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에서 말하는 ‘영업비밀’의 요건 중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의 의미 및 이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기준
참조판례
대법원 1999. 3. 12. 선고 98도4704 판결 (공1999상, 710)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435 판결 (공2008하, 1212)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1도3657 판결
피 고 인
피고인 1 외 1인
상 고 인
피고인들 및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이창훈 외 5인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서면들은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피고인들의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
가. 업무방해 부분
원심은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 △△, □□, ◇◇도매점 전산시스템 접근 차단으로 인한 업무방해 부분에 대하여, 공소외 1 주식회사(이하 ‘공소외 1 회사’라고 한다)의 도매점 전산시스템이 오로지 공소외 1 회사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매점들도 업무처리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대표이사 공소외 2 등과 공모하여, 위 도매점들과 도매점 계약이 종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도매점 전산시스템 접속을 차단한 행위는 위력으로 피해자들의 업무를 방해한 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위 도매점들의 전산시스템 악용 방지라는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방해죄에서의 ‘위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등누설) 부분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입력된 거래처 정보, 매출 정보, 수금 정보, 구체적인 거래 조건 등(이하 ‘이 사건 정보’라고 한다)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경영상의 정보로서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2013. 7. 30. 법률 제1196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부정경쟁방지법’이라고 한다) 제2조 제2호 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라고 한다) 위반(영업비밀등누설)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의 ‘영업비밀’이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 대법원 1999. 3. 12. 선고 98도4704 판결 등 참조). 여기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은 그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지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43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유지 및 관리를 위한 노력이 상당했는지 여부는 영업비밀 보유자의 예방조치의 구체적 내용, 해당 정보에 접근을 허용할 영업상의 필요성, 영업비밀 보유자와 침해자 사이의 신뢰관계의 정도,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 영업비밀 보유자의 사업 규모 및 경제적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공소외 1 회사는 특정주류면허를 갖고 있는 도매점들에 1년 단위로 일정 지역에 대한 판매 독점권을 주는 대신 도매점들도 공소외 1 회사의 제품만을 취급해왔다. 공소외 1 회사의 매출액 중 도매점을 통한 매출액 비중은 약 60% 정도이다.
② 도매점장들은 종래 거래처와의 거래정보 등을 개인용 컴퓨터(PC)나 장부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관리·활용해오고 있었다. 공소외 1 회사는 2002년경 도매점들이 거래하는 거래처에 대한 정보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해 자신의 비용으로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구축하였고, 도매점장들은 휴대용 단말기(PDA)나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공소외 1 회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거래처와 관련된 이 사건 정보 등을 입력하였다.
③ 도매점장들이 위와 같이 입력한 이 사건 정보는 공소외 1 회사가 소유·관리하는 서버에 저장되었고, 공소외 1 회사도 영업계획 수립 및 도매점의 소매점별 판매목표 설정 및 재고관리 등에 필요한 경우 이 사건 정보를 영업에 활용해왔다. 도매점들의 매출이 공소외 1 회사의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소외 1 회사는 도매점들의 거래처인 음식점, 주점 등을 상대로 한 판촉행사비용 등을 지원했다. 또한 공소외 1 회사는 이 사건 정보 등을 통해 도매점별로 매출액과 매출증가율, 홍보 실적 등을 자체 평가하여 도매점들에 대한 포상금과 광고비 등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도매점장들도 공소외 1 회사가 이 사건 정보 등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6~7년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정상적으로 영업을 해왔다. 도매점장들이 입력한 이 사건 정보에 대해 도매점장들과 공소외 1 회사가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한 적은 없다.
④ 공소외 1 회사 직원들 중 도매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 범위 내의 도매점이 입력한 정보만 열람이 가능하지만,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유지·관리해온 공소외 1 회사의 영업본부 직원들은 이 사건 정보를 별다른 보안절차 없이 볼 수 있다. 도매점장들은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각자의 아이디에 따라 비밀번호를 설정해두었으나, 영업상 편의를 위해 자신의 도매점을 관리하는 공소외 1 회사의 영업직원들에게 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대신 물품 주문을 하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⑤ 이 사건 정보는 도매점장들이 공소외 1 회사로부터 관할지역에 대한 주류판매권을 부여받아 영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로 거래관계가 계속 중인 동안 도매점장들과 공소외 1 회사가 공동으로 활용해왔다. 공소외 1 회사와의 거래관계가 종료된 도매점장들은 이 사건 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 공소외 1 회사는 2010. 5.경 새로 개정한 도매점 계약서 제14조 제2항에 ‘공소외 1 회사는 도매점에 포털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하고, 도매점이 포털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각종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은 계약기간 중에는 공소외 1 회사와 도매점의 공유로, 계약기간 후에는 공소외 1 회사의 소유로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여 도매점장들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다) 이러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도매점장들은 공소외 1 회사가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통해 이 사건 정보를 관리해온 것을 인식하였는데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정보를 비밀로 유지·관리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도매점장들이 공소외 1 회사에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관리를 사실상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제3자가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무단 접속하여 이 사건 정보를 수집하여 사용하였다면, 공소외 1 회사의 비밀관리 노력을 영업비밀 보유자인 도매점들의 노력으로 보아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될 수 있지만, 공소외 1 회사와 그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는 비밀관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도매점장들이 공소외 1 회사와 그 직원들이 이 사건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들이 ‘이 사건 정보가 도매점장들에 의해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도매점장들이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지만, 이것은 공소외 1 회사가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접속을 위해 설정한 기본적인 본인확인절차에 불과할 뿐 거래처 정보에 대한 예방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소외 1 회사의 영업담당자나 도매점 영업담당자가 신의칙상 이 사건 정보를 경업 관계에 있는 조직에 공개하여서는 안 될 의무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 이 사건 정보에 대한 비밀관리성을 추단하기는 어렵다. 결국 영업비밀 보유자인 도매점장들이 피고인들과의 관계에서 이 사건 정보를 비밀로 관리하였다고 볼 수 없다.
3)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정보가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가 규정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등누설)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에서 정한 ‘영업비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검사의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일방적 계약 종료, 일방적 매출목표 설정 및 현저한 물량공급 축소로 인한 업무방해 부분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방해죄에서의 ‘위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파기의 범위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