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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홍,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 등 위헌소원 (민법 제766조 제1항,제2항 )", 결정해설집 7집, 헌법재판소, 2009, p.567
[결정해설 (결정해설집7집)]
본문

-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과 소멸시효규정의 적용배제 -

(헌재 2008. 11. 27. 2004헌바54, 판례집 20-2하, 186)

이 규 홍*1)

1.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민법 제766조 제2항을 국가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의 피해자인 청구인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 제23조 등에 위반한다고 주장하는 한정위헌청구가 적법한지(적극)

2. 소멸시효제도를 규정한 위 법률조항들을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의한 국민의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하는 것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지(소극)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부 개정되고 2006. 10. 4. 법률 제8050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96조 제2항민법 제766조 제1항, 제2항(이하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민법 제766조 제2항만을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라고 한다)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 예산회계법 제96조(금전채권과 채무의 소멸시효) ①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로서 시효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것은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할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②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또한 제1항과 같다.

민법 제766조(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②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1980.경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은 원호대상자 정착직업재활조합 서울목공분조합 임원들의 공금횡령 및 뇌물공여 등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임원들을 강제연행하여 지하유치장에 감금하고 범죄사실 자백과 그들의 위 분조합에 관한 지분을 국가에 증여할 것을 강요하여 결국 위 분조합 소유이던 인천 북구 십정동 소재 토지 및 그 지상건물에 대하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

한편, 위 분조합원들이거나 그 지위를 승계한 청구인들은 1990.경 위 토지 및 지상건물에 관한 위 소유권이전등기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 이를 반환받은 후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는데 제1심과 항소심에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에 의한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각 청구기각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2001다44086호)은 청구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되었다고 볼 수 없되 소 제기일로부터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의 소멸시효기간인 5년을 역산한 날 이전에 발생한 손해부분은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판시하며 파기환송하였다.

이에 청구인들은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민법 제766조 제1항, 제2항을 국가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의 피해자인 청구인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

는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청구인들의 재산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환송 후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03나71077호)에서 위 법률조항들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04. 7. 7.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04. 8. 2.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소멸시효제도는 사회질서의 안정, 입증곤란의 구제 및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등을 그 존재이유로 하는 것인데, 국가가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을 강제연행, 장기구금, 협박ㆍ고문하고 이를 통하여 사유재산권을 박탈하는 등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한 경우는 보호하여야 할 제3자의 신뢰란 있을 수 없어 사회질서 안정과 관련이 없고, 국가권력 특히 수사기관이 개입된 범죄는 사후에 행위 당시 범행의 실체에 접근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거나 설령 있다고 하여도 은폐ㆍ조작되어 민사상 구제도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입증곤란을 구제할 필요성도 적으며, 나아가 국가권력의 담당자 또는 그 후계자가 계속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피해구제를 위한 권리행사가 사실상 봉쇄되거나 극도로 위축 또는 제한될 수밖에 없어 권리위에 잠자고 있다는 이유로 보호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을 국민의 인권보장을 그 책무로 하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러 놓고 이에 대하여 스스로 면책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 제10조로 보호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고, 특히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은 합리적인 사유 없이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사인(私人)간에 적용되는 10년간의 소멸시효보다 단기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는 불법행위가 통상 서로 모르는 당사자 간에 발생하므로 채권자인 피해자가 장기간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면 채무자는 극히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 민법 제766조에는 합리적 존재이유와 정당한 목적이 있고, 나아가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은 국가의 채권ㆍ채무관계를 조기에 확정하고 예산 수립의 불안정성을 제거하여 국가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규정으로 합리적인 존재이유와 정당한 목적이 인정되며 나아가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각 그 권리제한 방법에 있어 수단의 적절성도 있는바 채권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할 정도로 시효기간이 불합리하게 짧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청구인들은 국가가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을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나 민사상 절차에서는 국가를 단지 사적(私的) 경제주체 중 하나로 보므로 국민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달리 국가에 대하여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의 적용을 배제할 합리적인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한정위헌결정을 구하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의 요청에도 반하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청구인들의 주장은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국가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적용 예외 조항을 두지 않은 것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선해할 수 있어 이 사건 법률조항들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하므로 적법하다.

법률의 적용대상이 유형적ㆍ추상적으로 한정되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경우 그 한정되는 적용대상에 대한 위헌심판청구는 결국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청구로 볼 수 있는데 이 사건 청구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전시ㆍ사변ㆍ쿠데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시기에 공무원이 공권력을 이용하여 조직적ㆍ계획적으로 행한 직무상 불법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의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는, 다른 적용대상으로부터 유형적ㆍ추상적으로 구별되는 대상에 대한 한정위헌결정을 구하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적법하다.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은 법률해석을 통하여 내용이 특정되고 구체적인 규범력을 가지게 된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내용”이고, 법률에 대한 특정의 해석 내용을 한정하여 그 위헌 여부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한정위헌심판청구)도 그러한 해석 내용이 규범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허용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이 사건 심판청구는 법률조항 자체를 다투는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법원의 사실관계 인정과 평가 및 법률의 해석ㆍ적용에 관한 문제를 다투는 것이므로 부적법하다.

한정위헌청구가 적법하기 위하여는 청구된 심판대상이 구체적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법률의 의미와 적용범위에 있어서 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으로 분리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사건 심판청구 대상인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관한 한정위헌청구는 위와 같이 분리될 수 없어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질적 일부가 될 수 없으므로 부적법하다.

소멸시효제도의 일반적인 존재이유와 특히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의 국가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목적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정성은 인정되고, 전시ㆍ사변ㆍ쿠데타 등 국가비상시기 등에 공무원들이 국가기관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저지른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국가에 대하여 적시(適時)에 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일지라도 민법 등 관련규정상 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해석 등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고, 법원의 판결 등 실무상으로도 소멸시효제도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를 최소화하려는 법해석이 가능하므로 최소침해성에 반하지 않으며, 소멸시효제도에 내재된 여러 공익적인 측면과 시효적용으로 인하여 해당 영역의 권리자들이 입게 되는 불이익의 성격과 내용 등을 비교형량하여 보면 법익의 균형성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위와 같이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정성이 인정되는 점에 관하여는 의문이 없으나,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경우는 미지의 당사자간에 예기하지 못한 우연의 사고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통상의 불법행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데다가 심지어 가해자인 공무원에 의한 증거 내지 국가기록의 의도적 은폐, 폐기 등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는데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르게 되면 일반적인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과 함께 5년 혹은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뿐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와 같은 특수한 불법행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바 이는 결국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형해화하게 되어 입법형성권의 범위를 벗어나 침해의 최소성에 위반된다고 볼 것이고,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반되는바 입법자는 합헌적인 방향으로 법률을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국가가 공권력을 이용한 범죄행위로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접적으로 침해하였다면, 국가가 헌법 제10조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고의적으로 위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접 침해한 것이므로 그로 인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5년 또는 1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소멸시키는 것 역시 헌법 제10조에 위반되므로 그 내용을 제거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적법요건 문제인 재판의 전제성 존부 및 한정위헌청구의 적법 여부 문제, 본안 문제인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의한 국민의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하는 것이 불법행위의 피해자인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므로 차례로 살펴본다.

(1) 헌법재판소의 선례 및 그에 대한 비판과 이 사건 청구

(가) 헌법재판소의 선례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한 경우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법규정 자체의 불명확성을 다투는 것으로 보는 경우로서, 헌법상의 명확성원칙을 다투는 경우 혹은 조세법률주의(과세요건 명확주의) 위반을 다투는 경우(헌재 2000. 6. 1. 97헌바74, 공보 46, 448, 449 등), 둘째 소위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심판대상규정의 위헌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만큼 일정한 사례군이 상당기간에 걸

쳐 형성, 집적된 경우(헌재 2001. 8. 30. 2000헌바36, 공보 60, 852 등), 셋째 위 두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지만 한정위헌의 판단을 구하는 청구가 법률조항 자체에 대한 다툼으로 볼 수 있는 경우(헌재 2000. 6. 29. 99헌바66등, 판례집 12-1, 848, 865 등)이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기존의 입장 및 선례는 한정위헌청구는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되 위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법하게 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 선례에 대한 비판

규범통제라는 헌법재판의 고유기능에 비추어 볼 때 선례의 판시는, “한정위헌청구는 원칙적으로 적법하되, 다만 그 전제로서 법률조항의 일부라고 인정될 만한 적법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변경되어야 한다며 선례를 아래와 같이 비판하는 견해2)가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결정을 적법한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심판대상인 법률조항이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분리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면서도, 법률조항의 질적 일부 위헌청구라고 할 수 있는 한정위헌청구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둘째, 위 선례의 예외범위 역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우선 선례가 첫째 및 셋째 예외로 들고 있는 경우는 엄격한 의미의 한정위헌청구가 아니므로 이를 예외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둘째 예외로 들고 있는 경우도 ① 새로운 법률의 경우에는 한정위헌청구가 적법하게 될 여지가 없는 점, ② ‘법원의 해석’과 같은 법률의 후발적 사유가 심판대상의 적법성 판단에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는 점, ③ 만일 위와 같은 논리라면 대법원판례가 변경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도 변경되어야 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을 판단하는데 타당한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다) 이 사건 청구가 선례에 해당하는지 여부

1) 해당한다고 보는 입장(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이동흡)

청구인들은 ‘국가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법률해석상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당연히 포

함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 부당성 즉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위와 같은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적용 예외 조항을 두지 않은 것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선해할 수 있으므로 비록 청구형식이 한정위헌을 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할지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2) 선례에 해당하지 않아 부적법하다는 입장(재판관 이공현)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관한 심판청구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반인권적 국가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한 소멸시효를 배제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위헌이라는 취지인바, 법률조항 자체의 불명확성을 다투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현재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법적인 개념이 확립되어 있다거나 그에 관한 판례가 집적되어 일정한 사례군이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소멸시효의 배제 여부가 당연히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청구는 법원의 사실관계 인정과 평가 및 법률의 해석ㆍ적용에 관한 문제를 다투는 것에 불과하여 부적법하다.

(2)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에 관한 새로운 논의

(가) 개념

법률의 적용대상이 유형적ㆍ추상적으로 한정되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경우에도 그 한정되는 적용대상에 대한 위헌심판청구는 결국 법률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로 볼 수 있다는 견해3)가 있다. 즉, 법률조항의 적용대상이 상당한 영역을 가질 때 그 적용대상의 구체적 범위는 개별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물론 결정되지만 그 적용대상 중 다른 것과 유형적ㆍ추상적으로 구별이 되는 특정한 범위의 것을 한정하고 이에 대하여 위헌 여부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그것이 재판의 전제가 되는 한도에서,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의 심판청구에 해당하는바 여기서 유형적이라고 하는 것

은 객관적인 징표와 기준에 의하여 다른 것들과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범주로 파악이 가능한 것을, 추상적이라고 하는 것은 개별적 행위나 사실에 관한 구체적 판단 이전에 개념적ㆍ일반적으로 한계 획정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결국 유형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기존에 한정위헌청구가 예외적으로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경우 외에 별도로 한정위헌청구가 가능한 새로운 영역을 설정하려는 이론으로 이론적 성립가능성 이외에 한정위헌청구가 불가피하여 이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현실적 필요4)도 그 근거로 제시된다.

(나) 인정여부

1) 긍정설

헌재 2005. 7. 21. 2001헌바67사건(판례집 17-2, 21)의 반대의견은 최초로 관련 논의결과 및 이론을 농축하여 전항과 같은 입장을 제시하였는바 결국 이는 이론적으로 규범통제는 입법에 대한 통제이지 사법에 대한 통제가 아니므로 재판소원이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떤 경우를 규범통제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를 확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한데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귀착되는 한정위헌청구는 허용되고 법적용기관의 구체적 판단결과(법원의 재판 내지 구체적 법률해석)를 다투는 것에 다름아닌 한정위헌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5)는 것을 대전제로 하여, 유형설에 의한 한정위헌청구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정리된다.6)

이 사건의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목영준의 의견7)중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질적 일부청구인 한정위헌청구가 적법하기 위하여는 그 질적 일부가 양

적 일부에 상응할 만큼 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으로 분리가능하여야 하는바, 한정위헌청구된 심판대상이 구체적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법률의 의미와 적용범위에 있어서 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으로 분리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판단에는, 심판대상이 의미와 적용범위에 있어서 독립된 개념으로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는 물론, 해당 법률에 포함된 다른 법률조항의 규정, 다른 법률의 규정, 헌법재판소가 종전 한정위헌결정을 한 사례, 집적된 대법원판례가 있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설시도 같은 의미의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이 사건에서의 재판관 조대현의 의견도 결국은 유형설을 포함하는 의견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긍정설에 의할 경우 이 사건 한정위헌청구가 적법한지 여부는 별도의 항에서 살펴본다.

2) 부정설

이에 반하여 종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앞서 본 선례 이외에 유형설에 의한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을 인정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8)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어떤 법률조항의 의미나 적용영역에 있어서 ‘유형적ㆍ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기준으로서 모호하므로 위와 같은 영역은 결국 법률조항의 해석에 의하여 파악될 수밖에 없어 자의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9)

둘째, 유형설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심판대상을 법률조항 자체가 아닌 위와 같이 한정된 영역으로 제한된다고 봄이 논리적일 것인데 이 경우 위와 같이 심판대상이 제한된다면 만일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법률조항의 다른 영역에서 위헌성이 발견되더라도 이에 대하여 위헌판단을 할 수 없다는 의미라면 불합리하고 규범통제의 속성에도 맞지 않을 것이다.

셋째, 유형적ㆍ추상적 영역에 대한 한정위헌청구가 허용된다는 것은 헌법

소원을 제기한 청구인들이 관련된 사실관계가 그 범주에 해당하여 그 유형적ㆍ추상적 부분이 위헌이 되면 청구인도 구제될 개연성이 있다는 단계를 갖춘 것임을 의미하는데 유형적ㆍ추상적 영역에 대한 한정위헌청구에 있어서는 청구인이 관여된 사실관계가 위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사실인정의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 이른바 재판소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앞서 본 바와 같이 선례의 설시내용 및 예외적인 적법판단을 하게 된 취지 등을 고려해 보면, 청구인들 주장에 따라 평등권이나 부진정입법부작위 등의 주장으로 선해하거나 세 번째 예외유형을 활용하여 한정위헌청구를 법률조항 자체에 관한 다툼으로 보는 방법이 가능하므로 굳이 유형설을 도입할 필요성은 없다.

(다) 긍정설에 의할 경우 이 사건 청구가 적법한지 여부

1) 적법하다는 견해(재판관 김희옥,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송두환)

이 사건 심판청구취지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유형적ㆍ추상적 범주를 획정한다면, “전시ㆍ사변ㆍ쿠데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시기에 공무원이 공권력을 이용하여 조직적ㆍ계획적으로 행한 직무상 불법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만으로 그 적용범위를 명확하게 하여 유형화ㆍ추상화의 범주를 획정할 수 있을 것인바10)이 사건 심판청구를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위와 같은 경우의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다른 적용영역으로부터 유형적ㆍ추상적으로 구별되는 영역에 대한 한정위헌결정을 구하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11)

2) 부적법하다는 견해(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목영준)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관한 한정위헌청구가 구체적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법률의 의미와 적용범위에 있어서 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으로 분리가능한지를 살펴보면, 첫째 ‘반인권적 국가범죄’라는 개념을 정의한 법령이나 법원의 해석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12)’을 이행하기 위하여 2007. 12. 21. 법률 제8719호로 제정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집단살해죄(제8조)’, ‘인도에 반한 죄(제9조)’. ‘사람에 대한 전쟁범죄(제10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들은 이 사건 심판대상인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용어가 사용된 법률안13)들을 살펴보면 각 법률안들에서 사용된 ‘반인권적 범죄’도 그 개념과 범위에 있어서 다양하므로, 위 법률안의 규정으로도 이 사건 심판대상을 개념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

셋째, 대법원판결 중 소수의견14)이 내린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의 정의 역시 개별사건에서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내린 판시이므로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의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정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이와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인 불법행위는 개념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며 가변적이어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떠나 그 개념이나 유형이 객관적ㆍ개념적ㆍ추상적으로 가분되거나 특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청구는 부적법하다.

(3) 소결론

이상과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 중 민법 제766조 제1항을 각하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하여는 재판관 6인이 적법의견이므로 이하 본안판단에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하여만 살펴본다.

(1) 소멸시효의 존재이유

소멸시효제도는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 즉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계속된 경우에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그 자의 권리를 소멸시켜 버리는 제도이다. 이러한 소멸시효제도의 일반적인 존재이유는 다음과 같다(헌재 2005. 5. 26. 2004헌바90, 판례집 17-1, 660, 663-665 참조).

첫째, 계속되어 온 사실상태를 진정한 권리관계로 인정함으로써 과거사실의 증명의 곤란으로부터 채무자를 구제하고 분쟁의 적절한 해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오랜 기간 동안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한 자는 법률의 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으며 시효제도로 인한 희생도 감수할 수밖

에 없는 것이지만, 반대로 장기간에 걸쳐 권리행사를 받지 아니한 채무자의 신뢰는 보호할 필요가 있다.17)

(2) 재산권 형성적 법률유보와 소멸시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채권의 일종이므로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의 내용에 포함되는 권리인데 재산권은 다른 기본권과 달리 기본권 형성적 법률유보의 형태를 띠고 있는바 재산권은 기본권의 주체로서의 국민이 각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자기 책임 하에 자주적으로 형성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보장해 주는 기능을 하므로 재산권의 보장은 곧 국민 개개인의 자유 실현의 물질적 바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자유와 재산권은 상호 보완관계이자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헌재 1998. 12. 24. 89헌마214, 판례집 10-2, 927, 945 참조). 그러므로 소멸시효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규정들은 헌법 에 의하여 보장되는 재산권의 하나인 채권의 구체적인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나 그와 동시에 그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함으로써 재산권인 채권의 행사 및 존속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위헌성의 심사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기본권제한 입법의 한계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개정 독일 민법(2002. 1. 1.부터 시행)은 개정 전 독일 민법 제195조에 규정되었던 통상의 소멸시효기간을 30년에서 3년으로 대폭 축소하였고 위 3년의 소멸시효 기산점과 관련하여 개정 독일 민법 제199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시효는 ‘청구권을 발생하게 한 사실 및 청구권 발생에 대하여 채권자가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을 때’에 진행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사실에 대한 인식 등과 관계없이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객관적 소멸시효체계’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사실에 대한 인식 등이 있어야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주관적 소멸시효체계’로 전환하면서 그 시효기간을 대폭 축소하였다.18)

또한 독일은 국가범죄(공무원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을 규율하는 법률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19)주로 법원의 판례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 특별한 경우로서 나치정권과 동독정권의 불법청산과 관련하여서는 특별법의 형식(나치피해자보상법 등)으로 제정되어 보상신청기간을 두고 있었는바 오늘날 그 기간이 모두 종료되어 원칙적으로 보상급부청구권을 주장할 가능성은 없다.

(2) 일본

일본 민법 제724조에 의하면,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하여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의 때’로부터 20년을 경과하면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채권과 채무는 우리 구 예산회계법과 유사한 회계법상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시효의 이익은 당사자가 원용하여야 함에도 불

구하고(민법 제145조) 국가에 대한 채권, 채무가 시효에 의하여 소멸하는 경우에는 시효를 원용하지 않아도 절대적으로 소멸하도록 하고 있다(회계법 제31조).

그외에 특정채권 영역에 대한 소멸시효배제의 문제는 특별한 입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3) 미국

국가에 대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채권의 성질에 따라 소제기기간을 제한하여 소멸시효제도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연방법률이 적용되는 법률관계나 미국정부에 대한 청구권의 경우에는 특별한 출소기간을 두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 미국연방법률이 적용되는 민사소송은 청구원인(cause of action)이 발생한 때로부터 4년이 지나면 제기될 수 없는데[United states code annotated title 28, §1658], 미연방정부를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의 경우 청구권이 발생한 이후 6년 이내에 소를 제기하여야 하며, 청구권자가 무능력자(disablity)이거나 해외에 있는 경우 이러한 원인이 없어진 이후 3년이내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USCA title 28, §2401 (a)].

특정채권 영역에 대한 소멸시효배제의 문제에 관하여는 예컨대 필요한 경우 ‘헤이든(Hayden)법’ 같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소멸시효를 “소급적으로” 연장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20)

(4) 기타 - 국제조약

국제법상으로도 민사상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부정하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단, 앞서 본 로마협약에서 집단살해죄 등 일정범죄에 대하여 어떠한 시효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 제75조는 피

해자에 대한 배상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피해배상절차는 형사재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절차로서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사항으로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하는 경우에 그 유죄판결에 부수하여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민사배상의 판결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하므로 여기서 시효를 배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하여 일정한 영역에 대하여 소멸시효를 부정하는 원칙을 선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1) 합헌의견(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

(가) 목적의 정당성ㆍ 수단의 적정성

앞서 본 소멸시효제도의 일반적인 존재이유와 특히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의 경우 국가의 채권, 채무관계를 조기에 확정하고 예산 수립의 불안정성을 제거하여 국가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것인 목적(헌재 2001. 4. 26. 99헌바37, 판례집 13-1, 836)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고, 위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상당한 수단이라고 볼 것이다.

(나) 침해의 최소성ㆍ법익의 균형성

1) 문제의 소재

앞서 본 바와 같은 소멸시효제도의 본질과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소멸시효제도는 궁극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존재이유로 하는 것이므로, 만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채권이 여전히 존속한다면 당해 채권을 둘러싼 법률관계에 관한 법적 안정성이 극도로 훼손될 것이기 때문에 특정 채권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적용 자체를 배제시킬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불법행위에 기한 법률관계는 통상 미지의 당사자간에 예기하지 못한 우연의 사고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것이고, 가해자는 언제 손해배상청구를 받을지 얼마나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지 등이 분명하지 아니하여 매우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 10년 또는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결코 짧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전시ㆍ사변ㆍ쿠데타 등 국가비상시기 등에 공무원들이 국가기관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저지른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국가에 대하여 적시(適時)에 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가해자인 공무원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멸실함으로써 진정한 권리실현에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라 소멸시효기간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진정한 권리자에게 가혹하거나 그 권리보호에 미흡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과 관련하여 검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위와 같은 이유로 적시에 권리행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곤란한 경우에 한정된다.

2) 최소침해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의한 소멸시효기간을 일률적으로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정도로 당사자의 권리구제에 미흡한 경우도 발생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멸시효제도로 인하여 제한될 수 있는 진정한 권리의 실현문제는 민법 등 관련규정상 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해석, 시효의 중단ㆍ정지 및 시효이익의 포기 등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고, 실무상으로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늦추거나 소멸시효주장에 대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여 배척하는 등으로 소멸시효제도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를 최소화하려는 법해석이 가능하며,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도 이러한 법해석에 기초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보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의 시효기간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로부터 진행하는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라 함은 ‘채권을 최초로 주장할 수 있고 필요하면 소로써 관철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할 것이며21), 여기서 채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객관적 사정 때문에 소를 제기할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시효기간이 개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앞서 본 국가비상시기 등에 있어서 공무원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특정불법행위의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배상청구권을 주장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동안에는 시효기간이 개시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22)).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그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를 최소화하면서 진정한 권리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보완 방법이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3) 법익균형성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 규정을 둘 경우 그 피해자인 국민이 이로 인하여 받는 정신적, 물질적 손해의 정도와 충격이라는 사익도 적지 않으나 앞서 보았듯이 이 사건 법률조항들로 인한 불이익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경우도 기존 소멸시효제도를 적절하게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불합리한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멸시효제도로 말미암아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구제하기 위하여 소멸시효를 배제한다고 하면 국가의 채무는 영원히 존재하게 되어 그 자체로 소멸시효제도의 목적인 법적 안정성의 본질적 내용이 크게 손상될 것임은 명확하고, 특히 법적 안정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국가배상청구권이 국민의 신체ㆍ생명 등 자유권의 침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 보듯이 재산권의 침해로 인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것으로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의 형평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면서 국가의 재정운영 등과 관련하여 법적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적용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그로 말미암아 침해되는 피해자인 청구인들의 사익보다 크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법익균형성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다) 소결

위와 같이 소멸시효제도는 법적 안정성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최소침해성과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2) 헌법불합치의견(재판관 김희옥, 재판관 송두환)

(가)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정성

위 (1) (가)와 같다.

(나) 침해의 최소성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재산권의 하나로서 보장되고, 특히 그것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일 때에는 헌법 제29조 제1항23)이 직접 이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입법자가 단지 국가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형식적인 권리나 이론적인 가능성만을 제공할 뿐 권리구제의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법률에 의한 권리구제절차의 개설은 사실상 무의미하며(헌재 2002. 10. 31. 2001헌바40, 판례집 14-2, 473, 481), 따라서 헌법이 정하고 있는 손해배상청구권이 형해화될 수 있는바 특히 헌법 제10조 제2문이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천명하고 있으며, 오늘날 기본권이 직접 효력을 갖는 법으로서 입법자를 기속한다는 점에서 볼 때, 위 헌법조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인정 여하를 전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에 맡긴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 사건에서 보면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경우는 미지의 당사자 간에 예기하지 못한 우연의 사고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데다가 심지어 가해자인 공무원에 의한 증거 내지 국가기록의 의도적 은폐, 폐기 등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고, 이 경우 평상시의 일상적 분규에 의하여 야기된 권리침해와는 발생배경과 경위가 현저히 다른 반인권적 범죄의 피해자인 국민이 장기간에 걸쳐 권리행사를 하지 아

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국가가 갖는 신뢰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바,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국가를 채무자로 하는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하여는 보다 장기간의 소멸시효기간을 규정하거나 혹은 그밖에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여야 할 것임에도, 오히려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르면 일반법인 민법 제766조 제2항이 적용되는 것으로 일률적으로 규율하고 있고, 나아가 국가재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특별법인 구 예산회계법 제96조 제2항은 5년이라는 더 짧은 소멸시효기간을 규정하면서 그러한 특수한 불법행위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형해화하는 것으로 입법형성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므로 침해의 최소성에 위반된다고 볼 것이고24), 더욱이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는 비상시의 극히 예외적 상황을 전제한 것이므로, 이로 인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25)

(다) 법익의 균형성

위에 본 바를 종합하면 국가채무에 대하여 소멸시효 규정을 둘 경우 앞서 본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입법목적에 따른 법적 안정성 등 공익도 적지는 않다고 할 수 있으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 주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개인의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형벌권과 강제처분권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의 기관인 공무원이 범한 ‘반인권적 범죄’의 경우 그 피해자인 국민들이 입은 정신적, 물질적 손해의 정도와 충격이 가볍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빈도수에 불문

하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국가기관의 조직적 침해에 대해서는 사후에라도 손해배상 등의 구제수단을 통한 교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이 실질적 정의와 법치국가의 기본 이념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이다.

특히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의 경우 국가가 조직적, 계획적으로 인권침해와 증거 은폐ㆍ조작을 할 가능성이 있는 점, 피해자들은 단지 평상시를 전제한 소멸시효규정 하에서는 실효성 있는 권리주장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시효제도의 법적 안정성은 한 발 후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아무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그러한 시효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원칙에 위배된다.

(라) 소결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는 재산권 제한의 한계를 일탈하여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균형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해서는 단순위헌결정을 하여 바로 그 효력을 상실시키는 것이 원칙이라 하겠으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효력을 즉시 상실시킬 경우에는 여러 가지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자는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제도의 적용을 제한함으로써 합헌적인 방향으로 법률을 개선(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방법)하여야 하고 그때까지 일정 기간 동안은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존속케 하고 또한 잠정적으로 적용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한정위헌의견(재판관 조대현)

국가가 공권력을 이용한 범죄행위로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접적으로 침해하였다면, 국가가 헌법 제10조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고의적으로 위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접 침해한 것이므로, 그로 인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5년 또는 1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소멸시키는 것 역시 헌법 제10조에 위반되어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위헌성을 근본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 중 위헌적인 내용을 제거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국가가 공권력을 이용한 범죄행위로 개인의 불가침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접 침해한 경우에 생기는 손해배상채무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본 결정은 우선,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인정 범위에 관한 기존의 선례에 대한 재검토 과정에서 유형설을 포함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즉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과 관련된 논의는 한정위헌결정 문제, 재판소원 문제 등과도 연관된 것으로 향후 그 논의의 폭과 깊이를 더하여야 할 부분인데 본 결정에 의하여 그 본격적 논의의 단초가 제공된 점에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도 기존의 소멸시효제도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결정은 소멸시효제도 및 선례의 재검토를 통하여 위와 같은 경우에도 소멸시효규정의 적용이 합헌적임을 선언하며 그 적용배제가능성을 배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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