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대법원 1991. 1. 29. 선고 90다12588 판결
[손해배상(기)][공1991.3.15.(892),861]
판시사항

정박 중이던 선박이 태풍으로 인하여 인접한 진주양식장으로 표류하여 들어감으로써 피해를 입힌 사안에 있어서 선장의 주의의무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다 하여 원심을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선박을 정박할 당시에는 아직 태풍이 도래하지 아니하였고 선장 및 선원들이 정박 지점으로부터 약 400미터 지점에 진주 양식장이 위치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소형선박들이 뒤섞여 정박하고 있으면 강풍과 풍랑으로 인하여 선박들의 닻줄 등이 위 선박의 스크류에 잠기어 그 작동이 멈추게 되고 기동력을 상실한 후 양식장으로 표류하여 갈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선박을 안정한 위치에 정박시킬 수 없었는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소형선박들과 함께 정박할 수 밖에 없었다면 스크류의 작동이 정지된 경우 밧줄로 다른 선박과 연결하는 등의 조치로 표류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등을 심리하여 보지 않고서는 이 사건 사고를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원고, 상고인

김해덕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달식

피고, 피상고인

안경식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원심판결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거시증거에 의하여, 이 사건 제71신진호(총톤수 약 99톤)의 선장 소외 윤성원은 1987.7.15. 부산항에서 출항준비를 하던 중 당시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북상중이던 태풍 셀마호가 동북쪽으로 진행하여 대마도를 지나 울릉도 동쪽 해상으로 지나갈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듣고서 위 태풍을 피하기 위하여 같은 날 13:00경 부산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18:00경 산으로 둘러쌓여 좁은 만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경남 통영군 한산면 소재 제승당 앞바다에 도착, 다른 100여척의 소형 선박과 함께 정박한 사실, 그런데 중심 최대풍속 초속 35미터, 최대파고 6 내지 9미터의 위력을 가진 위 태풍이 당초의 예상진로와는 달리 같은 날 23:30경 전남 순천만에 상륙한 후 북북동진함에 따라 위 제승당 앞바다는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 태풍진로의 우측 반경에 위치하게 되고 더욱이 만조시간이 태풍의 상륙시간과 거의 일치하게 되어 위 제승당 앞바다는 그 지형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거센 파도와 푹풍우로 인하여 태풍의 피해를 크게 받게 된 사실, 위 제71신진호는 폭풍과 파도에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스크류를 가동한 채 닻을 내리고 있었으나 위 태풍이 상륙한 23:30경부터 폭풍우와 파도가 거세어졌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주위의 다른 대피선박들과 부딪치며 이리저리 밀리다가 옆에 있던 선명 미상의 소형 권형망어선의 닻줄이 위 제71신진호의 스크류에 감겨 그 작동이 정지된 탓으로 자체기동력을 잃고 폭풍과 파도에 밀려 북쪽 약 400미터 지점의 같은 면 염호리 앞바다에 있는 원고의 진주양식장 방향으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위 선장 윤성원은 당시 상황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커서 다른 선박에 의한 예인도 기대하기 어렵고 또 위 양식장에는 조명시설 등에 의한 야간인식표지가 작동되지 아니하고 더욱이 거센 파도와 비바람으로 시계가 극히 불량하여 위 양식장의 존재도 알수 없었기 때문에 위 선박이 표류하는 대로 맡겨 두다가 위 양식장에 근접해서야 비로소 위 양식장의 스티로폴 부표를 발견하고는 위 제승당 앞바다에 정박중인 같은 피고 소속의 제72신진호에 무선통신으로 예인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위 제71신진호가 같은 달 16. 01:30경 위 양식장을 침범하여 위 양식장의 연선 등을 파손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제71신진호가 그 스크류에 닻줄이 감긴 탓으로 자체기동력을 잃고 위 양식장에 표류하여 들어가 그 양식장시설을 파손한 위에서 본 경위 등에 비추어 볼때 이건 사고는 위 선박의 선장 윤성원이 고도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사고로서 그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원심이 확정한 바에 의하면, 이 사건 제71 신진호가 원판시 제승당 앞바다에 도착, 정박한 시간은 일몰전인 1987.7.15. 18:00경으로 그때는 아직 태풍 셀마호가 한산만에 상륙하지 아니하였을 때이고, 원고의 원판시 진주양식장은 위 선박이 정박한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불과 400여미터의 지점의 거리에 있었던 사실이 명백하고, 나아가서 원심이 채용한 원심증인 이종열의 증언에 의하면 제71신진호는 그전에도 위 해역으로 출입해 본 사실이 있어 위 진주양식장이 있다는 것을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알고 있었고 기관장인 그 자신도 위 선박에 승선한 후 두번이나 위 해역을 출항한 사실이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이상 보아온 사실에 의하면 선장 윤성원이 위 양식장의 존재 및 위치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원심이 위 윤성원이 이 사건 양식장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고 단정한 것은 잘못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위 윤성원이 사전에 위 양식장의 존재 및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태풍을 대피하기 위하여 정박하고 있는 위 선박의 선장으로서는 소형선박 등 100여척이 함께 뒤섞여 정박하고 있으면 강풍과 풍랑으로 인하여 소형선박들의 닻줄 등이 위 선박의 스크류에 감기어 그 작동이 멈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동력을 상실한 후 선박이 풍향에 따라서는 북쪽에 위치한 이 사건 양식장으로 표류해 들어갈 수도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할 것이므로, 원심으로서는 선장 윤성원이 위 선박을 미리부터 소형선박들과 뒤엉키지 않을 안정한 위치에는 정박시킬 수 없었는지, 만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소형선박들과 함께 정박할 수 밖에 없었다면 스크류의 작동이 정지된 경우에 밧줄로 다른 선박과 연결하는 등의 조치로 표류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기록에 의하면 같은 해역에 대피하고 있던 100여척의 선박 중 유일하게 위 선박만이 원고의 진주양식장에 표류해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원심판결에 의하더라도 위 선박은 사고후 같은 해역에 피항하고 있던 같은 소속의 제72신진호에 의하여 예인되어 나왔다고 한다)등을 심리해 보지 않고는 이 사건 사고를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고 단정 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원심이 이에 이르지 아니하고 그 판시와 같은 사실만을 인정하여 이 사건 사고를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판단한 것은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고, 나아가 태풍을 피항함에 있어서의 선장의 주의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점에 관한 논지는 이유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할 것 없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윤관(재판장) 배만운 안우만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