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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2001. 3. 16. 선고 2000나59233 판결 : 상고기각
[손해배상(기)][하집2001-1,268]
판시사항

[1]피고인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수사기관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한정 소극)

[2]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였을 경우 피고인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1]검사 등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범죄 혐의자를 수사하고 구속 기소하는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본래 피의자에 대한 권리 침해를 당연히 예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적법한 범위 내에서는 법이 허용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절차에 의하여 구속되고 공소 제기된 자에 대하여 무죄의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수사, 구속 및 공소제기 처분이 곧바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와 같은 공권력을 행사할 당시에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평가함에 있어서 통상 생각되어지는 개인차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일견하여 위와 같은 처분이 명백히 지나친 행위라고 인정되어 경험칙이나 논리법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판단의 합리성을 수긍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 비로소 위법성이 인정되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

[2]검사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범죄 혐의자를 수사하고 구속 기소하는 등의 공권력을 행사할 권한과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피고인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할 의무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를 발견하고도 의도적으로 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아니하여 피고인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구속상태에 있게 하거나 유죄판결을 받게 하였다면 이는 논리칙 경험칙에 비추어 검사의 재량권을 일탈한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원고,피항소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한맥 담당변호사 강항순 외 4인)

피고,항소인

대한민국

주문

1.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및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에게 금 35,500,000원, 원고 2, 3에게 각 금 5,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원심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5%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항소취지

원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이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기초 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내지 제3호증의 1, 2, 을 제1, 2호증의 각 1, 2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첫 번째 무죄 부분

원고 1은 ① 1994. 5. 1. 03:00경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동 소재 피해자 1의 집 안방에 침입하여 지갑 1개와 5만 원을 강취하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2를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② 1994. 11. 7. 03:30경 위 영등포구 도림동 소재 피해자 3의 집 안방에 침입하여 59만 원과 은팔찌 1개를 강취하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4를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③ 1994. 12. 24. 04:30경 위 도림동 소재 피해자 5의 집 안방에 복면을 한 채 식칼을 들고 침입하여 현금 47만 원, 10만 원권 수표 1매 및 금팔찌 1개를 강취하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6을 1회 강간하고, ④ 1995. 1. 3. 02:40경 위 도림동 소재 피해자 7의 집 안방에 침입하여 20만 원 상당의 현금 등을 강취하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8을 1회 강간하였다는 요지의 범죄사실로 구속되어 1995. 1. 5.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죄로 기소되었는바, 1995. 6. 30.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95고합79 사건에서 징역 20년의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95. 11. 2. 서울고등법원 95노2114 사건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석방되었으며, 1996. 2. 23. 대법원에서 검사의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되었다.

나. 두 번째 무죄 부분

위 원고는 다시 ① 1996. 8. 18. 03:40경 서울 영등포구 대림1동 소재 피해자 9의 집에 침입하여 동인의 처 피해자 10을 1회 강간하고, 이어 현금 6만 원을 강취하고, ② 1996. 9. 8. 04:30경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소재 피해자 11의 집에 침입하여 현금 11만 원을 훔치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12를 1회 강간하고, ③ 1996. 10. 22. 04:50경 위 대림2동 소재 피해자 13의 집에 침입하여 식칼을 들이대며 현금 104,000원을 강취하고, 이불로 위 피해자 13을 뒤집어 씌우고, 이어 동인의 처 피해자 14를 1회 강간하고, ④ 1996. 10. 14. 03:00경 위 대림2동 소재 피해자 15의 집에 침입하여 현금 18만 원을 절취하고, 동인을 1회 강간하고, 현금 7만 원을 강취하였다는 요지의 범죄 혐의(이하 ① 내지 ④ 기재 범죄를 '이 사건 범죄'라 한다)로 구속되어 1996. 10. 22.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죄로 기소되었는바, 1997. 4. 18.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96고합493 사건에서 위 ④의 범죄사실에 관하여는 무죄, 나머지 범죄사실에 관하여는 징역 15년의 형을 선고받고 검사와 함께 쌍방 항소하여, 1997. 9. 26. 서울고등법원 97노929 사건에서 무죄 부분에 대하여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유죄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석방되었으며, 1998. 2. 27. 대법원에서 검사의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되었다.

다.원고 1은 위와 같이 무죄판결을 받은 후 형사보상청구를 통하여 피고로부터 15,000,000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았다.

라.한편, 원고 1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기계공장 등에서 일하다가 위 범행 당시에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잡부로 일하고 있었으며, 원고 2는 원고 1의 이버지이고 원고 3은 원고 1의 어머니이다.

2. 당심의 심판범위

원고들은, 원고 1이 죄를 범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위와 같이 두차례에 걸쳐 원고를 위법하게 구속 기소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재산상 손해 및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바,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첫 번째 무죄 부분의 구속 기소행위와 두 번째 무죄 부분의 구속 기소행위는 전혀 별개의 행위로서 위 각 행위로 인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별개의 청구권에 기한 별개의 소송물이고,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있어 재산상 손해의 청구와 위자료 청구 역시 별개의 소송물에 해당한다.

원심은 첫 번째 구속 기소행위 부분에 대하여는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두 번째 구속 기소행위 부분에 대하여는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 재산상 손해청구 부분은 기각하고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하여만 일부 승소판결을 하였는바, 이에 대하여 피고만이 원심판결 중 패소 부분에 대하여 항소하였으므로 당심 법원의 심판 범위는 두 번째 무죄부분의 구속 기소행위에 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위자료 청구 중 일부 승소한 부분에 한한다. 따라서 당심은 두 번째 무죄 부분의 구속 기소행위에 관한 위자료 부분에 대하여만 본다.

3. 주장 및 판단

가. 인정 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내지 제3호증의 1, 2, 9호증의 1 내지 36, 갑 제10호증의 1 내지 57, 을 제1호증의 1, 2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1) 피해자들의 진술

(가)서울 구로경찰서는 1996년 8월경 관내에서 발생한 강도강간사건에 관한 피해 신고를 받자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였는바, 위 피해자들은 경찰과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범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피해를 당하였다고 진술하면서, 범인이 범행 후 공범자가 더 있는 것처럼 행세하였고 수돗물을 틀어 범행에 사용한 식칼을 담궈 놓고 나갔다는 진술하고 있어 이 부분의 진술은 모두 일치하고 있으나, 피해자 9, 10 및 피해자 11, 12는 범인이 범행 당시 상의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하는 반면, 피해자 13, 14는 범인이 상의를 벗고 들어왔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해자 11, 12는 범인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등, 범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던 상황과 경찰에 피해신고를 하면서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한 부분, 원고 1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경위 등의 진술에 있어 각자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특히, ① 피해자 12는 범행 당일인 1996. 9. 8. 구로경찰서에서, 범인의 키는 170 내지 175㎝ 정도이고, 뚱뚱한 편에 얼굴은 둥글고 미남형이며, 짧은 곱슬머리에 반부츠형 군청색 신발을 신고 있었고 상의는 어두운색 티, 하의는 어두운색 긴면바지인 디스코형 통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반면에, ② 피해자 10은 범행 후 10여 일 지난 1996. 8. 30.경 구로경찰서에 출석하여 전과자 영상시스템에 나온 동종 수법 전과자들의 영상 중에서 위 원고를 범인으로 지목한 후, 1996. 10. 13. 경찰 조사과정에서 형광등에 부착되어 있는 적색 꼬마전구를 켜고 자던 중 인기척에 잠을 깨어보니 범인이 방안에 서 있어 범인이 적색 꼬마전구를 끌 때까지 약 5∼6초간 범인의 얼굴을 보았는데, 범인은 165㎝의 키에 땅땅한 체격을 하고 있었고, 스포츠머리에 눈이 둥글고 코가 큰 편이었으며 전라도 말씨를 썼다고 진술하고 있고, ③ 피해자 14는 피고인이 검거되기 전 경찰 조사과정에서 안방 창문 밖에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하여 범인의 얼굴을 보았는데, 범인은 174㎝ 정도의 키에 체격과 얼굴이 뚱뚱하고 눈이 크고 쌍커풀이 졌으며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서울 말씨를 쓰는 20대 초반의 남자였고 범행 당시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④ 피해자 13도 범인의 눈이 크고 둥글며 범행 당시 담배를 피웠다고 진술하고 있고, ⑤ 피해자 11은 위 원고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사건발생 3∼4일 후 16:00경 범인이 동네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담배를 사는 것을 보았으나 10여m 떨어진 공중전화부스에 가서 경찰에 신고하느라 범인을 놓쳤기 때문에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다)실제 위 원고의 신장은 165㎝, 체중은 80㎏이고, 얼굴은 약간 통통한 편으로 둥글고, 얼굴 크기에 비해 코는 작은 편이며, 눈도 큰 편이 아니고 머리카락은 직모이고, 말투에는 고향인 전라도 억양이 배어 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위 피해자 11이 보았다는 시점인 1996. 9. 11.경에는 남부인력 직업소개소의 소개로 서초동에서 일용 잡부로 근무하고 있어 위 장소에 나타날 수 없었다.

(2) 혈액형 및 유전자형 감정 결과

경찰은 범행 직후 피해자 14가 범인의 정액 등이 묻은 것이라면서 제출한 팬티에서 검출된 범인 정액 및 분비물 등에 대하여 감정을 하였는바, 감정결과 위 정액 등의 혈액형은 위 원고(A형)나 위 피해자의 혈액형과 다른 O형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좀더 정확한 판별을 하기 위하여 1996. 11. 19.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감정을 의뢰하여, 1996. 12. 30.경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피해자 14의 남편인 피해자 13의 혈액, 위 원고의 혈액, 피해자 14의 혈액 및 위 팬티에서 검출된 정액 등 분비물의 각 유전자형을 재분석하여 피해자 14의 유전자형이 아닌 남성의 유전자형으로 판단되는 유전자형의 4가지 시료를 추출한 후 중합효소 연쇄반응과 전기 영동법(PCR- FLP)에 의한 검사 방법인 HumTH01형, HumTPOX형, HumCSF1PO형, HumvWF형, HumFESFPS형, Amelogenin형의 6가지 검사 방법으로 비교 검사한 결과 위 팬티에서 검출된 정액 등이 위 HumTH01형 검사 방법에서는 위 원고 및 피해자 14의 유전자형과 일치한 반면, 다른 5가지의 검사 방법에서는 위 원고, 피해자 13 및 피해자 14의 유전자형과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어, 위 팬티에 묻은 정액은 위 원고의 정액이 아니라는 취지의 회신을 받고 이를 검찰에 추송하였다.

(3) 검찰로의 송치

경찰은 위 팬티에서 검출된 정액 등에 대한 감정 결과를 기록에 편철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가 계속하여 범행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유전자분석감정을 의뢰한 상태로 본건을 검찰로 송치하였다.

(4) 검사의 기소 및 소송과정

위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1996. 10. 30.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위와 같은 감정 결과를 회신받고도 위 회신 내용을 수사 기록에 편철하지 않고 피해자 피해자 10, 11, 14에 대한 보강수사 및 위 원고에 대한 피의자 신문을 마친 후 1996. 11. 18. 위 원고를 기소하였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위 감정결과를 전혀 증거로 제출하지 않아 이 사건의 제1심법원은 위 회신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위 원고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제2심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를 통하여 위 회신 내용을 비로소 알게 되어 결과적으로 위 원고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게 되었다.

나.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원고 1이 범죄를 범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 의하여 구속 기소되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는바, 위 원고를 구속 기소한 수사기관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위 원고가 범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빙성이 전혀 없는 피해자들의 진술 등에만 의존하여 위 원고를 범인으로 단정하여 구속 기소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위 수사기관이 소속된 피고는 원고들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위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로서 원고 1은 금 25,000,000원을, 원고 2, 3은 각 금 5,000,000원을 구한다).

다. 불법행위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

(1) 불법행위 성립의 기준

검사 등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범죄 혐의자를 수사하고 구속 기소하는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본래 피의자에 대한 권리 침해를 당연히 예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적법한 범위 내에서는 법이 이를 허용하고 있는바, 검사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그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고{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되기 이전의 것, 이하 같다) 제201조 }, 또한 검사는 수사 후 피의자에게 유죄판결의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246조 ), 이와 같은 절차에 의하여 구속되고 공소 제기된 자에 대하여 무죄의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수사, 구속 및 공소제기 처분이 곧바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다만 그와 같은 공권력을 행사할 당시에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평가함에 있어서 통상 생각되어지는 개인차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일견하여 위와 같은 처분이 명백히 지나친 행위라고 인정되어 경험칙이나 논리법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판단의 합리성을 수긍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비로소 위법성이 인정되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3. 8. 13. 선고 93다20924 판결 참조).

그러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 검사 등을 포함한 수사기관이 원고 1을 수사한 후 구속, 기소한 처분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수긍할 수 없는 정도인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2) 본 사안의 경우

앞서 인정한 사실과 앞서 거시한 증거를 종합하여 보면, ① 경찰 및 검찰이 위 원고를 범인으로 판단하게 된 직접적인 증거는 위 피해자들의 증언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보이는바, 비록 피해자들이 위 원고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기는 하나 피해자들은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 식칼을 들고 있는 범인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피해를 당하고 있던 급박한 상황에서 범인을 잠깐씩 보았을 뿐이고 위 피해자들의 범인에 대한 인상착의 진술도 일치되지 아니하고 있으며, 특히 피해자들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위 원고의 인상착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여러 부분에서 판이하게 다른 점이 보이고 위 원고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경위도, 전과자들의 상반신 사진이 컴퓨터 화면에 15장씩 순차로 나타나고 그 중 1명의 전면사진을 확대하여 보거나 좌우측면의 사진을 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그 크기나 선명도에 있어서는 범인의 동일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기에는 미흡한 전과자 영상시스템을 통하여 확인한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에 의문점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고, ②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위 원고의 행동 및 성격을 관찰, 분석한 결과 위 원고는 검사의 조사과정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박거리며 검사의 유사 사건 설명에 관한 화제에 귀를 기울이고, 검사의 스트레스적 질문에 경동맥이 뛰고 손을 만지작거리는 동작을 보이며, 검사가 의자를 밀착하자 뒤로 피하는 제스처로 더욱 경동맥의 반응이 커지고 얼굴이 상기되는 등 전형적인 유죄의 피의자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고, 아울러 전형적인 가학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판단하였으나, 치료감호소장 작성의 정신감정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은 전체지능지수가 IQ 71로서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꼼꼼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가학적인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고면에서 융통성이 결여되고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감정하고 있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③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위 원고의 성장 배경은 시골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숙부를 따라 상경하여 목수일을 배우거나 방화문 제작회사에서 전문적인 일을 배우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인력소개 사무실에 나가 일당 5만 원씩을 받으면서 상당기간 동안 잡부로 종사하였고 위 범행시까지 아무런 전과 없이 생활해 오던 자임을 알 수 있어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은 피고인의 성격, 지능, 평소 생활태도, 경력, 직업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강도짓을 일삼으며 남편 곁에서 부녀자를 강간하고 그것도 단독 범행이면서 마치 공범이 있는 양, 또한 퇴거하면서 수돗물을 틀어놓아 아직 현장에 범인이 남아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생리중이므로 강간을 하지 말아달라는 피해자(피해자 12 부분)의 애원을 묵살한 채 강간을 자행한 교활하고도 지능적이고 가학적인 이 사건 각 범행과는 선뜻 어울리지 않으며, ④ 위 원고는 계속적으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고, ⑤ 결정적으로,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에 의하여 피해자 14의 팬티에서 검출된 범인의 유전자형과 위 원고 및 위 피해자, 위 피해자의 남편의 유전자형이 각각 달라 위 원고가 아닌 제3의 인물이 범인임을 객관적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는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원고를 범인으로 단정한 수사기관의 판단은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그 합리성을 긍정하기 힘들고 특히, 수사기관이 국립과학수사연구로소부터 위와 같은 회신 결과를 받은 이후로는 더 이상 위 원고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없게 되었다고 볼 것인데 이 사건 수사기관은 위 원고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위 증거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지 아니한 채 위 원고에 대하여 공소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위 원고에게 불리한 증거만을 제출한 결과 위 회신 결과를 알지 못하는 제1심법원으로 하여금 위 원고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게 한 것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수사기관의 행위로서 선뜻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도저히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어서 결국 위 수사기관이 원고 1을 이 사건 범죄의 범인으로 단정하고 구속 기소한 후 공소를 유지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된다.

(3) 피고의 주장

피고는,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고 하는 것은 공익을 위하여 범죄수사, 공소제기, 재판의 집행지휘 등을 한다는 의미일 뿐 이를 근거로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조사하여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소송과정에서 위 원고에게 유리한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지는 않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검사는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이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여야 할 신성한 지위에 있고( 헌법 제7조 , 검찰청법 제4조 제2항 ) 법원에 대한 정당한 법령 적용을 청구하여야 하는 직무와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검찰청법 제4조 제1항 제3호 ), 국가가 검사에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및 수사종결권을 부여함과 아울러 공소 제기를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 인권보장과 적정절차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검사는 범죄의 수사를 통한 사회방어 뿐만이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도 함께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인바, 피고인에게 이익되는 사실도 조사·제출하여야 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상소와 비상상고도 하여야 할 객관의무가 있다.

따라서 검사가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사실을 조사하여 제출할 의무가 없음을 전제로 한 피고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소 결

그렇다면 위 수사기관이 소속된 피고는 위 수사기관의 위법한 구속, 기소 및 공소유지 행위에 의하여 원고 1과 위 원고의 아버지인 원고 2, 어머니인 원고 3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라. 손해배상액에 대한 판단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이 당심의 심판대상은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 부분에 한정되므로 원고들이 청구하는 위자료의 수액에 관하여만 본다.

앞서 인정한 사실과 앞서 설시한 증거를 종합하면, ① 이 사건 수사기관은 피고인 등의 인권을 보호하여야 할 객관의무를 저버림으로써 국민의 한 사람인 원고 1의 무고한 인권을 침해하였고, ② 이로 인하여 위 원고의 부모인 원고 2, 3에게 씻기 어려운 고통을 가하였으며, ③ 원고 1은 제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④ 위 원고가 제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석방되기까지 340일간이나 구속되어 있었으며, ⑤ 이 사건의 제2심법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대하여 사실조회를 하여 위 회신내용을 알아내기 전까지도 수사기관은 법원에 위 회신 내용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위법의 정도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⑥ 원고는 전과 없이 생활하여 오던 자로서 이 사건 이전에도 앞서 인정한 첫 번째 무죄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어 고초를 겪은 바 있으며, ⑦ 위 원고가 피고로부터 15,000,000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았으므로 위와 같은 사정과 원고들의 직업, 연령, 환경, 신분관계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보면, 피고는 원고 1에게는 20,000,000원, 원고 2, 3에게는 각 2,5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하여 그 정신적인 피해를 금전으로나마 위자함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마. 소 결

따라서 피고는 원고 1에게 금 20,000,000원, 원고 2, 3에게 각 금 2,5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불법행위일 이후로서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임이 기록상 분명한 1999. 2. 24.(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른다)부터 원심판결 선고일임이 기록상 분명한 2000. 8. 10.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에서 정한 연 25%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된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각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할 것인바, 원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 하여 정당하고, 피고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동명(재판장) 한정훈 문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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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급 사건
-서울지방법원 2000.8.10.선고 99가단3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