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조선임야조사령에 의한 임야조사서의 소유자란에 국으로 기재되었으나 연고자의 기재가 있는 경우 국가소유로 사정된 것으로 추정함의 당부(소극)
판결요지
조선임야조사령 제10조 는 융희 2년 법률 제1호, 삼림법 제19조 의 규정에 의하여 지적의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국유로 귀속한 임야는 구 소유자 또는 그 상속인의 소유로서 이를 사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조사령에 의한 임야조사서 소유자란에 "국"으로 기재되었으나, 그 연고자란에 연고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면 그 후 위 임야조사부에 기하여 임야의 소유자와 경계를 사정하는 과정에서 국유로 사정되었다고 추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그 연고자의 소유로 사정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것인데도 원심이 이 임야조사서에 국유로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이 사건 임야를 국가소유로 사정이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심리미진의 위법을 저지른 것이다.
원고, 상고인
허용분 외 10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용철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원심판결 중 주위적청구에 대한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하여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본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심판시의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피고명의로 1986.6.24.자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로서 확정한 다음, 이 사건 임야는 1917.10.30. 원고들의 피상속인인 소외 허면이 사정받은 그 소유의 임야인데 피고는 아무런 권원없이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임야대장상의 소유자명의를 위 허면으로부터 피고명의로 변경한 후 이를 근거로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였으므로 피고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원인무효로서 말소되어야 한다는 원고들의 주위적 주장에 부합하는 거시의 증거들을 배척한 다음, 오히려 그 거시의 반대증거들에 의하면 구 토지조사령에 의한 1917.10.30. 사정당시의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임야조사서의 소유자란에는 피고로, 연고자란에는 위 망 허면으로 각 등재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임야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피고가 토지소유자로 사정받고 그 사정이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하고 또한 거시의 증거에 의하면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임야대장등의 지적공부가 6.25.사변당시 멸실되어 소관청인 이 사건 임야의 관할세무서가 1952(단기 4285년). 3.21.자로 이 사건 임야에 관한 임야대장을 복구함에 있어 망 허면의 신고에 따라 그 소유자란에 위 허면을 등재하고 동인이 사정받은 것으로 기재하였으나 그 후 1960.경 지적업무가 세무서에서 군청으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임야조사서가 발견되어 위 허면의 신고에 의한 위 임야대장상의 착오임이 확인되어 임야조사서에 터잡아 위 임야대장상의 소유자명의를 위허면으로부터 피고명의로 정정하였고, 피고는 1986.6.24. 정정된 위 임야대장에 터잡아 피고명의로 위와 같이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사실이 인정된다하여 이 사건 임야가 위 망 허면이 사정받은 것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배척하였다.
그러나 원심판결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판시사실을 인정하기 위하여 채택한 증거들 중 을제 1 호증의 1은 그 문서의 명칭이 "임야 원지적조사서"로 되어 있고, 을제1호증의 2는 어전리 "임야조사서"로 되어 있는데 특히 그 "서"는 인쇄된 문자 "부"를 "서"로 정정한 것이며, 또 을제 1 호증의 3에 의하면, 소유자시명란에는 "국"으로, 연고자시명란에는 "허면"으로 각 기재되고, 그 신고 또는 통지연월일은 1971.10.30.로 되어 있는바, 한편 원심이확정한 이 사건 임야사정일인 1917.10.30. 현재 시행되던 토지조사령 제2조 , 제4조 , 제9조 , 제17조 , 같은령시행규칙 제3조 와 1918.5.1. 공포시행된 조선임야조사령 제3조 , 제4조 , 제8조 , 제10조 , 제11조 , 제17조 , 같은령시행규칙 제1조제5조 , 제6조 의 각 규정에 의하면, 토지조사령에 의하여 토지사정 및 재결을 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작성하는 문서는 토지조사부와 토지대장 및 지도이고, 임야조사서는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 임야사정일인 1917.10.30.후에 공포시행된 조선임야조사령에 의하여 임야사정 및 재결을 함에 있어 작성하는 문서임이 분명하고, 또 국유임야에 대한 연고신고는 조선임야조사령에 의하여 비로소 허여된 것이고, 토지조사령에 의하면 국유임야에 대한 연고신고는 허여되지 아니하여 토지조사령에 의한 토지조사부에 국유임야에 대한 연고관계를 기재할 여지조차 없었다 할 것이니 위 을제1호증의 1,2,3은 그 작성근거와 경위가 불명하여 이를 심리하지 아니하고서는 가볍게 믿기 어렵다 할 것이다.
그리고 갑제 2 호증의 2는 1952.3.31.자로 복구된 구 임야대장으로서 사정명의인이 위 "허면"으로부터 "국"으로 정정 기재되어 있으나 이는 이 사건 임야사정당시 작성된 문서가 아닐 뿐만아니라 그 정정경위가 원심이 확정한 바와 같이 허면의 신고에 따라 그 소유자란에 허면이 사정받은 것으로 기재하였다가 후에 위 을제 1 호증의 1, 2, 3이 발견되자 이에 터잡아 정정한 것으로 보여져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위 을제 1 호증의 1, 2, 3의 기재에 터잡아 정정기재된 것이어서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우며 또 이에 터잡아작성된 갑제 1 호증 임야대장이나, 갑제 2 호증의 1 등기부등본 또한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워서 이 사건 임야가 피고 국명의로 사정된 피고 소유라고 단정할 자료로 삼기에 부족하다 할 것이고, 1심증인 허복, 최진두의 각 증언중 원심의 사실인정에 부합하는 부분은 이 사건 임야에 관한 토지공부가 6.25사변중 멸실되자 위 허면이 이 사건 임야는 그 명의로 사정받은 토지라고 신고하여 이에 따라 위 갑제2호증의2가 복구 작성되었다는 점 뿐이므로 이는 이 사건 임야는 위 허면명으로 사정된 그 소유의 임야라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할 자료가 될 수 없다.
이에 비하여 원심이 배척한 갑제 6 호증(임야조사표)에 의하면, 이 사건 임야의 소유자가 위 허면으로 기재되었다가 그 후 그의 창씨인 송궁면으로 정정되어 있음이 인정되므로 이는 창씨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고, 비록 그 명기장 책호 및 색인란 이 공란으로 되어 있고, 명기장 및 임야대장조합인이 날인되어 있지 아니하나 이는 관할 금릉군 부항면 사무소에서 보관중인 문서이고 그 문자도 일본문자로 기재되어 있어 임야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임야조사시에 작성된 문서라고 보이므로 위와 같이 완전한 문서로서의 흠결이 있다는 사유만으로는 그 신빙성을 가볍게 배척할 수는 없다 할 것이고, 또 갑제 13 호증의 1, 2에 의하면, 이 사건 임야부분에 "허면"의 기재가 있으며, 이는 정부문서보관청인 총무처에 보관된 문서로서 특히 위 갑제 13 호증의 1에는 1918(대정 7년). 3.25.자로 작성된 것으로 명기되어 있으니 위 각 임야도 또한 토지조사령에 의하여 이 사건 임야사정당시 임야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문서로 보이므로 이 또한 그 신빙성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다 할 것이고, 1심 증인 허복, 최진두, 원심증인 허 용곤은 전후 일관하여 이 사건 임야는 원고들의 11대조인 허 인 이래 300년간 원고 등의 조상이 시탄림 및 분묘지로서 사용하여 오던 토지로서 토지조사가 시행되자 허면이 그 명의로 사정을 받고 임야세까지 납부하여 온 위 허면을 공동선조로 하는 원고들 소속 문중 또는 위 허면의 소유라고 진술하고 있고, 한편 원심이 배척하지 아니한 갑제14호증의 1, 2의 영상과 1심의 현장검증결과에 의하면, 이 사건 임야에는 원고들의직계 및 방계선조의 분묘가 28기 가량 설분되어 있음이 분명하여 그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으므로 위 증인들의 증언 또한 가볍게 배척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임야가 조선임야조사령에 의하여 그 소유자와 경계가 조사사정되었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바, 같은 령 제10조 는 융희 2년 법률 제1호, 삼림법 제19조 의 규정에 의하여 지적의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국유로 귀속한 임야는 구 소유자 또는 그 상속인의 소유로서 이를 사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임야조사서 소유자란에 "국"으로 기재되고, 그 연고자란에 연고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면 그 후 위 임야조사부에 기하여 임야의 소유자와 경계를 사정하는 과정에서 국유로 사정되었다고 추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연고자로 기재된 자가 위와 같이 삼림법 제19조 에 의한 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국유로 된 것이라면 오히려 그 연고자의 소유로 사정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니( 당원1989.8.8. 선고 88다카27195 판결 참조), 위 허면이 삼림법 제19조 에 의하여 그 소유임을 신고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국유로 귀속되었다가 조선임야조사령이 시행되자 연고신고를 하여 이에 따라 위 을제 1 호증의 1,2,3이 작성되었을 사정도 추단된다 할 것이므로 원심은 이에 관하여도 심리했어야 할 것임에도 이에 이르지 아니한 채 위 을제 1 호증의 1, 2, 3에 국유로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임야는 피고소유로 사정이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으니 이 점에 관하여 원심은 심리미진의 위법을 저질렀다 할 것이다.
결국, 원심은 위와 같이 신빙성이 엿보이는 원고들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배척하고 위 을제1호증의 1,2,3의 작성경위에 관하여 심리도 다하지 아니한 채 신빙성이 의심스럽거나 증거가치가 미약한 증거들에 의하여 반대사실을 인정하여 원고들 주장을 배척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이 조치는 토지조사령 및 임야조사령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심리미진 내지 채증법칙위배의 잘못을 저질렀다 할 것이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지 아니하면 현저히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반한다고 할 것이니 이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12조 제2항 의 파기사유에 해당되어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비적 청구에 관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하지 아니하고 원심판결중 주위적 청구에 관한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하여 사건을 원심인 대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