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당 사 자】
청구인 신○자 외 20인
대리인 변호사 임광규
피청구인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1989. 5. 2. ○○대 학생들은 노동문제와 학내문제에 대한 집회와 시위를 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부산시경찰국 소속 전투경찰대원 5인을 납치하여 학교 안에 감금하였다. 1989. 5. 3. 부산시경찰국 소속 경찰관 700여 명이
감금된 위 5인을 구출하기 위하여 ○○대 도서관 안으로 진입하였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방화행위로 인하여 경찰관 7인이 사망하였다(이른바 ‘○○대 사건’).
(2)부산고등법원은 1990. 2. 21. 위 사건에서 방화치사행위에 가담하였던 청구외 윤○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다른 적극 가담자들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89노984), 대법원은 위 판결에 대한 상고를 같은 해 6. 22. 기각하였다(90도767). ○○대 사건의 다른 가담자들에 대하여도 유죄가 선고되었다.
(3)피청구인은 ○○대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위 윤○호 외 45인을 2002. 4. 27.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2호 소정의 민주화운동관련자로 결정하였다.
(4)청구인들은 ○○대 사건에서 사망한 경찰관들의 가족인바, 피청구인의 위 2002. 4. 27.자 결정 및 그 결정의 근거가 되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1호·제2호 라목, 제4조 제1항, 제2항 제1호·제3호, 제7조가 헌법상 보장된 자신들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2002. 6. 27.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2000. 1. 12. 법률 제6123호로 제정된 것, 이하 ‘이 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제2호 라목, 제4조 제1항, 제2항 제1호·제3호, 제7조(이하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 및 피청구인이 2002. 4. 27. 윤○호 외 45인에 대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의결한 결정(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이 사건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2000. 1. 12. 법률 제6123호)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민주화운동”이라 함은 1969년 8월 7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
2.“민주화운동관련자(이하 “관련자”라 한다)”라 함은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자 중 제4조의 규정에 의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자를 말한다.
라.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해직 또는 학사징계를 받은 자
제4조(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①이 법에 의한 관련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금등을 심의·결정하기 위하여 국무총리소속하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위원회의 기능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관련자 및 그 유족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심의·결정
3.관련자 또는 그 유족의 보상금등의 심의·결정 및 지급
제7조(보상금)①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하여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산출한 금액에 보상결정시까지의 법정이율에 의한 이자를 가산한 보상금을 지급한다.
2. 청구인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
가. 청구이유
(2)이 사건 조항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사람들은 심한 범법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결정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법치주의에 반한다.
(3)이 사건 결정은 사람이 현존하는 건물에서 공무집행하는 경찰관들에 대하여 방화를 하여 7명의 경찰관을 죽게 한 범죄로 인하여 무기징역 등 무거운 유죄판결을 받고 확정된 46명에 대하여 “명예와 보상”을 줌으로써 순직경찰관들의 가족인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과 법치주의를 향유할 권리를 침해하였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1)청구인들이 이 사건에서 어떠한 직접적, 현재적인 기본권 침해를 입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자기관련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이 법은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 현대사에 상당 기간 권위주의적 통치가 존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이 기간 동안 발생한 헌정질서의 유린과 기본권 억압 등 법치주의의 핵심적 요소들이 왜곡되는 현실을 바로잡고
자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피해가 큰 사람들에 대하여 필요 최소한 정도의 보상과 명예회복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써 제정되게 된 것이다. 이 법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라 함은 민주화와 법치주의 회복이라는 보다 큰 공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정법을 위반하게 된 사람들을 말하므로 이들을 사적인 동기에 의해 법을 위반한 일반 범법자들과 동일하게 취급하여서는 아니된다.
(2) 이 법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유죄판결 등의 피해를 입은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회복 조치를 규정한 것일 뿐 유죄판결의 효력자체를 부인하거나 상실시키는 것은 아니며 그 대상과 범위, 방식 등에 있어서도 법치주의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3) 피청구인은 이 건 신청인들이 비록 방화·치사 등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선행행위는 이 법이 정한 민주화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법원의 판결문 자체에 의하더라도 ○○대 사건 가담자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위와 같은 중대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경찰진입을 막기 위하여 통상의 시위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인정되므로 이 건 신청인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것이다.
3. 판 단
가. 이 사건 조항에 대한 부분
(1) 법률 또는 법률조항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려면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법률 또는 법률조항 자체에 의하여 직접·현재·자기의 기본권을 침해받아야 하는 것을 요건으로 하고, 여기서 말하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란 집행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률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이 생긴 경우를 뜻한다(헌재 1998. 5. 28. 96헌마151 , 판례집 10-1, 695, 701). 따라서 청구인 스스로가 헌법소원의 대상인 법률조항과 법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하며, 정의규정이나 선언규정과 같이 그 법률조항 자체에 의하여는 기본권의 침해가 발생할 수 없는 경우(헌재 1998. 10. 15. 96헌바77 , 판례집 10-2, 573, 585 참조) 또는 법률 또는 법률조항이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예정하고 있는 경우(헌재 1999. 4. 29. 96헌마352 등, 판례집 11-1, 477, 495)에는 직접성 요건이 결여된다.
(2)이 사건 조항 중 제2조는 ‘민주화운동’ 및 ‘민주화운동관련자’에 대한 정
의 규정이고, 제4조는 위원회의 설치 및 그 기능에 관한 규정이며, 제7조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게 지급할 보상금의 산정방법에 관한 규정일 뿐이다.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기본권침해는 이 사건 조항 자체에 의하여 직접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의 ‘민주화운동관련자’ 결정이라는 구체적 집행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조항만으로는 직접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헌법소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
나. 이 사건 결정에 대한 부분
피청구인의 이 사건 결정에 관하여 청구인들에게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심판청구 또한 부적법하다.
(1)이 사건 결정은 청구외 윤○호 외 45인을 이 법 제2조 제2호 소정의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권력 작용의 직접 상대방은 위 46인이고, 청구인들은 이에 관하여 어디까지나 제3자일뿐이다. 청구인들과 같이 공권력 작용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경우에는 그 제3자의 기본권이 직접, 법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경우에만 자기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고, 단지 간접적·사실적 또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로만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기관련성이 부인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헌재 1992. 9. 4. 92헌마175 , 판례집 4, 579, 580). 제3자의 자기관련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입법의 목적, 실질적인 규율대상, 법규정에서의 제한이나 금지가 제3자에게 미치는 효과나 진지성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헌재 1997. 9. 25. 96헌마133 , 판례집 9-2, 410, 416-417).
(2)이 사건 결정으로 인하여 침해될 수 있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으로는 일반적 인격권을 상정할 수 있다.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될 수 있으나(헌재 1999. 6. 24. 97헌마265 , 판례집 11-1, 768, 774), 여기서 말하는 ‘명예’는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주관적·내면적인 명예감정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와 같은 주관적·내면적·정신적 사항은 객관성과 구체성이 미약한 것이므로 법적인 개념이나 이익으로 파악하는 데는 대단히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이 인격권으로 보호하는 명예의 개념을 사회적·외부적 징표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내심의 명예감정까지 모두 여기
에 포함되어 입법이나 공권력 작용은 물론 사인(私人)간의 생활관계에서도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서 명예권 침해의 주장이 제기되고 법적 분쟁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명예권의 개념을 그와 같이 확장하여서는 오늘날 다양한 이해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명예분쟁이 어떤 양상으로 분출될지 조감하기 어려워 비단 입법자나 공권력 주체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사인들에게도 무수한 명예권 침해 항변에 맞닥뜨리도록 하는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3)헌법이 보호하는 위와 같은 의미의 청구인들의 명예가 이 사건 결정으로 말미암아 훼손되었는지 본다.
먼저 이 사건 결정의 근거가 된 이 법의 목적이나 취지를 보건대, 이 법은 민주화운동관련자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행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이 법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화해와 미래지향적 발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불법의 낙인이 찍혔던 사람들에게 긍정의 역사적 평가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민주화운동관련자에게 전과기록의 말소(제5조의2), 복직권고(제5조의4), 보상금 지급(제7조), 의료지원·생활지원 제공(제8조, 제9조) 등 역사적 재평가에 필요한 조치들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당시의 상황에서 그들과 반대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어떠한 불이익이나 보복을 가한다든지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이는 화해와 화합을 지향하는 이 법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내용의 이 사건 결정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순직경찰관들 또는 그들의 유족인 청구인들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할 수 없다. 청구인들 주장의 요지는 결국 위 46인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것은 곧 이들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제2조 제1호)을 한 자로 인정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들과 대립관계에 있던 순직경찰관들은 위 46인이 항거하였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위하여 활동한 자로 평가될 수밖에 없으니 이들의 사회적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결정이 그 자체로 순직경찰관들에 대하여 어떠한 부정적 평가를 직접적으로 행하지도 의도하지도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여 청구인들 주장의 논리와 같이 이 사건 결정이 대립당사자였던 한 쪽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으니 그 반대 당사자의 명예는 필연적으로 훼손당할 수밖에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순직경찰관들은 의연히 국가유공자로서 명예로운 사회적 예우를 받고 있다. 사회적 명예의 가장 중요한 징표는 법적 평가일진대 이들에 대한 법적 평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고, 이 사건 결정은 여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다음으로 순직경찰관들에 대한 일반사회의 평가가 일변하여 이들을 이제 권위주의 정권의 하수인 또는 법을 가장한 불법의 집행자라고 매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합법과 불법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은 이상 어떠한 경우에도 화해는 있을 수 없고, 한 쪽에 대한 명예는 다른 쪽에 대한 수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다면 모르거니와 화해를 통한 역사의 발전을 믿고, 이 법의 목적이나 성격을 정당하게 고려하는 한 이 법이 시행되었다고 하여, 이 사건 결정이 있었다고 하여 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하루아침에 매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법집행을 위하여 순직하였다는 고귀한 명예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
이와 같이 이 사건 결정 및 그 근거법률의 목적과 내용, 이 사건 결정이 위 46인 및 청구인들에게 미치는 실질적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건 결정은 청구인들의 내면의 명예감정에 관계될지언정 법적으로 의미있는 명예를 직접 훼손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결정에 관하여 청구인들은 간접적·사실적인 이해관계로만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에게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4)순직경찰관들의 유족인 청구인들이 내심의 동요와 혼란을 겪었을 수도 있음을 부인하는바 아니다. 특정한 역사의 현장에서 양 당사자는 때로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완전히 상반되는 가치관과 입장을 대변하며 격렬한 대치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대한 처우와 평가에 대해 다른 쪽
당사자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청구인들의 처지에 공감을 한다손 치더라도 청구인들이 훼손당한 것은 헌법이 보호하는 법익인 명예가 아니라 내면의 명예감정이나 내적인 자긍심이라 할 것인데, 이러한 주관적·내면적 대립관계를 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법의 한계를 넘는 일이며, 법적 의미관련성이 희미한 헌법소원의 사태(沙汰)현상을 방지하려한 자기관련성 법리의 여과기능을 허물어뜨리는 일이 된다.
4. 결 론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권 성,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송인준, 재판관 주선회의 아래 5.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5.재판관 권 성,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송인준,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
우리는 청구인들의 이 사건 결정에 대한 심판청구는 적법하며, 이 사건 결정 중 경찰관들의 사망에 직접 개입한 윤○호 외 6인에 대한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부분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보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이 사건 결정에 대한 심판청구의 적법성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고, 여기서 말하는 ‘명예’는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말한다는 것에는 우리도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 사건 결정이 청구인들의 내면의 명예감정에 관계될지언정 법적으로 의미있는 명예를 직접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다수의견과는 견해를 달리 한다.
이들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들과 대치하다 죽음을 맞이한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논리필연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의 대행자라는 평가가 내려지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다름 아닌 이 법 및 이 사건 결정에 의해 주어진 법적 평가이다.
이 법 및 이 사건 결정에 의해 내려진 이러한 법적 평가는 당연히 순직경찰관들의 사회적 평가, 즉 이들에 대한 객관적·외부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은 국가유공자의 지위에 변함이 없다는 점만을 중시하여 순직경찰관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평가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대 사건 가담자들과 순직경찰관들은 특정한 역사의 현장에서 상반되는 가치관과 입장을 대변하며 격렬한 대치관계에 놓여 있었던 두 당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중립적일 수 없고, 그 자체로 다른 쪽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 사건 가담자들에게 명예와 보상을 부여하는 순간 법질서의 수호자로서 순직경찰관들이 받아야 마땅한 사회적 평가와 추모는 격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건 결정에도 불구하고 순직경찰관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평가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은 법의 정신과 실질을 도외시한 형식적인 법이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직경찰관들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명예와 평가의 훼손은 사자(死者)와의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의 인격상(人格像)을 형성하고 명예를 지켜온 그들의 유가족에게도 미친다. 이 사건 결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은 더 이상 ‘법을 지키려 순직한 경찰관의 유족’으로서의 명예와 정체감을 지킬 수 없게 되었고, ‘민주화운동을 억압한 부당한 공권력 측 하수인의 유족’으로 격하되는 불명예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은 이 사건 결정에 대하여 그 헌법상 보호되는 명예(인격권)의 침해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할 자기관련성이 있다 할 것이고, 다른 적법요건상의 흠결이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할 것이다.
나.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
이 사건 결정 중 적어도 경찰관들의 사망에 직접 개입한 윤○호, 오○봉, 김○권, 이○현, 이○우, 하○호, 이○경에 대한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부분(이하 ‘이 부분 결정’이라 한다)은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호되는 인격권(명예)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1)위 7인의 범행경위는 다음과 같다. 1989. 5. 3. 5시30분경 ○○대 도서관
7층에서 위 윤○호 등은 공모하여, 복도에 화염병 상자, 천조각 등을 쌓아놓고 석유를 뿌린 다음, 감금된 동료들을 구출하러 경찰이 진입해 왔을 때 윤○호가 불붙은 화염병을 화염병 상자 근처로 던졌고, 이로 인하여 화염병 상자의 인화물질과 그 전날부터 복도에 퍼져 있던 신나와 석유가스등이 인화, 폭발하면서 고열과 함께 시커먼 연기,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하는 화재가 나서, 이로 인하여 순경 1인은 현장에서 전신 화상으로 소사하고, 순경 4인은 불길을 피해 세미나실 북쪽 창밖에 매달려 있다가 7층 아래의 지상으로 추락하여 병원으로 후송 도중 사망하고, 병원에서 가료 중 전경 1인은 흡인성 기도화상으로, 수경 1인은 전신 3도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각 사망하였다[부산지방법원 1989. 10. 24. 선고 89고합464, 89고합545(병합) 판결].
이러한 범행에 대하여 윤○호는 무기징역에, 오○봉과 김○권은 각 징역 15년에, 이○현은 징역 13년 및 자격정지 2년에, 이○우는 징역 10년에, 하○호와 이○경은 각 징역 7년에 처해졌다.
(2)이 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행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이 법 제1조). 그러므로 민주화운동관련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심의·결정권한을 가진 피청구인으로서는 이 법 제2조 제2호 라목에 규정된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함에 있어서 유죄판결을 받게 된 행위의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그로 인하여 초래된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법의 입법목적 달성에 합당한 자들만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여야 할 직무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대 사건의 위 가담자들의 행위는 비록 그 출발에 있어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의 수단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하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대단히 폭력적인 것이었고 그 결과는 무고한 경찰관의 사망이라는 대단히 중대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의 진입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납치 감금된 동료경찰관 5인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고 위 가담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상황도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리 석유를 뿌려 준비해 두었던 표적물에 불붙은 화염병을 던져 공무를 집행하던 경찰관들 7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비록 살인의 고의는 인정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들의 행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감행하였던 것이다(대법원 1990. 6. 22. 선고 90도767 판결).
이와 같이 그 불법성이 중대한 행위를 주도하고 직접 가담한 자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려면 그 만큼 그로 인하여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이 법 제2조 제1호) 정도가 크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 가담자들의 행위는 치명적 폭력을 동원한 범죄행위로서 무고한 경찰관들의 생명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빼앗은 것이고, 오히려 민주헌정질서를 후퇴시킨 것일 뿐, 그것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어떤 기여를 하였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한편, 이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으로써 이 법의 목적인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절차를 본질로 하는 것이어서 치명적 폭력행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없는 것이고, 대립적 관계에 있던 양 당사자 중의 한 쪽에 상대방의 진정한 동의없는 일방적인 편애를 보임으로써 양 당사자간에 진정한 화합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이 부분 결정으로 말미암아 청구인들의 명예는 결정적으로 실추되었다. 청구인들은 위 순직자들의 유족으로서 비단 자신의 가족들이 국가유공자로 예우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법집행을 위하여 진력하다 고귀한 생명을 희생한 사람의 가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 왔을 것인데, 바로 이러한 자긍심은 청구인들을 명예롭게 여기는 사회적 평가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 결정은 위와 같이 용납하기 어려운 폭력적 범죄행위를 적극적으로 저지른 위 가담자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으로써 청구인들의 자긍심의 원천인 사회적 명예를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결론적으로 피청구인은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고려하여야 할 여러 요소들을 제대로 평가·형량하지 못한 채, 위 가담자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으로써 순직자들이나 유족들에게 초래될 인격권의 침해 및 그 의미와 비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가운데 이 사건 결정에 이른 것이라 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호되는 인격권(명예)을 침해하였다 할 것이다. 이 부분 결정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3항에 따라 취소되어야 마땅하다.
(3)주지하는바와 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는 우리 헌법을 지탱하고 있는 근본원리로서 법의 존중과 수호를 그 공통의 기초로 삼고 있다. 법을 무시하고 타기하는 행위는 그 법의 정당화원리인 민주주의원리 뿐만 아
니라 법에 의한 지배라는 법치주의원리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납치·감금된 동료 경찰관들을 구출하려는 공권력의 집행에 대항하여 밀폐된 옥내에서 화염병과 석유라는 폭력도구를 사용함으로써 7인의 무고한 경찰관을 고통스럽게 사망케 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이는 단순한 법위반행위라기 보다는 법이 부여한 정당한 공권력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보아야 한다. 그에 대하여 당시 법집행기관에 의하여 엄정한 심판이 있었던 것은 이러한 법의 부인을 부인함으로써 법을 회복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리 민주적 목적을 지녔더라도 허용될 수 없는 폭력수단을 통하여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릴 수 없다. “인간의 정치적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수단 내지 절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것이 아니다.”(헌재 1993. 7. 29. 89헌마31 , 판례집 5-2, 87, 119)
그런데 이 부분 결정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아래 도저히 ‘민주화운동’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그런 명명(命名)조차 허용되어서는 아니되는 치명적 폭력을 동반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으로써 명예와 보상을 베풀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벌어진 갈등과 모순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역사적 평가와 화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손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대 사건 유족들의 마음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화해의 차원을 넘어 법률로써 가해자들에게 명예와 보상을 준다는 것은 법적 수단의 남용이자, 법률의 월권이다.
헌법수호의 최후의 보루인 우리 헌법재판소로서는 이와 같이 국가의 근본질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의 정신과 가치에 부합할 수 없는 이 부분 결정을 그대로 방치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보아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하여 둔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권 성 김효종 김경일(주심) 송인준
주선회 전효숙 이공현 조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