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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17. 4. 21. 선고 2016노3678 판결
[살인][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검사

김후균(기소), 윤재필, 윤석주(공판)

변 호 인

법무법인 아모스 담당변호사 황승규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형법 제7조 의 적용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으로 필리핀 경찰에 체포되어 약 5년 1개월 동안 구금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석방되었다. 원심 판결 이후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형법 제7조 가 개정되었으므로 필리핀에서 구금된 기간도 미결구금이기는 하나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마땅히 형기에 산입되어야 한다.

나. 양형부당

원심의 형(징역 10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2. 판단

가. 형법 제7조 의 적용 주장에 관한 판단

1) 관련 사실관계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으로 2005. 10. 5. 21:30 필리핀 경찰에 체포되어 2010. 10. 6. 01:00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이후 피고인은 2005. 10. 20. 필리핀 라푸라푸시티 법원에 살인죄로 기소되어 구금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2010. 10. 21. 증거불충분으로 검사의 기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받아 2010. 10. 26.경 석방되었다(피고인의 당심 법정진술, 증거기록 11~82쪽).

2)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 및 형법 제7조 의 개정

가) 구 형법 제7조(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는 “외국에서 받은 형의 집행”이라는 제목 아래 “범죄에 의하여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나)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15. 5. 28.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구 형법 제7조 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2013헌바129 ).

“입법자는 외국에서 형의 집행을 받은 자에게 어떠한 요건 아래, 어느 정도의 혜택을 줄 것인지에 대하여 일정 부분 재량권을 가지고 있으나, 신체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와 더불어 헌법이념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이므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바, 외국에서 실제로 형의 집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형법에 의한 처벌 시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신체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사정은 어느 범위에서든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점에서 입법형성권의 범위는 다소 축소될 수 있다.

입법자는 국가형벌권의 실현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요구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형을 필요적으로 감면하거나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필요적으로 산입하는 등의 방법을 선택하여 청구인의 신체의 자유를 덜 침해할 수 있음에도, 구 형법 제7조 와 같이 우리 형법에 의한 처벌 시 외국에서 받은 형의 집행을 전혀 반영하지 아니할 수도 있도록 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

다) 이후 위 헌법불합치결정의 취지에 따라 2016. 12. 20. 법률 제14415호로 형법 제7조 가 개정되어 바로 시행되었는바, 개정된 조항은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산입”이란 제목 아래 “죄를 지어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산입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3) 피고인에게 형법 제7조 가 적용되는지에 관한 판단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으로 필리핀 사법당국에 의해 형이 확정되기 전의 “미결” 상태에서 구금되어 있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는바, 개정된 형법 제7조 가 이러한 외국에서의 “미결구금”에 대해서도 적용되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형법 제7조 의 명시적인 문언 내용, 규정 형식, 입법 취지 및 개정 경위, 형법 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고려할 때, 형법 제7조 는 외국에서 ‘형’이 ‘집행’된 경우에 적용되고 외국에서 ‘미결구금’된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법 제7조 는 그 문언상 명시적으로 ‘형’이 ‘집행’된 경우에 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산입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미결구금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구 형법 제7조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형법은 제1편 총칙의 제1장 “형법의 적용범위”에서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자에게 적용되는 속지주의 원칙과 함께( 제2조 , 제4조 ), 내국인이 범한 죄에 대하여는 범죄지를 묻지 않는 속인주의( 제3조 ),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익을 해하는 범죄행위에 대한 보호주의( 제5조 , 제6조 )의 태도를 밝히고 있다. 위 각 조항과 함께 구 형법 제7조 는 이미 외국에서 재판이 확정되어 형이 집행되었더라도 기판력이 발생하지 않고 우리 형법을 적용하여 다시 재판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고 주1) 있고, 다만 피고인의 실질적인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하여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임의적으로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구 형법 제7조 에서 정하고 있었다. 개정된 형법 제7조 형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위와 같은 우리 형법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국에서 형이 집행된 피고인에 대하여 과잉금지원칙에 따른 보호를 더욱 두텁게 관철하려는 취지에서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필요적으로 산입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형법 제7조 는 구법이나 신법이나 대한민국의 형벌권의 적용범위에 관한 원칙에 따라 기판력의 발생이 배제된 “외국에서 재판이 확정되어 집행된 형”을 우리 형법의 적용 과정에서 피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형법 제7조 의 개정 과정에서 작성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보고서 등에서는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에서 예시한 입법 개선 방향 중 형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는 방안보다는 외국에서 집행받은 형 의 전부 또는 일부를 우리나라에서 선고하는 형에 산입하도록 하는 방식이 신체의 자유와 형벌의 구체적 타당성을 조화할 수 있는 방식임. 산입 범위는 외국에서 집행받은 형 의 종류와 집행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원의 재량으로 적정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헌법재판소의 취지를 존중하면서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을 것임. 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 취지에 따라 외국에서 집행된 형 의 전부 또는 일부를 우리나라에서 선고하는 형에 반드시 산입하도록 개정함.”

이와 같이 형법 제7조 의 개정 과정에서는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처리가 논의되었고 “외국에서 발생한 미결구금”에 관한 논의는 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④ 결국 개정된 형법 제7조 의 입법 취지는 국가형벌권을 적정하게 행사하면서도 과잉금지원칙을 지켜 피고인의 실질적인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하여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 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산입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⑤ 한편 형법은 이와 별도로 제3장 제2절 “형의 양정” 부분에서 제57조 제1항 을 두어 “판결선고 전의 구금일수는 그 전부를 유기징역, 유기금고, 벌금이나 과료에 관한 유치 또는 구류에 산입한다”고 하여 국내 재판 과정에서의 미결구금일수를 본형에 산입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으나 ‘외국에서의 판결선고 전 구금일수’에 관하여는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나. 양형부당

이 사건 범행은 도박빚으로 생활고를 겪던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유와 도움으로 필리핀에 가서 관광가이드 일을 하며 피해자의 집에서 같이 거주하여 오던 중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와 자고 있던 피해자를 깨워 사소한 말다툼 끝에 피해자를 부엌칼로 찔러 살해한 사안이다.

원심은 피고인에게 ① 불리한 정상으로, 피고인이 사소한 이유로 필리핀에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피해자를 살해한 점, 이로 인하여 한국에 있던 피해자의 유족들은 피해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피해자의 어머니는 피해자의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병으로 사망하였으며, 피고인에게 필리핀에서의 주거지 및 취업기회를 제공해 준 피해자의 여자친구 공소외 1은 자신을 책망하는 등 아픔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의 유족들은 필리핀에서의 재판과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였고 이 사건 발생 후 약 10년간 피고인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는 등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의 유족들이 피고인의 엄벌을 지속적으로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는 한편, ② 유리한 정상으로,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전체적으로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으로 필리핀에서 약 5년간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은 점 등을 함께 참작한 다음,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및 범행 후의 정황 등 변론에 나타난 제반 양형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다음, 피고인에 대하여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범위 내에서 최하한인 징역 10년의 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 및 변호인은 이 사건 범행은 미필적인 고의에 의하여 발생한 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극심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점, 피고인이 필리핀 수사기관에 자수한 점, 이후 피고인은 한국으로 자진 귀국하였는바 이는 자수와 동일하게 평가되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에 대하여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무겁다고 주장한다. 피고인 등은 원심에서도 이와 유사한 취지의 주장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심은 판결문의 양형 판단에 관한 부분에서 피고인의 주장과 그에 대한 판단을 자세히 설시하여 이 사건 범행이 미필적 고의에 의하여 발생하였다거나 피고인이 필리핀에서 자수하였다는 주장을 배척하였는바,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면 위 판단은 타당하다. 또한 피고인이 한국으로 자진 귀국하였다고는 하나 피고인은 필리핀에서 석방된 이후에도 5년 이상 귀국하지 않다가 장기 불법체류와 이 사건 범행 전력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 등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귀국한 것으로 보이므로(증거기록 9, 86쪽) 피고인의 귀국을 자수로 평가하여 특별감경요소로 인정할 수는 없다.

제1심과 비교하여 양형의 조건에 변화가 없고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다( 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원심의 위와 같은 양형은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으로 필리핀에서 5년 이상 미결 상태로 구금되었던 점을 포함하여 이 사건 변론 과정에 나타난 양형 관련 제반 사정을 두루 참작하여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그 밖에 피고인이 당심에서 주장하고 있는 사정들은 원심에서도 이미 형을 정함에 있어 충분히 고려되었으며, 여기에 형법 제7조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개정된 사정 등을 더하여 보더라도 원심의 양형을 변경할 만한 특별한 사정의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심의 양형은 피고인의 행위와 책임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따라 이를 기각한다.

판사 정선재(재판장) 오경미 진상훈

주1)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고인이 동일한 행위에 관하여 외국에서 형사처벌을 과하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런 외국판결은 우리나라에서는 기판력이 없으므로 여기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1983. 10. 25. 선고 83도2366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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