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당 사 자】
청 구 인 박○삼 외 11인
대리인 법무법인 미래
담당변호사 박장우 외 5인
당해사건
서울지방법원 99가합87825호 손해배상(기)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은 1997. 11. 21. 우리나라로부터 구제금융신청을 받고 1997. 12. 3. 우리나라와 사이에 스탠바이 협약, 제1차 의향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내용은 긴축통화 정책을 실시하여 시장금리를 상승시키고 부실한 기업과 금융기관은 도산시키는 등의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자금지원을 한다는 것이었고, 또 국제통화기금은 1998. 2. 7. 우리나라와 사이에 제5차 의향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내용은 비아이에스(BIS) 자기자본비율 기준 미달 은행에 대한 재무구조개선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금융기관 폐쇄 등에 대한 입법을 같은 달 28.까지 마련하도록 하는 것 등이었는데, 이에 따라 금융감독위원회가 1998. 6. 29. 5개 은행을 퇴출은행으로 선정하고 위 은행에 대하여 영업정지 및 계약이전결정을 함으로써 그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게 되었고, 또한 위 긴축통화정책으로 인한 살인적 고금리 때문에 정상적 기업이 부도를 내게 되어 그 근로자들 역시 직장을 잃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청구인들은 국제통화기금의 본래의 목적 범위를 벗어난 불법행위로 인하여 직장을 잃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국제통화기금 및 그 한국지부장(존 도즈워스)을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손해배상(위자료) 소송을 제기한 뒤, 국제통화기금 혹은 전문(專門)기구의 재산과 자산에 대한 사법절차 면제 및 그 직원의 공적 행위에 대한 사법절차 면제를 규정한, 국제통화기금협정(Articles of Agreement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제9조 제3항, 제8항 및 전문기구의특권과면제에관한협약(Con-vention on the Privileges and Immunities of the Specialized Agencies. 이하 “전문기구협약”이라 한다) 제4절 본문, 제19절 (a)의 위헌 여부를 제청신청하였으나(99카기16507) 2000. 1. 27. 기각되자, 2000. 2. 19.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이 사건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국제통화기금협정 제9조 제3항, 제8항(다만 제8항 중 재판권 면제와 관련된 것은 (i) 부분만이므로 이에 한정한다1)), 전문기구협약 제4절 본문, 제19절 (a)(이 조항들을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의 위헌 여부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제통화기금협정2)제9조(지위, 면제 및 특권)
제3항(사법절차의 면제) 기금 및 소재지와 소지자의 여하를 불문하고 그 재산 및 자산은 기금이 모든 형식의 사법절차의 면제를 포기하거나 또는 계약의 조건에 의하여 그 면제를 포기한다는 것을 명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형식의 사법절차에서 면제된다.
제8항(직원 및 피용자의 면제와 특권) 모든 기금의 각국위원, 이사, 대리자, 직원 및 피용자는 다음의 면제 및 특권을 가진다.
(i)공적 자격으로 행한 행위에 관하여는, 기금이 면제를 포기하였을 때를 제외하고는, 법적 절차로부터 면제된다.
전문기구의특권과면제에관한협약3)
제4절 전문기구 및 그 재산과 자산은 그 소재지와 보유자의 여하에 관계없이 특정의 사건에 있
어서 명시적으로 면제를 포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하한 형태의 법적 절차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제19절 전문기구의 직원은 다음과 같이 취급된다.
(a)공적 자격으로 그들이 행한 구두 또는 서면의 기술 및 모든 행위에 관하여 법적 절차로부터 면제된다.
2. 주장과 의견
가. 청구인의 주장
1998년 당시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 여건은 양호하고 재정수지도 건전하였던 점, 외환 위기는 근본적으로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점 등에 비추어 국제통화기금의 긴축통화정책과 고금리 정책은 기업부도율을 증대시키고 있을 뿐이어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국제통화기금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신속 과감의 원칙만으로 무분별하게 자기자본비율 기준의 적용을 강제하여 금융부문을 구조조정 하도록 하였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며,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기보다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활동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통화기금의 위와 같은 정책의 강요는 그 본래의 목적 범위를 벗어난 불법행위이다.
재판을 받을 권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조항은 국제통화기금과 그 직원의 재판권 면제가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따라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까지 재판권이 면제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을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본다면(서울지방법원은 이렇게 판단하였다) 이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국가의 재판권 면제의 기초가 되는 주권면제론과 국가행위이론에 대한 축소 검토가 시대적 흐름으로 되어 있고, 특히 불법행위 소송에서는 주권면제의 적용을 거부하는 미국 FSIA의 규정 등을 비교하여 볼 때,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국제통화기금과 그 직원의 재판권 면제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따라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까지 재판권이 면제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나. 법원의 위헌제청기각 이유
이 사건 조항은 국제통화기금 또는 전문기구가 그 목적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행하는 공식적인 행위(국가의 주권적 행위에 준하는 행위) 및 국제통화기금 또는 전문기구의 임직원이 공식적인 자격으로 행한 행위는 국제통화기금 또는 전문기구의 각 회원국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도록 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 또는 전문기구의 공적인 활동을 보호하려는 것이므로, 이것이 헌법 제27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 외교통상부장관의 의견
전문기구협약과 국제통화기금협정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므로 이는 헌법 제37조 2항의
법률에 해당되고, 전문기구 직원의 공적인 행위에 재판권 면제를 부여하는 것은 국제기구 직원이 소속 국제기구가 추구하는 목적(IMF의 경우는 국제통화문제에 관한 협의와 협력 및 외국환의 안정을 촉진)을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며 이는 헌법 제37조 2항의 공공복리에 해당한다.
공적인 행위로 야기되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에 대하여서 재판권 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제기구의 독립적인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도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한편 국제기구 직원의 사적인 행위의 경우에는 재판권 면제가 인정되지 않고(전문기구협약 제22절) 국제기구는 소속직원의 공적인 행위라도 재판권 면제를 포기할 수 있는 등(전문기구협약 제22절, 국제통화기금협정 제9조 제8항), 동 조약들은 우리국민의 재판청구권 제한을 국제기구의 독립적인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인정한다.
IMF 직원의 공적인 행위에 대한 재판권 면제는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된 법규범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국민의 일반적 이익과 합치된다는 뜻에서 넓은 범위의 공공복리를 위하여 재판청구권을 법률로써 제한한 것(헌법 제37조 2항)이며 재판청구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
3. 판 단
적법요건에 관하여 판단한다.
가. 조약이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은 심판대상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으나, 여기서의 “법률”에는 “조약”이 포함된다고 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조약이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대상이 된다고 전제하여 그에 관한 본안판단을 한 바 있다(헌재 1999. 4. 29. 97헌가14 , 판례집 11-1, 273 참조).
이 사건 조항은 각 국회의 동의를 얻어 체결된 것이므로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며, 그 효력의 정도는 법률에 준하는 효력이라고 이해된다.
한편 이 사건 조항은 재판권 면제에 관한 것이므로 성질상 국내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법규범으로서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나. 이 사건 조항에 대한 한정위헌 청구의 부적법성
(1)청구인은 이 사건 조항에 따른 “국제통화기금과 그 직원의 재판권 면제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따라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까지 재판권이 면제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되며, 만일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위 조약 등의 규정은 헌법 제27조 제1항이 정하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청구인은 이 사건 조항의 전반적인 내용에 관하여 그 위헌 여부를 다투는 것이 아
니라(즉 청구인들은 이 사건 조항에서 공적인 행위에 대한 재판권면제 자체를 다투는 취지는
아니라고 이해된다), 이 사건 조항의 재판권 면제에 불법행위 소송까지 포함하는 한 위헌이라는 한정위헌을 구하고 있다.
(2)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에 있어서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당해사건의 재판의 전제로 되어야 하고, 이 경우 재판의 전제가 된다고 하려면 그 법률이 당해사건 재판에서 적용되는 법률이어야 하고 그 법률의 위헌 여부에 따라 재판의 주문이 달라지거나 재판의 내용과 효력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헌재 1995. 7. 21. 93헌바46 , 판례집 7-2, 48, 58; 헌재 2000. 7. 20. 99헌바61 , 공보 48, 50, 52).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이 “법률의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이 기각된때에는”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심판의 대상을 ‘법률’에 한정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조항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판단을 구하는 청구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청구로 적절치 아니하다(헌재 1998. 9. 30. 98헌바3 ; 1997. 2. 20. 95헌바27 , 판례집 9-1, 161; 헌재 1995. 7. 21. 92헌바40 , 판례집 7-2, 37; 1999. 3. 25. 98헌바2 , 판례집 11-1, 200, 208; 2001. 3. 21. 99헌바107 , 공보 55, 331, 333).
그러나 법률조항의 내용에 따라서는 비록 당사자가 해석문제를 제기하지만,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 문제로 선해할 여지가 있는 경우가 있는바,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주장이 단순히 법률조항의 해석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률조항이 불명확하여 이를 다투는 등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에 관한 청구로 이해되는 경우에는, 한정위헌의 판단을 구하는 심판청구도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으로 보아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한 경우는 대개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 하나는 법규정 자체의 불확정성을 다투는 것으로 보는 경우이다.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을 다투는 경우 혹은 조세법률주의(과세요건 명확주의) 위반을 다투는 경우(헌재 1995. 7. 21. 92헌바40 , 판례집 7-2, 34, 36-37; 1997. 2. 20. 95헌바27 , 판례집 9-1, 156, 161-162; 1999. 3. 25. 98헌바2 , 판례집 11-1, 200, 208-209; 1999. 7. 22. 97헌바9 , 판례집 11-2, 112, 121; 1999. 11. 25. 98헌바36 , 판례집 11-2, 529, 536; 2000. 6. 1. 97헌바74 , 공보 46, 448, 449)가 이에 해당한다. ② 다른 하나는 소위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심판대상 규정의 위헌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만큼 일정한 사례군이 상당기간에 걸쳐 형성, 집적된 경우로서 군무이탈자 복귀명령 위반행위를 명령위반죄로 처벌하는 군형법 제47조에 관한 헌재 1995. 5. 25. 91헌바20 결정(판례집 7-1, 615, 626)과 집단적 노무제공거부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형법 제314조에 관한 헌재 1998. 7. 16. 97헌바23 결정(판례집 10-2, 243, 251-252)과 방영금지가처분을 허용하는 민사소송법 제714조 제2항에 관한 헌재 2001. 8. 30. 2000헌바36 결정(공보 60, 852)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법리는 법률적 효력을 지니는 이 사건 조약에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고 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이 사건 조항 자체의 불명확성을 다투는 것이라고 선해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는 이 사건 조항 자체의 내용(말하자면 “공적 자격으로 행한” 부분)의 불명확성이 문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공적 행위 중에서 어느 범위의 불법행위를 배제할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청구인은 이 사건 조항이 재판권 면제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의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한정위헌을 주장하지만 이 사건조항이 이와 같은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례군이 집적되었다고 볼만한 자료는 아직 없다.
또한 달리 이 사건에서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에 관한 청구로 볼만한 사정이 없다.
(3)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이 사건 조항의 합헌적 적용범위에 불법행위가 배제될 것인지, 배제된다면 어느 범위의 불법행위가 배제될 것인지는 규범 자체에 내포된 구성요건적 요소라기보다는 개별적 사안에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판단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법행위란 매우 폭넓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그 내연과 외포가 광범위하여, 이 사건 조항과 불법행위에 관련된 법원의 해석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일률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어느 불법행위가 이 사건 조항에 포함된다면 위헌, 그렇지 않으면 합헌이란 식으로 판단하기 곤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협정 제9조 제8항, 전문기구협약 제19절 (a)는 직원 등의 “공적 자격으로 행한 행위”에 관하여 법적 절차로부터 면제하도록 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 ‘공적 행위’와 ‘불법행위’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지, 특히 헌법상의 재판청구권의 침해 여부와 관련하여 그 범위를 어떻게 한정할지의 문제는 위헌법률심판의 구체적인 대상이 되기 곤란한 사항이다. 즉, 이는 개별 사안에서, 해당 사안이 국내법상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것인지, 또 그것이 ‘공적 행위’로 인하여 야기된 것인지, 나아가 그 경우에도 재판권의 면제대상이 될 것인지에 관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결정될 문제라고 할 것이다.
한편 국제통화기금협정 제9조 제3항은 동 기금 및 그 자신과 재산에 대하여 “모든 형태의 사법절차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지만, 동 협정의 다른 조항(제9조 제1항)을 함께 참조할 때, 국제통화기금은 그 목적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행하는 공식적인 행위에만 재판권 면제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고, 따라서 위 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원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 그 적용범위가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건 심판대상인 국제통화기금협정에 관한 위와 같은 관점은 전문기구협약 제4절 본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한대현(재판장) 하경철(주심)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