고문·가혹행위로 반국가단체와의 교류사실에 대한 자백을 받아 내고 중앙정보부가 수사한 형식으로 허위 수사기록을 만들어 검찰의 조사, 법원의 판결을 거쳐 처벌받게 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피고는 원고 1 등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 재심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권고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마. 재심판결의 확정
1) 원고 1에 대하여 2010. 10. 1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재고단16호로 재심개시결정 이 내려졌다. 위 법원은 2011. 5. 12. 원고 1의 국가보안법위반 및 반공법위반의 각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고 검사의 항소 및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위 판결이 2011. 12. 23. 확정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재고단16호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노1643호 , 대법원 2011도11458호 ).
2) 원고 2와 망 소외 1에 대하여도 2010. 12. 1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재노33호로 재심개시결정 이 내려졌다. 위 법원은 2011. 5. 19. 원고 2와 망 소외 1의 국가보안법위반 및 반공법위반에 대하여 각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고(원고 2의 외환관리법 위반에 대하여는 선고유예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원고 2는 이에 대해 상고하지 아니하였다), 검사의 상고가 기각되어 위 판결이 2011. 9. 8. 확정되었다( 대법원 2011도7399호 ).
바. 원고들의 관계
망 소외 1은 2009. 10. 27. 사망하였고, 원고 3은 망 소외 1의 처,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은 망 소외 1의 자녀들이다.
[인정근거] : 변론 전체의 취지, 갑 제1, 2, 4, 5, 7, 12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원고 1, 원고 2 본인신문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우리 헌법은 제12조 제1항 에서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제12조 제2항 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률에 의한 체포 · 구속과 죄형 법정주의 및 적법절차보장( 제12조 제1항 본문), 고문의 금지와 불리한 진술거부권( 제12조 제2항 ),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체포 · 구속( 제12조 제3항 ),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국선변호인( 제12조 제4항 ), 구속이유의 고지( 제12조 제5항 ), 구속적부심사제도( 제12조 제6항 ), 자백의 증거능력제한( 제12조 제7항 ) 등을 규정함으로써 신체의 자유에 관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3) 그런데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의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원고 1 등을 영장 없이 불법으로 체포·구금하고,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하여 허위자백을 받아낸 결과 무고한 원고 1 등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고 이는 국가가 헌법에 위반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따라 원고 1, 원고 2, 망 소외 1이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1)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1976. 7. 27. 피고의 불법행위가 종료되었고, 원고들이 복권된 1980년 이후, 늦어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 2. 25. 이후에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소는 위 각 시점으로부터 3년 또는 5년이 경과하여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
2)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받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3) 그런데 위 기초사실에 의하면, 원고 1 등은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허위로 자백하게 되었고 제1심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였으나 제1심 법원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대법원에까지 상고하였음에도 결국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법원으로부터 재심판결을 받아 무죄임을 인정받기 전에는, 원고 1, 원고 2 및 망 소외 1의 유족들이 법원의 과거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적어도 원고 1 등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이 선고된 2011. 5. 12. 및 2011. 5. 19.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 위 각 선고일로부터 기산할 때 이 사건 소가 소멸시효 기간 안에 제기된 것임은 역수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3.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위자료 액수의 산정
갑 제7, 8, 11, 15호증의 각 기재, 원고 1, 원고 2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또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의 액수를 원고 1, 원고 2와 망 소외 1에 대하여 각 40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① 원고 1은 1967. 4. 1.부터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2. 3. 1.부터 1974. 1. 31.까지는 학과장을 맡기도 하였다. 위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제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고 석방된 후 학교에 나갔으나, 강의를 할 수 없었고 월급도 받지 못하였으며 동료 교수와 학생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껴 2~3개월 후부터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1975년에 수필집을 출간하였으나 옥중체험을 다룬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고, 문화공보부로부터 문학평론집의 출간을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대학교는 1976년 2월경 원고 1에게 문제 있는 교수를 정리한다며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여 1976. 2. 28. 의원면직하였다. 그 후 원고 1은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취미로 그린 그림을 지인들에게 팔거나 지인들이 보태어 주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80년에 복권이 되었으나 위 학교로는 복직하지 못하고 덕성여대 교수로 복귀하여 1980년부터 1995년까지 근무하였다. 원고 1의 처는 위 간첩단 사건 이후 극도의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였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1999년경 결국 사망하였다. 위 간첩단 사건으로 원고 1의 친한 친구들마저도 전화 통화조차 거절하는 등 등을 돌렸다.
② 원고 2는 위 간첩단 사건 발생 당시까지 여러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고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구속이 되면서 모든 소설연재와 강연, 방송출연 등이 중단되었다. 약 9개월간 구속되어 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에도 항상 경찰들의 감시를 당하였다. 원고 2는 위 간첩단 사건 이후에도 ◇◇◇◇문인협회 대표를 역임하고 소설도 집필하였으며 문학상도 수상하는 등 문인으로서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③ 망 소외 1은 위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강사로 재직하던 △△대학에서 쫓겨나 약 6년 동안 취직을 하지 못하였다. 그 기간 동안 원고 3이 일을 하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망 소외 1의 동생은 간첩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망 소외 1은 복권된 이후 1980. 3. 1.부터 1998. 2. 28. △△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나. 소결
따라서 피고는 원고 1, 원고 2에게 각 400,000,000원, 원고 3에게 109,090,909원( = 400,000,000 × 3/11, 원 미만 버림), 원고 4, 원고 5, 원고 6, 원고 7에게 각 72,727,272원( = 400,000,000 × 2/11, 원 미만 버림)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일 다음날인 2012. 4. 18.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2. 5. 3.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각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고 각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